김진명의 한국사 X파일
김진명 지음, 박상철 그림 / 새움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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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지 않으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기억을 더듬어보니 나는 그의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구판 출간 때 읽었더라. 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도 봤다. 지금 찾아보니 참 오래된 영화던데, 아마, 그때 나는 소설의 흥미를 영화로 이어가려고 봤던 것 같다. 그 작품을 시작으로 한동안 그의 소설을 꾸준히 읽었다. 역사에 문외한인 내가 그나마 역사에 접근하는 방법이었던 거다. 요즘에야 그의 작품을 덜 읽기도 하고(그때보다 출간작이 적기도 하고), 비슷한 분위기의 소설들이라 피해가려고도 했지만(사실이 그러하니 고백한다), 이번 신간 『김진명 한국사 X파일』을 읽다 보니 그의 작품을 다시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읽었던 그의 작품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 거다. 한 편의 소설이 완성되기까지 수많은 자료조사가 필요하다는 걸 몰랐던 건 아닌데, 그가 여러 곳으로 향한 발걸음은 소설을 위한 자료조사인 것도 맞지만, 무엇보다 그가 찾으려 애썼던 우리 역사의 진실을 이렇게 마주하고 보니 소설이 소설로만 보이지 않는다. 추측건대, 그는 독자들에게, 더 넓게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이런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우리 역사를 지키는 이도, 오랫동안 계속된 역사의 오류를 바로잡을 이도 오직 우리뿐이라고 말이다.

 

이 책은 저자의 그런 마음으로 태어난 소설의 배경이 되기도 하고, 그가 어떤 간절함으로 취재해왔는지 확인시켜준다. 읽기 쉽게 그림으로 구성되어서 더 빠른 이해를 부른다. 모두 7장으로 구성하여 그가 그동안 의문을 갖고 파헤쳐온 우리 역사의 뿌리를 듣게 한다. 가장 먼저 한국의 한(韓)은 어디서 왔는지 파헤친다. 한 씨의 유래를 찾은 것부터 시작한 게 중국 역사의 한 부분으로만 여겼던 그 이름을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발견하게 되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그건 우리가 가진 역사의 기록이 거의 없는 데서 비롯한 일이기도 하기에 안타까운 일이다. 기록이 없었거나 기록이 사라졌거나 둘 중 하나겠지만, 역사의 진실은 기록에서 증명한다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거듭 강조하는 것이리라.

저자가 임나일본부 조작의 역사를 파헤친 소설 『몽유도원』을 취재하면서 밝힌 사실로 일본의 교과서에서 임나일본부설을 빼게 하는 실마리가 되었다. 사실 이 부분 읽으면서 (이 책에서 소개된 다른 근거들을 보면서도) 한 나라의 역사학자들이 분명하게 진실을 드러내는 것보다 자기 나라의 위신을 살리는 게 먼저라는 사고를 갖는데 놀랐다. 소설로만 대할 때와는 달랐다. 진실을 알고서도 묻어버리려는 마음은 학자가 지녀야 할 자세를 덮기도 하는구나 싶어서 씁쓸했다. 그렇게 덮여진 진실들은 또 얼마나 될까 싶어서 의심이 자꾸 쌓이기도 하고...

『황태자비 납치사건』을 읽으면서도 많이 흥분했었는데, 그 소설의 배경이 되는 자료를 찾아다니던 작가의 노고를 이 책으로 듣고 보니 더 아팠다. 명성황후 최후의 순간을 그리는 일은 소설로만 머물기를 바라지 않게 된다. 그가 그 순간을 찾으러 다니면서 발견한 진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한 나라의 왕비가 어떤 모습으로 죽어갔는지, 진실을 밝히겠다는 학자조차도 차마 있는 그대로 서술할 수 없었음을 확인한 순간 말문이 막혔다. '사간'이나 '사후능욕'이 아니라, 에조보고서에 기록된 그대로 '칼로 몇 군데 상처를 내고 발가벗긴 후 국부검사를 했다'는 만행을 확인하게 된 거다. 이 소설의 일본 출간이 무산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작가는 무엇보다 일본인에게 읽혔으면 하고 바랐겠지만, 역사의 기록조차도 자기에게 유리한 대로 드러내놓은 정도라면 이 소설이 불러올 파장을 알기 때문이겠지.

박정희의 죽음을 김재규의 반란 정도로만 여겼는데, 그가 찾은 박정희 죽음의 진실은 뜻밖이었다. 이미 소설로 읽을 당시에도 놀라웠는데, 그의 진실 추적 과정을 듣고 보니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처럼 으스스했다. (이 부분은 그의 소설 『1026』에서도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박정희 죽음에 가려진 배후와 진실을 듣고 보면, 수많은 '만약'을 떠올리게 된다. 만약 박정희가 죽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의 현재는 어떠했을까, 만약 박정희가 핵 개발을 성공했더라면 우리는 북한과 어떤 관계가 되었을까, 등등. 그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지만, 여전히 그의 흔적이 남은 채로 진행되는 대한민국의 오늘을 떠올려본다.

김정남 암살 사건으로 떠들썩한 요즘이다. 그만큼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에 대한 관심도 높다. 또 누가 죽어 나갈까, 북한의 정권은 어떻게 흐르는가,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저자가 말하는 북한 정권의 내막을 듣고 보니 더 궁금해지더라. 정말 김정은이 실세일까? 김정은은 그가 마음먹은 대로 정권을 휘두르고 있는 게 맞나? 뉴스로 접하는 소식이 전부였던 나에게 저자의 설명은 북한 내부 구조와 그 안에서 힘을 발휘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게 한다. 여전히 다 알 수 없는 곳이 북한이지만, 폐쇄된 그곳의 흐름을 이렇게나마 접할 수 있다니 다행이다.

함흥차사를 오래된 속담 정도로만 생각했던 나에게, 저자가 전하는 진실은 놀랍기도 했고 권력 앞에서는 부모·자식도 없다는 씁쓸함을 안겼다. 『하늘이여 땅이여』에서 이미 드러났지만, 태종(이방원)이 아버지 태조 이성계를 유폐시키면서 들을 욕을 차단하고자 만든 유언비어였다니... 역사가 살아남은 자의 기록이라고 생각하면 전혀 이상할 것도 아니겠지만, 그 내막을 알고 다시 보는 역사는 우울하다. 꼭 그렇게 해야만 했나 싶을 정도로, 권력을 위해서는 역사 왜곡도 아무렇지도 않구나.

 

 

 

한자의 주인을 찾는 문자의 기원을 둘러싼 역사 전쟁도 흥미롭다. 마지막 장인 이 내용은 『글자전쟁』에서 확인한 바 있다. 이 내용 역시 그 뿌리가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찾아낸다. 그래서일까. 한 번씩 이런 내용을 확인할 때마다 궁금해진다. 도대체 우리가 모르는 우리 역사, 왜곡되어 관심조차 없는 역사가 얼마나 많을까 하고 말이다. 그런 궁금증에 이어, 그렇게 감춰진 우리 역사를 찾는 일은 여전히 진행 중이어야 한다는 과제를 떠올려본다. 저자가 하는 말, 저자가 발 벗고 나선 행동 역시 그 과제를 수행 중인 거다. 이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가 하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저자는 우리가 길든 역사의식에서 벗어나 자각과 이성의 눈으로 역사를 보고 현실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관심 두고 끈질기게 취재한 역사를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유도 똑같다. 역사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25년 동안 뛰어다닌 그가 소설이란 기록으로 들려주려는 흔적을 이렇게 확인하고 보니, 그의 소설이 태어나기 위해 참 많이도 애썼구나 싶다. 게다가 하나의 이야기로만 남는 게 아니라, 역사까지 관심 두게 하니 소설 그 이상의 역할을 해왔던 것 아니겠나.

 

혼란스러운 정국에 한국사 열풍이 이는 건 낯설지 않다. 그건 아마도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 게 아닐까. 현재의 오류를 바로잡고 제대로 된 나라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고 싶은 바람이 담긴 듯하다. 넉 달이 넘게 계속되는 혼란스러운 현실에 지친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을 역사에서 보고 싶은 거다. 역사 속 우리는 이런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왔는지 듣고 싶기도 할 테고, 수많은 문제의 해결을 어떻게 이뤄내어 오늘의 대한민국까지 이어져 왔는지 확인하고 싶은 거라고. 그 안에는 왜곡된 역사도 포함된다. 저자가 취재로 밝혀온 역사의 진실을 드러냄으로써 오해와 오류를 바로잡은 일들을 이렇게 증명하는 게 힘이 된다. 오늘의 오류를 바로잡을 기회, 힘, 의지가 있음을 말하고 싶은 게 저자의 진심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쉽고 편하게 읽게 만들어진 이 책이 마냥 쉽게만 다가오지 않는 이유다. 마음이 무겁다. 그의 노고를 확인하게 되어 미안하면서도, 내가 사는 이 시간이 어디서 비롯되어있는지 깊게 생각해보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반성과 기회의 시간을 동시에 만드는 책이다.

 

기존 출간된 그의 소설과 함께 읽으면 더 많은 이해와 공감을 불러올 것이니, 기회가 된다면 그의 소설과 함께 차근차근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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