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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우리는
박정아 지음 / 청어람 / 2017년 2월
평점 :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할 수밖에...
이상하게도, 금기에 끌리는 게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싶다. 그 본성의 근거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제까지 살면서 그 금기를 궁금해하지 않았던 적이 드물다. 굳이 금서라고 하니 더 찾아보고 싶고, 절판이라고 하니 더 궁금해지는 마음에 보태어, 금지된 사랑이라고 하니 더 확인하고 싶어진다. 어쩌면 형부가 되었을지도 모를 남자와 어쩌면 처제가 되었을지도 모를 여자의 만남이라는 설정이 더 듣고 싶은 건 그래서인지도...
내가 만나던 남자가 며칠 후에 약혼한단다. 나와 만났던 반년의 시간은 뭐란 말이지? 그의 약혼녀가 찾아와 서윤의 마음을 흔든다. 아니, 처음부터 서윤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저 그가 약혼녀를 두고 자기를 만났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마음을 더 단단히 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사랑했던 시간과 마음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녀의 결정이 옳다고 믿어야 했다. 더는 그를 마주할 생각이 없으니까. 마지막 기회조차 그는 거짓말로 서윤을 실망하게 했으니까.
그런 서윤에게 지금과는 다른 시간, 환경이 필요했다. 그래서 떠난 여행, 그렇게 자리 잡은 청주. 새로운 직장을 구했고, 작은 집도 얻었다. 거기에서 인연이 시작될 줄 누가 알았을까. 바로 옆집에 사는 남자가, 한때 형부가 되었을지도 모를 기주였다니. 서윤이 미안한 마음을 사람이기도 하다. 언니의 선택에 조언했다는 이유로... 그런 남자와 이웃사촌으로 마주하면서, 오가며 마주할 일이 생기고, 그런 시간이 쌓여가는 그때.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미 마음은 서로에게 건너가 버렸다. 그렇게 움직이는 마음이 단속한다고 멈추거나 머뭇거리지는 않는 거겠지. 안다. 법적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이임을. 하지만 남들이 흔히 말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어긋나는 관계가 될 수도 있음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서윤은 온 힘을 다해 고백하고 기주를 붙잡으려 하지만, 기주는 그의 마음을 꼭꼭 숨기고 서윤에게 거짓으로 행동한다. 너를 마음에 두지 않는다, 마음에 두어서도 안 되는 존재다, 이대로 서로에게 모르는 존재가 되어버리자. 웃기게도 진심이란 건, 감춘다고 감춰지는 게 아니라는 거.
설정 자체가 독자의 호기심을 끌 만하다. 드라마 <눈사람>과는 다른 시작이고 다른 내용이니 혹시나 그런 분위기를 예상한 독자가 있다면 접어두시길. 그저, 형부와 처제로 엮일 수도 있었던 두 사람이었지만 전혀 그런 관계가 아니었다는 거다. 그러니 시작도 진행도 마침표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테지만, 어디까지나 주변의 많은 사람이 던지는 시선이 관계를 흔든다. 시작도 하기 전에. 하긴, 말이 많이 나올 수 있는 사이이기는 하다. 기주의 부모에게도, 서윤의 부모에게도 핵폭탄이 투하된 것 같을 거니까. 서윤과 기주 사이에 일어날 문제는 이게 전부다. 오직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 미안한 대상에게 또 한 번 미안해야 할 일이 생기는 것.
읽기 전에는 막장이라고 부를 이야기가 아닐까 염려되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고, 읽는 동안 계속 마음이 술렁였다. 과거의 인연이었지만 이웃사촌으로 그저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한 부분에 자리할 줄 알았는데, 점점 마음이 가는 걸 붙잡지 못하는 상황을 이해하고 싶어서다. 누굴 좋아한다는 건 계획적으로, 작정하고 이뤄지는 일이 아니므로. 그래서 더 괴로웠겠지. 전혀 그럴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흘러가는 마음을 붙잡을 수 없어서 고통스러웠겠지. 이제 어쩌겠어. 쏟아낼 수밖에. 그런 면에서 보면, 서윤의 용기가 이 사랑을 성공시키는 힘이 되지 않았나 싶다. 안 된다며 물러서고, 급기야 도망가고 말았던 기주에게 항복의 선언을 끌어냈으니 말이다. ^^
우연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기주의 말처럼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에서 더 눈여겨보고 싶은 건, 허락된 사랑을 얻기 위한 그들의 간절한 기다림이었다. 이들의 힘든 사랑의 결실이 더 예뻐 보이는 건, 눈에 뵈는 게 없는 사랑으로 풀어갈 줄 알았더니만 감정이 바탕이 된 이들의 이야기에 이성적 판단과 이해를 보태어 잘 그려진 그림으로 완성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의 사랑 때문에 힘들고 아플 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도 놓치지 않더라. 작가의 전작 한 편을 읽었는데,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에서 평범하게 이뤄가는 사랑이 담백하면서 공감하게 하더라. 그 이유로 이 작품 궁금했는데, 비슷한 분위기이면서도 그들의 로맨스에 더 설레게 한다. 외면한다고 사라질 마음이 아니라는 걸 거듭 확인하게 된다. 가독성도 좋고, 가슴이 콩닥거리기에 충분한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