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 열매를 주렁주렁 맺기 좋은 날이다.
이틀 전만 해도 새벽에 눈을 뜨는 이유가 너무 더워서였는데,
오늘 새벽에는 너무 추워서 계속 잘 수가 없더라.

재채기로 하루를 보내다가,
문득 때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
계절이 넘어가는 계절, 이름 없는 어떤 계절을 통과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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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서점기행 (보급판)
김언호 글.사진 / 한길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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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좋아하고,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책을 존중하는(이 책을 읽어보면 저자가 책과 서점을 정말 존중한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세계의 서점을 따라 걷는 저자의 발자취가 낯설지 않은, 마치 정해진 것처럼 당연한 일이었던 걸로 여기게 된다. ‘왜?’라고 묻지 않아도 된다. 그건 눈으로 그리지 않은 그의 인생 계획표의 일부였는지도 모른다. 저자 덕분에 독자인 나도 덩달아 세계의 아름다운 서점을 이렇게 보고 있으니 흐뭇하다.

 

국내의 부산의 어느 서점부터 북유럽의 서점까지, 세계의 아름다운 서점을 그대로 담아왔다. 여기서 아름답다는 의미는 서점의 외관부터 인테리어뿐만 아니라, 그 안의 풍경과 서점이 이끌어온 역사와 정신까지 포함해서 이르는 표현이다. 각 서점의 역사와 의식, 창립자의 사연까지 듣고 보면 반하지 않을 수가 없다.

 

중간 부분 이후로는 중국의 서점이, 뒷부분에 다다르면 부산의 서점도 소개되어 있는데, 아무래도 앞에서부터 소개된 유럽의 서점이 더 눈에 들어오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의 서점과는 다른 웅장함과 고서점의 분위기까지 풍기는데, 그 안에 서서 책의 페이지를 넘기는 나를 상상해보면, 정말이지 없던 고상함까지 끌어내 오고 싶을 지경이다. 아무래도 책이 가득한 공간이라는 분위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앞서 그 책이 담긴 건물 때문에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데 한몫한다. 유럽의 건물 양식이 그러할 테고, 익숙한 동양인이 아니라 서양인이 가득한 공간이라는 데서 오는 낯섦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그 서점이 태어난 배경과 유지하는 데 힘을 주는 독자와 동네 주민들의 역할을 들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와 노르웨이의 독립서점을 다녀온 그가 건넨 사진에서 유럽서점의 스타일이 그대로 보인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네덜란드의 마스트리흐트의 <도미니카넌서점>은 어마어마한 복층의 구조가 웅장했다. 800년의 세월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서점을 책의 신전, 서점이 고전이라고 했는데, 이 서점의 분위기를 보고 고전이 가득할 거라는 생각 역시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진을 보자마자 여기서는 대부분 책이 고전일지 모른다는 착각부터 했으니까 말이다. ‘회원의 날’을 만들어 음악회도 열고, 일정 권수 이상 구매하면 혜택도 준다. 네덜란드 역시 도서정가제가 시행 중이라고 한다. 영국 런던의 <토트 북스> 역시 비슷한 분위기다. 2층 구조의 서점이며, 어떤 광고도 하지 않는단다. 다만 구매자에게 30파운드 이상의 책을 사면 작은 가방을, 70파운드 이상이면 큰 가방을 선물하는데, 이게 바로 광고 대신이었나 보다. 반응이 좋은 것 같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도미니카넌 서점

영국 런던 돈트 북스

미국 펜실베이니아 미드타운 스콜라

 프랑스 파리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눈여겨봤던 서점이 프랑스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인데, 그 창립 배경이 단순한(?) 것에 비하면 서점의 역사는 우여곡절을 많이 겪은 것 같다. 1919년 미국 출신의 실비아 비치가 프랑스에서 영어책 서점을 낸 게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다. 가난한 작가·예술가들이 그의 서점에서 책을 빌려 갔다고 하는데, 오늘날의 대여점과 서점의 혼합이 아니었나 싶다. ^^ 1차 세계대전 후, 경제적 불황이 심화하면서 다시 전쟁으로 가고 있던 심사치 않은 그 시대에도 이곳은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다니, 어떤 사람들이 어떤 분위기로 여길 드나들었을지 상상이 된다. 여기서 실비아는 제임스 조이스와 만난다. 그의 작품 『율리시스』의 출간이 어려워지자 그녀가 직접 출판하기도 하면서 대박을 친다. (제임스 조이스의 서명이 담긴 율리시스 초판본이 뉴욕의 고서점 아르고시에 있는데, 6,000만 원이란다. 헉!) 하지만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살림은 고단했고, 1930년대가 끝나가면서 파리는 전장으로 변했고, 제임스 조이스가 세상을 떠나는 1941녀에 실비아도 서점을 문 닫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피네간의 경야』 때문이다. 독일 장교가 탐내던 그 책을 실비아는 내어줄 수가 없었다. 그에 거부하니 실비아는 6개월 동안 수용소에 갇혔고, 기력도 쇠약해져 더는 서점을 운영할 수 없었던 거다. 훗날 시간이 흘러 미국 청년 조지 휘트먼에 의해 서점이 이어지면서, 갈 곳 없는 작가들과 배고픈 지식인들을 위해 수프를 끓였다는... 자기 서점을 ‘잡초 여관’이라 부르며 삶과 사유의 안식처로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정신은 계속되었다. 현재는 조지 휘트먼의 딸 실비아 휘트먼이 이어가고 있다. 서점이 가업이 되는 순간이 이런 기분일까? 일본의 오래된 라멘집의 전통을 보는 느낌이다. 규모나 배경, 이익 창출을 떠올리지 않고 오직 책과 그곳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물론 수익이 있어야 유지가 되는 건 당연하고!

 

 

그리고 이어지는 미국과 중국, 일본, 한국의 서점이다. 중국의 베이징, 상하이, 난징의 서점과 서점인들이 문제의식을 발동하고 중국사회를 같이 본다. 24시간 문을 여는 싼롄타오펀서점의 바람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지원하는 독서정책이 부럽다. (내가 사는 이곳 도서관은 2016년 도서관 도서구입비를 10분의 1 이하로 줄였다고 하던데, 그래서 올해 입고된 신간이 많지 않더라) 일본의 서점은 보고 바로 일본인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개성 있고 매력적이었다. 우리나라의 부산 영광도서의 계속되는 변신, 꾸준한 보수동 책방골목은 우리 서점의 역사라고 한다. 사실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고, 언제 가게 될지 기약이 없이 그냥 오랜 시간 들어온 곳이라서 그런지, 저자가 말하는 우리 ‘서점의 역사’라는 표현이 낯설지는 않다. 다만 이 책을 읽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유럽처럼 기본 몇백 년은 된 고서점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보고 싶다는 바람이 생긴다.

 

독자와 시민이 명문서점을 만든다는 저자의 말은 뭔가 울컥하기도 하고, 서점을 좀 더 다르게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저 책을 파는 곳, 책을 사기 위해 드나드는 곳으로 여겼던 내 마음은 변함이 없지만(여전히 내게 서점은 그렇다), 독자와 시민이 나서서 서점 성원 운동을 벌였던 다른 나라의 서점 역사를 듣고 보니, 역시 이익을 내야 운영되는 곳이 서점이기도 하지만, 그 지역의 문화와 정신을 끌어가는 곳으로 거듭나고 유지되어 한다는 말에 공감하고 싶어진다. 폐허가 된 극장에 들어선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미드타운 스콜라서점이 낙후된 지역을 재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듯, 네덜란드 책방 마을 브레데보르트가 관광지가 지역을 발전시켰듯,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와 뉴욕의 스트랜드서점이 명문서점이자 관광코스가 된 것처럼, 지역발전에 유의미한 존재가 되는 곳으로 거듭나는 건 서점 혼자만이 이뤄낼 수 없는 일이다. 저자가 들려준 이런 서점의 이야기, 세계 서점의 매력들을 듣고 있노라니 더 부러워진다.

 

내가 사는 이곳에도 서점이 있긴 하지만 안 간지 몇 년은 된 것 같다. 대부분 수험서나 교재, 베스트셀러가 진열되어 있고, 편하게 앉아 책 구경 하기는 힘든 분위기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서점이 익숙하다. 대형서점이 들어와서 카페 같은 분위기로 이용자들을 편하게 해주었으면 좋겠지만, 앞으로도 금방 들어온 것 같지는 않고... 이번 여름에 집 앞에 시립도서관 분관이 개관했다. 처음 여기 공사할 때는, 책 들여올 예산도 부족하다면서 이미 4개의 분관이 있는 시립도서관에 굳이 또 만드나 싶었다. 차를 타고 10분이면 가는 곳에 도서관이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막상 도서관 개관하고 나니 이용자가 많다는 걸 알았다. 도서관 아래층에 노인복지관을 같이 운영해서 그런가.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어르신도 많았고, 도서관에서 어르신 상대로 개설하는 수업도 종종 있던데, 괜찮더라. 도서관 다니면서 엄마 수업도 신청하고 오곤 했다. 억지로 신청해놓으니 귀찮다고 하면서도 가시더라. 거기 수업에서 만든 작품(?)을 집에 걸어두고, 사진 찍어서 막 손주들에게 보내라고... ^^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서점과 서점인이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사람들과 소통하는지, 세상을 경험하는지 보여준다. 오랜 시간 그 명맥을 이어올 수밖에 없는 의지를 들려준다. 그곳을 지켜내야만 했던 이유가 너무 간절했던 거다. 단순하게 책이 아니고, 그냥 그런 서점으로의 공간이 아니었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싸워야 할 많은 것을 찾게 하는 의식의 장소였던 거다. 서점이 하나의 나라라면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들과 이용하는 시민들은 그 나라를 지키고 이끌어온 국민이다. 세계 명문서점은 베스트셀러에 매달리지도 않고, 문화를 연결하여 사람들 가슴에 들어가려 하는지 얘기한다. 책을 선택하는 서점인의 안목, 서점에 대한 독자·시민 의식이 명문서점을 만들어낼 거라 말한다. 도서관도 비슷한 맥락인 듯하다. (여기에 분관 만드느라 예산 낭비한다고 투덜댔던 거, 도서관 개관하자마자 반성했다. 생각보다 이용자가 많았다. 도서구입비나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 여기에 소개된 서점이 전부가 아닐 테지만, 이보다 더 할 말이 많을 테지만, 이만큼이라도 본 책의 숲도 아름다웠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저자처럼 언젠가 한 번은 세계의 서점 순회 간절하게 하고 싶어질 것 같다. ^^

 

 

 

어느 작은 서점의 구석에, 이런 내 자리 하나 고정석으로 있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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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의 남자
훈 지음 / 봄출판사(봄미디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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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파리에서 개최된 세계 박람회에서 가우디의 작품을 본 구엘은 그의 재능을 확인하고 난 후, 그의 작품을 알리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둘의 우정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가난한 대장장이의 아들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는 계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둘의 각별한 관계는 구엘이 죽기까지 40년 동안 계속되었다고 한다. 둘 사이의 그 어떤 관계보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각인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예술적 안목과 재능을 겸비한 재력가 구엘이 가우디를 통해 자신의 열정을 불태웠다고 한다.

 

건축과 관계없는 사람도, 건축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그 이름, 가우디. (오래전, 학교 앞 카페의 이름도 가우디였던 게 생각난다. ^^) 어쩌면 흔하게 들어왔을지도 모를 그 이름에 대해 아는 건 별로 없었다. 그저 아름다운 건축물의 이름에 늘 따라오는 이름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가우디와 구엘이라니. 둘의 조합이 이 소설에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도 궁금했다. 그거야 막상 읽다 보면 알겠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앞서더라. 건축을 하고 싶은 이라면, 정말 한번은 가우디의 건축물을 직접 보고 싶은 건 당연하지 않을까? 그래서 두 주인공이 만나는 배경이 된 스페인이 기대됐다. 어려운 형편이지만, 그래도 직접 보고 싶은 그곳을 향한 원혜윤. 바르셀로나는 낯선 곳이지만 그녀가 꿈꾸던 도시였다. 초라한 행색이지만 그녀의 열정만큼은 누구와 비할 수가 없는 여행길이었다. 우연이라면 그녀의 짝사랑을 고백할 운명인 거고, 아니라면 달콤한 꿈이라고 생각할 그 순간. 대학교 때부터 짝사랑했던 선배 공지섭을 만났다.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그를 보는 그녀의 눈빛이 반짝일 수밖에 없다.

 

"보자. 내일 이 시간 이 장소에서."

"좋아요. 내일."

 

찰나의 순간에 마주친 인연으로 끝날 것 같았는데, 그는 여행지에서의 다음 만남을 제안했다. 약속이다. 내일, 다시 만나자는 그 말이 혜원의 가슴을 끓게 했다. 저녁을 먹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혜윤은 수줍게 고백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간절함이었다. 하지만 그는 거절했다. 어쩐 일인지, 그는 이미 혜윤이 자기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가오지 말라고 선을 그었다. 자기를 향한 마음을 정리하라면서... 그래, 꿈이었구나. 바르셀로나의 그 순간은 눈을 뜨면 깨어날 그냥, 꿈이었구나. 한국으로 돌아와 학교에서 들은 소식, 지섭이 한 학기 남겨두고 학교를 자퇴했단다. 이렇게 정말, 그와는 끝이구나.

 

6년이 흘렀다. 학교 선배 영민의 건축회사에서 일하는 혜윤은 새로운 프로젝트의 어마무시한 임무를 맡는다. 이름은 유명하지만, 얼굴은 알려지지 않은 건축가 '라이언'을 잡아 오는 것. 그와의 계약을 성사시키는 것. 못한다면 해고. 성공한다면 연봉 두 배. 혜윤은 라이언과의 계약을 위해 애쓴다.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이메일 주소 하나뿐. guelwantsgaudi. 이메일 주소에서 느낀 호감, '라이언도 가우디를 좋아하는구나!' 하는 반가움이 앞서 이 일을 꼭 성사시키리라 다짐한다. 하지만 쉽지 않은 라이언 수색에서 마주한 것은 의외의 인물. 그렇다고 이 계약을 포기할 수는 없지!

 

처음 혜윤의 캐릭터를 봤을 때는 혹시 고구마인가 싶었는데, 의외다. 혜윤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착하게 생각하고 행동했는데, 그게 마냥 답답하지는 않았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끝까지 해내려던 오기도, 원하는 것을 향한 노력도 있었다. 착한 사람에게만 착하게 대하는, 아무리 노력해도 돌아오지 않을 마음에는 애써 관심 두지 않으려는 현명함도 가진 여자였다. 그녀에게 우선인 것은 건축. 그리고 어렵게 찾은 사랑을 위해 당당해지는 일.

 

나중에야 드러나는데, 지섭이 6년 전 그때 혜윤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다시 만난 혜윤에게 지섭이 다가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상황은 역전된다. 밑도 끝도 없이 들이밀고 들어오는 지섭의 직진이 귀여우면서도 곧아 보여서 좋더라. '나는 너여야만 하고, 그래서 나는 을이 되어 기다림도 불사하겠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는 을이 갑이 되는 하극상도 이뤄 내리라'는 막무가내 정신도 발휘한다. 특히 지섭의 행동에서 눈에 들어오는 부분. 처음에 6년 만에 다시 만난 혜윤과 지섭의 동행에서 지섭은 혜윤의 손목을 잡고 걷는다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그냥 급한 마음에 뒤따르는 사람을 잡아 쥔 곳이 손목이었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런 상황이 몇 번 더 등장하자 어떤 의미가 보였다. 어느 날 지섭이 혜윤의 손을 잡았던 그때, 추측은 사실이 되었다. 그가 혜윤에게 다가가는 방식, 무언가 정리되지 않은 관계에서 더는 다가갈 수 없는 그가 혜윤을 잡을 수 있는 부분은 손목이었다. 손을 잡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대로 보이는 증명하는 듯하다. 지섭이 혜윤의 손을 잡은 순간, 두 손이 하나인 게 어떤 관계인지 설명된다.

 

이 남자 공지섭, 칼처럼 냉정하고, 자기 잘난 거 너무 잘 알아서 재수 없게 당당한 것도 멋있던데,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마냥 빙구가 되는 것도 보기 좋더라. ㅎㅎ 사랑하는 이의 꿈도 이해해주고, 같이 하고 싶은 시간을 위해 기다림의 인내도 보듬을 줄 아는... 구엘과 가우디가 사업과 재능의 관계에서 시작된 끈끈한 우정이라면, 지섭과 혜윤은 건축이라는 같은 길을 가는 사랑이라는 것을 그대로 확인했다. guel wants gaudi.

 

혜윤을 둘러싼 음울한 환경과 악역들이 거슬리기도 하고, 혜윤이 왜 그들에게 사랑을 갈구하려는지 공감하고 싶지 않았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 확인한 인연들에서 그마저도 이해하고야 마는 혜윤의 성정이 현재 그녀의 꿈을 이루며 살게 하는 바탕이 되었을 거로 생각하니, 이해 못 할 것도 없더라는... 꿈과 일, 사랑 앞에서 당당한 이 여자가 계속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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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합본] 평탄했으면 좋겠어 (전2권/완결)
권화록 / 누보로망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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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눈길을 잡아끄는 여주인공 때문에 참 특이한 캐릭터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남자주인공인 신지헌의 말처럼, 이렇게 산만한(?) 여주인공을 만난 건 아마도 처음인 것 같다.

 

지난 연애의 찌질함에 현재 솔로인 인영은 친구 재형의 결혼식에서 눈에 들어오는 남자를 놓치지 않겠다고, 다른 친구들보다 선점할 것이니 다들 먼저 덤비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다. 눈에 불을 켜고 이 예식장의 모든 남자를 살펴볼 것이라는 다짐이라도 하는 듯했다. 그러다 보고야 말았다. 재형의 남편에게 인사하는 하객, 신지헌을. 친구의 결혼식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직 그의 동선에 인영의 시선이 따라갈 뿐이다. 그러다 잠깐 친구의 결혼식에 한눈(?)판 사이에 그는 사라진다. 오늘 결혼한 친구를 닦달해서 쟁취한 신지헌의 전화번호를 받고도 한참 망설이다가 연락을 했는데, 잘못 받은 전화번호였다. 친구를 죽이네 살리네 욕이 나올 것 같지만 참고 진짜 신지헌의 전화번호를 다시 받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렇게 어렵게 받아낸 전화번호를 앞에 두고도 연락하지 못한다. 포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먼저 연락을 하는 데 망설인다. 왜? 먼저 들이대는 여자를 상대가 싫어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증 때문에.

 

첫눈에 반한다는 걸 믿지 않았던 여자가 결국 그 첫눈에 반함을 인정하는 순간을 처음부터 드러냈는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여주인공 인영의 캐릭터가 참 신선하다. 하고 싶은 말 다하는 솔직함에 컬크러시 생각해도 좋겠지만 그것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다. 지헌의 표현 그대로 산만한 성격이라고 밖에는 안 보였는데, 그게 지헌에게는 오히려 장점으로 다가온 듯하다. 솔직한 성격, 내숭 없이 그대로 내보이는 게 인영의 장점이자 매력이라고. 오히려 곰 같은 남자 지헌이 인영과 대조적으로 보이는데, 그게 닮지 않은 두 사람을 서로에게 끌어당기는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인영의 많은 부분을 지헌이 받아주고 이해해주는 걸 보면 잘 어우러지는 조합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렇게 두 사람이 연애를 시작하고 2년이 흐른 상태에서 ‘결혼’이 화두가 된다. 이 정도 연애했으니 결혼하자는 지헌과 결혼 생각이 없으니 연애만 하면 안 되겠느냐는 인영. 달달하게 해왔던 연애가 한순간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데, 마냥 헌신적일 것 같은 지헌의 노력으로 둘은 결혼을 결심한다. 이제 현실 속 결혼으로 뛰어들어야 하는데, 아... 이 순간 소설은 엄마가 즐겨보는 막장드라마로 전환한다. 지헌의 엄마는 전형적인 시어머니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그나마 소설이 중심을 잡는 건 지헌의 노력과 인영 부모님의 털털하고 시원한 성격 때문이다. 뭔가 홀리듯 상황을 이끌고 가는 인영의 부모님은 약간은 코믹 캐릭터에 순수하고 재미있는 사람들이고, 지헌은 약속했던 것처럼 인영을 위해 노력하는 남자이자 남편이 되려고 하고. 그런데 좀 이해 불가한 것은 지헌의 엄마만큼이나 인영의 이기적인 태도였다. 서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무조건 ‘나에게만 맞춰!’ 하는 것보다 같이 노력하는 태도를 보여야 하지 않나? 인영은 전자였다. 자기가 생각하기도 싫고 감당하기도 싫은 것들로 지헌에게 일방적인 을의 자세를 바랐던 것 같다. 뭐, 나중에는 인영도 변하고 두루두루 맞춰가는 길로 발길을 향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여자를 만나는 건 참을 인자 백만 스물두 개를 그리면서 인내심을 길러야 할 판이다.

 

그렇게 혼란스럽고 뒤죽박죽인 시간을 흘러 맞이한 행복의 순간, ‘평탄했으면 좋겠어.’라고 읊조리던 말처럼 두 사람, 두 가족이 잘 어우러져 살아가길 바라게 된다. 처음 인영이 지헌을 발견한 순간, 지헌에게서 봤던 후광이 눈앞에 그대로 비추는 듯해서 웃음이 나는 소설이다. 그 남자를 잊지 못해서, 그 남자에게 연락하지 못해서 생긴, 서른살 여자의 상사병이라니... ㅋㅋ

 

그나저나 아무리 생각해도 인영이 캐릭터 참 특이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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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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