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 슬로북 Slow Book 3
함정임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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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건네는 위로가 힘을 가지려면 빠질 수 없는 요건이 있다. 공감. 슬픔과 기쁨을 느끼면서 사는 우리지만, 그 감정이 다가오는 정도는 제각각이다. 그래서 건네 오는 말이 어떤 무게를 담고 있는지, 어느 타이밍에 다가오는지에 따라 위로가 되기도 하고 귀찮음이 되기도 한다. 지금 작가가 건네는 말은 위로가 될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의 삶을 오롯이 듣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가 살면서 겪는 많은 혼란과 슬픔을 공유하는 것 같기도 해서 말이다. 거기에 소설과 문학의 이야기가 있다. 문학 작품 속 장소와 작가를 향한 애정, 저자가 작가로 살아가는 모습의 순간순간이 그대로 문장으로 옮겨와 있다. 그 문장들 구석구석에 담긴 진심과 숨겨진 위로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함정임. 소설보다는 에세이로 많이 만났던 작가다. 조금은 가볍게 읽어보고자 펼쳐 든 그녀의 책은 가볍지 않았다. 일상을 풀어내는 것 같지만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여행지에서의 풍광을 보여주고 싶은 것 같지만 사실 나에게 다가온 느낌은 굵직한 삶의 무게였다. 쉽지 않은 글쓰기, 자라는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 지구촌 곳곳에 닿은 발걸음이 새겨준 인생의 말들. 이번 책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무게감은 더한 것만 같다. 묵묵히 걸어온 길에서 쌓이고 쌓인 말들은 더 많아진 것만 같다. 하지만 차마 꺼내지 못하는 말을 안고 가는 기분.

 

'언젠가부터, 괜찮냐고 묻는 것이 차마 꺼내기 어려운 일이 되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저자는 괜찮으냐고 묻지 않고, 썼다. 짧은 글들 속에서 계속 안부를 묻는다. 저자가 거처를 옮겼다는 부산의 곳곳부터 외국의 여행지에서의 인연들까지, 저자는 여행하면서 만난 온갖 것을 들려주고, 자기가 만난 책에서의 문장으로 말을 꺼내면서 계속 독자의 안부를 살핀다. 때로는 예술가의 삶을 위로하기도 하면서, 자주 독자를 자기가 많은 것을 느낀 그곳으로 인도한다. 저자가 만난 작가들의 세계, 특히 '보들레르와 랭보, 발레리, 말레르메의 시들, 라신, 베케트, 카뮈의 희곡들, 스탕달, 플로베르, 사르트르의 소설들, 바슐라르, 블랑쇼, 바르트의 비평들을 만나면서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가 보석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칼보다 강하며 죽음보다 영원하다는 것(117~118페이지)'을 깨달았다고 했다. (이름은 알고 있지만 내가 아직 읽어보지 못한 작품의 작가가 많은 건 유감이었다) 소설가가 만난 작가들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그대로 읽게 된다. 소설로 느낀 삶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결코 행복하기만 할 수 없는 현실의 감각을 일깨우기도 한다. 소설의 장면에서 만나는 장소를 여행하는 듯하기도 하고, 소설의 작가들이 살던 시간을 걷는 것 같기도 한 걸음에 독자를 동참시킨다. 그렇게 저자의 시선이 옮겨가는 곳을 볼 때마다, 저자의 여행 목적과 의미가 더 궁금해지곤 했다. 작가의 말들을 찾아서, 문학 속 문장의 감정을 떠올리며 찾아다니는 곳. 거기에서 저자가 추구하는,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문학의 깊이를 읽는다.

 

작가란 그저 이야기의 재미(오락)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의 맥락 속에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인 질문과 흘러가는 시간에 맞서는 예술의 의미를 소설을 통해 던지는 존재이다. 뭇사람들의 견딜 수 없는 슬픔과 어긋나고 응어리진 현실을 풀어주고 어루만져주는 존재가 작가이고, 소설이다. (78~79페이지)

 

이 책을 읽다 보면 소설과 문학에 관해 더 많이, 자꾸 생각하게 된다. 그건 아마도 저자가 전하는 소설과 문학, 소설가들에 관한 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가로의 삶이 어떠한지 저자의 소설 쓰기는 어떤 일상을 만들어가고 있는지 말하고 싶은 것을 느끼곤 했다. 무언가 잔뜩 말하고 싶지만, 깊이 있는 문장들로 그 마음이 온전히 건네져 오기를 바라는 것 같기도 한 듯한 느낌도 이어진다. 그리고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가 온전히 전해지기를 바라는 것도 느낀다. 이 부분을 말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더 굵게 들려서일지도 모르겠다. 같은 시대, 같은 세상을 사는 우리와 공감하며 공유하고 싶은 것들을 소설이라는 매개로 연결되어 있고 싶은 간절함을 보게 된다. 차마 소리 내지 못하는 말들을 대신해 전하고 싶은 문장들. 결국은 '쓰기'의 순간만이 그 위로와 치유가 가장 힘을 낸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소설은 자기 안에 억눌린 자아에 귀를 기울이고, 숨을 터주는 것부터 출발한다. 차마 보여주기 부끄럽지만, 드러내놓고 나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진다. 마음이 자유로운 사람은 자신과 세상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소설 쓰기의 본질이 구원에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3페이지)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야기를 사랑하는 존재,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싶고, 듣고 싶은 호모 나랜스들이다. 리베카 솔닛이 『멀고도 가까운』에서 밝힌 대로, 이야기꾼의 재능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이야기의 힘은 쓰는 이든, 읽는 이든, 기본적으로 감정이입에서 나온다. (62페이지)

 

뭔가를 끼적이면서 맥락 없는 말이라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평소에 자기 검열을 하느라 참아온 말들 때문인지, 타인의 시선을 무시하고 살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괜찮지 않지만 괜찮다고 말하는 익숙한 순간들을 건너와야만 하는 일상을 버텨야 했기에, 괜찮은 척하며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순간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 괜찮은 척도 하지 못해 차라리 말을 삼키곤 했던 순간들 때문이거나... 저자가 자기의 일상을 기록하며 책과 이어가는 삶을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건, 괜찮은 척도 하지 못하는 마음일 때 뭔가를 적어가는 시간으로 위로를 만들 수 있다는 방법을 들려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생각해보면 일상의 많은 순간에 뭔가를 쓰면서 지내기도 하니까 말이다. 휘갈겨 쓰던 메모지의 용도를 다해 버릴지라도 뭔가를 쓰는 일은 습관처럼 익숙하다. 조금 전까지도 나는 스테이플러로 찍어둔 이면지에 이 책의 문장 몇 개를 끼적이기도 했다. 그 문장의 어떤 단어 때문인지 어떤 느낌 때문인지 정확히 기억하진 못해도, 내 마음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는 문장이라고 생각해서였겠지. 문장에서 내 감정을 찾아내고, 그 감정을 공감하고 공유하는 일. 그게 문학을 만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하면, 저자가 말하는 소설의 의미와 닮았다.

 

소설은, 세간에서 쉽게 말하듯, 한갓 지어낸, 허황한 이야기가 아니다. 도스토옙스키와 발자크가 평생을 바친바, 소설은 인간을 이해하는 척도이자 진실을 향한 지난한 길이다. 19세기 소설에서나 등장할 법한 악령 들린 사람들이 연일 우리 앞에 불려 나오고 있다. 무소불위로 저지른 죄의 대가를 제대로 치르게 할 수 있을지 염려하며 두 눈 뜨고 지켜보는 것조차 고통이고 지옥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 상처 입은 마음을 보듬어 위로하고, 한 줌의 도덕이나마 소중히 지키며, 정상적인 삶을 회복하기 위한 연대를 구축할 때다. (248페이지)

 

처음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 그 책을 읽고 짧게나마 끼적이기 시작했을 때를 생각했다. '왜?'라는 물음으로 기억을 더듬어갔다. 나는 그때 왜 책을 읽기 시작했을까. 지치고 힘들었던 그 순간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아무에게도 할 수 없었다. 말을 할 수 없다면 그 말이 더 튀어나오지 않게 막을 방법이 필요했다. 그때였다, 하지 못할 말을 하지 않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던 건. 그리고 이어졌던 끼적임. 그 책이 하는 말을 더 이어가고 싶어서 뭔가를 계속 적어갔다. 그렇게 말하는 방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더디고 느리지만,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글을 읽고, 하고 싶은 몇 마디를 말하는 게 아니고 쓰는 게 더 편하다. 저자는 '글쓰기의 역할이 위로의 숙명'이라고 말하지만, 그 숙명을 소설가인 자신이 안고 가는 것으로 느끼는 것 같지만, 독자인 나, 우리는 그들의 숙명으로 오늘도 위로를 찾는다. 숨통을 트여본다. 각자가 가진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내면서, 혹은 이렇게 풀어낸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위로의 옷으로 입혀지길 바라면서. 내가 이렇게 나를 보듬어주었듯이 누군가에게 가서 포근하게 안아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몇 글자, 계속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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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우 신간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공지영 신간. 해리.

 

 

 

 

 

 

 

 

유홍준 산사순례

 

 

 

 

 

 

 

 

아르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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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친절한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 : 고대 가요.향가.고려 가요 편 이토록 친절한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
하태준 지음 / 다산에듀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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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이런 방식으로 문학을, 고전을 공부했다면 더 흥미롭게 다가가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든다. 아니면, 그때는 시험에 나오는 거니까 공부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대해서인지 제대로 느끼고 즐기지 못했던 것이 이제 와 다시 보니 재미있는 이야기 한 보따리 듣는 기분이 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책을 다 읽고 보니 드는 생각은,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더 재밌게 고전을 공부하는 방법이 될 것이고, 시험과 상관없는 독자라도 즐기면서 읽는 우리 고전 가요라는 것이다. 어떤 대상이든 만나게 된다면 울고 웃게 될 이야기 한판이라는... ^^

 

『이토록 친절한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 시리즈의 첫 번째 「고대 가요·향가·고려 가요 편」이다. 고대 가요와 향가, 고려 가요를 소개하고 있는데, 분명히 한번은 들어봤거나 읽어봤던 내용이어서 낯설지는 않다. 특히 시험에 자주 나오는 작품을 선별해서 실었다고 해서인지 반갑기까지 했다. ^^ 학교 다닐 때 생각이 나서 더 재미있게 만나는 시간이 되었다고나 할까. 소개 글에서도 언급되는 게 ‘개정 교과 과정의 흐름에 맞추어 나온 문학 교과서 최고의 부교재’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이야기의 흐름이나 문장을 자연스럽게 들리게 하기도 해서 소화하기에 괜찮다. 소개된 각 가요의 뒤에는 원곡을 실어두어 원래의 맛을 보게 해주었고, 간략하게 ‘핵심 정리’를 추가해 두어 요점정리 형식의 공부를 하게 했다. 거기에 가요의 내용에 맞게 함께 담긴 그림은 각 구절을 좀 더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구절에서 보이는 장면을 상상만 하기에는 부족한 것을 그림을 더함으로써 완벽한 이해를 돕는다. 굳이 외우려고 애쓰지 않아도 즐기다 보면 저절로 외워지는 마약 같은 교재가 될 듯하다.

 

 

 

고대 가요는 고조선 시대부터 통일신라 이전까지 지어진 모든 시문학 갈래를 말한다. 너무 오래되어 남아있는 작품이 많지는 않다고 한다. 이 책에는 가장 널리 알려지고 문학사에서 중요한 네 작품을 소개해주었는데, ‘공무도하가, 화조가, 구지가, 정읍사’가 실렸다. 그중에 한 곡 「정읍사」를 소개해보자면, 장사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다가 망부석이 된 여인의 노래다. 이제나 올까 저제나 올까. 남편이 가는 길에 별일 없이 다니기를 바라면서 기도하고, 하염없이 기다리다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며 기다리던 모습 그대로 굳어버린 형상을 옮겼다. 아마도 이 구절 들으면 다들 ‘아하~’ 할 것 같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때? 가물거리던 기억이 갑자기 생생해지지? ^^)

 

 

정읍사(井邑詞) - 작자 미상

 

달님이시어, 높이높이 돋으시어

멀리멀리 비춰 주시옵소서.

장터에 가 계신가요?

진 곳을 밟을까 두렵습니다.

어디에든 내려놓고 계시면 좋겠습니다.

님 가는 곳 저물까 두렵습니다.

 

향가는 신라 시대부터 고려 초까지 창작된 시 문학이다. 향찰(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국어 문장을 적는 표기법)로 기록되었다. 4구체, 8구체, 10구체 등 3가지로 나뉘기도 한다. 이 책에는 ‘서동요, 모죽지랑가, 도솔가, 제망매가, 찬기파랑가, 안민가, 처용가’가 실렸다. 주제도 다양하다. 화랑도의 의리를 노래한 모죽지랑가, 먼저 가버린 동생을 생각하며 아파하는 제망매가, 임금과 신하, 백성 모두가 함께해야 제대로 된 나라가 된다는 희망가인 안민가, 대범하게 역신을 물리치고 역병이 돌 때마다 처용의 얼굴로 물리쳤다는 처용가. 그리고 너무 유명한 서동요. 백제 30대 무왕이 지나가는 길에 나타난 미륵 부처님 세 명, 그 자리에 절을 지어 부처님을 모시고 절을 짓고 미륵 삼존불을 세웠다고 하니, 현재의 미륵사라고 한다. 서동요는 내가 사는 이곳 지역에서 해마다 따로 축제와 행사를 할 만큼 자주 들어왔던 노래여서 그런지 더 반갑다.

 

 

서동요(薯童謠) - 서동(백제 무왕)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시집가서

서동 서방을

밤이면 몰래 안고 간다.

 

요즘 키워드로 서동은 ‘계략남’이다. 신라 진평왕의 셋째 공주 선화가 천하의 미인이라는 소문을 들은 서동은 선화공주에게 장가를 가기로 마음먹고 서라벌에 몰래 잠입한다.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며 자기가 만든 노래를 부르라고 하니, 이 순진한 아이들 먹을 것을 받고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친절하게 서동이 알려준 노래를 부르며 다닌다. 혼인도 안 한 처녀가 밤마다 남자를 안고 온다는 내용이 신라에 이슈가 되고, 그런 딸이 부끄러웠던 진평왕은 선화공주를 멀리 보낸다.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은 서동은 선화공주에게 자기의 매력을 어필하며 마음을 얻고, 같이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얻고자 하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 기가 막힌 계획을 세우고 결국 쟁취하게 된 서동에게 박수를~! (근데 이거 요즘에는 허위 사실 유포나 뭐 그런 비슷한 내용의 범죄 아닌감?)

 

고려 가요는 고려 속요, 줄여서 여요(麗謠)라고도 부르며, 고려 시대 민중들 사이에서 널린 불린 노래다. 고려 시대 분위기를 반영하여 솔직하고 직선적인 내용이 많은데, 그 가운데서 서정성을 담았다는 게 특징이다.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들도 제법 있었는데 유교 사상에 적합하지 않았기에 금지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가시리, 청산별곡, 서경별곡, 정과정, 동동’이 실렸다. 반란에 참여하기 위해 떠난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의 애절함을 노래한 가시리, 무신의 정권 다툼과 몽고의 침입으로 힘든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괴로운 시절을 담은 청산별곡(이 노래는 후렴구의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가 유명하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유배를 간 정서가 하늘을 보며 결백을 주장하고 임금을 그리워했다는 정과정, 우리나라 최초의 월령체 노래라는 동동. 나의 눈길을 확 사로잡은 건 서경별곡이다. 오늘날의 ‘사랑과 전쟁’의 내용에 나올만한 이야기다. 수도 개경에서 서경으로 온 관리와 사랑에 빠진 외로운 여인이 신분의 차이로 버림받고야 말았던, 남자는 임기가 끝나고 개경으로 돌아가 다른 가문의 여인과 약속된 혼인을 한다는... (이런 몹쓸~)

 

 

서경별곡(西京) - 작자 미상

 

서경이 서경이 서울이지만

중수(重修)한 곳인 소성경(小城京)을 사랑하지만,

이별하기보다는 이별하기보다는,

길쌈 베를 버리고

사랑하신다면 사랑하신다면,

울면서 쫓아가겠습니다.

 

구슬이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끈이야 끈이야, 끊어지겠습니까?

천년을 천년을, 홀로이 살아간들

믿음이야 믿음이야, 끊어지겠습니까?

 

대동강 대동강, 넓은 줄 몰라서

배 내어 배 내어, 놓았느냐 사공아

네 각시 네 각시, 바람난 줄 몰라서

가는 배에 가는 배에, 내 임을 태웠느냐 사공아

 

대동강 대동강, 건너편 꽃을

배를 타면 배를 타면 꺾을 것입니다.

 

길쌈에 특출한 재능을 버리고까지 따라가겠다고 말하는, 너무도 간절한 여인의 마음을 그대로 노래했다. 얼핏 자존심 때문에라도 그냥 놓아버리고 싶어질 만한데, 이 여인은 혈혈단신 외로웠던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던가 보다. 혼자인 일상에 끼어 들어온 남자와의 시간이 외로움을 사라지게 했을 것이고, 이대로 이 남자와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인생을 그려왔을 터인데, 남자는 임기가 끝난 그곳을 뒤로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렸다. 남겨진 여인은 어찌 살아갈꼬. 상처가 아물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하다. (듣고 있자니 아프고 또 아프다...)

 

 

시험에 잘 적용할 수 있게 수험서로 안성맞춤인 책이지만, 그냥 읽어도 재밌다. 우리네 조상들 삶이 그대로 묻어나는, 어쩌면 현실의 우리 삶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은 상황들이 많은 공감을 부른다. 그래서 더 와 닿는다. 그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별반 다르지 않은 우리 삶이 애틋해서 말이다. 기회가 된다면 이 시리즈의 두 번째 세 번째 책도 읽어보고 싶다. 고대 가요와 향가 이외에도 많은 작품이 우리 삶을 노래하고 있을 것만 같다. 시조와 민요, 두시언해, 한시, 가사 등등. 시리즈로 묶여서 나올만한 이유가 충분해 보인다. 문학 작품들의 고전을 많이 만나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우리 문학의 고전은 관심 밖의 일이었다는 걸 이 작품집을 읽고 깨달았다. 장면을 그리게 하는 세밀화와 감정이 그대로 묻어나는 구절로 한 장 한 장 넘기는 맛이 썩 괜찮다. 입에 잘 붙지 않는 시어도 꼼꼼하게 재해석한 문장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의 고전 문학 이렇게 접하는 것도 좋은 기회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중학생 조카에게 강추하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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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을 좋아하는데, 예전만큼 어린이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한다.

아무래도 조카가 분가한 뒤로 조카랑 함께 책을 읽는 시간이 거의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여전히 책 읽기가 게으른 탓이기도 하고,

요즘에는 어떤 책이 나왔는지 먼지 찾아볼 기회가 줄어들어서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작년에, 페미니즘 검색하다가 발견한 이 동화책을 너무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나서 다시 꺼내본다.

<아기돼지 삼형제>는 제목부터 익숙한 이야기가 굳이 다시 읽을 필요를 못 느끼고,

그냥 지나쳐도 좋을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 <아기돼지 세 자매>는 <아기돼지 삼 형제>인줄 알고 그냥 지나칠 뻔하다가 읽게 된 책이다.

 

아기돼지 세 자매는 아주 깔끔했다. 엄마 돼지한테 가정교육도 아주 잘 받았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목과 다른 아기돼지의 연령이다. 아기돼지 세 자매는 사실 아기가 아니다.

결혼할 나이가 된 어른 여자 돼지다. 어느 날, 엄마 돼지는 세 자매 돼지에게 이렇게 말한다.

"얘들아, 너희도 이제 통통하게 살이 잘 오른 예쁜 돼지 아가씨가 되었구나.

자, 이 금화 주머니를 하나씩 받아라. 가서 가장 좋은 신랑감을 찾아보도록 하거라……."

 

엄마돼지는 아기돼지들에게 자기만의 인생을 찾아 떠나라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신랑을 찾아 떠나라고 한 거다.

 

 

 

 

엄마돼지에게 돈주머니를 받고 눈물을 흘리며 세 자매는 헤어진다.

(같이 떠날 줄 알았는데) 서로 다른 길을 찾아서 떠났다.

 

 

여기서부터 『아기돼지 삼 형제』와 다른 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길을 떠날 때 엄마 돼지는 금화 주머니를 준다.

원작이 무작정 길을 떠난 돼지 삼 형제가 집 지을 재료를 얻어 집을 지었던 것에 비하면 돼지 세 자매는 금화를 들고 떠난다.

그렇게 받은 금화로 집을 짓는 게 아니라 이미 지어진 집을 사는 거다. (오~ 이 방법이 더 간단하고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겠다.)

이 부분을 보니 어느 정도는 변화해가는 사회에 맞게 구성된 게 아닐까 싶다.

돈이 없으면 뭘 못하잖아. 누가 집 지을 재료를 그렇게 준다고?

그렇게 길을 떠난 돼지 세 자매의 행보가 기가 막힌다.

 

편안한 걸 좋아하는 첫째 돼지는 가진 금화 모두 털어서 커다란 벽돌집을 산다.

어느 날 아침, 첫째 돼지가 창밖을 내다보니 멋지게 차려입은 돼지 한 마리가 청혼하는 거였다.

"아리따운 아가씨, 문 좀 열어 주세요. 제가 귀부인이 되게 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돼지는 문을 열어주면서 생각했다. 예의 바르고, 돈도 있는 것 같고, 마음에 드니까 저 정도면 좋은 신랑감이라고.

그러나 그 돼지는, 돼지의 탈을 쓴 늑대였다. 첫째 돼지는 늑대에게 잡아먹히고 말았지.

 

둘째 돼지는 가진 금화 반만 들여서 나무로 된 예쁜 집을 샀다.

첫째 돼지 때와 마찬가지로 멋진 돼지의 청혼을 받는다.

잘생기고 힘도 세어 보이고, 겨울에 땔나무 걱정은 없겠다는 판단에 그 돼지를 좋은 신랑감이라고 생각한다. 그

러나 역시 돼지의 탈을 쓴 늑대에게 잡아먹혔다는 결론.

 

이제 셋째 돼지가 궁금하겠지?

 

늑대는 돼지 가면을 쓴 채로 보리수나무 그늘에 누워 쉬고 있었다.

돼지 두 마리로 포식하고 나니 배가 불러서 좀 쉬어야겠다. 소화도 시키고 낮잠도 좀 자려고.

그런 돼지를 지켜보는 늑대 한 마리가 있었으니, 굉장히 사나워 보인다. 상황이 역전된 거다.

'돼지 가면을 쓴 늑대'는 '늑대 가면을 쓴 돼지'에게 자기가 사실은 돼지가 아니라 늑대라고 설명하느라 애를 쓰는데,

그에 '늑대 가면을 쓴 돼지'가 말한다.

"그래? 저기 가서 지푸라기로 만든 집에 숨어 있는 셋째 돼지를 잡아먹으면 네 말을 믿어 주지."

'돼지 가면을 쓴 늑대'는 지푸라기 집으로 뛰어들면서 셋째 돼지를 후식으로 먹을 생각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어디 셋째 돼지 캐릭터가 그렇게 쉽게 잡아먹히는 것이더냐.

지푸라기 집은 셋째 돼지가 늑대를 잡기 위해 놓은 덫이었다.

그렇게 늑대를 포획한 셋째 돼지는 늑대를 사로잡았다는 소문이 퍼진다.

그래서인지 셋째 돼지와 결혼하겠다는 돼지들이 줄을 섰다는 후문이... ^^

하지만 셋째 돼지가 가장 좋은 신랑감을 찾았다고 나오지는 않는다. 그 후의 이야기는 아무도 모른다.

솔직히 『아기돼지 삼 형제』보다 <아기돼지 세 자매>가 훨씬 재밌게 읽힌다. 글로 보면 A4 종이의 절반이나 채워질까 하는 정도의 분량인데, 그 흐름이 통쾌해서다. 독립하라고 집에서 내보냈던 돼지 삼 형제와는 아주 다르다. 돼지 세 자매에게 신랑감을 구하러 내보낸다는 설정은 참 구닥다리 같지만, 그 여정에서 보이는 돼지 세 자매의 태도는 현실에 적응하며 사는 방법을 알려준다.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적나라하게 비춘다. 외모나 태도로만 판단한 첫째 돼지와 둘째 돼지는 늑대에게 잡아먹힌다. 이 정도면 뭐, 하는 계산이 다른 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거다. 돼지의 탈을 쓴 늑대였으니, 늑대의 손이나 발만 보았어도 돼지가 아님을 알아챌 수 있었을 텐데... 좀 더 신중하고 세세하게 상대를 살펴볼 생각을 못 한 거다. 반명 셋째 돼지는 늑대가 쓴 가면을 똑같이 이용한다. 늑대가 돼지 가면을 쓰고 돼지를 잡아먹었으니, 돼지도 늑대 가면을 쓰고 늑대를 잡아먹어야지!

 

 

 

 

(늑대를 포획하고 난 후의 셋째 돼지 표정 좀 봐라. 저렇게 좋을 수가 없다!)

 

 

돼지 자매 두 명은 죽었지만, 신랑감을 구하려는 목적으로 길을 떠난 돼지 세 자매가 얻은 교훈은 당당하게 살아남았다.

아마도 그건 당하지 않고 세상을 사는 법이 아니었을까.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고, 내 손으로 내가 똑바로 서서 사는 방법을 가르쳐준 동화였다.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먼저 잡아먹어야 한다는 것 역시.(이 부분은 경쟁 사회에서 필요한 자세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의 적당함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마지막 반전은 참 대단했다.

신랑감을 구하러 떠났던 여자 돼지에게 좋은 신랑감을 찾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지 않나.

원래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으나, 처음 길을 떠난 이유 따위는 필요 없었다는 거다.

신랑감을 구하러 떠난 것 자체가 의미 없다.

신랑, 결혼이라는 것은 삶을 차지하는 많은 의미 중의 하나라는 것이니까.

여자의 행복이 결혼만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나, 어떤 남자를 선택하느냐에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이나

요즘 세상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개념은 아니니까.

사실 이건 여자 남자 따로 놓고 볼 일은 아닌데 말이다.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행복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결혼이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

그건 여자에게만 적용되는 인생의 법칙이 아니라는 거다.

 

『아기돼지 삼 형제』보다 훨씬 현실적이어서 파고드는 메시지가 강하고,

통쾌한 결말에 큰소리로 웃을 수 있어서 더욱 좋았던 이야기다.

이 짧은 동화 한 편으로 요즘 시대의 많은 문제를 떠올리게 된다. 뭔가를 해결하고 찾아가는 느낌이 좋다.

 

 

페미니즘 동화를 검색하다가 같이 발견한 몇 권의 책을 더 읽었는데,

당당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준 주인공들이 멋있어서 아직은 코딱지만한 조카들에게 읽어주고 싶은 책들이다.

그동안 우리가 만났던 동화 속 공주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색다른 캐릭터들, 21세기를 사는 여성들에게 여자 어린이들에게 필독서로 보여주고 싶은,

굳이 어린이가 아니어도, 엄마가 아니어도, 만나보면 좋을 책들이다.

 

 

 

 

 

 

 

특히 <종이 봉지 공주>는 마지막 페이지가 압권이다. 너무 멋있었던 사이다 공주 때문에 박수를 막 쳐주고 싶었다.

 

 

그리고 어린이(청소년) 책을 고르거나 읽을 때 참고하면 좋을 책 한권 더.

 

 

 

 

 

 

 

아이들 책을 바라본 최윤정 작가의 평론집인데, 어린이 문학을 보는 우리의 시선과

책 속의 구절에서 발견하고 받아들이는 감정들, 실수들, 웃음들을 함께 볼 수 있다.

몇 가지 주제를 정해서 골라놓은 책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굳이 부모가 아니어도 어른이 된 우리가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아이들에게 보여야 할 태도, 말 같은 것을 배우는 또 하나의 기회를 만들어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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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18-06-27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흥미롭네요!!

구단씨 2018-06-29 10:08   좋아요 0 | URL
재밌습니다. 읽고 저도 많이 웃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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