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기적 같은 피아노 이사 39번 문학동네 세계 인물 그림책 4
조나 윈터 지음, 정지현 옮김, 배리 블리트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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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이삿짐센터를 운영하고 있어서, 이삿짐 옮기고 난 후의 이야기를 거의 매일 들었던 적이 있다. 그때 자주 들었던, 이삿짐센터에서는 정말 피하고 싶은, 반갑지 않은 이삿짐 목록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피아노라고 했다. 너무 무겁고, 혹시라도 옮기면서 흠집이라도 날까 긴장하면서 옮기게 되고, 이사를 의뢰한 사람의 집이 1층이 아니면 피아노를 옮기기도 전에 등에 땀부터 난다고. ^^ 전문가들이 피아노를 옮기는 나름의 노하우가 있겠지만 실제로 피아노를 옮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던 나도, 상상만 해도 벌써 등에 땀이 난다. 베토벤은 그런 피아노 이사를 빈에서만 서른아홉번이나 했다니 금방 믿어지지가 않았지만! 괴팍한 베토벤의 피아노를 옮기던 일꾼들의 땀 흘리는 얼굴은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사실 : 루드비히 반 베토벤은 1770년 독일 본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시간이 흘러, 베토벤은 위대한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루드비히 반 베토벤은 다리 없는 피아노 다섯 대가 있었고, 방바닥에 앉아 위대한 곡들을 만들었습니다. 루드비히 반 베토벤은 서른아홉 번이나 이사를 다니며 셋방살이를 했습니다. 바로 이 사실이 이 책에서 다루려는 주제입니다. 피아노를 옮기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피아노 다섯 대를 옮기기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베토벤. 괴팍한 성격을 가진 음악가. 훗날, 그는 귀가 들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냈다, 라고 들어온 인물이다. 음악을 잘 알지 못하다 보니 베토벤의 유명한 음악 몇 곡만 들어왔을 뿐, 베토벤이라는 인물 자체나 그의 음악이 만들어진 배경이나 역사에 대해 내가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 중 하나가 이 책에서 들려주고 있는, 베토벤이 오스트리아 빈에 살면서 서른아홉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사실이다. 그가 서른아홉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건 사실이지만, 왜 이사를 그렇게 자주 했었는지, 어디로 이사를 했었는지, 그가 이사한 방은 어땠는지, 문제의 다리 없는 피아노 다섯 대를 이사할 때마다 어떻게 옮겼는지 알려진 부분이 없다. 이 백 년 동안 연구됐지만 피아노 다섯 대를 옮긴 방법이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니, 이 얼마나 밝혀내고 싶은 미스터리란 말인가! 서른아홉번이라는 이사의 횟수가 적지도 않을뿐더러(^^), 한 대도 아닌 다섯 대의 피아노를 매번 어떤 방식으로 옮겨야 했을지 궁금했던 마음을 한방에 해소해주고 있는 책이다. 게다가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베토벤의 음악이 탄생된 배경까지 듣고 있자면, ‘어머, 정말?’ 하면서 귀가 솔깃해지고, ‘아하, 그럴 수도 있겠어!’ 라며 손뼉을 치면서 읽게 된다.

예를 들면, ‘피아노 소타나 14번(월광)’은 도시 중심가에 있는, 열린 창으로 달빛이 들어오는 아름다운 방에서 만들어진 곡이라고 말한다.(상당히 그럴싸하지?^^) 그럼, 이렇게 아름다움이 스며드는 방에서 계속 작곡을 하면 될 것을, 베토벤은 이 셋방에서 쫓겨나고 만다. 왜냐고? 방세 내는 것을 잊었기에 그렇게 되었다는 슬픈 이유가 여기에 있다. ㅠㅠ 이때부터 베토벤의 이사여행은 시작된다. 그 다음 이사한 지하 셋방에서는 8일 만에 또 이사를 하게 된다. 테라스가 있는, 다뉴브 강이 한눈에 보이고 창문으로는 비엔나커피 향이 들어오는 곳에서는 ‘교향곡 3번(영웅)에서 5번(운명)’까지 만들었다고도 한다. 자연에 대한 사랑이 담겼다는 ‘교향곡 6번(전원)’도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니, 혹시 그가 한 번씩 이사할 때마다 그 공간에 어울리는 악상이 막 떠올랐던 것일까? 그럼 서른아홉 번보다 더 많이, 더 자주 이사를 했다면 지금쯤 베토벤의 음악은 더 많이 남겨져 있었을까? ^^

이 책이 써진 목적처럼, 여기서 내가 추리하고 싶은 것은 그의 이사 이유만큼이나 서른아홉 번에 달하는 그의 이사에서 피아노가 어떻게 옮겨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피아노를 어떻게 건물 밖으로 꺼냈는지(비록 다리가 없었다고 해도 피아노는 덩치가 크고 무겁잖아!), 고층 혹은 지하 같은 곳으로 어떻게 피아노를 올리고 내리고 했는지(혹시 피아노가 타고 다닐만한 미끄럼틀이라도 있었던 걸까?), 이 건물에서 저 건물로 옮겨갈 때는 어떻게 갔는지(바퀴가 달린 커다란 수레를 직접 제작해서 피아노를 태웠을지도 몰라!) 그의 이사에 관한 모든 것이 궁금해서 안달이 날 지경이다. 피아노를 건물 밖으로 꺼내어 뒷문으로 옮겼을 수도, 도르래로 지붕 위를 통과하게 한 다음 옆 건물 난간에 내려놓았을지도, 벽을 뚫고 이웃집의 주방을 통과했을 지도, 낑낑거리면서 고층 계단을 걸어서 피아노를 들고 올라갔을지도 모르지. 베토벤의 피아노를 옮기기 위해 직접 도면(피아노를 땅에 내리지 않고 옮길 수 있는 방법을 그렸다니까!)을 그려야했을 정도로 짐꾼들은 베토벤의 피아노 이사로 인한 분노가 끓어오르기 일보직전이었던 것 같다. ^^ 그럼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던 베토벤은 이곳저곳으로 옮기느라 망가진 피아노를 버리고 새 피아노를 사기도 한다.

베토벤의 이사의 시작이 단지 방세를 못 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의 일기에서 언급됐던 것처럼 ‘코를 찌르는 끔찍한 치즈 냄새’ 한 가지 때문만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그의 잦은 이사의 이유가 점점 잃어가는 그의 청력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처음 이사의 시작은 다른 이유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점점 사라져가는 그의 청력은 이웃들에게 본의 아니게 소음을 제공하는 격이 되었다. 이웃들의 “다아아아악쳐!!!” 하는 항의가 빗발쳤으니까. 들리지 않는 귀 때문에 피아노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을 것이고, 조금 더 크고 힘 있게 피아노 건반을 내리친다면 자신의 귀에 피아노 치는 소리가 들릴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들리지 않는 귀, 폭발할 것 같은 화, 광기까지 더해져 피아노에 그 자신의 분노를 표출한 것인지도... 어쨌든, 실제로 그가 내는 소음 때문에 여러 차례 민원이 제기되기도 했다는 걸 보면 그의 잦은 이사의 이유가, 이웃에게 끼치던 소음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걸.

베토벤은 청력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도 작곡을 멈추지 않았다. 들리지 않는 귀로 그는 ‘교향곡 9번(합창)’까지 만들어냈다. 그의 이웃들에게는 이런 그의 행동이 소음으로 행하는 폭력일지도 모르지만, 그는 자신이 살아있다는, 계속해서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증거가 필요했던 것 같다. 자신이 계속해왔던 음악(작곡)에 대한 애착과 들리지 않는 귀로 인해 번번이 좌절로 보내야 했을 시간을 견디게 해줄 방법 같은... 상상력과 사실을 바탕으로 이 책에서 들려준 그의 이사는 웃음과 기발함으로 재미를 주지만 그 이면에 깔려있는, 음악에 대한 그의 고통과 간절함은 괴팍스러운 성격과 광기, 소음으로 신고 되기까지 하는 그의 음악으로 함께 보여주고 있다. 상상력으로 그려진 이야기의 웃음 뒤의, 사실을 담은 그의 고통으로 인한 아픔까지 보게 하는 것이다.

외골수, 광기, 혹은 괴짜로 유명한 베토벤의 인생에 있어서 서른아홉번의 피아노 이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상상하는 재미를 그대로 전달해주는, 무척이나 흥미로운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낸 걸 보면, 이 책의 작가 조나 윈터 역시 베토벤 못지않게 괴짜로 보인다. ^^ 틀에 박힌 위인전의 색깔을 벗고 뜬금없이 베토벤의 이사를 언급하다니! 요즘에 비추어 보면 베토벤은 진상 중의 진상 고객이다. 들려오는 그의 성격을 봐도 보통의 고객은 아니었을 것이다. ㅋㅋ 피아노 다섯 대와 괴팍한 성정의 베토벤. 생각만 해도 진상 고객을 욕하는 짐꾼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렇다면 나 역시도 이삿짐센터에서 피해가고 싶은 진상 고객이다. 이 많은 책에다가 예민한 성격까지, 베토벤의 서른아홉번의 이사로 내가 받은 교훈은 이삿짐센터의 진상 고객은 되고 싶지 않다는 거. 그렇다면 (이사 계획이 생긴다면) 이사하기 전에 이 책을 다 처분하고 이삿짐센터에 의뢰해야 한다는 말인가?! ㅠㅠ

이 책에서, 베토벤의 이사는 서른아홉번이 다 채워지지 않았다. 그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 나머지 이사의 방법, 이사의 이유, 이사하는 모습을 우리가 다시 그리기 시작하면 된다. 베토벤의 그 시간 속으로 함께 들어가 그와 같이 이사를 하고 있는 나를 상상해봐.(어쩌면 나는 낑낑대며 그의 다리 없는 피아노 중의 한 대를 옮기고 있을지도 몰라!) 신나지 않겠어? ^^

그동안 내가 만났던 위인들의 이야기에서 보편적으로 들어왔던 내용은 출생에서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연대기 형식이었는데, 이 책 『베토벤의 기적 같은 피아노 이사 39번』은 베토벤에 대해 알려진 사실 단 몇 줄만을 언급해주고 ‘모큐멘터리(mockumentary)’ 형식으로 구성했다. 베토벤이 서른아홉번의 이사를 했다는 것뿐, 이사의 내용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는 상태에서, 기발한 상상력을 채워 넣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나아가 그림과 글로 보이고 있는 그 이상을 나만의 상상력으로 계속 그리게 만드는 것이다. 몇 가지 추측으로 따라가 본 베토벤의 이사는, 어쩌면, 영원히 ‘왜?’ 라는 의문으로만 남겨질지도 모르지만, 뭐 어떤가. 베토벤의 인생에 있어서 이미 알려진 사실들 말고, 이런 내용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독자가 누릴 수 있는 즐거움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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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법칙이 정해진 것처럼...

책을 읽고 싶어지는 9월이다...

거기에 로맨스소설이 특히 더 읽고 싶어지는 계절이기도 하고...

기다렸다는 듯 신간도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다행.

 

 

 

나하쉬...

방대한 분량에 입이 떡 벌어지지만... 아마 전작을 읽은 사람이라면 저절로 손이 뻗어나갈 것 같다. 뭔가 있어 보여...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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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 잃은 장금이가 되었다.

에프킬라를 먹었다. 아니 혓바닥이 에프킬라를 흡수했다.

징그러운 더위로 폭염을 이어가던 날씨가 웬일인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3일 전에... 그 말은 3일 동안 계속 내리고 있다는 얘기... 지금은 잠시 소강 상태. 날씨가 제정신이 아니다. 타죽일 듯이 덥거나, 모든 것을 쓸어가듯이 퍼부어대거나....

암튼, 그 와중에 들어온 모기가 몇 마리. 이 녀석들, 요즘은 하루살이도 아닌가 보다. 엄청 쎄다. 손으로 에프킬라를 흔들어 마구 뿌렸는데, 그게 손에 묻었었나보다. 그걸 모르고 가려운 입주변을 문지르다가 혀끝에 닿았는데... 쓰리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쎄~한 느낌. 거울을 보니 혓바닥이 빨갛다.

그럴 수 있겠구나 싶어 그냥 있다가 오랜만에 떡볶이 먹고 싶어서 만들었는데... 아무 맛도 모르겠다. 물론 맛은 엉망이다. 만들 때부터 맛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아까운 재료만 버렸네. 비싼 수제햄도 넣었는데... ㅠㅠ

이거 치료하려면 어느 병원에 가야 하나? 내과? 피부과? 아.... ㅠㅠ

 

 

범블아디의 생일 파티...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구매를 망설이고 있었다. 주말에 알사탕 준다니까 급구매로 마음을 바꿨다. 내가 먼저 읽고 조카아이에게 넘겨야겠다고 생각중... 돼지가 이렇게 귀여운 캐릭터로 눈앞에서 살랑거려도 되는 것인가?! 미리보기로 살짝 봤는데 그림이 아주 예쁘게 나왔다. 이야기도 즐거울 것 같고... 전작을 통해 익숙했던 모리스 샌닥이란 이름으로 믿고 구매.

너무 기다려지는 그림책... 주말이 지나야 도착하겠지만, 빨리 보고 싶다.

 

 

마법천자문26권.

지난번에 조카가 읽던 것이 25권이었는데, 빨리 다음편이 안 나온다고 속상해하던 게 생각나서 구매. 조카아이에게 직접 배송해주려고 한다. 사실 내가 보기에는 그냥 그런 학습만화 같은데, 조카아이가 읽고 있던 이 시리즈가 모두 너덜너덜해질 정도였다. 만화라는 것을 제외하고서라도 어떤 의미와 효과가 있으니 그렇겠지 싶어서 일단은 지켜보는 중...

 

 

 

 

 

 

 

 

 

 

오랜만에 잭 리처 시리즈가 나온 것을 알았다. 언젠가부터 잭 리처 시리즈 읽는 것을 멈췄는데 꾸준히 나오고 있었구나 싶어서 방가움. 온다 리쿠의 조금은 색다른 분위기의 책도 눈에 담아본다. 많은 작가들이 극찬했다는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도대체 어떤 책이기에 그렇게 극찬을?...

가끔 해피투게더 볼 때마다 진짜 간단요리인가 실험해 보고 싶었던 야간매점의 메뉴들이 한가득. 정말 출출할 때, 뭔가 시켜먹기는 애매하고, 차려 먹자니 귀찮고... 그럴때 야간매점의 메뉴를 만들어봐야겠다. ^^

 

 

처음으로 행운의 램프 쿠폰이 한장 당첨되었다. 처음이라구?!!!!

근데 유효기간이 일주일이네? ㅠㅠ 얼른 구매해야지 싶어서 결제 직전의 책들을 고르고 골라서 가격을 맞춰놨다. 할인받아서 구매할 생각에 덩실덩실~ 램프의 요정이 나에게도 한번 찾아와주었구나 싶어서 깜놀~하고 헤헤거리고~ ^^

읽고 싶었던 구간을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기쁨의 미소를 짓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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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인간
이석원 지음 / 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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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벽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막을 수도 있는 것이라면, 자신을 보이지 않는 틀 안에 가두는 것 또한 사람이 하는 일이리라. 사랑도 마찬가지. 사랑을 하는 것도 사람이고, 끝내는 것도 사람이다. 살아가는 이유를 사랑에 부여하는 것도 사람이고, 존재 이유를 부정하게 하는 것도 사랑일 때가 있다. 사랑이 끝나고 이별이 찾아왔을 때, 그 이별을 감당하고 견디는 것도 제 일이다. 그리고 그다음 행보를 정하는 것도 똑같다. 끝났으니 털어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끝났지만 끝난 게 아니라고 붙들고 있겠다고 마음먹는 것이나, 자신이 생각하는 이별의 이유를 분명하게 알고 있기에 다시 시작할 그 언젠가의 시간을 기다리거나... 사랑이 내 삶을 주도할 때, 그 사랑이 내 삶을 긍정적으로 관여할 때, 웃는다. 하지만 사랑이 내 삶을 쥐고 흔들 때, 놓고 싶으나 놓을 수 없을 때, 울고 있다. 이럴 때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다시 그 사랑을 얻거나, 냉정하게 잘라내거나.

 

실연 1년 차를 보내고 있는 용우에게는 일상을 둘러싸고 있었던 많은 것들과의 단절이 찾아왔고, 자신만의 3층 집에서 살아가던 용휘의 모습은 제롬의 말처럼 ‘실내인간’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세상과의 단절이 찾아온 것이다. 사각의 틀로 만들어진 액자(용휘의 집)에서 이미 찍혀버린 사진의 단 한 가지 표정(실내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남아있다. 용우와 용휘, 이 두 사람의 조우는, 처음에는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하던 두 사람의 우연처럼 보였으나, 읽으면 읽을수록 이 두 사람의 만남은 필연처럼 보였다. 서로에게 묻고 대답할 수 있는 관계, 상대방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하기도 했다. 거짓으로 점철된 용휘의 작가 인생에서, 단 한번만 허락된다면 그 진실을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은 용우여야만 했다. 이유? 글쎄, 너무 간절히 원했던 용휘의 사랑이 어긋나는 순간을 용우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해야 하나. 실연하고 일상이 흔들렸던 용우였기에... 사랑으로 시작된 이들의 혼란스러운 이야기는 삶의 본질에 대해, 지금 나를 살아가고 버티게 하는 이유에 대해 수많은 물음표를 함께 던져주고 있었다. 무엇이 나를 살게 하고 달리게 하는지를.

 

그렇게 달렸다.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간절함으로, 자신이 정한-정답이라 여겼던 방향으로 달려나갔다. 잘 나가는 작가가 되기 위해 용휘는 미친 듯이 질주했고, 마침내 모든 것을 거머쥐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에게 다시 찾아올 무엇, 그가 그렇게 달리기 시작했던 이유를 만들어준 그것이 돌아오는 일만 남은 것이다.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자신이 그것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이유에 대한 것을 용휘만의 방식으로 새겼다. 자신이 이별한 이유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족하게 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자신이 그것을 잃어버린 것이 빗금 그어진 틀린 답과 같다면, 이제 오답 노트를 풀었으니 기다리면 되는 것이었다. 정답을 적어 넣을 새로운 시험지를. 그렇게 믿고 기다렸다. 그가 잃어버린 사랑을. 이미 지나간, 끝나버린, 하지만 지금도 계속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을 그의 연인을 그만의 방식으로 기다렸다.

 

여기서 화자인 ‘나(용우)’의 시선으로 용휘를 지켜보고 서술하는 이유가 보인다. 연인과 헤어지고 보낸 1년의 세월이 용우에게 가져다준 것은 칩거에 가까운 단절이었으니까. 일상생활도, 일도, 그 무엇도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했던 것은 그 죽일 놈의 사랑이었다. 단지 한 번의 이별이 찾아왔을 뿐인데, 그의 예상과는 다른 이별의 증상이 나타났다. 그래, 이별했어, 하는 인생의 한 타이밍이 지나간 것이 아닌 치명적인 부작용을 불러왔다. 이별을 후회하고, 돌아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고, 일상은 망가졌고, 귀엽던 워리(강아지)는 지저분한 개가 되었다. 그러고 나서 이사한, 조금은 수상한 그 집, 그 동네에서 용휘를 만난다. 7대 3 가르마에 맑은 날에도 우산을 쓰고 다니는, 바람을 저주하는 그 남자 용휘. 두 사람을 어떻게 연결 지을까 싶은 궁금증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추리소설처럼 용휘에 대한 추적이 동시에 시작된다. 용휘의 과거, 그를 둘러싼 소문들, 달콤한 빵으로 배 속을 채우는 그의 정체를 하나씩 밝혀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었다. 아니, 표면적으로는 용휘 스스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용휘 자신이 살아가는 또 하나의 방식일 뿐이었다. 많은 것을 가졌고, 완벽하게 보였고, 그의 현재와 미래는 햇빛 찬란히 맑은 날만 예고된 것 같았다. 그러나 진실은, 잘못된 일기예보로 폭우를 맞게 하는 그런 날을 가져왔다. 7년을 그렇게 달렸는데, 오답 노트를 그렇게 풀어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가 달려나간 방향은, 정답과는 멀어진 아주 정반대의 방향이었다. 그가 풀었던 오답 노트는 또 다른 오답 노트를 준비해야만 했다.

 

조금 늦게 드러나지만 용휘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된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용우였다. 누군가에게 잊히지 않기 위해 글을 썼던 용휘 자신이 마지막에 가서야 본 것은 잘못된 방향으로 달려왔다는 결승선이었다. 간절하게 바라던 단 하나를 위해 달려왔는데 그게 반대방향이라니. 이토록 허무할 수가. 자신을 지탱하게 하는 오직 한 가지를 맹목적으로, 필사적으로 붙잡고 달렸는데... 그 모습을 용우가 보고 알게 된다. 지금 용우의 모습은 용휘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봐왔던 용휘의 모습은 모두 무엇이었단 말인가. 내가 보고 있고 내가 믿었던 것들이 한순간 모두 사라지고 백지상태로 변했다.

 

“너라는 사람이 원래부터 갖고 있던 거, 널 지탱하게 하는 거, 너한테서 아무도 훔쳐갈 수 없는 거. 그게 뭐냐고. 그게 알고 싶다고.” (218페이지)

 

용휘는 너무 늦게 알았다. 이별의 본질을. 자신이 했던 이별의 진짜 이유를. 어쩌면 용휘가 알고 있던 이별의 이유는 자신이 인정하고 싶은, 이별 그 자체를 받아들여야 하는 당위성을 부여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이유로 내가 이별을 했어, 이것만 아니면 다시 사랑을 이어갈 수 있어, 그래, 기다려, 만반의 준비를 하고 네 앞에 다시 설 때까지. 은둔 작가라는 수식어로, 제2의 이름인 필명으로 글을 써야만 했고 계속 글을 썼던 이유가 거기서 나온다. 그의 사랑을 끝나게 했던 이유를 뒤집고자.

 

한 남자의 이별이야기로 시작한 이 책은 점점 알 수 없는 미궁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보이다가, 마침내 우리 삶의 본질과 문제들에 대해 묻는다. 사랑에 대한 의미, 우리가 했던 사랑이 끝났다고 잊히는 게 아니라는 것, 사랑했던 사람을 잊는다는 일이 가능하기나 한 것이냐는 듯... 살아가면서 옳다고, 맞는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정말 우리 생각대로였느냐고도 묻는다. 그렇게 믿었고, 그 믿음으로 달려갔던 그 끝에서 마주하는 것이 처음의 그 믿음 그대로였느냐고도 묻는다. 내 삶을 주관하는 많은 것 중에서, ‘그것’ 때문에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이 되고, 의미가 된다고 믿었던 것들이, 그 믿음을 그대로 되돌려주고 있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 안에 사랑이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내가 알았던 사랑의 방식이 옳은 것이었냐고...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이들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숨겨져 있던 뭔가가 한 가지씩 드러날 때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나다가도 한 남자의 집념과 같은 간절함에는 울고 싶어진다.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던 그 간절함이 나에게까지 밀려오기에 모른 척할 수가 없다. 틀렸다고 말해줄 수도 없었다. 정말 틀린 것인지 어떤 것인지도 모르겠으니까. 마지막까지 같이 가야했다. 확인해야만 했다. 옳다고 믿고 간절한 마음으로 전력 질주한 그 끝에서 만나게 될 진실을 봐야만 했다. 그리고 알았다. 살아가는 매 순간마다, 옳다고 믿었던 마음 하나로 향했던 그것이 옳은 것이었냐고 계속 묻고 있는 물음표와, ‘그렇다, 아니다’, 로 말할 수 없어서 침묵으로 대신했던 말줄임표로 마무리되는 문장을. 깔끔하게 마침표 하나로 찍고 싶었으나, 여전히 그 물음표 앞에서는 말줄임표일 것 같다. 계속해서 멈추지 않을 생각과 같이 가고 있을 것만 같아서, 내 삶의 의미와 이유와 본질이 항상 같을 것 같지는 않아 보여서. 어느 순간에는 그게 사랑일 수도, 가족일 수도, 물질일 수도, 또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의미가 어떤 것일지라도, 다시 또 걷고 달릴 것이라는 것만 변함없을 것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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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인간
이석원 지음 / 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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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을 통해 만났던 전작과는 분명 다르겠지만, 이 책 자체로의 매력은 있을 것이라고 본다. 이야기 그 자체로 즐기고 싶은 마음에, 기존의 소설들과는 뭔가가 다를 것이라든 기대감에 펼쳐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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