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기적 같은 피아노 이사 39번 문학동네 세계 인물 그림책 4
조나 윈터 지음, 정지현 옮김, 배리 블리트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지인이 이삿짐센터를 운영하고 있어서, 이삿짐 옮기고 난 후의 이야기를 거의 매일 들었던 적이 있다. 그때 자주 들었던, 이삿짐센터에서는 정말 피하고 싶은, 반갑지 않은 이삿짐 목록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피아노라고 했다. 너무 무겁고, 혹시라도 옮기면서 흠집이라도 날까 긴장하면서 옮기게 되고, 이사를 의뢰한 사람의 집이 1층이 아니면 피아노를 옮기기도 전에 등에 땀부터 난다고. ^^ 전문가들이 피아노를 옮기는 나름의 노하우가 있겠지만 실제로 피아노를 옮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던 나도, 상상만 해도 벌써 등에 땀이 난다. 베토벤은 그런 피아노 이사를 빈에서만 서른아홉번이나 했다니 금방 믿어지지가 않았지만! 괴팍한 베토벤의 피아노를 옮기던 일꾼들의 땀 흘리는 얼굴은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사실 : 루드비히 반 베토벤은 1770년 독일 본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시간이 흘러, 베토벤은 위대한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루드비히 반 베토벤은 다리 없는 피아노 다섯 대가 있었고, 방바닥에 앉아 위대한 곡들을 만들었습니다. 루드비히 반 베토벤은 서른아홉 번이나 이사를 다니며 셋방살이를 했습니다. 바로 이 사실이 이 책에서 다루려는 주제입니다. 피아노를 옮기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피아노 다섯 대를 옮기기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베토벤. 괴팍한 성격을 가진 음악가. 훗날, 그는 귀가 들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냈다, 라고 들어온 인물이다. 음악을 잘 알지 못하다 보니 베토벤의 유명한 음악 몇 곡만 들어왔을 뿐, 베토벤이라는 인물 자체나 그의 음악이 만들어진 배경이나 역사에 대해 내가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 중 하나가 이 책에서 들려주고 있는, 베토벤이 오스트리아 빈에 살면서 서른아홉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사실이다. 그가 서른아홉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건 사실이지만, 왜 이사를 그렇게 자주 했었는지, 어디로 이사를 했었는지, 그가 이사한 방은 어땠는지, 문제의 다리 없는 피아노 다섯 대를 이사할 때마다 어떻게 옮겼는지 알려진 부분이 없다. 이 백 년 동안 연구됐지만 피아노 다섯 대를 옮긴 방법이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니, 이 얼마나 밝혀내고 싶은 미스터리란 말인가! 서른아홉번이라는 이사의 횟수가 적지도 않을뿐더러(^^), 한 대도 아닌 다섯 대의 피아노를 매번 어떤 방식으로 옮겨야 했을지 궁금했던 마음을 한방에 해소해주고 있는 책이다. 게다가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베토벤의 음악이 탄생된 배경까지 듣고 있자면, ‘어머, 정말?’ 하면서 귀가 솔깃해지고, ‘아하, 그럴 수도 있겠어!’ 라며 손뼉을 치면서 읽게 된다.

예를 들면, ‘피아노 소타나 14번(월광)’은 도시 중심가에 있는, 열린 창으로 달빛이 들어오는 아름다운 방에서 만들어진 곡이라고 말한다.(상당히 그럴싸하지?^^) 그럼, 이렇게 아름다움이 스며드는 방에서 계속 작곡을 하면 될 것을, 베토벤은 이 셋방에서 쫓겨나고 만다. 왜냐고? 방세 내는 것을 잊었기에 그렇게 되었다는 슬픈 이유가 여기에 있다. ㅠㅠ 이때부터 베토벤의 이사여행은 시작된다. 그 다음 이사한 지하 셋방에서는 8일 만에 또 이사를 하게 된다. 테라스가 있는, 다뉴브 강이 한눈에 보이고 창문으로는 비엔나커피 향이 들어오는 곳에서는 ‘교향곡 3번(영웅)에서 5번(운명)’까지 만들었다고도 한다. 자연에 대한 사랑이 담겼다는 ‘교향곡 6번(전원)’도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니, 혹시 그가 한 번씩 이사할 때마다 그 공간에 어울리는 악상이 막 떠올랐던 것일까? 그럼 서른아홉 번보다 더 많이, 더 자주 이사를 했다면 지금쯤 베토벤의 음악은 더 많이 남겨져 있었을까? ^^

이 책이 써진 목적처럼, 여기서 내가 추리하고 싶은 것은 그의 이사 이유만큼이나 서른아홉 번에 달하는 그의 이사에서 피아노가 어떻게 옮겨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피아노를 어떻게 건물 밖으로 꺼냈는지(비록 다리가 없었다고 해도 피아노는 덩치가 크고 무겁잖아!), 고층 혹은 지하 같은 곳으로 어떻게 피아노를 올리고 내리고 했는지(혹시 피아노가 타고 다닐만한 미끄럼틀이라도 있었던 걸까?), 이 건물에서 저 건물로 옮겨갈 때는 어떻게 갔는지(바퀴가 달린 커다란 수레를 직접 제작해서 피아노를 태웠을지도 몰라!) 그의 이사에 관한 모든 것이 궁금해서 안달이 날 지경이다. 피아노를 건물 밖으로 꺼내어 뒷문으로 옮겼을 수도, 도르래로 지붕 위를 통과하게 한 다음 옆 건물 난간에 내려놓았을지도, 벽을 뚫고 이웃집의 주방을 통과했을 지도, 낑낑거리면서 고층 계단을 걸어서 피아노를 들고 올라갔을지도 모르지. 베토벤의 피아노를 옮기기 위해 직접 도면(피아노를 땅에 내리지 않고 옮길 수 있는 방법을 그렸다니까!)을 그려야했을 정도로 짐꾼들은 베토벤의 피아노 이사로 인한 분노가 끓어오르기 일보직전이었던 것 같다. ^^ 그럼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던 베토벤은 이곳저곳으로 옮기느라 망가진 피아노를 버리고 새 피아노를 사기도 한다.

베토벤의 이사의 시작이 단지 방세를 못 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의 일기에서 언급됐던 것처럼 ‘코를 찌르는 끔찍한 치즈 냄새’ 한 가지 때문만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그의 잦은 이사의 이유가 점점 잃어가는 그의 청력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처음 이사의 시작은 다른 이유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점점 사라져가는 그의 청력은 이웃들에게 본의 아니게 소음을 제공하는 격이 되었다. 이웃들의 “다아아아악쳐!!!” 하는 항의가 빗발쳤으니까. 들리지 않는 귀 때문에 피아노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을 것이고, 조금 더 크고 힘 있게 피아노 건반을 내리친다면 자신의 귀에 피아노 치는 소리가 들릴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들리지 않는 귀, 폭발할 것 같은 화, 광기까지 더해져 피아노에 그 자신의 분노를 표출한 것인지도... 어쨌든, 실제로 그가 내는 소음 때문에 여러 차례 민원이 제기되기도 했다는 걸 보면 그의 잦은 이사의 이유가, 이웃에게 끼치던 소음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걸.

베토벤은 청력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도 작곡을 멈추지 않았다. 들리지 않는 귀로 그는 ‘교향곡 9번(합창)’까지 만들어냈다. 그의 이웃들에게는 이런 그의 행동이 소음으로 행하는 폭력일지도 모르지만, 그는 자신이 살아있다는, 계속해서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증거가 필요했던 것 같다. 자신이 계속해왔던 음악(작곡)에 대한 애착과 들리지 않는 귀로 인해 번번이 좌절로 보내야 했을 시간을 견디게 해줄 방법 같은... 상상력과 사실을 바탕으로 이 책에서 들려준 그의 이사는 웃음과 기발함으로 재미를 주지만 그 이면에 깔려있는, 음악에 대한 그의 고통과 간절함은 괴팍스러운 성격과 광기, 소음으로 신고 되기까지 하는 그의 음악으로 함께 보여주고 있다. 상상력으로 그려진 이야기의 웃음 뒤의, 사실을 담은 그의 고통으로 인한 아픔까지 보게 하는 것이다.

외골수, 광기, 혹은 괴짜로 유명한 베토벤의 인생에 있어서 서른아홉번의 피아노 이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상상하는 재미를 그대로 전달해주는, 무척이나 흥미로운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낸 걸 보면, 이 책의 작가 조나 윈터 역시 베토벤 못지않게 괴짜로 보인다. ^^ 틀에 박힌 위인전의 색깔을 벗고 뜬금없이 베토벤의 이사를 언급하다니! 요즘에 비추어 보면 베토벤은 진상 중의 진상 고객이다. 들려오는 그의 성격을 봐도 보통의 고객은 아니었을 것이다. ㅋㅋ 피아노 다섯 대와 괴팍한 성정의 베토벤. 생각만 해도 진상 고객을 욕하는 짐꾼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렇다면 나 역시도 이삿짐센터에서 피해가고 싶은 진상 고객이다. 이 많은 책에다가 예민한 성격까지, 베토벤의 서른아홉번의 이사로 내가 받은 교훈은 이삿짐센터의 진상 고객은 되고 싶지 않다는 거. 그렇다면 (이사 계획이 생긴다면) 이사하기 전에 이 책을 다 처분하고 이삿짐센터에 의뢰해야 한다는 말인가?! ㅠㅠ

이 책에서, 베토벤의 이사는 서른아홉번이 다 채워지지 않았다. 그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 나머지 이사의 방법, 이사의 이유, 이사하는 모습을 우리가 다시 그리기 시작하면 된다. 베토벤의 그 시간 속으로 함께 들어가 그와 같이 이사를 하고 있는 나를 상상해봐.(어쩌면 나는 낑낑대며 그의 다리 없는 피아노 중의 한 대를 옮기고 있을지도 몰라!) 신나지 않겠어? ^^

그동안 내가 만났던 위인들의 이야기에서 보편적으로 들어왔던 내용은 출생에서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연대기 형식이었는데, 이 책 『베토벤의 기적 같은 피아노 이사 39번』은 베토벤에 대해 알려진 사실 단 몇 줄만을 언급해주고 ‘모큐멘터리(mockumentary)’ 형식으로 구성했다. 베토벤이 서른아홉번의 이사를 했다는 것뿐, 이사의 내용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는 상태에서, 기발한 상상력을 채워 넣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나아가 그림과 글로 보이고 있는 그 이상을 나만의 상상력으로 계속 그리게 만드는 것이다. 몇 가지 추측으로 따라가 본 베토벤의 이사는, 어쩌면, 영원히 ‘왜?’ 라는 의문으로만 남겨질지도 모르지만, 뭐 어떤가. 베토벤의 인생에 있어서 이미 알려진 사실들 말고, 이런 내용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독자가 누릴 수 있는 즐거움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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