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존 그린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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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장소는 나의 장례식장. 나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이 되어 투명인간처럼 그 안의 모습을 보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의 마지막 가는 길에 인사를 하러 찾아올까, 함께 했었던 그 시간 속의 나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을까, 같은 시간을 즐겼던 그 순간의 나와는 다른 기억으로 저장된 일들은 없을까. 마냥 궁금한 것투성이다. 그리고 그 모든 궁금증의 공통점은 바로 이것이겠지. ‘나’라는 사람을 기억하고 있을까, 나를 어떤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내가 삼십 대에 들어서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소식은 누군가의 탄생 소식과 누군가의 사망 소식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생명의 켜짐과 꺼짐을 동시에 들었던 적도 있다. 대부분은 지인의 아이들이 태어나는 소식, 지인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그 안에서 들려왔던 죽음의 모습도 참 다양했다. 교통사고나 급사, 질병으로 인한 죽음. 그리고 이어지는 장소는 장례식장. 참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는 장소이다. 그 안에서 내가 평소에 들어왔던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들려온다. 죽은 이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 같은 이야기가 끊임없이 들려올 때도 있었다. 조문객의 입장에서 나는 ‘아, 그런 일들이 있었구나.’ 하는 정도로만 이해하면서 그쳤지만, 그 반대의 입장이 되어보려 하니 조금은 욕심 같은 바람이 인다. ‘나를 알고 있는 많은 이들이 나에 대해서 좋은 것만 기억하고 있었으면…….’ 하는 바람. ‘나’라는 사람의 존재 자체를 기억해주는 것의 바람에서 ‘좋은 사람’이었다는 바람까지 보태고 싶어진다.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란 기억으로 남고 싶은 거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속의 헤이즐과 어거스터스 역시나 나와 비슷한 느낌으로 남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공감을 준다. 더군다나 헤이즐과 거스(어거스터스)는 암이라는 병마와 싸우고 있었고, 언제 자신에게 손짓할지 모를 죽음과 만날 준비도 해야 하는 입장에서 더더욱 죽음이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님을 항상 상기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남겨진 시간, 얼마가 될지 모를 그 시간을 사랑해야만 했다. 그 시간 동안 자신에게 닥칠, 자신이 선택할 일들을 받아내야만 했다. 실험용 의약품으로 생명을 연장하고 산소통에 호흡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헤이즐, 의족으로도 멋진 소년이 되어보는 거스, 한쪽 눈을 잃고서도 유쾌하고 쿨한 남자가 되고 싶었던 아이작까지. 눈물로 보낼 것 같은 시간을 웃음으로, 당연하게 그럴 수도 있는 일로 받아들이려 하는 이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과 대견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자신에게 시시때때로 다가오는 죽음과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안도의 한숨을 쉬게 만들어준다고 해야 할까. ‘그래, 나는 이렇게 신체의 한 부분을 내어주고서라도 너(죽음)와 싸우고 있어. 반드시 이길 테야!’라고 큰 소리로 말하고 있을 것만 같아서다. 그 순간 생각했다. 이들은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계속 싸워왔던 그 시간이 곧 멈출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싸우고 있다는 것 자체를, 싸워야만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중이라고.

 

그래서

 

나는 이 책 속에서 느껴지는 슬픔들을 통해 이들의 고통을 함께 만났다.

“고통이란 느껴야만 하는 거거든.” (70페이지)

이미 삶의 끝인 그 죽음을 알고 있는 시간을 살아간다는 것의 슬픔, 닥치지 않으면 모를 것 같은 그 마지막을 향해가는 슬픔을 이 책의 주인공들과 만나고 있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것 중의 대표주자가 바로 슬픔일 것이다. 헤이즐과 거스에게 똑같이, 갑작스레 찾아왔을 그 슬픔의 깊이를 같이 헤아려보고 있다. 그 슬픔이 유지되는 동안 더 깊은 슬픔과 무너짐을 선사했던 『장엄한 고뇌』의 저자 피터 반 호텐을 만나는 일까지 더해진 것은 이미 이 아이들에게 더 많은 슬픔이 다가올 것을 예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참 친절한 것 같아서 화가 났다. 예고 없이 온다던 그 슬픔을 예고해 주려 했다니.) 한 권의 책을 통해 교감했던 그 시간을 저자의 무책임한 태도로 절망을 느끼게 했으며, 만나고 싶었던 그 마지막 이야기 역시 들을 수 없었다. 작가가 숨겨두고 싶었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계획되지 않은 마무리였는지 모를 것들뿐이었다. (이 부분은 직접 이 책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를 읽고 확인하길 바란다.) 그 먼 길을 목숨을 걸고 여행을 감행했던 이들에게 남겨진 것은 더 많은 절망과 차마 얘기할 수 없는 슬픔의 무게였으리라.

 

“아니야. 향수병은 죽음의 부작용이야.” (249페이지)

그 아련한 느낌마저 지워야만 죽음과 멀어질 것을 알기에 때로는 인간이 가지는 어떤 감정들을 잘라내려고까지 한다. 죽음을 향해가는 것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 차마 그 감정마저도 버려야 할 것만 같은 이름으로 기억창고에 저장하려 한다. 육체의 아픔이 가져오는 게 너무나도 어마어마해서 단순히 그 병명 이상의 것을 가져오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워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가지는 추억이란 아름다운 이름일 수 있는데, 이제는 그것마저 버려야 할 것이 되었다면 그 병(죽음)이란 것이 얼마나 힘이 센 것인지를.

 

그럼에도

 

“응. 난 『장엄한 고뇌』에 나왔던 그 말을 믿어. ‘잃어가는 그녀의 시력 앞에 떠오르는 해는 너무 밝았다.’ 그게 신이라고 생각해. 떠오르는 해, 그리고 빛이 너무 밝고 그녀는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완전히 잃지는 않았다는 거. 우리가 산 사람을 위로하거나 혹은 괴롭히기 위해서 돌아온다고 믿지는 않지만, 우리가 뭔가가 될 거라고는 생각해.” (178페이지)

이들이 무언가가 되고 싶어 하고, 무언가가 되어 남아주기를 바라는 그 간절함은 아프지 않은 우리와 같았다. 어쩌면 그것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을 살아가는데 이유를 주고, 내일 남겨질 나의 흔적을 새기는 일. 그게 바로 우리가, 이들이 이 순간을 살아가는 목적이자 의무가 아닐까. 그런 면에서 헤이즐과 거스는 충분하게 그 의미를 파악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의 평균 수명보다 모자란 시간을 끌어안고서 이 세상에 자신들의 존재감을 느끼고 새기면서 살아가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이들의 사랑에 관객으로 동참했다.

슬프기에 아름다웠고, 아름다웠기에 더 아프게 느껴지게 했던 사랑을 보여주는 헤이즐과 거스. 인간의 평균수명보다 짧은 자신들의 숨소리를 듣고 있는, 지금 자신의 몸에 대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 아직은 열여섯, 열일곱. 그 나이의 평범한 십 대보다 병원의 소독약 냄새가 더 친숙한 일상을 살아가는 헤이즐과 거스에게도 다른 이들과 똑같이 사랑은 찾아왔다. 다를 것이 없었다. 평범한 일상에서 만나는 평범한 감정이었다. 몸이 아프다고 해서 다를 것이 없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감정. 그런 일들이 다가온 것뿐이다. 단지 신체적 아픔을 가지고 있기에 또래보다 더 빨리 어른의 마음을 가지게 된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사랑이 내 눈에는 아름다운 회색으로 보였을 뿐이었다. 무채색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들려주고 있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멀지 않은 이별의 순간에, 적어도 서로에게만큼은 그들이 살아갔다는 그 흔적을 새길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듯, 그렇게 사랑을 하는 두 사람이었다. 적어도 그 상처를 이기지 못해 무너지는 누구처럼 되지 않기 위해 그 상처까지 끌어안을 마음으로 헤이즐을, 거스를 사랑 했다. 서로에게 남겨진 흔적이 비록 상처라 할지라도 그 상처를 이기고 내일을 살아갈 것을 알기에 지금 이들이 하는 사랑 역시나 당연한 것으로 보였다. 그냥, 사랑하면 된다. 그게 이들에게 숨 쉬고 있는 오늘을 각인시키는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이들을 나 역시도 당연하게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음의 고저 없이 평범할 것 같은 이야기가 나에게 특별함을 선사했다.

 

며칠 동안 TV와 라디오를 통해 내 눈과 귀에 들려왔던 모든 장면과 소리는 슬픔이었다. 누군가의 모습이 아릿해서 아프고 멜로디가 절절해서 슬픈 노래였다. 어쩌면 그 외의 다른 이유로, 나는 나를 둘러싼 모든 슬픔을 더 깊이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내 맘처럼 흐르지 않고, 예고 없이 찾아오는 슬픔이 헤이즐과 거스에게 찾아왔던 순간들처럼 느껴졌었던 건지도 모르겠다고, 그 공감의 이유를 찾고 있었다. 억지로 그 이유를 찾지 않아도 이들의 이야기는 충분히 공감할만했지만, 나는 그 마지막 장을 덮고서도 밀려오는 여운을 정리할 구실 또 한 번 찾고 있었나 보다. 정말 오랜만에 집중해서 한 권의 책에 빠져드는 순간이기도 했다. 죽음을 앞에 두고서도 이들의 평범하고 유쾌한 일상이 들려올 때는 웃고 있었고, 내일의 희망이 무너지고 좌절이 찾아올 때는 울고 있었다. 나(우리)에게 흘러가는 일상과 크게 다르지도 않게 그저 누구나 비슷하게 하루하루를 지내는 것과 같아서 안도하는 한편, 언제 높게 일지 모를 파도를 기다리는 불안감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어제는 저런 일, 오늘은 이런 일, 내일은 또 내일의 일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지금 그대로인 것처럼……. 계속해서 이어지고 살아가는 날 중의 하루하루가 쌓여서 가는 시간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처럼 때로는 슬픔과 아픔이, 설렘과 즐거움이 오는 날들일 수도 있겠지. 그래서 늘 슬픔과 아픔을 느끼면서도 웃게 될 희망을 찾아서 살아가는 시간일 테고. 그러한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그 사람을 기억하는 장면들로 남아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나는 흔적을 남기고 싶어요. (322페이지)”

헤이즐과 거스, 두 사람은 이미 넘칠만한 흔적을 남겨주었다.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는 오늘을 다시 보게 하고 시한부로 살아갈 수도 있는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게 한다. 이들이 보여주었던 시간이 슬프고도 아름답게,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 되어 있었으니까.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보낼 평범한 일상마저 ‘특별하게’ 살아준 그 시간이 소중하게 여겨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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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연의 눈꽃...

절판본이었기에 개정판이 나왔다는 사실이 반갑기도 했지만,

늘 그렇듯...

새로운 옷을 입고 다시 나왔다는 게 가장 반가운 일...

조용히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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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
파울로 코엘료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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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사탕의 유혹도 있었지만,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과 친해지고 싶은 이유도 있었다. 그의 작품 중 나와 맞는 게 단 한편뿐이었기에... 담담한 듯, 조용한 말투가 가져다줄 어떤 느낌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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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난다 - 치사해서 말하지 못한 사소한 것들을 향해 이단옆차기
김보라 지음, 스폰지 그림 / 돋을새김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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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사해서 말하지 못한 사소한 것들을 향해 이단옆차기라는 부제가 눈길을 끈다. 문장 그대로다. 말하자니 치사한 사람이 될 것 같아 주저하게 되고, 참고 있자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화병이 날 것만 같은 마음을 어쩌랴. 이럴 때 다른 방법은 없다. 쏟아내야 한다. 풀어야 한다. 속사포 욕이라도 마구 쏴줘야 한다. 아마도 저자는 그런 사람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어떤 을 풀어내는 그 화끈함이 시원하게 들린다. 여기에서 방점은 사소하다는 것에 있다. 뭘 그 정도로 그러냐, 별로 큰일도 아니구먼, 그냥 넘어가지 속 좁게 군다, 는 말들이 나올 상황들이다. 하지만 사소하다고 하기에 일상이나 인간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라 그 여파가 너무 크다. 그리하여 그 사소한 일은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일이 되고야 만다. ~? 그런 시간이 쌓여, 참고만 있자니 이 성격에 죽을지도 모를 위태로운 상황들로 변신하기도 한다.

 

어딘가에서 누구에게 하소연하듯 수다 삼매경에서 나올 법한 얘기인데, 저자의 말에 100%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공감하게 된다. 더불어 정말 나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한 번 더 실감하게 된다. 나 혼자 내 맘대로 해도 되는 것은 내 방 안에서 나 혼자만의 일상이 가능할 때 얘기고,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겪어가는 일은 많은 배려와 이해를 동반해야만 한다. 저자는 아주 사소하지만 우리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일들을 말한다. 깨알같이 화가 나게 하는 일들이 끝도 없이 풀어져 나오는데 이런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할 일이 참아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앞뒤 없이 화만 내서도 안 되는 게 살아가는 처세술 아니겠나. 눈치껏 재주껏 어디 그 화를 풀어내 보시라.

 

어떤 일에 화가 나냐고?

공공장소를 개인장소처럼 여기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어요. 여긴 당신들 안방이 아니므니다. 먹는 사람과 뒤처리하는 사람 따로 있을 때 분노의 주먹이 불끈 쥐어집니다. 나는 식기 세척기가 아니라고요! 약속시각 몇 분쯤 습관적으로 늦거나 아무 미안함 없이 취소해버리는 사람들에게 내 시간을 돌리도~! 똑같은 방법으로, 약속시각에 몇 분이 아니라 몇 시간쯤 늦게 와서 복수해줄 겁니다. 집 없는 설움에 울게 하지 마세요. 언젠가는 대궐 같은 집에서 당신을 내려다볼지도 모르잖아요?! 나는 이제 무슨 옷을 입어야 할까요? 예전의 55사이즈가 지금 44사이즈도 안 되는 거 알고 있나요? ㅠㅠ 누군가의 값진 노동 앞에서 아무나 할 수 있는 쉬운 일로 판단하지 마세요. "~나 해야겠어요."라는 말 함부로 하면 안 됩니다. 사라져가는 서점 때문에 마음이 아프고 출판사를 호구로 아는 거래처나 독자에게 섭섭합니다. 우리는 책으로 통하는 사이인데 말입니다. 피곤하다고 방바닥과 이불로 돌돌 말린 주말을 보낸 것이 너무 허망해서 화가 납니다...

 

, 끝이 없다. 괘씸해서 화가 나고, 속상해서 화가 나고, 서운해서 화가 나고... 가만히 듣고 있자면 매일 살아가는 오늘이 기쁘면서도 그 깨알 같은 화 때문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기도 한다. 사는 게 그렇지, 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2%가 있는 듯하다. 아마도 그건 한 번쯤 터져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꾹꾹 눌러 담은 화, 혹은 가슴 속 상처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한 번쯤 이런 수다 삼매경에 푹 빠져보는 것도 좋겠다. 내가 한번 말한다고 해서 화 내게 되는 그 많은 원인이 단숨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기에 그 변화의 과정에서 이런 타이밍 한 번 맛보는 거로 생각하면 어떨까. ^^

 

자의 에피소드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여러 가지 있었는데, 그중에 특히 지하철의 노약자석은 노약자 전용석이 아니라 노약자 우선 좌석이라는 말에 심각하게 공감했다. 혹시 젊은 사람이 앉아 있다가도 노인분이 타면 바로 일어나면 되는 좌석인 거다. 지하철이 아닌 버스만 다니는 이곳에도, 가끔 버스를 타다 보면 정말 자리 양보하기 싫어지게 하는 노인분이 있다. 한 번도 아니고 몇 번 그런 경험을 하고 보니 자리 양보에 대한 예의를 차리기가 싫어진 적도 있다. 언제였던가. 노인분이 버스에 올라타는 것을 보고 알아서 일어나려고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고 있었다. 그런데 급하게 내 옆에 와 떡하니 서서 요즘 것들은 자리 양보도 할 줄 모른다는 둥, 아이고 팔다리허리어깨야 하면서 몸의 여기저기를 두드려대면서 굳이 바닥에 주저앉는 할머니. 저자도 말했지만, 노인분이 타면 자리 양보 안 하는 사람 거의 없다. 노인에게 자리 양보는 당연한 것처럼 배우고 자랐기에 나 역시 아무리 피곤해도 서서 간다. 그런데 저런 노인을 만나면 저 일어나는 거 안 보이세요? 할머니 같은 분들 때문에 자리 양보하기 싫어져요.” 라며 굳이 한마디 하고 일어난다. 그러면 그 할머니는 내 뒤통수에 대고 싸가지가 바가지라는 둥 끊임없이 욕사포를 날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목적지까지 유유히 그렇게 서 있다가 내린다. 처음에는 내가 정말 나쁜 년인가 싶었는데, 어느 순간 주변의 시선이 의아해서 둘러보니 와~ 대박. 사람들이 나에게 공감의 눈길을 던지고 있었다. 살짝 엄지를 추켜드는 사람도 있었다. 아하~ 이런 마음이 나만 드는 건 아니었구먼. 결론은, 나는 나쁜 년이 아니라는 것. 뭐 이건, 나도 한껏 화가 났기에 했던 행동이었지만, 지나고 살짝 후회와 웃음을 함께 삼켰지만... , 조금은 뻘쭘하기도 하고... 그래도 그런 싸가지 바가지가 한 번쯤은 속을 시원하게 해주긴 하더라.

 

공감해서 웃음도 나고 조금은 달라서 오버하는 듯한 느낌도 있다. 저자의 에피소드를 곰곰이 듣다 보면 나와는 다른 태도를 보이는 부분이 상당히 있다. 절반쯤은 공감하고 절반쯤은 공감하기 어려운 정도다. 그건 누가 잘했네 잘못했네 하는 이분법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같은 상황을 두고 하는 생각의 차이, 취향의 차이, 성격의 차이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저자가 발끈했던 일이 나에게는 그냥 흘러가듯 무시하는 일도 있는 걸 보면 분명 사람의 성격 차이가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화가 나는 지점이 사람마다 다르기도 하고 화를 내는 정도도 다를 것이다. 조금은 가볍게 읽어도 좋고 조금은 무겁게 생각해볼 문제도 있다. 우리 사는 동네 어딜 가나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들, 사람들이다. 그 안에 자리하고 있는 나 자신이 속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인 문제로 끌어내 끝장토론 한번 해보자, 하는 의미가 아니니 부담 없이 즐겨도 좋을 이야기다. 속이 좀 시원해질지도 모를 수다 한바탕 즐기면 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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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조금 여유를 가지고 빗소리를 듣고 있다.

여전히 불안하고, 조급하고, 가슴이 두근구든 무슨 일이 또 일어날까 조마조마 하지만

잠깐 이런 여유쯤 괜찮지 않겠냐고 스스로 말하고 있다.

폭우가 아닌 살짝 내리는, 모여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적당한 크기로 들리는...

 

 

병원에서는 거의 밤 10시가 되면 불을 끈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지만,

무슨 규칙처럼 밤 10시가 되면 불을 끄는 분위기다.

잠은 오지 않는데 불은 꺼지고, 책 읽을 정도의 집중력도 없고,

딱히 할 일이 없어서 하던 것이 휴대폰으로 라디오를 듣는 거였다.

밤 10시마다 만나던 타블로의 목소리, 너무 작다. 그런데 좋다.

소란스럽지 않아서 좋은 목소리다.

그렇게 밤 시간, 거의 두 시간을 라디오와 함께 지냈다.

듣고 싶은 노래가 있으면 문자로 신청하기도 하고,

타블로가 소개하면서 들려주기도 하더라. (근데 상품은 안 주더라고... ㅎㅎ)

 

 

 

요즘 가장 많이 흥얼거리던 노래는 아이유의 리메이크 앨범.

오래 전에 듣고 좋아했던 '너의 의미'를 계속 흥얼거렸다.

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에서 잠깐 듣고 좋아서 기억했던 노래다.

아이유를 좋아하지 않지만, 아이유가 부르는 오래 전 노래들은 좋다.

예판 때, 구입해서 들어야지 했던 것을 아직도 구입하지 못하고 흥얼거리기만 한다.

머지 않은 시간에 구입해서 전곡을 다 들어야지 생각하고 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끝날 수가 있는 이야기일까?

여전히 노란 리본은 날리고 있고, 오늘 같은 날은 비에 젖은 채로 그 무게감을 더하고 있겠지.

노란색의 무게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오랜만에 보는 티비에서는 한달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소식을 뉴스로 전하고 있더라.

누구에게나, 다시는 생기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을 담은...

 

 

 

 

두달 전에 구입했던 책, <먹는 존재>를 이제야 읽어봤다.

재밌다. 씁쓸하다.

삶의 매 순간을 그대로 담은 이야기에 서늘하면서,

음식에 담은 그 심오한 비유와 의미가 나를 놀라게 한다.

살아가는데 먹는 일이 1순위가 아닌 나는 여전히 이 책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런 삶의 모습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정철의 에세이다.

오로지 1음절로 이루어진 글자들만으로 가득 채운 책이란다.

한 글자로 시작해 한 글자로 놀다가 한 글자로 끝난다는 이 책이 궁금하다.

우리 살아가는 세상, 인생을 1음절의 글자로 비출 수 있다니...

놀랍고 재밌을 것 같다.

 

 

 

 

 

1시간째 계속 비가 내리고 있다.

이 정도 굵기로, 이 정도 소리로 조금 더 내려도 좋겠다.

지독하게 싫어하는 비를, 지금 잠깐은 좋아해도 괜찮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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