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가지 질문의 답변을 생각하기 전에 질문을 쭉 읽어보다가 든 생각은, 내가 정말 평범하게 책을 읽는다는 것과 오랜 시간 그 질문들의 답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거다. 익숙하게, 때로는 어떤 목적을 두고, 때로는 그냥 페이지 넘기는 재미로, 때로는 가볍게 읽는 습관들. 문제가 많은 책 읽기 습관인데, 그게 또 잘 고쳐지지 않아서 포기하는 부분들이 생겨나고, 그럭저럭 여전히 책을 가까이하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까지 그대로다. 별거 없네...
Q1. 언제, 어디서 책 읽는 걸 좋아하십니까?
아무 때나 집에서든 밖에서든 상관없이 책을 한 권씩은 들고 다니는데, 주로 집에서 읽는 시간이 많고, 가끔 시간이 여유로우면 밖의 커피점 같은 데서 읽기도 한다. 그런데 대부분 방바닥을 뒹굴면서 읽기를 좋아한다. 자세가 불량이어서 그런지 가만히 앉아서 읽는 거 어렵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그냥 뒹굴면서... 그런데 이런 습관을 고쳐야 하는 절실함이 찾아왔다. 엎드려서 책 보는 습관이 눈에 상당히 안 좋다는 걸 알면서도 무시했는데, 더는 그런 무시를 하면 안 된다는 걸 얼마 전 알았다. 내 눈 상태가 그러하므로... 심각하다. 그 습관을 고치려고 애쓰고 있는 지금이다. 의자에 반듯이 앉아서 읽지는 못해도, 적어도 지금은 엎드리거나 뒹굴뒹굴하면서 읽지는 않는다. 거의 2주 정도 이러고 있는데, 습관이란 게 정말 무섭다. 안 하던 자세로 책을 읽으려니 허리가 아프다. 그래도 어쩌겠어. 고쳐야지.
Q2. 독서 습관이 궁금합니다. 종이책을 읽으시나요? 전자책을 읽으시나요? 읽으면서 메모를 하거나 책을 접거나 하시나요?
종이책을 주로 선호하는데, 요즘엔 가끔 전자책도 읽는다. 전자책은 주로 가벼운 로맨스소설 정도 읽는데, 요즘 인터넷서점에서 전자책 구매할 수 있는 상품권을 많이 주기에 타이밍 맞으면 그 상품권 내려받아서 한두 권씩 사면서 즐겨 읽는다. 문제는, 사기는 하는데 읽는 속도가 따라주지 못해서 읽지 못한 책들이 더 많다는 거... 가끔 진짜 여유롭게 어디 처박혀서 가벼운 소설들 읽고 싶다. 적어도 읽는 동안은 아무 생각도 안 나게.
읽으면서 메모를 거의 하지 않는다. 일단은 포스트잇을 붙여 놓고 읽고, 나중에 책을 다 읽고 나면 포스트잇 붙여놓은 부분 다시 펼쳐본다. 그때 필요하면 메모를 하기도 하지만, 주로 리뷰 작성할 때 열어놓은 한글 파일 안에 붙여 놓는다. 그마저도 안 하면 그냥 잊기도 하고... (여기서도 게으름이 표가 난다.)
Q3. 지금 침대 머리맡에는 어떤 책이 놓여 있나요?
<술이 있으면 어디든 좋아>와 <치킨의 50가지 그림자>가 손닿는 곳에 있다. <치킨의 50가지 그림자>는 너무 궁금해서 구매했는데, 문학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실상은 요리책이다. 요리 좋아하는 사람은 즐길 수 있는 책인데, 나에게는 두 번 읽힐 책은 아니다. <술이 있으면 어디든 좋아>는 술로 가는 그 길이 궁금해서 구매했다. 술이 있으면 어디든 좋아, 라고 말할 정도면 얼마나 술을 좋아해야 하는 걸까. 요즘 술 못 마시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더 끌리는 책이다. 말술로 마시던 친구가 생각나는 책이기도 하고, 진짜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생각나는 요즘이기도 하다.
Q4. 개인 서재의 책들은 어떤 방식으로 배열해두시나요? 모든 책을 다 갖고 계시는 편인가요, 간소하게 줄이려고 애쓰는 편인가요?
구분 없다. 그냥 높이나 공간이 맞으면 아무 데나 끼워 넣는다. 그러다가 책을 못 찾는 경우가 많은데도 이 버릇 안 고쳐진다. 책을 배열해두는 방식이고 뭐고, 사실 책 정리를 거의 안 한다. 필요한 책 찾다 보면 어디 책탑 밑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정리하지 않은 택배 박스 안에서 나오기도 한다. 내가 하는 책 정리는 딱 두 가지다. 책을 사고 아무 데나 꽂아두거나, 안 읽거나 한 번 읽은 책은 내보내는 거. 내보내는 방식도 두 가지, 중고로 팔리면 팔거나 기증센터에 보내거나. 엊그제도 늘 보내던 기증 센터에 책 한 박스 보냈는데, 박스를 가만히 살펴보니 대부분 신간이다. 담당자분 말씀이, 이용자들 반응 좋은 책으로만 꾸준히 보내줘서 고맙다고 하더라. 한 번 읽은 책을 두 번 읽는 경우는 거의 없는 터라 책이 쌓이면 바로바로 보낸다. 거의 두세 달에 한 번씩인데, 그때마다 한 박스씩, 보통 한 박스에는 책이 대략 20~30권 정도. 그때 한 번씩 하는 일이 있는데, 이 책이 나중에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다. 그때는 도서관 자료검색을 하고 비치된 자료라면 바로 기증으로 보낼 박스에 넣고, 도서관에 없는 자료라면 한 번 더 고민하기도 한다.
결론은, 간소하게 줄이려고 애쓰는 편.
Q5.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책은 무엇입니까?
어렸을 때 책을 안 읽고 살았다. 우리 집에 유일하게 있던 책이 계몽사 세계문학이었는데, 그게 있어도 나는 책을 안 읽었다. 내가 책을 읽기 시작한 건 대학 졸업하고 나서부터다. 웃기게도, 대학 때도 전공 서적 외에는, 리포트를 쓰기 위해서가 아니면 책 거의 안 보고 살았다. 키다리 아저씨나 어린 왕자 같은 책도 나는 몇 년 전에야 읽었으니, 뭐 더 할 말이 있으랴... 내 주변의 독자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책을 읽은 사람들이던데, 나는 그게 가장 부럽더라. 그런 환경이 부럽고, 그렇게 오랜 시간 책을 읽어왔으니까 지금도 책을 좋아하는 거구나 싶어서 말이다.
고로,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책은 없다. 그런데 만약 내가 어렸을 때 책을 읽었더라면, 아마 성인이 되어 읽은 <키다리 아저씨>를 가장 좋아하지 않았을까?
Q6. 당신 책장에 있는 책들 가운데 우리가 보면 놀랄 만한 책은 무엇일까요?
별로 없을 것 같은데... 나는 그냥 시집 몇 권, 소설 몇 권, 인문서 몇 권. 뭐 그 정도이고, 누가 놀랄 만한 책은 없는 것 같다. 아, 그런 건 있다. 같은 책이 두세 권씩 되는 책. 예전에 누가 왜 같은 책을 여러 권 사느냐고 물었는데, 그때는 이유를 잘 몰랐는데 나중에 알았다. 내가 그렇게 산 책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더라. 누가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는 질문이 가장 난감하다. 취향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걸, 특히 책에서는 그게 크게 작용한다는 걸 알아서인지 책 추천 거의 안 한다. 누군가에게 선뜻 어떤 책을 권하고, 내 취향의 책을 선물하는 편은 아닌데, 가끔 사람들이 내가 두 권씩 가지고 있던 그 책을 궁금해하면 선물하곤 했다. 그리고 디자인이 예뻐서 두 권 세 권 구매한 책이 있다. 특별판으로 나와서 지금은 살 수 없다거나 하는 책들. 그런 책은 지인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보내는 내 마음이 괜히 더 좋아서. ^^
Q7. 고인이 되거나 살아 있는 작가들 중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면 누구를 만나고 싶습니까? 만나면 무엇을 알고 싶습니까?
이상하게도 나는 책을 읽으면서 어떤 작가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독자와의 대화나 작가 팬 사인회 같은 행사도 많던데, 나는 굳이 그런 거 바란 적이 없는 듯하다. 그냥 책으로만 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는데, 이 질문을 받고 보니 오히려 내가 궁금하다. 나는 왜 작가나, 작가에게 궁금한 게 없을까, 하고...
Q8. 늘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읽지 못한 책이 있습니까?
돈키호테, 안나 카레니나, 나쓰메 소세키 전집, 등등 너무 많은데... 주로 고전을 읽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잘 읽히지 않아서 매번 포기했다. 다른 책에 밀리기도 했고... 아무 책도 안 읽고 오직 그 책만 읽어야 한다면서 독방에 갇히지 않는 이상 지금 그 책들을 읽는 건 쉽지 않을 듯하다. ‘이 책을 읽어야지.’ 하면서도 자꾸 눈이 딴 데로 가서, 다른 책들에 손을 댄다. 깊게 읽지도 않고, 끝까지 읽지도 못할 거면서 매번 그런다.
Q9. 최근에 끝내지 못하고 내려놓은 책이 있다면요?
<바닷 마을 다이어리>를 영화로 못 본 터라, 책으로 읽어보려고 한꺼번에 주문했는데, 금방 읽힐 줄 알았는데 쉽게 안 읽히더라. 주변의 반응은 참으로 좋더만, 나에게는 왜 그런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집중해서 읽을 수 없는 지금의 환경 때문인지도 모르겠는데, 이 책 처음부터 끝까지 재밌게 읽고 싶다. 새로 출간된 7권도 샀단 말이다.
Q10. 무인도에 세 권의 책만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져가시겠습니까?
세 권이나 가져가야 하나? 아니면, 세 권밖에 못 가져가는 건가?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했는데, 세 권만 가져가는 건 아무래도 무리겠다. 꼭 안 가져간 책들이 더 생각나기 마련이라 고르고 골라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책들로 챙겨야 할 텐데 걱정이다. 차라리 전자책으로 몇백 권 가져가야겠다, 고 생각했는데 전기가 안 들어오는 것도 문제겠다. 충전을 못 하니 전자책도 못 볼 거고, 종이책으로 가져가자니 너무 무겁고... 그래도 고르라니 일단 종이책으로 골라보는데, 선택의 기준 가장 첫 번째가 이거다. 집중해서 읽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방대한 분량이 엄두가 안 나서 그동안 미루기만 했던 책들을 가져가야겠다. 그곳에 딱 그 책만 있다는데, 그 책을 읽기 싫어도 그 책밖에 없다는데 어쩌겠어. 고를 수 없으니 있는 책으로 읽어야지. 오직 그 책만 읽을 수밖에 없다니 얼마나 좋은 기회일까. <돈키호테>, <주석 달린 월든>, <국어사전> 이렇게 세 권. <돈키호테>는 정말 언젠가 한 번은 꼭 완독하고 싶은 책인데, 신간에 밀리고 게으름에 밀려 아직 펼쳐보지 못했다. 도서정가제 시행된 이후로 가장 먼저 산 책인데 말이다. <주석 달린 월든> 역시 마찬가지. 그 유명한 <월든>을 읽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책이 그렇게 안 읽히더라. 무인도에 갇혀 있으면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국어사전>은 언젠가 한 번은 꼭 처음부터 끝까지 사전에 실린 모든 단어를 읽어봐야지 싶었다. 어휘가 꽝인 내가 가장 궁금한 책이기도 하다. 한 번 읽고 시간 남으면 또 읽고 해서 늙어가는 기억력 속에서도 단어의 저장이 깊게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