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여행하는 초심자를 위한 안내서 - 방황하는 당신에게 꼭 필요한 필수 심리 실용서 세상 안내서 1
김현철 지음 / 마호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왜 대부분 문제에서 용서와 화해가 당연하게 언급되는 걸까. 솔직히 잘 이해가 안 된다. 이미 상처받았는데, 그 상처가 지워지지 않을 건데, 왜 자꾸 그러는지... 시간이 흘렀으니까, 지나갔으니까, 상처를 준 이가 용서를 구했으니까, 하는 이유로 화해와 용서를 강요하는 분위기를 만드는지 알 수 없다. 문학을 읽다 보면 대부분 그 화해로 마무리 되는 글이 많더라. 드라마 역시 마찬가지. 특히 엄마가 즐겨 보는 아침, 저녁, 주말드라마도 그렇더라. 가슴을 후비고 도려내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내는 말들과 경제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준 사람들을 결국에는 용서하고 그들과 화해하면서 끝나는 드라마가 거의 다였다. 아마도 그 문학이나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건, 그런 결말이 현실에서도 이루어지길 염원해서일까. 그렇다 치자. 나 역시도 그런 바람이 있으니까. 다만, 그런 바람을 빌미로 그 화해와 용서를 강요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게 얼마나 부담이 되고, 분노로 승화하는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아주 가까운 사람이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은 적이 있다. 거의 1년 정도를 상담 받았고, 그 기간 동안 담당 선생님이 한번 바뀐 것 말고는 동일한 내용의 진료였다. 처음 진료했던 선생님은 환자의 말을 아주 잘 들어주었다. 네, 그렇군요. 네. 네, 잘하셨네요.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이 어떤 질문을 하는 것보다 환자에게 어떻게 지냈는지를 물었고 대부분의 진료 시간을 환자의 대답을 듣는 것으로 채웠다. 반면, 바뀐 선생님은 환자의 말을 들어주되, 잘 한 것은 잘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따끔하게 혼을 냈다. 그건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건 상대방을 다치게 하는 것입니다. 그건 옳지 않습니다.

 

어떤 진료방식이 좋은 것일까. 무조건 환자의 말을 들어주는 것? 아니면 환자에게 현실을 직시하고 옳고 그른 방식을 인지하게 해주는 것? 결과만 말하자면 그 환자는 선생님이 바뀌고 나서 한두 번 더 진료를 받다가 더 이상 병원에 가지 않았다. 바뀐 선생님은 자기 말을 안 들어준다면서, 자꾸 자기에게 틀렸다고 한다면서, 짜증이 난다면서 병원에 가기 싫다고 했다. 처음 선생님한테는 자기 말을 아주 잘 들어준다면서, 말하고 나니까 속이 시원하다면서 별 투정을 부리지 않았는데 두 번째 선생님에게는 화를 내면서 병원에 안가겠다고 했다. 그러니까 변하지 않았다. 어떤 마음으로 사람을 대해야 하는지, 자신이 왜 진료를 받기 시작했는지를 잊고, 아무 것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 후 그 환자의 모습을 보면 병원 진료를 받기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왜 사람들이 자기를 싫어하는지 이유조차 모른 채로 다들 자기만 싫어한다고 했다. 엉뚱한 공상이 정신을 갉아먹는 것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 환자는 그렇게 살면서, 늙어가고 있다.

 

오래 전에, TV를 통해 저자를 본 적이 있다. 기존에 봤던 전문의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하는 게 맘에 들어서 이름을 기억했다. 라디오에 고정출연하는 방송도 들었다. 그동안에는 늘 ‘지나간다, 다 그런 거다, 이해해라, 참아라, 화해해라, 용서해라...’ 했던 말로 답을 전했던 문제들을, 저자는 직설적으로 말하곤 했다. 그게 이 책에서도 그대로 통한다. 저자의 사이가 같은 말이 그리워서 펼쳤다. 아닌 건 아니라고, 나를 아프게 한 사람과 싸워도 된다고, 내 안의 상처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려서 좋았던 글이다.

 

신경정신과. 흔히 정신병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질병의 치료를 요하는 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텐데, 마음의 문제라고 읽어도 괜찮을 듯하다. 그 마음의 문제를 어떻게 치료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뒤따른다. 저자의 다른 작품보다 일부러 이 책을 먼저 읽어보고 싶어서 펼쳐들었던 이유다. 무조건 들어주기만 하는 것일까, 아니면 현실 속에서 적절한 충고를 하고 있을까.

 

내가 읽어본 바로는, 저자는 후자 쪽이다. 아닌 건 아니라고, 현실 속 살아가는 모양에 맞게 충고한다. 예를 들어 이런 문장을 처방전처럼 내놓는다. ‘명절의 본질은 ‘화목’이지 ‘만남’이 아니기에 안 내키면 안 가는 것이 상책.‘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하는 말들 중의 하나다. 너희 집에 갔는데 우리 집에는 왜 안가냐고 싸우지 말고, 각자의 집안 경조사에 가고 싶으면 가고 가기 싫으면 가지 말라. 단, 상대방에게 의사는 물어볼 수 있되 강요하지는 말라고. 가기 싫다는데 복화술처럼 입에 욕을 달고 몇 시간을 고생하면서 가지 말고, 가기 싫다는 사람에게 당연함 운운하면서 강요하면 안 된다고. 저자의 저 말은 결혼이란 제도 안에서 행해지는 마음의 폭력을 방지하는 처방인지도 모른다.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의무감으로 행해지는 일들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서로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대화가 어려울 때, ‘소귀에 경을 읽어줄 땐 소의 언어로 이야기하라.’고 말한다. 나만의 언어로 얘기하면 백번 천 번을 얘기해도 상대가 못 알아듣는다. 상대가 소라면 나도 소가 되어 얘기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이걸 모를까? 아니다. 알고 있다. 알고 있으면서 나만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내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들으니까 화를 내고 분노의 감정을 표출한다. 우리가 알고 있으면서도 하지 않는 방식, 몰라서 제대로 인지하는 못하는 응대, 자칫 예의를 벗어난 일이 될까봐 주저하는 일. 그런 일들로 내 안의 감정은 분노를 쌓고, 용서가 어렵게 되고, 화해는 제스처를 하지도 못하게 되면서 마음의 병을 쌓아가는 일을 멈추게 하려고 한다. 마음을 숨기고 아닌 척 하고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일들을 들추면서 얼굴이 화끈거리게 하고, ‘싫으면 하지 마.’ 라고 말하는 듯한 한마디로 쿨한 해석을 내놓는다. 그렇다고 어린애 말장난 같은 소리가 아니다. 적어도 내 안의 감정 쌓임으로 힘들어질, 숨어 있던 마음의 문제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시간과 관계가 아무리 혼자 발버둥 쳐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나 자신과 서로의 한계를 받아들’이라는 저자의 말은 우리 마음이 평화롭게 여행할 수 있는 길임을 안내한다.

 

마음이나 세상이나

시간이 갈수록 꼬이지만

이 모두를 리셋 하는 건

이전의 그와 또 다른 그들의 희생이다. (본문 중에서)

 

읽다보면 특별한 것 없는 처방전 같다. 하지만 시원하게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많은 감정들과 예의들로 상처받고 힘들어한다. 감정의 문제, 곧 마음의 문제가 많은 정신적인 아픔들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보인다. 그러니까 저자가 단 한 문장, 혹은 몇 줄의 문장으로 상담을 이어가고 있는 듯한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마음이 주관하는 일, 그 안에 생기는 상처, 애도, 상처를 만드는 가족, 사회, 연애, 행복을 향하고자 하는 성공, 생존의 방식을 둘러싼 문제까지 여덟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지만, 결국은 맨 처음 제시했던 마음의 문제로 돌아간다. 마음이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총체인 것이다. 헛된 망상 같은 것에 기대기에는 우리 사는 세상이 바로 현실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으니까. 그 현실 속에서 부딪히면서 쌓여가는 마음의 병을 완벽하게 치료할 수 있다면 더 없는 명의겠지만, 적어도 그게 아니라면 그 마음의 병을 조금은 덜어내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저자는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내 안의 마음이, 상처나 아픔이 가벼워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 방법이 하나의 문장이라는 게 좀 의아할 수도 있지만, 읽고 보니 충분하다. 그 한 문장에 모든 마음의 문제가 담겨 있고, 뜻밖의 해결이 함께 있다.

 

얼마 전에 진맥을 받을 적이 있다. 한약을 잘 먹지 않으니 진맥 받을 일도 없지만, 나는 진맥 받는 일 자체를 싫어한다. 진맥을 받다 보면 상대가 한의사가 아니라 점쟁이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육체적인 병도 짚어내지만, 결국 마음의 병을 먼저 알아채기 때문이다. 그런 알아챔이 싫어서 진맥 받는 것도 싫어하는 것이다. 본의 아니게 다른 이를 따라가서 진맥을 받고 보니, 한의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겠더라. 그 사람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짐작이 되기 때문이다. 진맥이 끝나고 종이에 뭔가를 한참 적더니, 나에게는 한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대신 마음의 분노를 먼저 뿜어내야 한다고 했다. 마음 속 분노를 터트려야 내가 건강해질 수 있다고 했다. 시기상으로 보면 부정할 수 없는 말이다. 내 안에 어떤 마음과 감정의 상처가 내재하고 있었는지를 내가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말을 했지만 다 같은 말이었다. 저자의 이 책을 읽고 보니 더 잘 알겠더라. 사람이 늙고 병들어 육신의 아픔을 가져오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면, 마음이 병들어 정신적인 아픔을 가져오는 것은 풀어내야할 숙제 같은 것이다. 그 숙제만 풀면 병도 사라지는 것이다. 그게 쉽지 않으니 그 병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런 책도 눈에 들어오는 것이겠지.

 

지금 부모와 화해한다 해서

과거에 받았던 상처가 치유되진 않는다.

상처를 준 사람들은 과거의 그 사람들이지

늙고 기운 없는 현재 이분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가 용서라 착각하며 행하는 대부분은 애도다. (본문 중에서)

 

가르치려만 드는 책보다 이런 글이 좋다. 예의상 하지 못했던 표현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참아야 했던 일들이, 감정을 숨기느라 곪는 줄도 모르고 억눌렀던 마음을, 다 터트려도 될 것만 같다. 변해가는 시대에 변해가는 감정이 맞는 거다. 이런 처방전을 오래 전 사람들이 봤다면 예의에 어긋나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현실을 살아가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그러니 변해가는 치료의 모습도 인정하자. 이게 정답이 아니라, 이런 방법도 통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자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돌직구를 던지는 듯한 저자의 말투가 참 개운한 책이다.

 

이모부가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 집안 일로 몇 가지 처리해야 할 일 때문에 일주일 정도 시간을 잡아놨는데 차질이 생겼다. 여기 저기 전화해서 몇 가지를 미루고 다시 날짜를 잡았다. 누군가의 죽음을 기다리면서도 남겨진 사람은 현실을 산다. 죽어간다는데, 곧 숨이 끊어질 거라는데, 나는 이모부의 죽음에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는다. 내가 알고 있는 이모부는 좋은 사람이 아니므로. 다만, 그 죽음에 슬퍼하며 손을 놓지 못하는 그 가족들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모에게는 딸만 셋이다. 이모부는 이모가 아들을 낳지 못한다면서, 아들을 낳아오겠다며 밖으로 돌았다. 자식들에게 어떤 아버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모에게 좋은 남편은 아이었던 듯하다. 딸들이 자라고 이모에게 잘하면서 이모 마음이 좀 편해지나 했더니, 몇 년 전 이모부는 병에 걸렸다. 한 달 병원비가 천만 원이 넘게 들고, 퇴원 후에도 계속 큰 금액의 병원비를 지불하고 평소 하루 세끼를 모두 외식으로만 지낸다는 말을 들었다. 그 모든 돈을 딸들이 다 대고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그렇게 무시하던 딸들 덕분에 목숨 유지한다는 말을 했다. 나는 지금 이모 마음이 궁금했다. 이모부와 살면서 좋았던 것도 있겠지만, 죽어가는 그 순간까지도 이모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사람을 보내는 마음이 어떨지... 이런 마음을 나도 곧 확인하게 될지 모르겠어서 더 무거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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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많은 말을 할 테지만, 사용하고 싶지 않은 몇 가지 말이 있다. 그중 하나가 ‘무식하다’는 표현인데, 내가 유식하지 않아서 사용하기 어려운 말이기도 하고, 오해의 소지가 많아서 웬만해서는 사용하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특히 상대를 앞에 두고 말하지는 않으려고 노력한다. (혹시 모르겠다. 그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이 말을 누군가에게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는지. 그렇다면 정말, 많이많이많이 반성...) 무식하다고 말하면 상대는 대뜸 ‘지금 내 가방끈이 짧다고 그러는 거냐?!’ 라며 화를 내는 것도 봤다. 그러니까 이 말은 보통, 학력이 짧다는 말로 들리기 쉬운 듯하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무식은 절대 가방끈의 길이와 상관없다. 기본이라 불리는 태도를 보이고 있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 기준이 되는 단어가 아닐까.

 

내가 사는 이곳 시립도서관은 4개의 분관이 있고, 몇 개의 작은 도서관이 있다. 시립도서관을 한 달에 한두 번쯤 이용하는 정도인데, 마침 집 근처에 노인 복지관과 함께 작은 도서관이 개관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작년부터 하던 공사가 마무리되고 3월에 개관한다는 것이 미뤄져 결국 7월이 되니 개관했다. 사실, 처음 여기에 도서관을 만든다고 했을 때 쓸데없이 세금 낭비한다고 생각했다. 차를 타고 15분 거리에 시립도서관이 있는데, 2주에 한 번씩 이동도서관이 운행하는데, 또 도서관을 만들어 예산을 이렇게 쓰는가 싶어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시립도서관까지 가지 못하는 이용자가 있을 수도 있으니, 뭐 어떤 식으로든 또 이용자가 생기겠지 싶어 개관을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 전, 개관하던 날. 오후 늦게 도서관에 가봤다. 이 작은 공간을 어떻게, 어떤 책들로 채워놨을까 싶어 분위기 파악이나 할까 하는 마음으로 가봤다. 이용자는 몇 명 없었다. 학교 끝나고 온 학생. 작은 방 한 칸처럼 따로 만들어놓은 유아도서실에 있던 아기와 아기 엄마. 나까지 해서 다섯 명도 안 되는 이용자가 있었는데... 내가 들어가고 몇 분 안 되어 갑자기 막 소란스러워졌다. 가만히 보니 어떤 아줌마가 아이 둘과 함께 들어왔는데, 입구에서부터 참 시끄럽게 들어오더라. 슬리퍼를 신고 왔는데 질질 슬리퍼 끄는 소리가 계속 이어지면서 그 공간이 막 울리던데, 그 소리가 그 아줌마한테는 안 들리는 걸까? 같이 온 아이 중의 한 명은 5~6세 사이로 보였는데, 그 아이 역시 슬리퍼를 신고 열람실을 다다다다다 뛰어다니고 있었다. 도서관에 슬리퍼 신고 오지 말라는 게 아니다. 발소리를 조심해야 하는 게 다른 이용자들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거, 아닌가? 한참 아이가 그렇게 뛰어다니고 큰 소리로 소리치듯 얘기하면서 열람실을 도는데도 아이 엄마는 아무 말도 안 하더라. 도서관에 직원이 두 명 있었는데, 그 아이를 쳐다보면서도 뭐라고 말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러다 아이가 직원 앞에서 막 뛰어가니까 검지를 입술에 대고 ‘쉬~!’ 하는 제스처를 취했는데, 아이는 그걸 보고도 그냥 무시하고 뛰어가면서 소리치고... 아마 그 직원은 애매했을 거다. 소란스럽게 하는 아이를 나무라야 하는데, 아이 엄마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서 어떤 행동을 취하기 어려웠지 않았을까.

 

도서관의 서가 사이에서 책을 고르고 있는데 소란스럽던 그 아이가 큰 소리로 뭐라 뭐라고 하면서 내 근처로 왔다. 나는 무서운 표정을 하며(영화 ‘굿바이 싱글’에서 마요미가 “아저씨 무서운 사람이야, 으르릉~” 했던 것처럼, 나 무서운 사람이야, 하는 표정으로) 검지를 입술에 대고 아이에게 ‘쉿~!’ 했는데, 아이는 또 무시하면서 그냥 갔다. 계속 아이가 소란스럽게 하는 상태로 십여 분쯤 흘렀을까. 아이 엄마가 아이에게 “야, 조용히 해.” 라고 말했는데, 웃긴 건 그 아이 엄마가 아이에게 하는 말도 쩌렁쩌렁 울리게 큰 소리고 말하고 있더라는 거... 참다가 너무 견디기 어려워서 내가 찾던 책 한 권만 챙겨서 나오는데, 입구에 꽂아놓은 우산을 들면서 다시 서가 사이를 쳐다봤다. 여전히 그 아이와 아이 엄마는 처음 들어올 때부터 소란스러운 상태 그대로였다. 나도 모르게 속으로 혀를 차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돌아서다가 도서관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마치 ‘소란을 어떻게 잠재우지 못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 내 얼굴을 보고 미안해 죽겠다는 표정. 앞으로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될 경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스러운 표정.

 

 

 

 

 

 

 

 

그렇게 도서관에서 나오면서 생각하기 싫은 그 무식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아이 엄마는 아이에게, 도서관에서 소란스럽게 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지 않나? 아니, 아이 엄마 자체가 슬리퍼를 질질 끄는 소리조차도 정돈하지 않은 것을 보며, 아이에게 그런 예의를 가르치지 않은 거로 생각하기 쉬웠다. 도서관 직원도, 나를 포함한 다른 이용자도, 그런 상황에 대해 어떻게 해야 감정 상하지 않고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지 많이 고민하게 될 것 같다. 도서관 이용한 지 한두 해도 아닌데, 역시 이런 문제는 어렵다...

 

 

여동생은 아이가 둘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동생은 음식점에 가서 식사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식당에서 돌아다니면 안 된다, 자기 자리에서 식사해야 한다, 뜨거운 음식을 나르고 있으니 테이블 사이를 뛰어다니지 마라, 등등. 처음에는 말로 했는데 아이들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지막 엄포를 놓았다. “너희들 자꾸 이렇게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니면 밥 안 먹고 집에 갈 거야.” 그렇게 말했을 때도 아이들은 엄마가 늘 하는 잔소리로 여긴 듯했다. 아이들이 말을 안 듣자 여동생은 집에 가자며 일어났다. 막 음식이 나온 상태였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모두가 일어나 집으로 갔다. 아이들은 황당한 표정. 설마, 정말 집으로 가겠어? 말만 그러겠지, 싶었나 보다. 그런데 정말 집으로 갔으니, 아이들은 당황했다. 그리고 여동생은 아이들에게 설명했다. 벌써 여러 번 말했는데도 안 들으니, 앞으로 너희가 식당에 가서 계속 그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다시는 너희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러 가지 않겠다, 남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자기 자리에서 밥을 먹는 게 식당에서의 예의라고. 그 이후로 아이들은 변했다. 식당에서 뛰어다니지도 않고, 소란스럽게 하지도 않았다. 놀이방이 있는 식당에서는 식사를 다 하고 놀이방에 가서 놀았다. 이 귀여운 것들. 기본을 아는 아이가 된 걸 보니 내가 다 기뻤다. 이 아이들은 그런 경험을 몇 번 해서 그런지, 처음 도서관에 가서도 한번 말하는 것을 알아듣고 그대로 따라 했다. 책을 꺼내보면 제자리에 꽂아두고 혹시라도 제자리를 모르겠거든 앞쪽에 가져다 놓으면 된다, 직원이 원래 자리에 찾아서 꽂아둘 거다, 큰 소리로 얘기하지 말고 조용히 해야 하는 곳이다, 혹시라도 너희들끼리 얘기하고 놀고 싶으면 유아실로 들어가라, 고 했다. 유아실은 말 그대로 많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엄마들이 들어가 있는 곳이다. 아직 아기이다 보니 울기도 하고, 가끔 거기서 분유도 주고, 소리 내어 책도 읽어주고 하더라. 그렇게 해도 된다고 별도로 마련한 장소이니 괜찮다.

 

말로 가르치든 행동으로 보여주든, 아니면 아이가 말로 했을 때 알아듣는지 행동으로 보여야만 알아듣는지 다르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가르쳐야 할 게 분명 있다. 그 안에서 중요한 건 기본이다. 나는 작은 도서관에서 본 그 아이 엄마의 태도를 쉽게 잊지 못하겠다. 아이가 도서관에서 그렇게 행동하는 걸 제지하지 않는 엄마, 그냥 그러려니 하는 태도로 아이를 보고 있는 엄마, 엄마가 나무라지 않으니 그게 잘못된 줄도 모르고 계속 그렇게 행동하는 아이. 무엇이 중요한지, 기본인지 가르치는 게, 비싼 옷, 명품 가방, 명문대 같은 것보다 우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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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
훈 지음 / 봄출판사(봄미디어)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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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 그려, 안 그려?! 응?! 『아이러니』

우연히 재방송으로 본 <1박 2일> 이화여대 특강에서 차태현이 그러더라. 이제껏 자기 인생이, 하나도 계획한 대로 가지 않더라는... 강당에 모인 많은 학생이 그의 말에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이던 모습이었다. 거의 두 배의 나이 차가 있는 서로에게 얼마나 공감할까 싶었는데, 그 학생들의 나이에서는 그 나이에 해당하는 만큼의 경험으로 그의 말에 알아들었을 거다. 다른 연령대의 사람들에게는 또 그만큼 쌓인 연륜으로 공감했을 것이고. 정도의 차이가 조금 있을 뿐 그 말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13년 전에 원수로 인연을 끝맺었던 준과 세진이도 아마 그런 생각을 했을 듯하다. 산다는 게 알 수 없는 것투성이라고. 세진의 마음속 외침은 ‘내 인생 계획에 이 녀석을 다시 보는 일은 없었거든?!’ 이라고.

방송국에서 라디오 피디 세진의 입지가 점점 줄어간다. 맡은 프로그램이 말썽을 일으키는 것은 기본이고, 청취율까지 저조하다. 국장은 매일 험한 소리를 하며 이를 득득 갈고 있다. 이러다 언제 패대기쳐질지 모르겠다. 그런 와중에 라디오 CP로 경쟁 방송사의 유능한 인재가 스카우트됐단다. 그 피디 때문에 세진의 방송 청취율이 바닥을 기고 있다고 믿었는데, 그 사람이 이곳에 모셔져(?) 왔다니 기분이 영 꽝이다. 그런데 이거 웬일? 스카우트됐다는 피디가 김준이었어? 아, 진짜 되는 일 하나도 없다. ‘어떻게 저 인간이 여길 와? 왜 내 앞에 보이는 거야?’ 김준은 국장의 애정을 한몸에 받는 것도 모자라 세진의 갑이 되어버린다. 아, 진짜 자존심 상해서 때려치우든가 해야지(마음만 그래, 마음만). 설상가상 같은 방송국에서 만나던 연인 현민은 헤어지자고 한다. 사내 공개연애를 했는데, 공개로 망신당하게 생겼다. 개차반 애인에게 까여, 원수 같은 동창생은 상사로 와, 국장은 잘라낼 틈만 보고 있어, 휴... 인생 제대로 꼬여간다.

방송국이라는 배경, 그것도 한밤의 라디오가 주는 묘한 매력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했던 책이다. 작가의 전작을 한 번도 못 만난 터라 그 분위기를 알 수도 없었지만, 아마 나는 이 작품이 작가의 첫 작품이라고 해도 한번은 읽어봤을 듯하다. 아무래도, 아직도 아날로그의 분위기를 좋아해서 그런지 라디오가 배경이 되는 이야기에 관심이 생긴다. ^^ 만약, 무인도에 TV를 가져갈래, 라디오를 가져갈래, 하고 물으면 고민도 없이 라디오라고 대답할 거다. 그만큼 그 분위기를 좋아한다. 한밤중에 라디오 켜 놓고 책 읽는 거 누가 방해하면 짜증이 날 정도로 싫어했는데, 요즘엔 그 시간에 눈이 피곤해져서 누워있거나, 아니면 PC를 켜놓고 라디오 듣느라 책이 자주 제외되지만, 어쨌든 나도 그 아날로그 감성이 주는 매력을 맛보며 자란 터라, 어쩔 수 없이 그 정서를 잊을 수는 없다. 요즘은 휴대폰으로도 듣고, 바로바로 신청곡을 전송하기도 하는, 아날로그지만 디지털 방식이 되어버린 라디오지만, 전파 타고 흐르는 그 공감대를 생각하면 괜히 더 훈훈해진다. 그 공간에서 함께할 남자와 여자의 케미가 어떻게 그려질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던 거다.

얘네들은 왜 그랬을까? 13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다고 이렇게 원수로 기억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그 시간이 흐르면서 어떻게 성장했기에 여자는 쌈닭이 되어 있고, 남자는 검사를 때려치우고 나와 방송국에 터를 잡은 걸까. 방송국에서 서로 부딪히며 하루하루가 쌓여가고, 각자 자기 방송에 대한 애정과 프로의식이 탄탄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고, 지금 상대의 모습이 왜 그런 건지 알아지는 시간이 보인다. 그 와중에 상대를 향한 눈빛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아채는 것은 물론이고. 세진에게 방송국은 더는 스트레스와 눌림을 당하는 곳이 아니라, 자기를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는 꽃밭이자,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아가면서 배워야 할 태도를 가르쳐주는 학교나 다름없다. 그동안 꼬여왔던 인생이 이렇게 풀리려나 보다. 오해가 풀리고, 사람을 보는 눈이 키워지고, 마음을 풀어놓으니 세상을 사는 법이 이렇게 달라지나? (아, 이 긍정마인드 어쩔껴. 내가 배워야긋다.)

지나고 보니 그 시간을 왜 그렇게 아득바득 싸우려는 자세로 살아왔는지 모르겠지만, 죽일 듯이 미웠을 정도로 서로를 봤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그들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서로가 원했던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경쟁자였음은 인정하자. 가정의 무너진 경제에 더 열심히 달릴 수밖에 없었던 세진이나, 세진에게 뒤지지 않으려 치열하게 공부했던 준이나... 드라마 <닥터스>에서 국일 병원 부원장 김태호(장현성)는 진서우(이성경)에게 ‘유혜정(박신혜) 선생은 진 선생에게 좋은 경쟁 상대가 될 거야’ 라고 말했다. 마라톤에서 페이스메이커가 어느 정도 호흡의 흐름을 잡아주는 것처럼 어떤 분야에서든 좋은 경쟁자는 그 자신을 한 뼘 성장하게 해주는 듯하다. 『아이러니』의 두 주인공에게도 마찬가지. 김준에게는 세진이 그랬고, 세진에게는 김준이 그랬다. 서로 1, 2위를 다투면서 그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겠지만, 그래서 더 학업에 매진하는 정신력을 키워준 게 아니었을까. 물론 그 이면에는 서로가 알지 못했던 오해가 쌓여있었지만, 어쨌든 이제 와서 그 시간의 잘잘못을 따질 필요도, 의미도 없다. 지금이 좋으니, 됐다. 서로 열심히 달려서 지금 자기의 자리에 안착했고, 그 자리의 일을 좋아하고, 또 더 좋은 라디오 방송을 위해 애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니 말이다. 오해를 쌓은 채로 살아왔던 13년이 아깝고 억울하기보다, 지금의 상황과 마음이 더 애틋하고 감사하니 저절로 풀렸을 거라 믿는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연인이 될 거로 생각하지 않았던 이들처럼, 우리 앞에 놓인 많은 것도 마찬가지. 그냥 오늘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마음을 채우며 살아가는 일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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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게 다정하게, 가까이
하명희 지음, 김효정(밤삼킨별) 사진 / 시공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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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가끔 꽂히는 드라마 한두 편을 보는 정도라 잘 알지 못했다. 그 당시 입소문으로 자꾸 퍼지던 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를 중간부터 보게 되었는데, 이 드라마 은근 매력적이더라. 누구를 욕하고 누구 편을 들어줘야 하는지 잘 가늠이 되지 않았다. 눈에 뻔히 보이는 상황은 있는데, 각 캐릭터들에게 한 가지 마음만 보낼 수 없던 거다. '이럴 수도 있을까?' 싶었다가, '그래, 이 상황에서 이런 마음도 있을 수 있어.' 하는 온갖 감정이 왔다 갔다 했다. 마음속에 자리한 그 많은 말이 한마디로 쉽게 나오지 않았었다. '이거 뭐지?' 하는 어지러운 기분. 그 이후로 방영된 <상류사회>는 보지 못했지만, 대신 하명희의 글을 만났다.

 

드라마와 얼마나 다를까, 혹은 얼마나 비슷할까. 몰랐다면 백지에서 시작했을 텐데, 이미 저자의 드라마를 본 터라 비교 아닌 비교를 하면서 읽게 됐다. 드라마에서 직설적으로 표현되는 대사는 어쩌면 저자의 성격과 비슷한 부분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에세이 <따뜻하게 다정하게, 가까이>를 읽다가, 드라마 <닥터스>에서 홍지홍(김래원) 선생이 유혜정(박신혜)에게 직선으로 드러내는 마음을 보는 듯한 시원함을 발견하곤 했다. 역시, 사이다 같은 기분은 잠시 잠깐 한 편의 드라마에서만 나온 건 아니었어, 하는 안도와 계속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동시에 심어준다.

 

 

저자는 살아보기 전엔 알 수 없는 일들이 참 많다며,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일 중 하나가 에세이를 출간하는 일이었다'고 했다. 나도 그렇다. 저자의 다음 드라마는 뭐가 될까 궁금했던 정도로 이름을 기억했다. 저자의 드라마나 소설을 봤어도,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들었어도, 내가 이 책을 읽게 되리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휘리릭 넘기던 페이지의 한 구절에서 시선이 멈췄다.

 

그 사람의 사정은 그 사람이 되어 보지 않으면 정확히 모른다. 인간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며 모든 것에 한계가 있다. 인간은 자신이 살아온 범위의 삶과 다른 삶에 대해선 공부해야 알 수 있다.

상대방을 위한다고 충고하는 것보단 밥 한 끼 사주는 편이 낫다. (81페이지)

 

그 사람이 되어 보지 않으면 정확히 모르는 것들. 때로 상대방에 대해 다 안다고 자만하는 것들. 우리는 같지 않다. 비슷하게 보이고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완전히 같을 수가 없는 거다. 굳이 입 아프게 말하지 않아도 아는 거, 아닌가. 누군가를 이해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어쩌면 상대방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 못 한 채로 보고 있는데, 마치 다 아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경험해본 바, 말이 많아지면 실수를 하더라. 사람을 상처 내는 것도 말로 시작한다. 마치 그 사람에 대해 경험하지 않은 부분까지 다 아는 것처럼 말이 나올 때는 부담스럽고 불편해진다. 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그냥, 아는 만큼만 보고, 갈 수 있는 만큼만 가면 안 되는 건가. 내가 아는 만큼만 이해하고, 다가가면 정말 안 되는 건가. 다 알면 좋겠지만 굳이 그게 아니어도 괜찮잖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적당한 거리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 아니었나? 살아온 시간과 과정이 다른데, 어떻게 같을 수가 있어.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역사가 있고, 그 역사 안에 자신만의 상처가 있다. 개인의 상처는 객관적인 게 아니다. 얼굴만 봐서는 그 사람이 뭐로 아파하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인간관계는 어려운 거다. 어려운 인간관계를 잘하기 위해선 우선 자신이 어떤 말을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다. 말조심만 해도 인간관계 절반은 성공이다. (62페이지)

 

저 부분을 한참 들여다보다, 책의 처음으로 돌아가 천천히 읽었다. 분량도 짧아서 읽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새삼스러운 말도 없었다. 그저, 저자의 말투가 이렇구나, 하는 정도. 그런데 이 짧은 이야기 속에서 하고자 하는 말의 방향을 가만히 살펴보니, 타인을 향한 게 아니라 나를 향하고 있는 거였다. 내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짜증 냈던 거, 내가 알 수 없어서 부담스럽고 귀찮았던 것들을 꺼내며 말하는 듯했다. 차마 말하지 않은 것들을 대신 들려주는 기분. 대부분 내가 경험했던 순간들, 감정들이었기에 조금만 더 들어보자, 하는 의미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겼다. 무조건 착하고 옳은 것만을 강요하는 위로가 아니라, 아닌 건 아니 거라고 말하는 그 고요한 독설이 좋았다. 독설이라고 하기에 민망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너무 착한 사람 흉내만 내면서 어설픈 위로를 건네는 게 아니어서 좋았다는 거다.

 

삶의 특별함은 시간이 흐른 후, 혹은 어느 날의 느낌표로 알게 되는 듯하다. 불행한 삶이 괴롭고 잘못된 선택을 후회하는 것도 시선에 따라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행복하기만 하면 그 외의 불행을 알아채지도 못하고, 항상 옳은 선택이라고만 믿는다면 잘못된 길을 알지 못할 것이기에. 일상에서 치고받는 순간들이 가져오는 것이 꼭 나쁘게만 작용하는 건 아닐 거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런 시선과 감정의 다양성은 인간관계로 이어져 삶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많은 사람과 이어져 나아가는 중에도 우리가 미처 짚어내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표현하는 많은 것, 타인에 대한 배려가 가리는 이중성, 사랑을 둘러싼 사람의 마음.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고 다 알 수 있는 게 없어서, 때로 그 순간이 죽을 것처럼 아프지만 또 그렇게 받아들이며 흘러간다. 그렇게 겪으며 무심코 알게 되는 것들. 사람이, 사랑이, 그 순간의 아픔을 상쇄시켜주기도 하고...

 

인류가 시작되면서, 사랑이 만들어지면서, 사랑도 함께 시작됐다. 사람에게 사랑은 유전자에 깊숙이 박힌 본능이다. 더 많이 사랑한다는 건 사랑하는 능력을 더 많이 가졌다는 의미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능력은 굉장히 좋은 성품을 만든다. 좋은 성품은 다른 사람들도 기쁘게 하고, 자신도 기쁘게 한다. 사랑을 유지하는 건 사랑에 빠지는 거보다 훨씬 더 어렵다.

사랑이 변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변하는 거다. (109페이지)

 

인생 뭐 별거 없다고 생각하지만, 살면서 겪게 되는 감정들이 특별해지고 문득 알게 되는 것들이 쌓여 다음 페이지를 넘기게 할 때, '별것 있는' 인생이 될 것만 같다. 저자가 드라마와 글을 통해서,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일을 하게 되는 것에서 그걸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살아보면서 알 수 있는 일이 그 순간 하나둘씩 늘어갈 때, 자신에게로 향하는 별것 있는 순간들이 하나둘씩 쌓여간다는 것을, 저자의 짧은 글에 함축된 말을, 이렇게 듣는다.

 

 

드라마 속의 대사가 저자의 에세이에 그대로 묻어 있다. 독설 같지만 따뜻하고, 부드럽지만 직선으로 향하는 말들이 듣기 좋다. 그래서 이번 드라마 <닥터스>를 더 집중해서 보고 싶어진다. 4회에선가, 진서우(이성경)가 부원장 김태호(장현성)에게 유혜정을 디스하면서 했던 말에 김태호는 '말씀드릴 수 없는 사생활은 말할 수 있는 사생활보다 더 인신공격'이라고 했다. 그게 얼마나 사람을 상처 입히고, 비열한 공격인지 전한다. 유혜정과 진서우 사이에 필요한 건 페어플레이다. 의사로, 인간으로 살아가는 올바른 태도. 너무 무겁지 않게 흐르는 이 분위기가 좋아서 4회까지 본방사수했다. 앞으로 이 드라마가 어디로 갈지 모르겠지만 계속 보게 될 듯하다. 의학드라마이지만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더 눈에 들어오고, 이미 시작된 유혜정과 홍지홍의 로맨스가 더 '심쿵'하게 하지만, 의학에 관해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해도 하명희 특유의 그 인간적인 이야기가 돋보여도 괜찮을 듯하다.

 

 

그나저나, 나는 배우가 나이 들어가는 게 참 보기 좋더라. 김래원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들을 봐도 비슷하다. <옥탑방 고양이>가 인기였을 때도 김래원이 좋다는 생각 못했는데, 이번 드라마에서는 확실히 김래원은 나이가 있어 보인다. 실제로도 그는 그때보다 나이가 더 들었겠지만, 이번 드라마에서 나이 마흔으로 등장하는 설정이 괜히 기분 좋다. 인간미 넘치고 연륜이 묻어나는 연기 보여줬으면 좋겠다. 현실에서 경험한 병원이나 의사를 생각하면 홍지홍 쌤 캐릭터는 판타지에 가깝지만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는 듯해 유감이지만) 그래서 더 기대가 되는 건지도 모른다. 현실에서 만나고 싶은, 인간적이고 마음 쏟아 붓는 의사로 남길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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