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많은 말을 할 테지만, 사용하고 싶지 않은 몇 가지 말이 있다. 그중 하나가 ‘무식하다’는 표현인데, 내가 유식하지 않아서 사용하기 어려운 말이기도 하고, 오해의 소지가 많아서 웬만해서는 사용하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특히 상대를 앞에 두고 말하지는 않으려고 노력한다. (혹시 모르겠다. 그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이 말을 누군가에게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는지. 그렇다면 정말, 많이많이많이 반성...) 무식하다고 말하면 상대는 대뜸 ‘지금 내 가방끈이 짧다고 그러는 거냐?!’ 라며 화를 내는 것도 봤다. 그러니까 이 말은 보통, 학력이 짧다는 말로 들리기 쉬운 듯하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무식은 절대 가방끈의 길이와 상관없다. 기본이라 불리는 태도를 보이고 있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 기준이 되는 단어가 아닐까.

 

내가 사는 이곳 시립도서관은 4개의 분관이 있고, 몇 개의 작은 도서관이 있다. 시립도서관을 한 달에 한두 번쯤 이용하는 정도인데, 마침 집 근처에 노인 복지관과 함께 작은 도서관이 개관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작년부터 하던 공사가 마무리되고 3월에 개관한다는 것이 미뤄져 결국 7월이 되니 개관했다. 사실, 처음 여기에 도서관을 만든다고 했을 때 쓸데없이 세금 낭비한다고 생각했다. 차를 타고 15분 거리에 시립도서관이 있는데, 2주에 한 번씩 이동도서관이 운행하는데, 또 도서관을 만들어 예산을 이렇게 쓰는가 싶어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시립도서관까지 가지 못하는 이용자가 있을 수도 있으니, 뭐 어떤 식으로든 또 이용자가 생기겠지 싶어 개관을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 전, 개관하던 날. 오후 늦게 도서관에 가봤다. 이 작은 공간을 어떻게, 어떤 책들로 채워놨을까 싶어 분위기 파악이나 할까 하는 마음으로 가봤다. 이용자는 몇 명 없었다. 학교 끝나고 온 학생. 작은 방 한 칸처럼 따로 만들어놓은 유아도서실에 있던 아기와 아기 엄마. 나까지 해서 다섯 명도 안 되는 이용자가 있었는데... 내가 들어가고 몇 분 안 되어 갑자기 막 소란스러워졌다. 가만히 보니 어떤 아줌마가 아이 둘과 함께 들어왔는데, 입구에서부터 참 시끄럽게 들어오더라. 슬리퍼를 신고 왔는데 질질 슬리퍼 끄는 소리가 계속 이어지면서 그 공간이 막 울리던데, 그 소리가 그 아줌마한테는 안 들리는 걸까? 같이 온 아이 중의 한 명은 5~6세 사이로 보였는데, 그 아이 역시 슬리퍼를 신고 열람실을 다다다다다 뛰어다니고 있었다. 도서관에 슬리퍼 신고 오지 말라는 게 아니다. 발소리를 조심해야 하는 게 다른 이용자들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거, 아닌가? 한참 아이가 그렇게 뛰어다니고 큰 소리로 소리치듯 얘기하면서 열람실을 도는데도 아이 엄마는 아무 말도 안 하더라. 도서관에 직원이 두 명 있었는데, 그 아이를 쳐다보면서도 뭐라고 말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러다 아이가 직원 앞에서 막 뛰어가니까 검지를 입술에 대고 ‘쉬~!’ 하는 제스처를 취했는데, 아이는 그걸 보고도 그냥 무시하고 뛰어가면서 소리치고... 아마 그 직원은 애매했을 거다. 소란스럽게 하는 아이를 나무라야 하는데, 아이 엄마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서 어떤 행동을 취하기 어려웠지 않았을까.

 

도서관의 서가 사이에서 책을 고르고 있는데 소란스럽던 그 아이가 큰 소리로 뭐라 뭐라고 하면서 내 근처로 왔다. 나는 무서운 표정을 하며(영화 ‘굿바이 싱글’에서 마요미가 “아저씨 무서운 사람이야, 으르릉~” 했던 것처럼, 나 무서운 사람이야, 하는 표정으로) 검지를 입술에 대고 아이에게 ‘쉿~!’ 했는데, 아이는 또 무시하면서 그냥 갔다. 계속 아이가 소란스럽게 하는 상태로 십여 분쯤 흘렀을까. 아이 엄마가 아이에게 “야, 조용히 해.” 라고 말했는데, 웃긴 건 그 아이 엄마가 아이에게 하는 말도 쩌렁쩌렁 울리게 큰 소리고 말하고 있더라는 거... 참다가 너무 견디기 어려워서 내가 찾던 책 한 권만 챙겨서 나오는데, 입구에 꽂아놓은 우산을 들면서 다시 서가 사이를 쳐다봤다. 여전히 그 아이와 아이 엄마는 처음 들어올 때부터 소란스러운 상태 그대로였다. 나도 모르게 속으로 혀를 차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돌아서다가 도서관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마치 ‘소란을 어떻게 잠재우지 못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 내 얼굴을 보고 미안해 죽겠다는 표정. 앞으로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될 경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스러운 표정.

 

 

 

 

 

 

 

 

그렇게 도서관에서 나오면서 생각하기 싫은 그 무식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아이 엄마는 아이에게, 도서관에서 소란스럽게 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지 않나? 아니, 아이 엄마 자체가 슬리퍼를 질질 끄는 소리조차도 정돈하지 않은 것을 보며, 아이에게 그런 예의를 가르치지 않은 거로 생각하기 쉬웠다. 도서관 직원도, 나를 포함한 다른 이용자도, 그런 상황에 대해 어떻게 해야 감정 상하지 않고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지 많이 고민하게 될 것 같다. 도서관 이용한 지 한두 해도 아닌데, 역시 이런 문제는 어렵다...

 

 

여동생은 아이가 둘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동생은 음식점에 가서 식사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식당에서 돌아다니면 안 된다, 자기 자리에서 식사해야 한다, 뜨거운 음식을 나르고 있으니 테이블 사이를 뛰어다니지 마라, 등등. 처음에는 말로 했는데 아이들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지막 엄포를 놓았다. “너희들 자꾸 이렇게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니면 밥 안 먹고 집에 갈 거야.” 그렇게 말했을 때도 아이들은 엄마가 늘 하는 잔소리로 여긴 듯했다. 아이들이 말을 안 듣자 여동생은 집에 가자며 일어났다. 막 음식이 나온 상태였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모두가 일어나 집으로 갔다. 아이들은 황당한 표정. 설마, 정말 집으로 가겠어? 말만 그러겠지, 싶었나 보다. 그런데 정말 집으로 갔으니, 아이들은 당황했다. 그리고 여동생은 아이들에게 설명했다. 벌써 여러 번 말했는데도 안 들으니, 앞으로 너희가 식당에 가서 계속 그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다시는 너희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러 가지 않겠다, 남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자기 자리에서 밥을 먹는 게 식당에서의 예의라고. 그 이후로 아이들은 변했다. 식당에서 뛰어다니지도 않고, 소란스럽게 하지도 않았다. 놀이방이 있는 식당에서는 식사를 다 하고 놀이방에 가서 놀았다. 이 귀여운 것들. 기본을 아는 아이가 된 걸 보니 내가 다 기뻤다. 이 아이들은 그런 경험을 몇 번 해서 그런지, 처음 도서관에 가서도 한번 말하는 것을 알아듣고 그대로 따라 했다. 책을 꺼내보면 제자리에 꽂아두고 혹시라도 제자리를 모르겠거든 앞쪽에 가져다 놓으면 된다, 직원이 원래 자리에 찾아서 꽂아둘 거다, 큰 소리로 얘기하지 말고 조용히 해야 하는 곳이다, 혹시라도 너희들끼리 얘기하고 놀고 싶으면 유아실로 들어가라, 고 했다. 유아실은 말 그대로 많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엄마들이 들어가 있는 곳이다. 아직 아기이다 보니 울기도 하고, 가끔 거기서 분유도 주고, 소리 내어 책도 읽어주고 하더라. 그렇게 해도 된다고 별도로 마련한 장소이니 괜찮다.

 

말로 가르치든 행동으로 보여주든, 아니면 아이가 말로 했을 때 알아듣는지 행동으로 보여야만 알아듣는지 다르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가르쳐야 할 게 분명 있다. 그 안에서 중요한 건 기본이다. 나는 작은 도서관에서 본 그 아이 엄마의 태도를 쉽게 잊지 못하겠다. 아이가 도서관에서 그렇게 행동하는 걸 제지하지 않는 엄마, 그냥 그러려니 하는 태도로 아이를 보고 있는 엄마, 엄마가 나무라지 않으니 그게 잘못된 줄도 모르고 계속 그렇게 행동하는 아이. 무엇이 중요한지, 기본인지 가르치는 게, 비싼 옷, 명품 가방, 명문대 같은 것보다 우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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