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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 다락방의 책장에서 만난 우리들의 이야기
이유경 지음 / 다시봄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매운 치킨과 맥주를 자꾸 불러...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이 책을 처음 본 건 2014년 언제쯤이었다. 도서관에서 대출해와 읽다가 다 읽지도 않고 반납했다. 서평집을 좋아하지 않는데 왜 대출해왔는지 모르겠다고 의문이 들긴 하는데 아직도 이유는 모르겠고... 하지만 이 책을 다 읽지도 않고 반납한 이유는 글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앞뒤 구분 없이 어느 부분 펼쳐서 읽다가,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반납한 거다. 그때의 기억을 돌이켜봤다. 한 번에 몰아서 읽을 시간도 안 되었지만, 나는 이 책을 한꺼번에 읽기 싫었던 것 같다. 아무 때나 아무 페이지나 마음 내키는 대로 펼쳐지는 대로 읽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같다'라고 말한 건, 지금의 기분에 근거해 그때도 그랬을 것으로 추측해서다) 도서관에서 대출해온 책은 그렇게 읽지 못한다. 기한 내 반납도 해야 하니 마음이 느긋하지 않다. 그래서 아마도(?) 이 책을 사서 읽자고 마음먹었던 것 같은데, 정작 내가 이 책을 산 건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직후였다. 그럴 줄 알았다면 도서정가제 전에 살 것을, 이라고 잠깐 후회했던 기억이 분명히(!) 난다. 어쨌든 굳이 사서 읽어보자고 생각했던 책을 이제야 제대로 꺼냈다.
나는 지금 뭔가, 아주 많이 매운 뭔가와 함께 캔맥주를 한 개 마시고 싶었는데, 지금 냉장고에 캔맥주는 없고 아주 많이 매운 먹을 만한 뭔가도 없다. 이럴 때는 그냥 잠들어야 먹을 거 생각도 안 나고 배고픔도 잊을 수 있는데, 왜 잠도 안 자고 갑자기 쓰레기장 같은 책방을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정리되지 않은 채로 쌓여있는 책 어딘가에서 생뚱맞게 누워있는 이 책이 눈에 들어온 건 뜬금없는 생각에서였다. 이 책을 보면 배고픔이 사라질 거야, 나는 배가 안 고파, 안 고파, 절대 안 고플 거야. 결과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 책을 아직도 다 읽지 않았지만, 읽다가 배고픔을 잊긴 했다. 배고픔 대신 그 자리에 오만가지 생각이 가득 찼다. 갑자기 오래전 알고 지냈던 사람들이 생각나고, 바로 옆에서 볼륨을 크게 놓고 TV 드라마에 빠진 엄마가 보고 싶고, 좋아했지만 헤어졌던 누군가도 생각났다. 징그럽게 말을 안 듣는 말썽쟁이 조카들도 보고 싶어져서 카톡도 보냈다. 무엇보다, 두 번 볼일 없다면서 미련 없이 내다 팔았던 책들이 가장 많이 생각났다. 아, 왜 이 시간에 그 책들이 다시 보고 싶은 것인지... 이럴 수는 없어!
'밤 10시쯤, '이 시간에 내가 이 사람에게 전화해도 될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이,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뭐해?"라고 물어도 되는 사이, 대뜸 묻는 질문에 거리낌 없이 대답해줄 수 있는 그런 사이. (271페이지)'를 생각하며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비록 그게 지나간 시간 속의 사람이라 하더라도, 살면서 그런 기억이 한 번쯤 찾아와 나를 따뜻하게 해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지도 모른다. 이미 끝난 인연이라도 말이다. 사실 나는 이 문장에서 울고 말았다. 몇 년 전 정말 똑같은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정말 누군가를 부르고 싶었고, 미친 듯이 무슨 말을 쏟아내고 싶었다. 그때 꼭 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 말이 많았는데, 휴대폰의 전화번호부를 한참 들여다보고서도 끝내 아무에게도 전화하지 않았다. 검열이 시작된 거다. 이 사람은 이래서 안 될 거고, 저 사람은 저래서 안 될 거고... 그 순간을 어떻게 견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그때 이후로 말도, 눈물도 더 아끼는 사람이 된 것 같다. 하지만 이 생각에는 변함없다. '그런 사이'가 있다는 건 정말정말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한겨울에 붕어빵을 두 손에 쥐고 있는 듯한 따뜻함을 아는 사람일 거다.
같은 책을 보고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같은 책을 보고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를 보고 부모님을 더 생각했다는 저자와는 달리, 나는 그 책을 읽고 아버지와의 거리를 더 느꼈다. 몇십 년 동안 좁혀지지 않았던 거리를 나는 이 책으로 공감했던 거다. 부모가 가진 배경 때문이 아니다. 사람을 보는 기준에는 학벌이나 외모, 부가 적용될 수 있지만, 무엇보다 그 생각과 이해의 차이는 대화에서 온다. 나와 아버지 사이에서 사라진 그 대화가 부활하지 않는 한, 그 거리는 여전할 것 같다. 오히려 나는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를 읽고 엄마를 더 이해하게 됐다. 이렇게 다른 이유는 그동안 내 인생에서 엄마와 아버지가 차지해왔던 지분의 차이 때문일 거다.
나도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정말 좋아한다. 온라인의 글을 보면서 느끼는 많은 것이 그대로 느껴지는 글이다.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볼 수 있는 건, 포스팅이나 댓글이 전부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글에서 그 사람의 성격을 읽는 거다. 마치 얼굴을 보는 것처럼! 에미와 레오가 주고받는 이메일을 볼 때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글에서 보이는 두 사람의 성격, 혹은 글로 감추려고 하지만 가려지지 않은 채로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보인다고... 얼마 전에 이 책과 후속작을 다시 읽을 일이 있었는데, 아, 역시 다시 읽어도 너무 설레!!! 슬픈 건 지금 이 책이 없다는 거다. 나는 이 책을 사서 읽었고, 팔았다. 언젠가 생각이 나서 또 샀는데 읽고 또 팔았다. 그렇게 사서 읽고 되파는 일을 서너 번 반복한 것 같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이번에 이 책을 사면 절대! 다시 팔지 말아야지, 라고 다짐 또 다짐했다.
소설을 참 맛깔나게 읽는 사람인 듯하다. 저자의 독서 방식이 어떤지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이렇게 적어낸 글로 그 분위기를 상상한다. 내가 우아한(?) 영화 <벤허>를 보면서 주인공의 '그지 커트'에 빠져 있던 때처럼, 소설에 푹 빠져 읽다가 어떤 생각을 끌어오고(아마 그 생각이 저절로 끌려왔겠지),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이어져 오는 생각들에 웃고 울다가(왜 이럴 때는 꼭 삼천포 같은 생각들이 계속 따라오는지 모르겠지만), 그러다가 마침내는 사람들의 진심 혹은 거짓 같은 눈빛까지 읽게 된다. 언젠가의 생각이 틀렸음을 확인하기도 하고, 지금 그 장면에서 내가 찾아야 할 답을 얻기도 하는 시간. 구체적이지도 않고 막연하기까지 한 마음의 소리가 기어코 자리 잡는다. 어떤 문장에서 뿜어지는 감정의 힘을 느낀다. 그 여자는 왜 그랬을까, 그때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걸까, 그것 말고는 답이 없었을까.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세상에서 두 눈 크게 뜨고 봐야 할 게 너무 많다. 하지만 다 볼 수 없이 살아가는 게 또 세상이라, 작은 장면 하나에서, 한 줄의 문장에서 보게 되는 어떤 것들이 소중하다. 또 그렇게 보이는 것들이 쌓여 어떤 감정을 만들어낸다면 더 기쁠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이들이 적어도 읽는 동안은 즐거웠으면 좋겠다'던 저자의 바람처럼, (아직 다 읽지는 않았지만) 읽는 동안 즐거웠다. 슬프고 아팠다. 웃으면서 울었다. 내가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면, 글을 더 잘 쓰는 사람이었다면 지금 이 감정을 좀 더 분명하고 또렷하게 표현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돼서 속상하다. 읽는 동안 마음이 춤을 추다가 발목이 꺾였다가, 맛있는 것을 먹고 배를 두드리는 것 같다가 뭔가 또 간절히 먹고 싶어졌다가... 옆에서 누가 봤다면 조울증에 걸리지 않았는지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읽히는 걸 어떡하라고.
'이 책에 실린 다른 책들의 어떤 부분에 꽂혀 서점으로 달려가 그 책들을 사서 읽었으면 좋겠다'던 바람 역시 이뤄냈다. 적어도 나에게는... 하나씩 찾아보니 이 한 권에 70편이 넘는 책을 언급했다. 목록을 훑어보니, 4분의 1쯤은 내가 읽은 책이고, 4분의 2쯤은 내가 읽다 말았거나 오랜 시간 내 보관함에 있던 책이고, 4분의 1쯤은 제목조차 몰랐거나 제목을 알고 있었더라도 내 관심 밖의 책이었다. 지금 다시 목록을 작성하고 있다. 내다 팔았던 책을 다시 들여와야겠고, 책장 어디선가 묵혀둔 책도 꺼내고 싶어졌고, 보관함에 오래 머물러서 먼지 덮고 있는 책들을 하나씩 구매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책을 다시 주문하고, 다시 읽고, 새로 목록을 작성하고 또 읽고, 다 좋아.
다 좋은데 그 전에,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큰조카에게 전화했다.
빨리 와. 꼭 지금 와야 해. 오늘이 아니면 안 되고, 지금이 아니면 안 돼. 너는 빨리 여기로 와서 나랑 매운 치킨에 맥주를 마셔야 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살찔 생각도 하지 말고 일단 먹자. 이 집에서 나와 입맛이 비슷한 사람은 오직 너밖에 없어. 그러니 지금 니가 와서 나랑 같이 먹어줘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