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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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가, 기어코 울음을 터트린 여자는 이제 눈물을 멈출 수 없다.(「입동」) 아이가 쓰다가 만 이름을 보는 순간 견디고 있던 슬픔은 폭발했다. 이미 눈앞에서 사라진 아이지만, 다들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고 믿지만, 아니다. 그 무엇도 해결해주지 않을 상실의 고통이라는 것을, 같은 경험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그 순간, 슬픔을 견디는 이에게 해줄 말은 없다. 그냥 울게 내버려 두는 게 해줄 수 있는 일의 전부다. 오래전에 산 도배지를 입동이 되어서야 꺼낼 수밖에 없는 마음을 아는 사람, 누구일까?
 
뜻밖이었다. 그동안 읽은 김애란의 소설에서 서늘함과 추움을 느낀 적이 거의 없었다. 이번 소설도 역시 우리 인생의 꼬질꼬질함을 유쾌함으로 들려줄 거로 생각했다. 착각이었지. 예상하지 못했던 쓸쓸함이 밀려왔다. 안쓰러웠다. 저절로 알게 되며 스미는 슬픔에 공감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의 고통을 묵묵히 바라보고만 있는 것. 그게,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좀 울어보니 어때? 이제 그 슬픔은 좀 덜어졌니?' 묻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차마 묻지 못한 말이 되어 가슴에 남았다. 작가의 말처럼 '하지 못한 말과 할 수 없는 말, 하면 안 되는 말과 해야 할 말이 인물이 되어 나타난' 순간을 지켜볼 뿐이다. 그렇게 작가가 전하는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여전히, 우리의 고통과 슬픔에 희망을 대입시키는 건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고.
 
소설 속에서 마주하는 희망은 우리가 살면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희망이 없다면, 오늘을 살아갈 의미도, 내일을 기다릴 이유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그런 까닭으로 받아들이자면 이해 못 할 것도 없지만, 간혹 이야기에서 강요된(?) 희망이 현재의 삶과 괴리를 느끼게 한다면, 소설 속에서 외치는 희망은 공감하지 못한 불편으로 남을 뿐이다. 김애란의 이번 작품이 담백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렇게 강요된 희망으로 섣불리 위로를 꺼내지 않아서다. 슬픔 뒤에 바로 희망을 놓지 않고 현재의 상태 그대로를 전할 뿐이다. 슬프면 슬픈 채로, 아프면 아픈 채로. 나의 오늘이 타인의 삶과 동떨어진 것 같이 보여도 어쩔 수 없이 인정하는 수밖에, 뭘 더 하겠냐고 묻는 것처럼. 등장인물들의 절망과 고통을 들려주며 우리의 오늘을 보게 하는 것으로 만족하려는 듯,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다. 
 
이국의 열기 속에서 교수 임용 소식을 기다리는 화자의 서늘함과 분노로 여름을 느끼는 듯했다.(「풍경의 쓸모」) 타국의 더위 속에서 보는 핸드폰 문자의 한글은, 마치 스노우볼 속의 눈 내리는 풍경 같다. 지금 그와는 아무 상관 없이 흘러가는 계절을 눈앞에서 마주한 것처럼, 쓸모없는 풍경만이 그의 문자함을 계속 채운다. 기다리던 소식은 오지 않고, 피하고 싶은 소식이 도착한다. 이런 게 인생인가, 라고 묻고 싶은 표정을 그린다.
 
휴대전화 속 부고를 떠올리며 문득 유리 볼 속 겨울을 생각했다. 볼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 창밖으로 아스라이 멀어지는 이국의 불빛이 보였다. 비행기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을 멍하니 응시하다 유대용 안대를 쓰고 의자를 뒤로 젖혔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여섯 시간 동안 일단 아무 생각도 안 할 작정이었다. 잠을 청하려 천천히 숨을 고르는데 속에서 기체인지 액체인지 모를 무언가가 뜨겁게 치밀어올랐다. 마른침을 삼키며 침착하게 그것을 내려보냈다. (182~183페이지, 「풍경의 쓸모」)
 
여기에서 우리가 슬픔을 감당하는 하나의 방법이 전해진다. 그는 '뜨겁게 치밀어오르는' 감정을 '마른침을 삼키며 침착하게 내려보내는' 것으로 그 순간을 통과한다. 임용에서 탈락했다고,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 맞았다는 걸 안 순간에도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 순간을 참아낼 뿐이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고통을 건너가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듯이, 작가는 어떤 대책을 남겨 두지 않는다. 그런 모습은 「건너편」과 「가리는 손」에서 현재 상황이 무엇을 선택하게 하는지 보여주며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어떻게 할래? 다른 선택이 있어?’라고 묻는 것처럼. 「건너편」의 여자는 매번 남자와 헤어질 타이밍을 놓치지만, 결국 헤어진다. 그를 생각나게 하는 '노량진'이라는 한 단어에 시선이 머물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녀는 오늘 남자 없이 지나가야 내일이 열 수 있다. 「가리는 손」의 엄마는 '설마 내 아들이?'라는 의문을 품지만 확인할 수 없다. 아니, 믿고 싶지 않을 거다. 내 아이가 그럴 리 없어, 라는 맹목적인 믿음을 보내지만, CCTV 속 아이의 표정에 의문을 품는다. 확인하고 싶지는 않다.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으니까. '이대로 조용히 지나가면 안 되나?' 하는 불안을 남긴 채로 머문다. 그렇게 오늘만 모른 척하면 다 지나가게 될 거야. 그러다가 불안은 죽음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듯, 마지막 순간으로 이어진다.
 
늙는다는 건 육체가 점점 액체화되는 걸 뜻했다. 탄력을 잃고 물컹해진 몸 밖으로 땀과 고름, 침과 눈물, 피가 연신 새어나오는 걸 의미했다. 할머니는 집에 늙은 개를 들여 그 과정을 나날이 실감하고 싶지 않았다. (50페이지, 「노찬성과 에반」)
 
「노찬성과 에반」으로 늙어감과 죽음을 적나라하게 들려주며, 결국에는 「침묵의 미래」의 지금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게 된 사어(死語)로 우리의 미래를 보게 한다. 늙어가다, 죽는 게 우리의 미래이자 순리라는 듯. 할머니가 찬성이 데리고 온 유기견 에반을 보기 싫어했던 것은, 에반을 보는 게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아서다. 늙고 병들고, 살리려 애를 써도 결국 죽고야 마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그렇게 마주한 사어로 마지막을 확인한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하는데, 매번 찾아오는 슬픔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상실을 심는다. 창밖 저들의 행복이 왜 나에게는 찾아오지 않는지 서글퍼 하면서도 용기를 내지만, 그 용기는 행복이라는 답으로 돌려주지 않는다. 잃은 자의 아픔은 아픔으로 남아있고, 절망을 느끼면서도 감당하는 게 답인 것처럼 또 다른 아침의 눈을 뜬다. 이렇게 살아지겠지, 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오늘을 또 한 번 견뎌야 하는 걸까? 마치 일 년 내내 추운 겨울인 것처럼?
 
그 겨울이 언제까지 계속될까? 작가는, 바깥은 뜨거운 여름인데 안에서 추운 겨울을 보내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계절을 멈췄다. 상당한 시차로 더는 흐르지 않는 계절을 이 순간에 고이게 했다. 웅덩이가 더 깊게 파고 들어가 겨울의 폭설이 얼어붙은 듯이, 지금 계절이 여름이라는 것을 아주 잊은 듯이. 그러다 어느 순간 이 소설집의 처음과 끝에 배치된 작품을 동시에 떠올리게 된다. 다른 듯하지만 닮은 두 작품에서 작은 틈을 본다. 아이를 잃은 부부가 이제 겨우 감정을 추스를까 하는 순간에 처음 슬픔을 마주한 그때로 돌려놓는다.(「입동」) 그들의 눈물이 아직은 멈추지 않았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상실감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다가 벽의 구석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글 자음과 모음으로 위로가 비집고 들어갈 틈을 만든다. 어쩌면 부부는, 그렇게 한 번씩 예상하지 못한 순간을 겪으며 치유의 자리를 넓힐 것이다. 가슴 속 서늘함은 그렇게, 조금씩 온도를 높여갈 것이다. 그리고 마치 잊은 것이 지금 생각났다는 듯,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마지막에 놓아 그 위로의 틈을 조금 더 만들고 글을 닫는다. 학생을 구하려다 죽은 남편을 이해하지 못한 명지는 죽은 학생의 누나가 보낸 편지에서 밖의 계절을 본다. 이해할 수 없던 남편의 선택을 원망하면서 보낸 안의 풍경 너머, 비로소 밖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서히 겨울 속으로 여름의 열기가 뛰어들 것을 보여준다. 차가움 속으로 뛰어든 뜨거움 때문에 어느 정도 미지근해진 온도. 이제 어느 쪽으로든 가능해졌다. 더 추워질 수도, 더 더워질 수도 있다. 계절을 잊은 듯 살아온 시간이 변할 문을 살짝 열어놓는다. 바깥에 흐르는 계절을 이렇게 보기 시작했으니, 더 열든 아예 꽁꽁 걸어 닫든, 그건 오롯이 각자의 몫이니 어느 쪽으로든 알아서 가보라고. 
 
그렇게 사소하고 시시한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걸 배웠다. (중략) 그러니까 거기 사 인용 식탁에서. 식탁과 맞붙은 산뜻한 올리브색 벽지 아래서. (20페이지, 「입동」)
 
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선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 당신을 보낸 뒤 처음 드는 생각이었다. (266페이지,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여전히, 우리의 계절은 흐르겠지. 때로는 겨울의 추위에 움츠러들었다가, 가끔은 봄과 가을의 바람에 몸을 맡겼다가, 여름의 햇볕에 검게 그을렸다가. 내가 체감하는 계절은 매번 다를 수 있다. 겨울 속 여름을 살거나, 여름 속 겨울을 지내거나. 어쩌면, 그때마다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사소한 것들로 현재의 계절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불편한 손으로 꼭꼭 눌러쓴 편지의, 위로와 안부의 몇 글자가 미움과 분노를 그리움으로 변하게 한 것처럼... 소설 속 주인공들은, 밖으로 나가 현재의 계절에 뛰어드는 방법을 몰라 허우적대던 사람들에게 온기가 스미는 방향을 가르쳐 준다. 답이 아니라, 여전히 질문을 남긴 채로 돌아선다. ‘자, 이제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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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바람 진구 시리즈 4
도진기 지음 / 시공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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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진구 시리즈'를 읽어온 독자라면 진구의 배경이 궁금했을지도 모른다. 백수 탐정이라는 진구의 소개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캐릭터니까 말이다. '진구 시리즈'의 네 번째인 이 작품은 그런 궁금증을 없애준다. 현재 의뢰받은 사건과 새로운 인물의 등장,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들려주는 이야기로 진구의 과거가 밝혀진다.

 

진구는 대형 벤처투자회사 제이디애셋 회장에게 의뢰를 받는다. 회장의 의뢰는 자기 아들이 결혼하고자 하는 여자의 뒷조사다. 그 여자는 회장의 비서이자 회장이 후견했던 인물인데, 회사에서 그 여자를 후원하고 그 여자의 능력을 높이 사는 것까지는 좋지만, 아들의 배우자로는 인정할 수 없다. 아들에게는 든든한 배경이 될 여자가 필요한데다가, 금수저로 태어난 것 말고는 볼 것 없는 아들보다 능력이 출중한 여자는 필요 없던 거였다. 그 여자의 꼬투리라도 잡아서 아들의 결혼을 반대할 명분이 필요했던 회장은 이 바닥에서 유명한 진구에게 의뢰를 한다. 하지만 진구는 회장의 의뢰를 거절한다. 할 수 없었다. 회장이 뒷조사를 의뢰한 여자는 유연부였다. 그럼, 유연부가 누구냐... 진구의 초등학교 중학교 동장이자 라이벌이었고, 연부의 아버지와 진구의 아버지가 역사를 전공하는 동료 교수이자 라이벌이었다. 그리고 오래전, 실크로드 탐사 현장에서 사망한 두 사람 유상호(연부의 아버지)와 김민준(진구의 아버지)의 일이 두 사람 사이를 멀어지게 한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때 그 사막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기에 절친이자 라이벌이자 애매한 연인 사이처럼 지냈던 연부와 진구는 헤어지게 된 것일까.

 

유연부의 등장은 뜻밖이었다. 여느 때처럼, 진구 시리즈는 새로운 등장인물과 새로운 이야기로 또 한 편의 추리 드라마를 보여줄 거로 여겼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추리소설로도 충분했지만, 과거를 들추며 진구의 이야기까지 더했다. 험난한 여정이었다. 중학생이 따라가기에 역부족인 탐사 현장이었지만, 두 아버지의 욕심과 라이벌 의식은 자식이 아니라 동료 탐사 대원들처럼 여기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에 반해 연부와 진구가 그 탐사에 흥미를 느낀 게 오히려 다행이었을까. 어쨌든 탐사라는 모험이 연부와 진구에게 인생의 큰 사건이 된 것은 틀림없다. 수학에 모든 것을 바친 듯한 진구는 변했다. 고등학교도 중퇴했다. 진구는 어떤 의미를 잃어버린 것일까? 연부도 마찬가지다. 다르지만 비슷했다. 두 아이에게 그 탐사는 아버지를 잃게 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고, 그곳에서 서로 다른 것을 보고 침묵했다. 그 사막에서 마주한 모래바람이 모든 것을 일으켰고, 모든 것을 덮었다. 그 시간은 그곳에서 덮인 채로 숨겨져 있을 것만 같았다.

 

해미는 잠시 눈을 감고 상상해보았다. 주변을 분간 못 할 정도로 모래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는 사막. 차 안에는 온통 흙먼지, 몸 안에는 구석구석 모래가 끼어들고……. 자신이 꼭 그 안에 들어가는 것 같아 진저리를 치며 눈을 떴다. (91페이지)

 

모래는 000에게 살인을 속삭였고, 00에게 살의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 모래바람 안에서 000는 죽어갔다. 아니, 거의 죽었었다. (331페이지)

 

진구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인 이 소설은 새로운 사건인 듯 시작되었지만, 진구의 과거를 교차로 보여주면서 현재의 사건과 연결 짓는다. 갑자기 등장한 유연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진구에게 남겨진 언젠가 한번은 풀어야 할 숙제임을 암시하기도 한다. 동시에 진구의 과거를 탈탈 털어내듯 보여준다. 선과 악의 구분이 아니라 법의 테두리 안에서 그 틈을 파고들어 사건을 해결하던 진구의 모습보다는, 그의 과거가 드러나면서 현재의 사건을 하나씩 되짚어 보게 했다. 물론 그 중심에는 진구의 과거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인 '연부'가 있다. 여자 친구인 해미의 질투와 다그침에도 다 말할 수 없는 연부와의 기억이다. 소설의 뒷부분에서는 마치 친절한 작가가 등장한 것처럼, 읽으면서 놓친 부분에 대해 설명하는 듯한 부분이 있지만, 그전까지는 나도 해미와 같았다. 보고 듣고 있되, 어디서 그 틈이 보이는지 잘 알 수 없었다. 소설의 거의 마지막에 다다라서야 고개를 끄덕이는, 사건의 시작과 누군가의 죽음까지 이어지는 일들 속에서 결국 보게 되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자 죄였다는 것을...

 

그 순간에 머릿속을 파고드는 생각이 만들어낸 사건과 결과를 용서할 수 없겠지만, 인간은 누구나 그런 면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얹어준다. 순간 혹하는 감정일지라도, 그 순간이 돌이킬 수 없는 큰일을 만들어버렸을지라도, 그건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일이므로. 그 안에 진구가 있었다는 게 조금 의외이기는 했다. 진구는 타인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도 않고, 감정에 지배당하는 인간이 아닐 거로 생각했는데, (내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진구 역시 사람이고 남들과 다르다는 점이 점점 희미해지는 건 아닐까 추측하게 된다.

 

이 '모래시대'야 말로 이 땅에서는 가장 무서운 재앙인 것이다. 사막의 한 도시, 한 나라를 별일 아니란 듯이 집어삼켜왔다. (123페이지)

 

지나고 나면, 서로가 한 발 물러서서 보게 된다면, 시간이란 약을 삼키면 어느 정도 회복되는 게 있지만, 어떤 일이 일어난 순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때도 있다. 진구가 의뢰를 거절했지만 기어코 일어난 일, 누군가를 살해하고 가해자가 되는 사람, 그 순간에는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여겼던 순간까지. 찰나의 순간에 인간의 욕망이 발휘한 힘이겠지만, 그에 이유가 되는 것을 찾다 보면 또 그럴 수 있는 일로 된다. 사막에서 일어난 그 일도 검은 모래 폭풍이 모든 것을 뒤덮으며 욕심도 죄도 다 덮어주었다. 그땐 그런 걸로 믿었다. 오랜 시간 가슴 속에서 불편함으로 남아있을 줄도 모르고... 이번 사건으로 모든 것은 드러나고 많은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했다. 모래바람이 덮어주었다고 믿었던 것들도 착각이라는 것을 알았다. 언젠가는 처음의 자리로 돌아간 것처럼 모든 것을 다시 풀어야 할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십여 년이 지난 후 진구 앞에 다시 나타난 사람들, 시간이 그걸 증명한다.

 

그냥 백수 탐정인 줄로만 알았던 진구가, 과거와 함께 상당한 이야깃거리를 가진 인물이라는 게 밝혀져 속이 다 시원하다. 간혹 진구가 감정이 없는 인간이 아닐까 싶을 때가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본 것 같아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앞으로의 진구 시리즈가 더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 진구의 진실을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의뢰받는 사건을 대하고 해결하는 진구의 모습에서 혹시 변화를 발견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 현재의 진구의 모습이 어떤 시간이 흘러 형성된 것인지 궁금하다면 꼭 읽어봐야 할 진구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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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세트] 파편 (총2권/완결)
홍수연 지음 / 파란미디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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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추악한 비극의 시작도 끝도, 행복에 다가가기 위한 시도도, 모두 사랑이었다. 신명훈과 그의 아내 최은희, 영서와 민혁, 신성란과 신성현과 최유현, 모든 것을 놓칠 수 없다고 부르짖는 박태은까지. 그들의 재능을 넘어서서 갈구하던 사랑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고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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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책을 완독한 게 한 권도 없는데,

이번 작품을 읽어도 괜찮을지 고민이 된다...

출간되었다는 것 자체로도 이슈가 되는 분위기인데,

나도 휩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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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앞둔 사람, 혹은 이미 부부가 된 사람에게 프러포즈를 어떻게 했는지 묻고 싶을 때가 있어. 사실, 그다지 관심 있는 건 아닌데 이상하게 그냥 궁금해질 때가 있거든. (이 책을 읽으면 특히 더, 그런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어~!) 프러포즈 얘기가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서로가 결혼하기로 약속하고 결혼날짜까지 다 정해진 상태에서 굳이 공식적인 프러포즈가 필요한가 싶은 생각을 했었거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익숙해진 관계처럼 그냥 흘러가는 분위기에 결혼까지 하게 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어. 그러면서도, 언젠가 정말 이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 생각이 들면 내가 먼저 말해보려고 생각한 적도 있어. 나는 진짜 애교가 꽝인 인간이라 평소에도 무뚝뚝함이 넘쳐흐르지만, 그래서 (뻘쭘) 별건 아니고, 딱 한 문장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고 싶었지. 그냥 "같이 살자"고 말해야겠다고 오랫동안 생각했어. 누가 먼저 하라고 정해진 건 아니니까, 내가 먼저 말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건 없잖아? 괜찮아, 뭐. 암튼 내 맘이 그렇다면 참지 말고 말해야겠다고 다짐했어. 근데 이 책을 읽다가 문득 그런 궁금증이 들더라고. 곧 결혼할 사람이 있다면 프러포즈 어떻게 할 것인지, 이미 결혼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프러포즈가 있었는지 말이야. 나처럼 무뚝뚝 심드렁 간단명료하게 말하는 거 말고 말이야. (왜 이 책을 읽고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이따가 말해줄게) 이벤트 대행사에 의뢰했는지, 아니면 며칠을 머리 싸매고 자기만의 색깔이 진득하게 묻어나는 순간을 만들었는지 하는 그런 거. 아, 원래 진심만 담으면 되니까 형식이 중요한 건 아니라는 거 알고 있어. 그러니까, 진심을 담은 그 프러포즈를 어떻게 했느냐고.

 

 

 

 

 

 

 

 

 

마중 나와 주겠어? 어떤 모습으로든 좋아. 도착했을 때 아무도 없으면 많이 슬플 것 같아. 항구에 당신이 없으면 예식장에 갈 거야. 가서 혼자라도 기분 내야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26페이지)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한 대. 4년 4개월 후에... 알파 센타우리에서 오는 여자 친구에게 그만큼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때 결혼을 해야 해. 아, 4년 4개월을 어떻게 기다리니? 안 되겠다.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어. 남자는 그녀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광속 우주선을 타기로 했어. 광속을 돌파하면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두 달 동안 우주에 있다가 지구로 돌아오면 딱! 결혼날짜에 맞출 수 있다, 고 생각했지.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라니. 그녀가 탄 우주선에 문제가 생겨서 두 달 늦게 도착한대. 그에 남자는 두 달 늦게 지구로 돌아가는 다른 배로 갈아탔어. 그런데 그게 망할 일이 되어버린 건 누구 탓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어쩌면 좋니. 갈아탈 우주선에 문제가 생겨 도착이 한참 늦어진대. 지구에 도착하면 3년은 지나 있을 거라는데, 어떡해?!

 

남자는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어. 조금 늦더라도 기다려 달라고, 제발 자기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물론 그녀는 그를 버리지 않았지. 다만, 문제가 조금 더, 조금씩 더 생겼을 뿐이야. ㅠㅠ 3년, 11년, 그렇게 그녀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지연되고 있어. 이렇게 슬픈 일이 왜 생겨야만 하는 거니? 왜 이러는 거야 자꾸!!

 

도대체 이 두 사람은 결혼을 앞두고 왜 이렇게 됐을까. 만나기는 하는 거야? 왜 자꾸 만남이 어긋나기만 하는 거지? 멀쩡하게 잘만 굴러가던 배가, 꼭 이럴 때는 작정이나 한듯 고장 나고 그러더라. 그래서 자꾸 바라면서 읽게 되잖아. 이 짧은 소설이 끝날 때까지 두 사람이 만날 수는 있는 거냐고 물으면서 읽게 되잖아. 지구의 시간과 우주의 시간이 달라서 그런 것도 알겠어. 그녀를 기다리는 시간을 견딜 수 없어서 배에 오른 것도 알겠어. 좀 더 빨리 만나고 싶어서 배를 갈아탄 것도 알겠어. 그러면, 원래 계획대로라면 벌써 수천 번을 만나도 만났을 시간을 만들어줘야지. 안 그래? 왜 그렇게 두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거냐고.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살아가면서 기다린다는 게 어떨 거로 생각하기에 자꾸 훼방을 놔? (가만 안두겠어!)

 

이번에는 그녀가 왔을까? 이번에 도착한 배 안에 혹시 그녀가 있을까? 그는 계속 시간을 셌어. 하나, 둘... 기다림에 애가 타서 그랬지. 그렇게 시간이라도 세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으니까. 결국, 그는 시간을 세다가 멈췄어. 잊었어. 일 년, 십 년, 몇백 년이 흐르면서 다 잊고 말았어.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셀 수가 없어졌어. 하지만 여전히 항구에 나가는 걸 멈추지도 않았어. 그럴 수 없었어. 시간을 세던 것을 잊었지만, 그녀가 올 거라는 바람을 놓지는 않았거든. 그는 여기에 있어.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나는 나이를 먹었어. 하루에 하루씩, 한 달에 한 달씩. 한 해에 한 살씩, 시간을 몸에 쌓으며 살았어. 그러니까 나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야. 10년 전보다 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어. 몇백 년 전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 되었어. 내일은 하루만큼 더 어울리는 사람이 될 거야. 내년에는 또 한 해만큼 그렇게 될 거야."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76~77페이지)

 

 

손바닥만 한 이 책을, SF라고 대놓고 말하는 이 소설을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었어. 나도 모르게 자꾸 같이 기다리게 되더라고. 그가 기다리는 그녀를 보고 싶었거든. 너무 많이 어긋난 그 순간들이 어쨌든 끝을 봐야 하잖아. 몇 백 년이 더 흘렀어. (그때까지 죽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나이를 먹었겠지? 만나도 괜찮을까? 서로 많이 변했을 거잖아. 외모부터 많은 게 변해 있겠지? 앞으로도 달라질 거잖아. 사람이니까. 그런데도 그가 하는 말은 이런 거였어. 하루하루, 10년 전보다 그녀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다고, 내일도 모레도, 아주 먼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녀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될 거라고. 누군가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다고, 그런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는 건 어려운 게 아닐지도 몰라. 하지만 그런 바람으로 그 오랜 시간을 기다려온 사람의 마음은 쉽지 않을 것 같아. 그래서 더 보고 싶었나 봐. 그를, 그녀를.

 

(만났어? 만났을까? 못 만난 거야? 뭐야?)

 

아, 이거였어! 작지만 크고, 가볍지만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 그의 진심이 가득 담겨있어서잖아. 더 무슨 말이 필요해...

 

 

:)

결혼을 앞둔 남자가 여자에게 프러포즈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는데, 아무리 고민해도 맘에 드는 프러포즈가 생각이 안 나던 차에, 남자도 여자도 좋아하는 SF소설 작가에게 프러포즈용 소설을 한 편 써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에 작가는 흔쾌히 쓰게 되었고, 남자는 그 소설을 읽고 녹음을 하고 그녀에게 들려주고. 뭐, 그렇게 프러포즈는 성공했다는 얘기. 남자가 직접 이 소설을 두 권 만들어 한 권은 부부가 된 두 사람이 소장하고 다른 한 권은 작가에게 보냈다고 하는데... 그렇게 이 소설은 태어났다. 아마 처음부터 출간용은 아니었겠지? 그런데도 이렇게 출간된 이유를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고. ^^

뭔가를 녹음해서 들려주는 게 참 괜찮은 방법이구나 싶기도 하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읽는 사람의 감정이 녹음된 목소리에 그대로 드러날 거잖아. 그것 역시 진심일 테고. 아, 그런데... 그럼 목소리가 좀 예쁘면 참 좋겠다. 흠흠. 큼큼. 녹음된 내 목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는데, 아마 통화할 때 상대방에게 들리는 내 목소리가 녹음된 목소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한번 물어봐야겠다. 통화할 때 내 목소리는 어떠냐고. ㅎㅎ

 

 

 

눈에 들어오는 신간 한 권을 보고 궁금했는데, 작가 이름을 보니 김보영이다.

어디서 많이 봤던 이름인데 무슨 책이었더라? 궁금증이 계속 머리 속에 두둥실 떠돌기만 했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장르도 SF다. 내가 즐겨 읽는 취향도 아닌데 작가 이름이 낯익어서 검색해보니 김보영이네.

전작 목록을 보다가 알았다. 지난 번에 읽은, 손바닥만한 그 작은 책의 작가였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얼마나 몰입해서 읽었는지 앉은 자리에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기고야 말았는데...

그때 생각했다. 아, SF도 조금씩 즐기는 게 어려울 것 같지는 않겠구나.

물론 그 이후에도 그 장르를 많이 읽지는 않았다. 여러 권 읽을 때 한권씩 끼어들 틈을 준 것뿐이다.

 

그렇게 내 취향의 눈길을 옆으로 돌리게 해준 작가의 새책 소식이 반가웠다.

 

 

 

 

 

 

 

저 이승의 선지자.

저승에 물리적 삶이 있고 생태계가 돌아간다? 불명의 생물의 모습까지?

소개 글이 전부이진 않을 터, 김보영이 들려주는 흥미로운 우주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월요일이다.

저승과 이승을 오가는 선지자와 그의 제자들이 보여줄 삶의 한 모습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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