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재처럼 - 자연으로 상 차리고, 살림하고 효재처럼
이효재 지음 / 중앙M&B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얼마 전에 집에 김장을 했다. 어떤 집은 몇 백 포기씩 한다지만, 우리는 식구가 적어 삼십 포기 정도를 한다. 그것도 결혼한 언니들이 가져갈 몫까지 하느라 그 정도다. 집에 있는 두 식구 먹어야 얼마나 먹는다고, 게다가 김치는 그리 많이 먹는 편이 아니어서 나는 김치에 대한 애착(애정? ^^)이 별로 없다. 그래서 해마다 김장철이 되면, ‘왜 이렇게 많이 담그느냐.’, ‘대충대충 하자.’, ‘그냥 사먹으면 되는데 왜 이렇게 힘들게 직접 하고 그러냐.’ 하면서 엄마에게 투덜댄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손이 너무 많이 가고 힘이 드니까 좀 편하게 먹고 살자는데 말이다. ‘김치 뭐, 그냥 담그면 되지’ 하겠지만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김장을 하는데 보통 3일 이상이 걸린다. 배추 손질하고 절이고, 배추 속 준비하고 담그고……. 어렵고 힘들다. 김치 담그기, 그리고 김치를 포함한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음식들이 가벼운 인스턴트는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시간과 정성 노력이 필요한 것들뿐이다.

솔직히 고백하겠다. 얼마 전에 집에 김치가 없어서 곧 김장을 할 것이니까 담그지 말고 그냥 사먹자고 해서 주문해서 먹었다. 맛있게 먹긴 했는데 뭔가가 많이 서운하다. 그게 뭘까 고민 해봐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냥 좀 서운한 끝맛을 느꼈을 뿐이다. 게다가~!! 사먹는 김치로 김치찌개를 끓이려니까 너무 아까워. ㅠㅠ 그 이상한 조화는 무엇인고. (그래서 정말 아주 급한 경우가 아니면 김치를 담가먹는구나.)

한때 현모양처가 꿈이었던 나는 손맛이라는 것은 타고난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같은 설명서대로 끓인 라면도 누가 끓이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걸 보면 그 ‘손맛’이라는 거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 손으로 만드는 음식, 손으로 만드는 작은 소품들, 같은 것을 보고 눈에 담았는데도 그걸 또 멋스럽게 활용하는 것 역시도 타고나는 거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 큰언니는 쓰레기도 주어다가 작품을 만들어내는 손을 가지고 있다. 모든 것에는 배우고 노력하면 된다지만 그 노력 이상의 것을 해도 타고난 사람의 것을 따라갈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다. 특히나 이효재의 이 책을 보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한복 디자이너로 유명하지만 사실은 뛰어난 살림의 대가로 이미 유명한 분이라 설명이 따로 필요 없다. 내가 이 책을 통해 만난 이효재는 한복이란 것 하나의 뛰어난 재능이 아닌, 흔히 어머님들이 그 내공을 자랑하는 ‘살림’의 고수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었다. 먹는 것과 입는 것, 그리고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그녀의 손을 통해 만들어내는 모습은 신의 경지에 가깝다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 정도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부러우면 지는 거라던데 미치도록 부럽다.)


처음에는 외딴집에 산다는 그녀의 마음이 궁금했다. 그래도 일 하는 사람이고, 살림도 잘 하지만 굳이 그렇게 외진 곳에서의 생활이 필요했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본 누구나가 이런 마음으로 마무리를 하지 않을까 싶다. “나도, 그곳에서 살고 싶다.” 라고. 흔히 어른들 하시는 말씀이 (우리 엄마도 그렇지만) ‘아파트는 싫다.’, ‘땅 밟고 살고 싶다.’ 라고 바라는 마음이 뭔지 알 것 같았다. 그녀의 집은 공간도 넓었지만 말 그대로 ‘자연’이었다. 그녀가 직접 일구는 땅, 그녀의 손길 하나로 반짝거리는 집안의 살림살이들, 구석구석 모든 것이 그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었다. 특히나 이 책의 페이지 한 장씩 넘길 때마다 감탄사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던 모든 것을 자연 그대로 담아내던 모습들. 아무리 만들어내도 이렇게 만들어낼 수 없지 않았을까 싶은 경지에 놀라울 뿐이었다. 예전에 우리 외할머니 댁은 우물이 있을 정도로 옛날 모습을 그대로 만들어놓은 민속촌 같은 집이었는데, 그녀의 집이 그랬다. 직접 밭에서 일구어낸 채소들을 마당의 한편에 있는 샘 같은 곳에서 씻어내고, 흔하디흔한 냉장고나 김치냉장고 같은 것이 아닌 장독 항아리를 열어 장을 꺼내고, 어머니의 손맛 그대로를 느끼게 해주는 것 투성이었다. 오늘날 노래를 부르듯 외치는 친환경 그대로 말이다. (아~ 배고파.) 음식 편식이 심한 나 같은 사람도 그 밥상을 보는 순간 손도 안 씻고 덤벼들고 싶을 정도로 자극한다. (경고한다. 뱃속을 든든하게 채우고 이 책을 펼쳐들도록~!)


우리의 토속 음식부터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까지 모든 음식의 역사가 담겨 있는 듯하다. 깊은 맛을 내는 장을 이용하고, 모든 재료를 땅에서 직접 얻어낸다. 물론 그녀의 손길로 잘 키워서 말이다. 기본적인 재료부터 양념까지 사용하는 도구까지 모든 것들이 옛 방식이다. 정말 하나도 편하고 쉽게 만들어 낼 수 없는 절차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만들어내는 그녀의 정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 모든 음식들을 함께 먹어줄 대상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겠지. 이 책에서도 그렇지만 그녀의 살림이야기에 남편이 자주 등장한다. 그녀가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내고 살림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은 그 모든 것의 대상인 남편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든다. 그녀가 맛있게 만들어낸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남편. 나는 그녀가 도시락을 싸놓고 출근을 한다는 말에 감동했다. 그녀는 출근을 하고 남편은 집에 있고, 흔히 그런 경우 알아서 챙겨 먹겠지 싶은 마음이 자주 있었던 나에게는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나가는 사람을 위한 도시락은 봤어도 집에 남겨진 사람을 위한 도시락을 전혀 생각 못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아, 그녀의 그 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여기서 나는 또 하나를 배운다. 도시락은 나갈 때만 싸가지고 가는 게 아니었다.) 그녀의 삶은, 그녀 혼자만의 삶이 아니라 남편과 그녀 두 사람의 공동의 삶이었다. 부부가 그래야 하거늘…….

한 권의 책에 그녀의 레시피가 몽땅 담겨있다. 일반적인 요리책 속에 있는 레시피와는 사뭇 다르다. 오직 그녀가 고전의 방식 그대로 만들어내는, 그녀가 직접 지금 하고 있는 방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생생한 장면들을 담은 사진에 그녀만의 음식들이 눈에 그대로 담을 수 있게 참 아름다운 색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녀의 소중한 레시피와 함께.


그녀의 손재주 하면 음식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뚝딱 요술 손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녀의 손끝에는 분명 요술 방망이가 숨겨져 있을 것 같다.) 집안의 작은 소품들부터 요리에 필요한 것들까지, 모든 인테리어가 어디서 사다가 보기 좋게 걸어놓은 것이 아닌 그녀의 손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이걸 정말 사람이 만들 수 있단 말이야?’ 싶은 것들뿐이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그녀는 비단 한복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적으로 태어나게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그리고 만드는 자기 자신이 원하는, 세상에서 오직 하나, 내가 내 손으로 만들어낸 오직 ‘그 것’ 그래서 더 의미가 있는 것들이다. (아, 이 책 한권을 모두 스캔을 떠도 모자랄 지경이다.) 보여주고 싶은 게 너무 많고 하나하나 설명해주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게 너무 많다. 그동안 내가 못한다고 포기했던 것들, 이런 손재주 부럽다고만 외쳤던 것들이. 사실은 그걸 만들면서 아무 의미가 없었기에 저절로 포기되었던 것들이었는데 말이다. 흔히 말하는 ‘정성’ 같은 거. 그걸 만들면서 사용할 사람에 대한 애정과 뿌듯한 내 마음이 같이 들어가야 제대로 된 무언가가 탄생할 텐데 나는 그걸 빼먹고 시도하고 있었나보다. 그래서 더 이상의 발전이 없이 만들다가 버리고, 다시 시작했다가 만들기를 포기하고, 손대기를 주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녀가 그녀의 아름다운 삶과 자연 그대로를 사랑하고,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먹는 음식 하나 집안 살림 하나에도 그 모든 마음과 열정을 담아낸 것을, 그랬기에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들이 그녀의 손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너무도 당연하게.


내가 좋으면 된 거다. 그거면 충분한 거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내가 가졌던 생각들은 ‘굳이 뭐 하러 그렇게 어렵게 하나.’ 싶은 것들이었다. 어쩌면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 생각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편한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녀의 생활 방식을 이해 못할 지도 모른다. 이해를 못해도 좋다. 그녀가 좋으면 되는 거다. 그녀가 좋아서, 극성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여도 그녀가 좋다면 된 거 아닌가? 자신이 하는 것들, 만들어 내는 것들, 그 안에서 자신이 편하면 된 거고 만족하면 되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또 그녀의 살림과 살아가는 방식을 보고 그녀를 따라하거나 배우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렇게 하면 되는 거다. 배우고 따라하고……. 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도 흥분되었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났을 때는 그녀의 살림 노하우를 훔쳐오고 싶을 정도였다.

나는 이제 아파트 생활을 고집하던 나의 생각을 어느 정도는 버렸다. 엄마가 원하시는 ‘땅 밟고 사는 삶’을 살아보고 싶어졌다. 내 손으로 일구어낸 그 무언가가 음식의 재료가 되어 가족들의 입안으로 만족스럽게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졌다. 생각만 해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아, 뿌듯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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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7 21: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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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7 2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영은 - 그…
서영은 노래 / 소니뮤직(SonyMusic) / 2011년 10월
절판


내가 서영은의 목소리를 더 새겨듣게 된 계기는 드라마음악을 즐기면서부터다. 물론 그 전에도 조금씩 음악을 듣기는 했으나, 드라마 음악 특유의 그 영상과 함께 들려오는 맛은 무시할 수가 없었나보다. 자연스럽게 드라마에 삽입된 노래들과 드라마의 장면들이 같이 떠오르니까.
지금이야 B가수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ost의 대세라고 하던데, 내가 생각했을 때 한때 ‘드라마음악 = 서영은’의 공식이 성립될 수 있을 만큼 그녀의 목소리는 절절했다. 물론 지금도 그 매력은 변함이 없으나 드라마음악과는 조금 뜸했다고나 할까. 그래도 이렇게 음반이 나와 주니 더없이 반갑다.

표지를 보는 순간 딱 ‘서영은이구나’ 싶었다. 나는 이상하게 서영은이나 서영은의 노래를 듣다보면 초록에 가까운 푸르른 색이 저절로 떠오르더라. 내지를 펼쳐보면 가을에서 겨울의 길목으로 가는 순간에 보이는 앙상한 나뭇가지도 보이고. 그녀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분위기로 나온 것 같다.

이번 음반은 미니앨범이란 이름으로 나왔는데, 모두 여섯 곡이 담겨 있다. 노래 다섯 곡, 연주곡 한 곡. 서영은이 소화하지 못할 음악은 없을 거란 생각이 드는데, 그래도 서영은의 목소리에 더 잘 어울리는 것은 발라드가 아닐까 한다. 다섯 곡 모두 발라드인데 (그 중에는 조금 경쾌한 느낌의 곡도 한 곡 있다)

다섯 곡 중에서 네 곡을 서영은이 가사를 썼다. (웃음) 그녀 이번 앨범에서 하고 싶은 말이 많았나보다. 가사를 통해 전하고 싶은 어떤 것이 간절했는지도……. ^^
특이하게도 노래 제목이 다섯 글자다.(5번 트랙 빼고) 모두 ‘그......’ 그... 그......
20여분의 시간이 지나면 한 바퀴가 다 돈다. 짧다. 말 그대로 미니앨범.

추워지고 밤이 깊어지는 요즘에도 즐길 수 있는 분위기의 음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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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도쿄 - 커피 향기 가득한 도쿄 여행
임윤정 지음 / 황소자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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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람이면서도 언젠가부터 서양의 문화인 커피가 일상이 되었다. 일명 다방커피라고 부르는 자판기 커피부터 다양한 맛과 모양의 커피까지. 나도 그 대한민국 사람 중의 하나다. ^^ 보통 집에 있을 때는 1회용 믹스커피를 즐기고, 밖에 나가 있을 때는 특별한 선택을 하지 않는 한은 아메리카노 한잔이면 충분하다. 뭔가가 섞이지 않는 텁텁하지 않은 깔끔한 맛을 즐기기 때문이다. 집에서도 내려 마실 수 있는 핸드 드립을 가지고 있었으나 솔직히 귀찮다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 그래서인지 한두 번 핸드드립을 사용하고 난 후로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저절로 믹스커피에 손이 간다. 그래서 커피라고 하면 나에게는 두 가지 맛뿐이다. 믹스커피와 아메리카노.

그런 나에게도 가끔은 ‘이게 뭘까?’ 하면서 궁금증을 유발하고 조금은 더 들여다보고 싶게 만드는 순간이 있다. 바로 이런 책을 만났을 때. 그 모양의 커피가 뭘까 궁금해지고,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좀 확인도 해보고 싶고, 어떤 맛이 나는지 혀끝을 좀 대보고도 싶은 그런 호기심을 막 솟아난다. 그리고 어느 날 뒤통수에서 뭔가가 팍 꽂히면 정말 이 책 한권을 들고, 책 속에 담겨진 약도를 따라 그 곳을 찾아 거닐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한 발짝 내딛는다는 건 어려울지 모르나 그런 마음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늘 심어놓고 사는 거 아닐까? ^^

 

어느 날 문득,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들렸다던 그 ‘북소리’가 커피에 대한 애정이 넘쳐나던 저자에게도 들렸나보다. 그리고 떠났다. 북소리를 듣고, 일본 그곳, 그 카페들을 향해서. 일본의 구석구석에 있는, 정말 아는 사람만이 찾아갈 수 있다는 그런 곳들로 가득 채워진 이 책이 더 사랑스러워지려고 한다.

목적이 있는 여행.
일단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그 자리가 아닌 낯선 곳으로의 떠남은 과감히 여행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비록 그게 일 때문일지언정 그래도 낯선 환경이 주는 설렘과 두려움, 동시에 두근거림은 그 여행이 주는 묘미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더군다나 자신이 좋아하고 관심 가지는 것에 조금 더 알고 싶고 보고 싶은 마음에 떠나는 것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슴 떨림이다. 그런 마음으로의 시작은 그 무엇을 향해 가더라도 그 목적을 이루고 돌아올 것만 같다. 저자가 이 한 권의 책에서 들려주던 이야기도 그랬다. 일본의 카페를 찾아다니던 여행이었지만 여행 그 이상의 것들을 가득 담아왔다. 이 책을 써내려간 저자에게도, 타지에서는 이방인일 뿐일 것 같은 생각을 가졌던 나에게도.


유행에 따르지 않는 그 곳.
커피(카페)를 목적으로 찾아다니던 곳이니 커피를 공통으로 화두가 되는 그곳을 얘기해보자면, 정말 놀라움으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커피에 대해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이 많았기에 그 놀라움이 더 컸을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다양한 맛과 멋의 커피와 카페가 존재하는 줄 몰랐기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특히나 ‘일본’ 하면 떠오르는 그 작은 아기자기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카페에서도……. 해마다 철마다 굳이 인테리어를 바꾸면서 유지하는 우리나라 카페들과는 사뭇 다른 포근함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작은 공간, 그 곳 특유의 멋스러운 손길들, 찻잔 하나 소품 하나에도 세련됨이나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오직 그 공간을 찾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위한 것들이다. 자신들만이 내어놓을 수 있는 팬케이크 하나에도 그곳의 독특함을 묻혀내는 것이다. 그래서 편안한 곳, 부담 없는 곳, 아무 때나 아무 감정일 때나 조용히 다녀올 수 있는 곳으로 각인된다.

사람과 커피 향기.
저자가 일본에서 찾아다녔던 카페들은 우리가 흔히 보는 체인점 형식이 아니었다. 1인 기업체제 같은 곳이었다. 그래서일까, 손님들과 주인들 사이에서의 거리감보다는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담소를 나누는 공간으로, 동네 사랑방 같은 느낌을 더 많이 받았다. 그 곳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친구가 되고 마음을 나누고, 언제일지 모르지만 ‘다음’을 기약하는 것도 가능한 것이 된다. 낯선 곳을 ‘여행하는 중’이 아닌 시간과 공간이 허락한다면 그대로 눌러 앉아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까지 준다. 오직 커피로 하나가 된 이들이다. 거기에 향기까지 더해진다. 코끝을 자극하는 커피 향기와 사람의 향기.
문득, 어느 조용한 바에 혼자 앉아서 내 앞에서 일을 하고 있는 바텐더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카페의 마스터와 일상을 이야기하는 순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만큼 편히 갈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꼭 한번은 가보고 싶은 곳, 카페 '모이']


카페, 저 마다의 특징.
너무나 다양하고 독특해서 어느 한 곳만 가라면 절대 고를 수 없는 다양한 카페들이 있었다. 유명한 관광명소 같은 카페도 있었지만 조용한 곳을 찾아갈 수 있는 그런 곳의 소개가 더 눈길을 끈다. 오직 그곳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보이보이’의 마마의 팬케이크, 독특한 디자인의 찻잔에 더욱 눈길이 갔던 ‘모이’, 여섯 명의 주인과 여섯 명의 카페로 요일마다 주인과 분위기가 바뀌는 그 곳 ‘우나 카메라 리베라’, 겨울잠을 자고 다시 세워지는 실외 카페 ‘피스’, 양젖의 특이함을 살려낸 맛으로 자극하는 카페 ‘삼월의 양’, 이 밖에도 다양한 카페와 저자가 일본의 카페를 경험하면서 만나 사람들의 끈으로 이어진 또 다른 인연들을 소개해준다. 단순히 소개로 그치지 않고 그 순간 그 자리에 내가 함께 있는 것 같은 마음이 전해진다면 오버일까?


커피를 만드는 방식.
요즘에는 개인이 집에서 쓸 수 있는 간단한 기계로도 가능하지만, 사실 손으로 내려 마시는 것만큼의 분위기와 맛을 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저자가 소개해주는 일본의 카페들 대부분은 핸드드립 방식이다. 차례차례 천천히, 말 그대로 음미하듯이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오리지널의 방식으로 내려지는 그 커피를 보는 시간들과 그 순간을 함께 하는 맛이 더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책 중간에 설명되어 있던 핸드 드립의 방식을 보고 있자면 조금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귀찮더라도 그만의 방식이 불러오는 느낌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굳이 핸드 드립으로 내려서 마시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카페 여행의 시작과 끝.
모든 것이 그러하듯, 여행의 시작과 끝이 분명하게 있었다. 카페의 매력이 물씬 풍기는 곳으로 향해 가던 그 순간이 시작이었다면, 그곳에서의 경험과 시간들, 사람들과 나누었던 정, 배움들,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이별해야 하는 순간은 여행의 끝이다. 근데 저자는 그 여행의 이별을 좀 특이하게 했던 것 같다. 그곳에 친구들을 놔두고 온 것이 아닌 마치 함께 대한민국으로 건너온 것 같은 여운을 준다. 여전히 웃으면서 이야기 할 것 같고, 이메일이 아닌 손 편지로 소식을 전할 것 같고, 커피향이 그윽하게 풍기는 그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여행(마음의 여행)을 계속 하고 있을 것 같은 착각까지 불러일으킨다. 그래서일까, 결코 슬프지 않은 이별을 보는 느낌이다. 언제든 웃으면서 다시 ‘안녕~!’하고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서른 즈음.
저자가 이십대의 끝자락에, 서른을 목전에 두고 떠났다던 카페 여행. 카페를 목적으로 떠난 여행이지만 도쿄 사람들과의 일상을 함께 즐길 수 있었고, 그곳에서의 새롭게 만들어간 인연들, 그리고 저자의 마음속에 있었던 것들의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모습들이 저자의 카메라에 그대로 담겼다. 만들어놓고 치장하고 찍은 사진들이 아니라 정말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가 많이 담겨서 그런지 책을 보고 있는 내내 내가 지금 그곳을 여행 중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생생했다. 어쩌면 그동안의 여행책자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로 만나서일지도 모른다. 관광 안내 책자와는 다른 느낌으로 소박하고 순수하게 다가오는 냄새를 더 맡을 수 있었다. 휴식을 위해 떠날 수 있는, 다음에 만날 그 무언가를 위해 충전하기 위한 휴식의 목적으로, 한들한들 불어오는 바람에 코끝이 살랑거릴 것만 같은 느낌으로 접할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달콤하고 향이 좋고, 때로는 그 정도에 따라 쌉싸래한 맛을 내는 커피 그 고유의 향기가 유혹한다. 그곳에 꼭 한번은 와보라고, 서른이라는 나이가 주는 싱숭생숭함과 더불어 마음에 바람이 불어오는 순간에도, 그 어느 때라도 괜찮다고…….
그리고 저자는 이 여행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고 돌아온 듯하다. 왜 커피가 좋은지, 커피를 따라 카페를 따라 걸었던 그 시간들의 의미가 충분해졌으니까 말이다.


쉬고 싶어서 떠나는 여행에 안성맞춤인 책자.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짐을 꾸리고 준비를 하고, 이런저런 절차에 떠나기도 전에 힘이 다 빠져버리는 게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게으름이어서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딱히 원해서 했던 여행이 없었던 이유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책, 참 마음에 담아진다. 어쩌면 커피향이 자꾸만 맡아지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패키지로 떠나는 게 아닌, 오직 나만의 마음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여행이어서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고. 언제 어느 순간, 이 책 한권을 들고, 도쿄 구석의 그 어느 카페를 향해 내가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아무런 부담 없이, 오직 내 마음대로, 말 그대로 숨을 쉬고 싶은, 휴식이라는 이름으로 그 거리를 걷고 있을 것만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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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소설이라 함은, 나에게 휴식 같은 장르다.
매일매일 달달한 커피만 마셔서 입안의 텁텁함이 익숙해질 무렵, 
어느 날 녹차를 한잔 마시는 것 만큼의 시원한 기분 전환의 요소가 된다.

매달 책을 구입하면서 꼭 한두권은 껴서 주문해야만 안심이 되고 즐거워지는... ^^

평소에는 그다지 눈길이 가는 로맨스소설이 많지 않았는데 12월에는 로맨스소설이 쏟아진다.
신간이 나오는 족족 구입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취향이다' 싶은 것은 자꾸 눈에 담게 되니 저절로 구입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고... ㅠㅠ
기다렸다는 듯이 작가님들의 작품들이 막 지금도 눈에 들어와서 손끝이 간질간질~
결국은 내 손에 안착해야 안심이 되려나?

슬.프.다. 그리고 동시에 즐.겁.다.
이번달에는 읽고 싶은 로맨스소설이 너무... 많아서 울고 웃고 한다. ㅡ.ㅡ;;;
책이 내 손에 들어올때까지 안심 못할 것 같아... ^^


개정판으로 새로 나온 이 책들이 어떤 감동을 줄지 모르겠다.
사실 구판으로 이미 읽었으나 늘 그렇듯 개정판이 나온다고 하면 역시나 한 번은 눈에 담을 수밖에 없다.
조선인 포로 렌과 일본인 영주 류타카의 기적과 같은 사랑을 그린 이야기다.
당시의 기억으로는 읽는 내내 참 절절해서 마음이 아릿해지는 기분이었는데, 새로 나온 표지가 주는 분위기는 또 사뭇 다르다.
거의 비슷한 분량으로 가격만 조금 더 오른 것 같은데 그 감동도 여전할지 궁금해진다. 내가 읽었던 것은 이 작품의 완전 초판이었나보다. 표지가 그렇네...




이미 그 마니아층이 확실한 작가님들 4분이 모였다. 사실 이런 조화도 흔치 않은데 그런 작가님들의 작품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오니 두근거린다. ^^
4色 로맨스, 부제 '일상 혹은 환상'. '일상' 편에는 연두님의 '쌈장녀', 정지원님의 '매리지 블루 Marriage Blue', '환상' 편에는 이지환님의 '느와 Noir', 채현님의 '옆집 사는 뱀파이어'가 수록되었다.
4분의 작가님의 작품들을 기존에 만나왔던 느낌으로는 모두 다 그 개성이 참 강한 것 같다. 너무 색깔이 달라서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 분위기라고나 할까. 그래서 이 책에 대한 기대감이 많이 상승하기도 한다.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 그 어떤 음식처럼, 이분들의 작품들을 모두 담아서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한 매력이다. ^^
일반문학에서나 만날 수 있는 단편집의 형식을 로맨스소설에서 만나다니...
새롭다.



연재를 못봐서 많이 궁금하게 만들었던 책이다. ^^
여주인공이 과거로 가서 세명의 형제에게 동시에 사랑을 받는 이야기다. (웃음)
무거운 이야기보다는 약간의 기분전환적인 요소가 강할 것 같다. 
자세한 책 소개가 없어서 그 궁금증을 더하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고...

너무나 독특한 제목. 절대 잊을 수 없는 제목에 웃음부터 난다. ^^ 
근데,
혹시 다시 태어난다면, 혹은 이 책처럼 과거로 돌아간다면,
언년이가 아니라 양반댁 규수로 태어나고 싶은 게 더 깊은 바람 아닐까? ㅎㅎ





도도하기가 하늘을 찌른다는 우아하고 고상한 남자 주인공 익현.
용기백배의 캐릭터를 구사해주는 여주인공 노은.
뭐, 서로가 그렇게 다르니까 자석처럼 끌리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이치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니까. ^^ 
정경하님의 출간작 중 절반 이상을 읽은 내가 생각하기에 이번 신간도 역시나 절반 이상의 만족감을 주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사실 이 책에 대한 사전정보가 없었던 내가 판단하기에 작가의 네임벨류를 통한 선택에 더 무게감을 두게 된다.
"건강검진 예약 잡아라."
"어디 불편하십니까?"
"심장이 뛴다."
꺄악~!! 이런 달콤한 대화를 입 밖으로 뱉는 남자라니... 어흑...


 

"당신이라면 좋겠어. 윤이와 내 곁에 있어줄 사람, 오래오래 영원히 함께......"
사람이 사람에게 마음이 흐르는 이유는 없다.
누군가가 사랑하는 이유를 대라고 하면 못 대는 것처럼 마음이 그렇게 흐르는 것에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사랑에 서툰 그녀 이수에게도, 한 아이의 아빠인 그, 윤이아빠에게도...

제목이나 소재도 특별한 거부감이 없이 신간소개를 보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제목이나 소재보다는 순전히 표지의 색깔 때문에 먼저 내 눈에 들어왔던 것 같다.
표지의 색감이나, 물방울이 흘러내리는 것 같은 저 표지에 자꾸 손길이 간다.
다른 책들보다 한 번은 더 쓰다듬어주고 싶은...
주인공들에게 저 표지에서 흐르는 빗물 같은 눈물은 흘리지 않길 바라는 마음도 함께...



사실 이 작품이 나에게는 이 작가에 대해 처음 알게 해준 작품이다.
아직까지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책 소개글을 보고 있는데 드는 생각은, 새롭고 참신한 소재는 아닌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뻔한 설정을 어떻게 그려줄지 동시에 궁금해지게 만든다고나 할까?

돈을 갚는 것 대신 몸으로 때우라는 서태림 주인님. ^^
“주인님이라고 불러. 주인이란 말 몰라? 고용 관계에서 고용주를 일컫는 호칭이잖아.”
또 그런 조각미남 주인님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 김도연. ^^

늘 그렇듯, 사랑은 언제 어느 순간이든 피어나게 되어 있다. ^^




솔직히 '제목이 좀 유치한 거 아냐?'라고 생각하다가 소재를 보고 끌렸다고나 할까. ^^
로맨스소설의 충실한 그 법칙처럼 (어쩌면 로맨틱 영화를 보는 것처럼) 내용이 더 궁금하게 만드는 소개 글이었다. 읽기 전의 달달한 그 설렘을 주고 있기에 충분한.
걸걸한 목소리가 컴플렉스인 여자 온주와 얼굴 없는 인기 작곡가 정우. 우연히 만나게 된 두 사람이고 서로의 목적에 충분한 상태로 유지되는 만남 같았지만...
서로가 서로의 숨겨진 존재를 모른 상태로 만나면서 쌓이는 그 두근거림이 배가 될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로가 서로를 팬으로 마음에 담았으니 그 대상에 대한 열렬함이 높아질 수 밖에 없을 것도 같고...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줄 이야기 같아서 담아본다.





아우... 처음에는 시대물인줄 알고 혹시나 싶어서 소개글을 천천히 잘 살펴봤다. (웃음)
시대물은 아니고, 전작이 있는 시리즈 같은 이야기였구나...
남장여인인것처럼 보이는 여주인공과 카리스마 작렬인 남주인공. ^^
처음에는 표지 색깔이 예뻐서 좀 살펴본 정도였는데, 내용을 보니 쫌, 많이 땡겨.
괜히 소개글 읽고 전작들까지 검색을 촤라락...

"고결한 귀족 가문의 계승자이자 세계적인 호텔 왕 피에르 드 에스토흐, 퀸을 납치하다!
과거 사랑하는 여인의 배신으로 누구도 믿지 않게 된, 피마저 싸늘한 피에르 드 에스토흐.
그러나 세상에서 오직 한 명, 자신의 여동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남자.
그는 여동생을 위해 퀸으로 변장한 도아를 납치한다.
그러나 너무나 아름다운 외모와 강한 이끌림에, 남자임을 알면서도 퀸에게 속절없이 빠져드는데…….



나에게 이상한 선입견이 하나 있었는데...
라디오 조연출과 유명 배우의 만남 같은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조화는, 일반인이 연예인을 만나는 것처럼 어색하고 어느 별나라 이야기일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게 했었는데...
사실 라디오나 방송국 이야기 좋아하는데, 이 책 안에서 얼마나 그 비중을 두어 그려졌을지는 모르겠다. 단지, 그게 어느 정도의 큰 거리감이 아닌, 그저 사람과 사람으로 그려졌기를, 인격적으로 그려졌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
작가의 전작들이 나에게도 크게 거부감이 없었으니, 이 책 역시도 그러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기대감이 자리잡는다.

추운 겨울을 더 따뜻하게 만드는 이야기들. 사랑... 좋잖아... ^^




음...
나쁜남자의 표본 같은 남주 강은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근데 사실은 나쁜 남자가 아닐 것 같아... ^^)
한편으로는 이런 이야기가 나한테 맞을까 싶기도 하는 궁금증이 생기고...

바다의 블랙홀이라는 블루홀...
그래서 더 유혹적이면서도 다가가고 싶은 치명적인 매력이 있는 곳.
그 남자 강운의 사랑은 블루홀...
한 번, 빠져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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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 빔 벤더스의 사진 그리고 이야기들
빔 벤더스 지음, 이동준 옮김 / 이봄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너 나 할 것 없이 요즘에는 휴대품이자 필수품이 되어버린 카메라. 내가 생각할 때, 카메라가 더욱 발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필름카메라가 아닌 디지털의 등장이다. 흔히 말하는 ‘똑딱이’부터 DSLR.(내가 아는 게 이정도 밖에 안 되니 여기까지만 언급해본다.) 사진이나 카메라에 대한 것은 잘 모른다. 굳이 필요에 의해서 찍어두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카메라와 가까이 할 일이 없다. 문득 생각해보니 언젠가부터 카메라 앞에 서 본적도,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해 무언가를 찍어본 적도 거의 없는 듯하다. 그러니 더더욱 낯설어질 수밖에 없나보다. 그리고 카메라를 통한 무언가가 더 간절해지지도 않는다. 필름 카메라를 쓸 때는 필름을 낭비할 수 없다며 오직 한 장을 위한 사진을 찍기 위한 마음이 있었는데, 디지털화 되고 부터는 그렇게 욕심내어 본 적이 없다. 필요하면 찍고, 맘에 안 들면 삭제하고, 부족한 부분은 수정도 하고, 몇 번이고 다시 찍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그다지 절실해지지 않음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때로는 그립기도 하다. 오직 한 장을 위해 찍는 일이, 오직 한 장만이 인화되는 순간이, 파일로 만들어진 사진이 아니라 ‘찰칵’하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의 찍힘이 가끔은 그립다. 그래서인지 가끔 폴라로이드를 찍을 때가 있다. 굳이 잘 정돈된 모습이 아닌, 그저 흐릿하게 나오는 장면이라도 한 번은 그렇게 찍어두고 싶어질 때가 있다. 또한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함을 대신해주려 나타나는, 사진이 가득 담긴 이런 책들을 만날 때면 두근거림과 동시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어딘가에서 빛바랜 추억 한 자락 저절로 끄집어내게 만드는 것만 같아서 말이다.

 

 

독일 전후 세계를 상징하는 대표적 감독이라는 빔 벤더스. 솔직히 고백하건데, 나는 ‘빔 벤더스’라는 이름을 모른다. 그 이름을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났다. ‘빔 벤더스’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고 많이 낯설기까지 하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에 대해 찾아보니, 조금은 아는 척을 해도 되겠다. 적어도 그가 만든 영화의 제목은 알고 있으니 말이다. (웃음) 하지만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그가 만든 영화나 영화에 대한 느낌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오직 이 한 권에 가득 담겨 있는 그가 보여주고자 했던 사진들과 그 사진들과 함께 한 그의 글을 더 느끼고 싶다. 그가 담은 사진들을 통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와 느낌들을 더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했다.

 

 

그가 그동안 같이 작업했던 영화인들과의 한 컷, 어디론가 이동 중에 비행기 경유지에서 우연히 만난 지인과 한 컷, 무심한 풍경 속에서 한 컷, 의미 없어 보이는 사물에도 한 컷, 무더위 속의 계절 안에서도 한 컷. 그가 찍어낸 사진들은 모두 한 컷이다. 그는 모든 것에 단 한 번의 찍힘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오직 한 장 밖에 없는 그 한 장의 사진들과 함께 그의 생각과 느낌을 담아낸다. 추억 한 자락 끄집어내기도 한다. 하고 싶은 말 한 마디 덧붙이기도 한다. 누군가를 기억해내기도 한다. 모든 것이 오직 한 번이다. 그 찰나의 순간에 찍힌 사진도, 그 사진과 함께 한 느낌과 생각의 기록도. 한 번은, 한 번은, 한 번은.

 

 

 

이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 셔터를 눌러 사진을 찍을 때,

그 순간은 》단 한 번의《 순간이 된다.

시간이, 멈추지 않는 우리의 시간이,

사진으로 자신의 유일무이함과 고유함을 증명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단 한 번의 순간은

한 장의 사진이 없었다면 영원히 잊힐 수도 있었던

한 편의 이야기로 이렇게 태어난다. 

 

살아가는 모든 순간은 한 번이다. 이유 불문하고 다시 되돌려 ‘두 번’을 살아갈 수는 없다. 그저, 그런 것이다. 한 번. 오직 한 번의 시간만이 존재하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우리는 자주 그 사실을 잊고 살아가기도 하지만, 아마도 저자는 이렇게 사진들을 찍어가면서 그 순간의 느낌을 기억해내면서 저절로 잊지 않게 된 게 아닐까 싶다.

 

처음 일곱 살 때 사진을 찍었고 열두 살 때 자신만의 암실을 만들었다는 빔 벤더스. 열일곱의 나이에는 아버지에게서 라이카 카메라를 선물 받았단다. 그러나 그 자신은 한 번도 사진작가의 꿈을 꾼 적은 없다고 한다. 사진은 자신의 일부이지 직업이 아니라면서. 그가 그런 생각으로 그동안 찍은 사진을 통해 그가 느끼고 만족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는 아마도 셔터를 누르면서 ‘찰칵’하던 그 순간에 자신이 보았던 시선과 자신이 그 순간 느꼈을 그 마음, 그 순간의 피어오르던 감동을 알아가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 ‘만족’이란 것의 의미는 각자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 ‘만족’을 주는 것도 각자가 다 다른 것처럼. 그가 느낀 그 순간의 모든 것들이 그에게 만족을 주었기에 생업도 아니고 전부도 아닌 그 ‘사진’이란 것을 그가 시작했고 계속 하고 있는 이유일 것 같다고. 그리고 오직 한 번. 그 한 번의 의미로 충분하다고.

 

 

“한 번은 아무것도 아니다.”란 속담이 있다.

내가 아직 어린아이였을 땐

이 말이 꽤 명쾌하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적어도 사진에 있어서 이 말은 옳지 않다.

사진에 있어서 한 번이란,

정말로 오직 단 한 번을 의미한다.

 

 

보이는 모든 것들과 모든 순간이, 흐뭇하게 웃음이 나게 하기도 하고 그 순간의 감정에 눈물이 나기도 한다. 오직 단 한 번 밖에 느낄 수 없는 그 찰나의 순간의 고유함이 전해지는 듯하다. 사진이 가지는 그 순간의 고유함을 조금을 알 것도 같다. 멈추지 않고 가기만 하는 우리의 시간의 모든 기록과 순간들이, 계속되고 있는 것들 사이에서 조금은 들여다보고 갈 수 있게끔.

이 책은 사진집이면서 동시에 저자의 느낌이 그대로 활자로 담긴 수필집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이상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책 속의 말처럼, 사진이란 것이 나의 위치에 따라 찍는 게 달라진다는 게 마냥 신기하다. 그게 같은 것을 두고도 다르게 보는 사람들의 다양성을 그대로 설명해주는 것만 같다. 저자는 그 모든 것들을 자연스럽게 설명하듯 이야기 한다. 사진과 그 사진에 덧붙여진 자신의 마음을 조용히 들려주면서 말이다.

그것이, 딱 한 순간, 지금, 아직도 사진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다.

 

 

단순히 사진만이 가득 담겨 있었다면 만화책 보듯 휙휙 그냥 넘겼을지도 모른다.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은 더디게, 한번은 더 그 글을 머금고 넘기느라 짧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충만감이 생긴다. 사진을 통해서 본 모든 순간들과 그 사진들 사이사이에 이어져가는 저자의 이야기가 포근하다. 사진을 보면서 자칫 가질 수 있는 인공적인 느낌이 아니라 오히려 한 편의 이야기가 계속 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천천히 음미하듯, 누군가의 기억을 더듬어보듯,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듯이 볼 수 있는(읽어갈 수 있는) 편안함을 준다.

 

더불어 이런 다짐도 하게 만든다. 기록의 습관을 가져야겠다고.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진다. 기억도 희미해지고, 사진도 빛이 바랜다. 그 모든 것들의 순간의 기록이 얼마나 중요하고 때로는 아름답게도 느껴지는지 새삼 알게 된다. 그 순간의 느낌은, 오직 ‘그 순간’에만 딱 한번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나는 책을 읽고,

눈에 들어오는 구절의 사진을 찍어 두고,

그 글귀를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지금 그 느낌을 적어 내려가고 있다.

오직 이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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