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무민 골짜기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8
토베 얀손 지음, 최정근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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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조금 무민의 이야기를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벌써 무민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괜히 서운했다. 무민 가족과 그 친구들이 들려주는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에 일상의 다정함 같은 것을 전해 받는 느낌이었다. 착해지는 마음이라고 해야 할까. 투덜거리고 싸우는 것 같아도 진짜 마음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아서일까, 이들이 주고받는 마음이 그냥 생겨난 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니 더 푸근해지곤 했다. 그런 이야기를 이제는 더 들을 수 없다니, 매우 아쉽다.

 

무민 가족은 어디로 갔을까. 무민 가족이 없는 골짜기로 모두가 모였다. 어쩌다가 이렇게 다시 모여들었는지. 여름의 싱그러움은 점차 사라지고 겨울을 바라보는 가을에 이들은 다시 만났다. 바람은 차갑고, 웬만한 곳의 문은 다 닫혔다. 겨울과 함께 추위와 어둠이 몰려올 것이다. 그러니 꽁꽁 닫힌 문은 더 단단하게 닫히길 바라겠지. 그런 숲길을 걷는 스너프킨은 무민 골짜기의 친구들이 일어날 시간을 기다린다. 그럼블 할아버지와 헤물렌, 밈블, 토프트, 필리용크, 스너프킨. 이 여섯 명이 무민의 빈집으로 찾아온다. 무민 가족이 없다는 것을 미리 알았는지 몰랐는지, 아무렴 어떤가 싶은 마음들인지 무엇인지. 주인 없는 집에 모인 이들의 추운 날이 시작된다.

 

각자의 시간을 살면서 이들은 무슨 일을 겪었던 것일까. 마음에 어떤 생채기를 담게 되었을까. 무민의 골짜기로 모여든 이들은 각자의 아픔이 있다.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 상처 가슴에 품은 채로 살고 있다. 듣는 내가 다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아픔은 오늘을 힘들게 한다. 외롭고, 우울하다. 삶의 피로를 느낀다. 하지만 그들이 기억하는 무민 골짜기는 따뜻한 곳이다. 함께했을 때 그들은 즐거웠고, 그 시간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푸근했다. 아마도 그런 기억과 기대로 다시 그곳에 모여들었을 것 같다. 나의 마음 어루만져줄 유일한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그런 시간, 그런 장소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살아가기 마련이지 않은가. 돌아가고 싶어지는 곳, 그곳에서 마주한 것들로 마음을 채우고 싶은 곳 말이다. 무민 가족은 걱정 없이 사는 듯했고, 일상이 평화로웠다. 아마 그 분위기에 스며들고 싶어서 찾아왔을 텐데, 무민 가족은 없고 집은 텅 비어있었다. 그래서 기다리기로 한다. 주인 없는 집에서 언제 올지 모를 무민 가족을 기다린다. 그건 아마도 간절한 바람 같은 게 아니었을까. 무민 가족을 만나고 그들의 평화로움을 접하고 나면 다시 그들만의 세계로 돌아가도 더는 아프거나 슬프지 않게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 같은 거.

 

주인 없는 집에 모인 방문객들이 같이 살아가는 모습은 편하지 않다. 각자 개성이 너무 뚜렷한 이들이 어떻게 지낼지 눈에 선하다. 고집불통에, 소심하고, 결벽증이 심하기까지 하는 이들이 어떻게 한 공간에서 머물 수 있겠는가 싶지만, 어쩌랴, 기다리는 이가 있는 것을. 기다려야만 하는 것을. 이들의 불만은 서로가 맞지 않는 성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마 이런 기분 때문이지 않을까? 그런 거, 학교 갔다가 돌아왔는데 집에 엄마가 없어서 괜히 투덜투덜, 뭔가 불안하기도 하고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없어서 툴툴거리고, 자꾸만 이 방 저 방 문 열고 엄마를 불러보기도 하는, 없는 걸 알면서도 언제 올지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입만 툭 내미는 거. 그들이 바라던 이는 그곳에 없고, 다른 이들과 한 공간에 머물면서 예상 밖의 일(무민 가족이 없었던 일)을 감당해내야 하는 불편함과 괜한 서운함 같은 거 말이다. '나는 아니야, 나는 달라, 그런 거 아니거든!' 이러면서 나에게 변명 같은 화를 낼지도 모르지만,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릴 적 엄마의 부재로 집이 텅 비어있던 순간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또 그 순간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처럼, 또 그들만의 조화를 이루면서 무민 가족이 없는 순간을 견뎌낸다. 혼자였다가 함께였다가, 각자의 뚜렷한 성격으로 서로가 맞지 않으면서도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무민 가족을 기다린다는 것. 그렇다면 함께 해야만 하는 순간도 인정해야 한다.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그들의 공통된 기다림을 즐겁게 보내야 한다. 그렇게 또 하나를 겪는다. 배운다.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벽을 세우면서도 타인과 함께 하면서 맞춰가는 스스로를 보게 된다. 이런 변화가 성장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치유와 위로가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무민 골짜기의 겨울은 해가 뜨지 않는다. 그 겨울의 길목에서 모인 이들의 마음도 딱 겨울이었을 것이다. 이 겨울을 견디는 법을 배우고자, 혹은 위로받고자 찾아온 곳에서 더 혹독한 겨울을 보낼 것만 같은 상황이 두렵기도 했을 텐데, 그래도 견뎌내는 이들의 모습이 은근한 감동을 준다. 화창한 여름에서 대부분의 것이 소멸하는 겨울로 가는 그 과정은 겪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스산하고 춥다. 마음마저 춥다면 한파를 제대로 겪는 겨울이 되겠지. 하지만 그 겨울을 거치지 않고서는 다시 봄도, 여름도 만날 수가 없다. 무민 골짜기로 모여든 그들의 삶에서 사라진 그 무엇은, 결국 스스로 찾아야만 한다는 것을 이렇게 배운다. 추운 계절을 겪고 따뜻한 계절로 건너가는 것처럼, 무민 가족의 힘을 받아 건너가고 싶었던 마음의 겨울은 스스로 건너가야 했던 거다.

 

가을이 조용히 겨울을 향해 가는 시간은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는 시간이자, 필요한 무엇이든 창고에 그득하게 채워 넣는 시간이었다. (12페이지)

 

읽으면서 내내 무민 가족은 언제 등장하는지 기다렸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마치 나도 모르게 도움을 줄 누군가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내 안에서 부족한, 사라진 것들을 채우기 위해 누군가를 기다리는 건 의미가 없다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무민 가족은 등장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 부분이 이 이야기의 메시지가 되는 듯하다. 누군가는 다시 떠나고 누군가는 아직도 기다리고.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마음이 흐르는 대로, 겪고 배운 만큼의 시간으로 또 내일을 살아간다. 다시 돌아오는 무민 가족을 만난다면, 괜히 더 반가울 것 같다. 당신들이 사라진 빈집이 마치 마법을 부린 것 같다고 말해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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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터
김호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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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청소년 문학을 읽을 때 보이는 장면이 있다. 부모는 자기의 못다 이룬 꿈을 위해 자식에게 자기의 바람을 집어넣는다. 어렸을 적 간절히 바라던 꿈이 있었지만 이루지 못한 채로 성인이 되었을 때, 이루지 못한 그 아쉬움을 자식에게 달래고자 할 때 말이다. 그래서 종종 자기의 간절함을 자식에게서 이루게 하여 만족하고 싶어 한다. 그 바람은 자식과의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이루지 못한 꿈으로 남아있기도 한다. 아쉽고 또 아쉽지만 어쩌랴. 세월은 흘렀고, 이미 어른이 되었으며, 자기의 꿈을 자식에게 강요하기보다는 자식의 인생을 응원해 주는 게 부모의 역할인 것을. 하지만 미련하게도 남아있는 게 있다. 아쉬운 그 마음은 죽을 때까지 이루지 못한 바람을 끌어안고 사는 게 될지도 모른다. 마음 한구석, 언제나 갈증을 일으키는 그것은 무엇일까.

 

이 소설에 등장하는 기득권층의 취미 같은 게임도 비슷하다. 나이는 먹었고, 돈은 많다. 어떤 식으로든 돈을 축적하면서 노년에 이르렀다. 아마도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으로 돈을 쌓았겠지. 당연하다. 누구라도 돈의 힘을 무시할 수 없는 게 바로 세상 아니던가. 그들이 살아온 인생을 부정하거나 그들의 돈을 욕하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그들이 아바타처럼 조종하는 젊은이들의 인생이다. 오롯이 자기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가야 하는 게 맞는 건데, 그들에게 선택당한 젊은이들은 자기 맘대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하다. 그걸 아무도 알지 못한다. 오직 젊은 인생들을 조종하는 그들만 알 뿐이다.

 

"순간이여…… 멈추어라. 너는 너무도 아름답다. 이제 멈추어라…… 너는 참으로 아름답다……." (98페이지)

 

메이저리그 진출을 앞두고 있는 박준석은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 사고로 최경이라는 여자를 알게 되고, 경은 준석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한다. 준석의 머릿속에 거머리가 심어져 있고, 그 거머리는 파우스트에게 준석의 모든 일상을 지켜보게 한다는 것. 준석이 보고 듣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파우스트가 똑같이 경험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준석의 인생을 누군가가 준석과 똑같이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같은 인생을 두 사람이 사는 게 문제라기보다는, 파우스트가 조종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파우스터가 바로 그 젊은이들이라는 게 문제다. 누가 감히 타인의 인생을 조종할 수 있는가? 개인의 아쉬운 인생을 좀 풀어보고자, 타인의 인생을 마음대로 조종해도 된다고 누가 허락했느냔 말이다. 메피스토 코리아는 창립멤버이자 메피스토 코리아의 개설을 도운 태근은 자기의 젊은 시절을 보는 듯한 야구선수 준석을 골랐다. 형편 때문에 꿈을 이루지 못할 상황에 부닥친 준석에게 보이지 않는 손으로 여러 방면에서 도우면서 준석이 야구선수로의 탄탄대로를 걷게 만든다. 준석은 몰랐지만, 준석이 현재의 선수로 키워지기까지 구석구석 태근의 손이 미친 것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10년 동안 준석이 이룬 삶은 준석의 것이 아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준석만이 바라는 꿈이 있고, 길을 걸어왔던 것도 맞다. 하지만 오롯이 준석만의 의지로 온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이건 누구의 인생이 되는 걸까?

 

정말 그런 단체가 있을까 싶었다. 소설은 판타지 느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혹시 지금 이 세상에 우리가 모르는 이런 집단이 있지 않을까 싶을 가능성도 열어두게 한다. 과거에는 여러 가지 여건으로 이루지 못한 것을, 시간과 돈이 있는 지금 누리듯이 가능하게 한다는 이야기가 과연 상상만으로 멈출 수 있을까. 타깃을 정해 자기가 키우는 애완동물처럼 조종하고, 타깃이 느끼는 그대로를 내가 느낄 수 있다는 게 불가능하기만 한 걸까? 세상은 끊임없이 발전해왔고, 현재도 미래도 여전히 발전 가능성을 열어두고 살아간다. 그러니 언젠가는 이런 설정의 상황도 예상할 수 있다. 그게 언제쯤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소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마냥 허무맹랑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다만, 이 소설에서는 파우스트와 파우스터 사이에 연결된 것으로 노인이 젊음의 시간을 대신 경험하고 있다는 게 잘못되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이 이걸 게임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악질이라는 거다. 파우스트와 파우스터를 연결하는 메피스토는 회원을 모집하고, 모집된 회원은 파우스트라 불리며 그들의 돈을 파우스터에게 투자한다. 얼마의 돈을 투자해서 어떤 상황을 만들고, 그런 상황은 그들의 파우스터가 탄탄대로의 길을 가게 인위적으로 만든다.

 

살면서 느낀다. 부정부패의 순간들 말이다. 공정한 경쟁으로 이뤄져야 할 장이 때로는 누군가의 힘으로 불공정해진다. 그로 인해 피해자가 생긴다. 누군가가 죽는 일도 흔하다. 메피스토에 가입비 100억을 내고 들어오는 65세 이상의 노인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 누구나 자기 인생이라고 의심하지 못할 시간을 자기들이 조종하여 하나의 인형을 만들어가는 일. 돈은 들지만 인생의 만족을 느낀다면 한번쯤 시도해보고 싶지 않을까? 가끔 이런 질문 많이 해보지 않는가, 스무 살로 돌아간다면,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하는 만약을 상상하며 즐거워보고 싶은 바람들. 젊은 육체를 얻을 수는 없지만, 젊은 육체를 가진 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의 많은 것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흥분될까. 자식은 마음대로 안 되지만, 파우스트의 파우스터는 자기 맘대로 조종되는 게 얼마나 만족스러울까 싶다. 그 만족감으로 오랜 시간 큰돈을 들여가면서도 파우스터를 지켜보는 재미를 놓고 싶지 않았겠지.

 

자식들은 절대 부모 마음대로 될 수 없다. 부모 마음대로 되는 자식이란 또 얼마나 바보 같은 존재인가. 하지만 파우스터는 다르다. 파우스터는 자식들이 해줄 수 없는 모든 것을 대체해준다. 파우스터는 새로 태어난 나다. 내가 되고 싶었던 청년이고 내게 없었으며 하는 것들을 제거한 젊음이다. (244페이지)

 

파우스팅의 여운이 계속되고 있었다. 남선은 취해 잠들었을 은민을 떠올리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나의 아이이자 나의 청춘이자 나의 분신이다. 나는 그녀의 후원자이자 절대자가 되고 싶다. 아니 그녀가 나고 내가 그녀가 되고 싶다. 남선은 더 밀어붙이고 싶었다. 중독되어가는 걸 알고도 남선은 멈출 수가 없었다. (299페이지)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김혜자의 마지막 대사가 기억난다. 드라마를 본 당시에도 뭉클했지만,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상을 받은 배우의 소감 역시 드라마의 마지막 대사였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중략) 후회만 가득한 과거의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열심히 사느라 놓친 순간들을 아쉬워하며 지금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닐까 싶다. 그 아쉬움에 사로잡혀 살아가야 할 순간의 많은 것을 다시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 같다. 세대의 갈등은 언제나 있어왔지만, 세대의 차이와 변화를 인정하지 않아서 그 갈등을 심화시키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부모니까, 내가 이렇게 너를 키웠으니 부모의 뜻에 따라주어야 한다는 강요 같은 권위를 행사하는 게 관계를 악화시키는. 언제까지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을 품게 한다. 누군가를 조종할 수 있다고 믿는 당신은 완벽하게 조종당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간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소설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반전은 타인의 인생을 조종할 수 있다고 여겼던 이들이 얼마나 불완전한 믿음을 갖고 살아왔는지 증명한다. 누군가가 만들어주지 못하는 인생이다. 준석이 마운드 위에서 공을 던지며 자기 존재감을 확인해나가는 삶이 진짜 인생이듯, 그렇게 조금씩 쌓아가는 게 답인 거였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나오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한 가지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다"는, 배우가 전하는 드라마의 대사는 이 소설에서 보는 욕심들을 한방에 무너뜨린다. 자기가 경험한 것만이, 자기가 쌓아 올린 것만이 자기 인생이 된다. 그게 비록 슬픔의 눈물을 뿌리는 시간이었을지라도, 누군가 대신 설계하듯 만들어지는 인생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생생하게 전한다. 내가 이루지 못한 많은 것을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서 다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인간의 욕망이 끌어내는 과함은 언제나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작가의 전작을 몇 편 읽었는데, 그때도 페이지 터너의 힘을 대단하게 보여주더니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설정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결말에 이르기까지 독자를 끌고 가는 힘이 대단하다. 상상 가능한 만약으로 시작하고,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상상을 무너뜨리듯 주저 없이 달리기하더니, 불가능한 시도의 끝을 보여주겠다는 듯이 절망하여 넘어지게 한다. 스토리가 탄탄해서 읽는 재미가 있다. 뭐가 또 나올지, 다음 작품도 저절로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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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지도 - 우리의 습관과 의지를 결정하는 마음의 법칙
이인식 지음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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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내 건데, 이상하게도 그 마음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내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때도, 사람을 대하면서도 그 마음을 읽고 이해하기가 어려울 때도 많다. 도대체 우리 마음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기에, 어떤 요소들을 품고 있기에 마음의 행방을 알기가 어렵단 말인가. 이 마음을 주관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렇게 인간의 마음은 너무도 복잡하여 알아도 끝이 없을 것 같다. 그런 우리의 궁금증을 알아서일까. 저자는 '마음의 지도'라는 안내서를 통해 단순하지 않은 인간의 마음을 정의하기에 이른다. 그렇다고 저자의 정의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져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이 궁금해서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이 참여하여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마음에 관한 호기심은 공통적이었던 듯하다.

 

저자는 30여년의 조사 기간, 500여명의 학자의 말과 저서를 인용하고, 200여 편의 참고문헌으로 250년 마음 연구의 성취를 이뤄냈다. 그렇게 마음의 본질을 연구하여 집대성한 책이다. 어느 한 분야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학문에서 마음에 접근했다. 그렇게 다양한 학문의 협조(?)로 연구된 내용이라고 하면 어려울 것도 같지만,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쉬운 말로 들려준다.

 

1부에서는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물으면서, 보통 사람의 마음, 특별한 사람의 마음, 행복한 마음을 말한다. 역마살이 창의력을 키운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시야를 넓혀 많은 것을 보게 되는 건 당연하게도 다른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갇힌 곳에서 보는 것은 너무 익숙하다. 사람이 많은 것을 볼 때 생각도 다양해진다는 건 자명하다. 처녀들이 봄을 타는 이유 역시 흥미롭다. 겨울의 우울증이 실재하는데, 그 때문에 봄 열병 역시 실재한다. 물론 증명하기에는 학문적 근거가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아는 마음 아니던가. ^^ 1부의 마지막 부분에 언급하는 '행복한 마음을 만드는 것'은 학문적 근거만큼이나 보편적으로 아는 내용이다. 경제적인 행복은 금액이 정해진 것이 아니고, 행복은 커다란 덩어리 하나가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는 거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행복을 부른다. 매 순간의 작은 마음들이 모여 행복한 마음을 만든다.

 

확장 및 구축 이론은 여러 차례 실험에 의해 입증되었다. 기분이 좋아지면 뇌가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되므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고의 폭이 확장되는 것으로 밝혀졌고, 창의성과 문제해결 능력이 개선된다는 실험 결과도 나왔다. 또한 프레드릭슨은 일시적인 긍정적 정서로 인해 인지능력이 확장되면 오랫동안 긍정적인 마음의 상태가 구축되는 것을 밝혀냈다. (94~95페이지)

 

2부, 3부는 우리가 겪는 사회와 세상에 관해 반응하고 생기는 마음들을 말한다. 첫인상으로 친구와 적을 알아보기도 하고, 누군가는 순식간에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기술을 알기 위해 마음을 읽기도 한다. 인간은 이기적인 측면도 강하지만, 페어플레이할 때는 상대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도 강하다. 그런 인간의 선한 마음에 반대되는 폭력적인 마음도 있는데, 인간의 폭력적인 성향은 뇌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착한 사람도 폭발할 때가 있다. 그리고 사이코패스에 관한 선입견 중에 폭력적일 거라는 게 있는데, 실제 사이코패스가 다 폭력적인 건 아니다. 오히려 신사적이고 친절한 얼굴을 하곤 한다. 인간에게 키스는 몸 냄새를 교환하는 행위이며, 사람마다 애착 성향이 달라서 사랑의 모습도 다르게 나타난다.

 

명품에 지갑을 여는 이유는, 생물학에서 과시적 소비에 해당하는 개념은 장애 이론으로 설명된다. 장애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로맨틱한 사랑은 필연적으로 과시적 소비인 셈이다. 상대의 환심을 사기 위해 과도한 선물, 과도한 웃음 공세, 과도한 외모 가꾸기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과시적 소비 본능은 명품으로 상대방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할 수 있지만,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한다. 인간의 신뢰나 사랑을 얻으려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잠재적 이득과 관련된 선택을 할 때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경향이 있는데, 손실에 의한 심리적 효과는 이득에 의한 심리적 효과보다 적어도 두 배는 큰 것으로 여겨진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재적 이득이 잠재적 손실보다 최소한 두 배가 되지 않을 경우에는 돈을 벌거나 잃을 확률이 50대 50으로 전망될지라도 이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밑지는 건 참을 수 없다는 인간의 마음은 이렇게 설명된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무책임한 아버지 때문에 지능 발달도 더디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가장은 도박이나 범죄에 휩쓸리기 수비고 바람을 피울 가능성도 크다. 아버지가 가출한 가정에서 자란 소녀는 성적으로 조숙에서 어려서 임신을 하기 쉽다. 게다가 아버지의 사랑을 모르고 자란 아이들은 지능 발달도 더디다. (215페이지)

 

4부의 우리가 모르는 불가사의한 마음은 초심리학이나 유체이탈, 예지 능력을 말하며, 과학적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긍정적인 면도 보인다. 가령, 심령요법으로 마음의 병을 고치는 등 과학이 증명하거나 해결해주지 못하는 문제들 말이다. 학문보다는 감정적인 측면으로 접근하는 게 아닐까 싶다. 또한 죽음이나 신앙에 관한 것도 인간 마음의 아이러니를 말하는 부분이다. 몸과 마음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마음의 문제가 해결되면 몸이 나아지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 역시 인간의 마음을 다 알기는 어려운 것 같다. 5부에서는 마음의 미래를 말하는데, 조금 더 먼 미래의 우리 마음 작동법을 듣는 것 같다. 과거를 생각하면 현재도 미래의 시간이었고, 불가능해 보이던 것들이 가능한 것으로 미래를 채웠다. 그렇게 생각하면 현재의 우리가 맞이할 미래의 마음도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미래에는 인간의 마음도 통제될지도 모르고, 인간의 뇌를 컴퓨터가 그대로 읽게 되는 일 같은 거 말이다.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에서 봤던 것들이 실제 우리의 미래에서 마주할 수도 있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2010년 4월 중순 펴낸 『자살에 관한 신화』에서 세계적 자살 이론 전문가인 조이너는 자살의 뜻을 이룬 사람은 공통적으로 두려움을 모르고 고통에 무감각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아무리 자살하고 싶을지라도 겁이 많거나 숨이 끊기는 순간의 고통을 견뎌내지 못하는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 확률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살에 끝내 성공한 사람은 제3자가 중경상을 입거나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으로 밝혀졌다. (327페이지)

 

마음을 아는 것이 인간을 아는 것이라고 했다. 오랫동안 미지의 영역으로 간주하였던 인간의 마음을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다양한 예를 들어 설명해주고 있는데, 우리 일상에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질문들이어서 편하게 읽힌다. 그 질문들의 답을 들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동안 알 수 없던 마음의 이야기들을 재밌게 듣게 된다. 우리가 가진 못 마땅한 성격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그 성격을 바꿀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전하는 말에 따르면, 성격을 바꿀 게 아니라 그 성격의 단점을 드러나게 하는 환경을 바꾸는 게 낫다는 것. 그러니 그 어렵다는 성격 바꾸기를 시도하려고 힘들게 애쓰지 말고, 성격 주변의 것들을 바꾸는 것으로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 인간에 대한 이해는 사회 시스템과 개인에게 모두 영향을 주고, 사람으로 인한 내적 갈등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럴 때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좀 더 잘 알고 있다면 혼란보다는 대처에 능숙해질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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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봄이 짧게 지나가려나 보다...
여긴 남쪽 지방이라 그런지
지난 주말에 꽃구경 하기에 딱 좋을만큼 벚꽃이 피었다.

오늘 오후부터 계속 바람 불고 비가 내리는데,
이 비가 그치면 꽃잎도 다 떨어져있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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