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같이 드실래요? 1
박시인 글.그림 / 예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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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맛있는 음식은 너무 많고, 없는 시간도 만들어내어 먹으러 갈 수도 있는데, 같이 먹을 사람이 없다는 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는 이들이 있다면, 도희와 해경을 보시라. 이렇게 함께 먹는 저녁도 괜찮다는, 민망할 것 없다는, 나아가 어떤 인연을 만들어도 좋겠다는 설렘의 시간을 만날 수 있다.

 

스테이크가 먹고 싶었지만 혼자서는 뻘쭘. 그래도 땅기는 걸 어떡할지 몰라서 무작정 들어선 레스토랑. 대기 좌석에 앉아 있는데 직원이 메뉴 먼저 보고 있으라며 메뉴판을 건네면서 하는 말, “커플 메뉴 세트가 할인 중인데, 커플 세트 주문 시 샐러드를 서비스로 드리고 있어요. 어떠세요?” 누구? 나? 직원분~ 당신은 지금 누구에게 하는 말인가요?

 

우연히, 각자 혼자 온 도희와 해경은 그 자리에서 레스토랑 직원에게 커플로 오해받는다. 그런데 직원에게 해명하기 전, ‘그냥 같이 먹는 건 어때?’ 하는 생각이 도희의 머릿속을 스친다. 레스토랑에서 혼자 하는 식사, 커플 할인도 해준다는데, 저녁 먹는 그 시간을 못 견딜 건 또 뭐람. 그렇게 모르는 사이가 같은 자리에서 함께 저녁을 먹고, 저녁 친구가 된다. 혼자서 먹는 주말의 저녁 식사가 허전해서, 뭔가를 먹고 싶어도 혼자 먹으러 가기가 민망해서, 혼자 먹으면 맛이 없으니까. 그래서 이루어진 저녁 식사 협약. 주말 저녁을, 우리 같이 먹읍시다. 한 번, 두 번, 그렇게 서로의 사사로운 일상과 지나간 연애의 추억들을 나누면서 저녁 식사 시간을 쌓는다.

 

연애를 열다섯 번이나 했지만 오래가는 사랑은 없었던 해경과 오랜 시간 하나의 사랑만을 해왔던 도희. 전혀 다른 사랑을 해온 두 사람이 비슷한 구석이라곤 전혀 없을 것 같은데, 먹고 싶은 것을 먹으러 가자는-그게 비록 모르는 사이였을지라도- 건 비슷했다. 그래서 이어지는 시간. 뷔페, 스테이크, 케이크, 삼겹살, 크림 브륄레, 수제 햄버거, 돈가스, 우동, 치맥, 생선회, 그리고 앞으로 더 먹게 될 음식들까지. 별것 아닌 것 같은 음식을 앞에 두고 그때마다 피식 웃음으로 시작하는 그들의 추억담이 펼쳐진다. 수제 햄버거를 먹다가 옛 애인의 딸을 생각하고, 케이크를 사러 갔다가 마주친 옛사랑, 식으면 맛없는 삼겹살을 끝난 사랑에 비유하기도 하는 대화들이 낯설면서도 편안하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식사의 의미가 더 깊어진다.

 

몰랐던 사람과 주말의 저녁 식사를 같이하게 되면서 시작되는 또 다른 인연. 도희의 말처럼 누구에게도 하기 힘든 말들이 부담 없이 술술 나올 수 있게 하는 마력을 가진 상황이 되어버린다. 밥을 같이 먹자는 말, 특히 혼자 먹는 밥이 싫어서 같이 먹자고 말하는 게 쉽게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안 먹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편안함은 잠시 접어두고, 사람과 함께하게 되는 일상적인 저녁식사 시간을 생각하면, 여느 날의 저녁 식사 시간은 단순히 밥으로 허기를 채우는 시간만은 아니다. 배속을 든든하게 채워주는 음식들 외에 더 많은 것이 오갈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저녁식사 시간 아닐까. 불금의 홀가분한 저녁, 오늘의 스트레스 날리고 싶게 퍼붓고 싶은 회식 자리,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여 밥상에 둘러앉을 수 있는 주말 저녁 시간... 곰곰 생각해보면 저녁식사가 이루어내는 게 다양하고 많다. 상대가 누구든, 어떤 자리든, 뭔가 잔뜩 쌓이게 된다는 건 다르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궁금해지기도 한다. 도희와 해경이 주말마다 먹는 그 저녁 식사 시간이 쌓이면 무엇이 만들어졌을지...

 

말 안 해도 알겠지만, 흔한 인사로 밥 한번 먹자고 하면서 실제로 그게 이루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게다가 오랜 시간 소원했던 관계라면 식사하자는 얘기는 더 꺼내기 어려워진다. 음식과 함께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시간과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밥 한번 먹자고 선뜻 말 꺼낼 수 있게 해줄 누군가를 떠올려보면서 연습도 해 본다. “같이, 밥 먹을래?”

 

식사, 그 이상의 것이 함께 밥 먹는 시간이 존재한다는 걸 그대로 보여주는 이야기다. 따뜻하고 설레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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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간에 우린 어쩌면 - 여행 후에 오는 것들
변종모 지음 / 시공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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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여름이었다. (아직도 남은 여름은 진행 중이지만) 거의 한 달 동안 새벽 5시에 눈을 떴다. 자려고 누우면 평균 1~2시간은 뒤척여야만 잠이 드는 나에게, 새벽 5시는 절대 눈 뜨고 있을 수 없는 시간이다. 그런 시간에 눈 뜨게 만드는 건 여름의 더위였다. 일어나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눈이 떠지는 시간이 되고야 만 것. 그 시간에 눈을 뜨고 가장 먼저 온 집안의 문을 열어놓곤 했다. 현관문, 창문 할 것 없이 모조리 다 연다. 그래도 끈적임과 잠 못 들게 했던 더위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여름날 새벽 공기는 이렇게도 더울 수 있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을 뿐.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지나면서 한 가지 더 느끼게 된 건, 새벽바람의 흐름으로 계절의 변화를 그대로 알게 되었다는 거다. 그냥 단순하게 '가을이 오고 있구나' 하는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불어오는 바람이 달라졌음을 그대로 느끼게 되는 거였는데, 그걸 또 말로 표현하자니 어느 한마디로 다 할 수 없는 느낌들이었다. 기분이 묘해지는 어떤 것들. 한 달 전, 일주일 전, 그제, 어제, 그리고 오늘의 새벽바람은 모두 달랐다. 시계나 달력뿐만 아니라 바람으로 직접, 한 달의 시간을 꾸준히 맞으면서 시간의 흐름을 느낀 건, 지금이 처음인 것 같다. 그렇게 지금, 여름과 가을의 경계에 놓여있는 시간.

 

거의 8월 한달동안, 그렇게 눈뜬 새벽 시간에 잠깐씩 책을 읽었다. 많이 읽지는 못하고 길어야 삼십 분, 혹은 스무 페이지 정도. 변종모의 신간 『같은 시간에 우린 어쩌면』은 그렇게 조각내어 읽기에 잘 어울린다. 어느 한 곳의 이야기를 잠깐씩 듣는 게 좋다. 그곳에 두고 온 이야기가 이곳의 일상에서 떠오르곤 하는 순간을 조금은 알 것 같아서 공감이 이어진다. 읽으면서 가끔은 한숨이 쉬어지기도 하고, 알람이 울리기 전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것처럼 문자 작성 페이지를 열기도 하지만, 대부분 사람이 잠들어 있을 시간인 걸 생각하면 그 누구에게도, 한 마디도 보낼 수는 없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참고 있던 할 말들을 툭툭 치고 나오게 하는 순간이 많았다. (저자처럼 엽서를 옆에 두고 있었다면 몇 자 적어서 가방에 넣어서 다녔을지도 모르겠다. 차마 부치지는 못하고...) 그렇게 엽서나 휴대폰 속의 전화번호부 같은 걸 옆에 두고 읽으면 위험해지는 책이기도 하다. 그러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매번 알기에 순간적인 기분으로 사고 치지 않게 긴장하게도 한다. 시간이 그렇고, 그 누군가에게도 그렇다. 그걸 아니까 바로 행동에 옮기지 못하고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지는 거겠지만.

 

할 수 없는 말이 있다. 휴대전화 문자로 보내서는 안 되는 말도 있다. 그럴 때 엽서를 써 본다. 마치 여행 온 것 같은 기분에 젖어, 가까운 이를 멀리 놓고 애틋한 마음으로 엽서를 쓴다. 그것이 크리스마스 카드여도 좋고 생일 카드여도 상관없다. 엽서를 쓰다 보면 나는 멀리 있다. 내가 떠나지 않고서도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방법이 엽서를 쓰는 일이다. 그것은 비행기 표를 사듯, 가야 할 나라를 고르듯, 여행기를 쓰듯 마음속의 일들을 적는다. (154페이지)

 

여행에서 돌아온 이의 하루를 읊는다. 길 위에서 돌아온 여행자의 하루, 스물네 시간을 담았다. 이른 새벽부터 하루가 끝나는 자정까지. 잠에서 깨어 눈 뜨는 그때부터 이어지는 하루의 시간 속에서 뛰쳐나오는 여행지의 감정들이 오늘의 곳곳에 묻어 있던 거다. 일상에서 겹쳐지는 여행지의 장면과 그때의 감정들이 기억을 소환하고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힘들어서, 가슴에 비워진 뭔가가 아파서 떠났을지라도, 적어도 그 길을 걷던, 그곳의 시간 속에서만큼은 행복했을 테니까. 떠나고 싶어서 떠난 자의 마음을 가득 채운 무언가가 아직도 그곳에 있을 거니까. 그런데 그곳과 이곳의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마음의 거리도 있을 거로 생각했다. 다르니까, 그 시간을 걷던 마음과 지금을 살아가는 마음이 다를 수 있는 거니까. 여행은 끝나고, 그곳에서 이곳으로 돌아왔고, 여기에서의 시간은 이렇게 다시 시작하는 거니까 각각의 시간에 선이 있는 거로 생각하곤 했는데... 돌아온 일상에서 그곳의 기억들을 함께 가져와 생각하고 다짐한 것들로 살아가는, 밟아가는 땅을 다질 수도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잠깐이지만 행복했던 시간을 이곳에 보태고 어떤 시간을 떠올리며 웃을 수 있는 시간을 그리는 것. 그러니까 여행을 떠났던 그때 그 마음과 여행지에서의 시간을 잊지 않게 하는, 잊었더라도 잊을 수 없는 일상을 보여준 거였다. 잊겠다고 해서 잊히는 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는 우리니까, 떠올리자고 작정하지 않아도 떠오르는 것들이 이렇게 된다는 것도 잘 알게 되는 거겠지.

 

명동에서 시애틀 빌딩 숲 어느 건물 뒤편을 생각하고, 부산에서 이스탄불의 바람 부는 항구는 만나는 일. 마을버스 정류장의 할머니들에게서 이란 시골 마을 할머니들의 해바라기와 같은 분위기를 그려본다. 쌀국수와 치앙마이의 뒷골목을 떠올리다 라면 물이 끓어오르고, 길바닥에 떨어진 우표 한 장에 붙이지 못한 편지를 들고 서성이던 이집트의 낡은 우체국을 그리워한다. 자신의 발자국이 새겨진 그곳들이, 잘 있을지, 괜찮을지 생각하는 시간. 이렇게 자주 떠올려도 되는지, 다시 만나자고 인사를 나누었던 사람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이 그리움을 그대로 안고 있어도 괜찮은지 계속되는 물음에, 결국은 '괜찮겠지.'라는 답을 꺼낼 수밖에 없는 것을 알고는 있는 거지. 여행 후에 찾아오는 수많은 단상과 일상의 어느 순간에 포개어지는 온갖 감정들. 슬픔이나 그리움, 불신, 불편함, 감사, 웃음, 행복, 친절함, 그리고 더 많은 것. 다시 만날 수 있음을 장담하지 못해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에 대한 사연들의 진심. 허름한 숙소에서 주인이 건네는 걱정에 떠올리는 어머니의 모습마저 그리운... 오늘도 이곳에서 보는 그곳의 이야기들은 계속된다. 여행지에 다 두고 온 것 같은 일들이 이렇게 그의 하루에 오롯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아가기 위한 다짐들.

 

여행에서 받아들인 모든 감정이 나를 든든하게 지켜줄 줄 알았다. 낯선 곳에서 긁히고 상처 나고 그러다 굳은살이 생겨나면서 튼튼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끝내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일로 남는 것 또한 알았다. 잠시 따뜻한 불빛을 쫓아 들어간다고 해도 내 집이 될 수 없는 곳이 허다한 것처럼. 외로움이란 길 위에서나 생활에서나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끝까지 동반해야 할 가장 나와 가까운 감정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외롭다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아무도 거둬 줄 수 없다는 것을 처음부터 우리는 알고 있었다. 내가 다시 배낭을 메는 이유가 최소한 너 때문이라는 변명은 이제 없어야 할 것이다. 나도 나를 위해 살 뿐이다. 너처럼. (343페이지)

 

여행, 그 후에 따라오는 여운이 짙은 이야기다. 하루에 조금씩 천천히 읽어서 그런지 뭔가 계속 이어지는 기분에 이야기가 끝나는 게 서운했다. 들으면서 계속 무슨 말인가 하고 싶었던 것도 같은데, 정작 하고 싶은 말들은 다시 서랍으로 조용히 들어가 버렸다. 언젠가, 언젠가, 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그 '언젠가'의 시간이 오기를 바보처럼 기다리면서... 아직 끝나지 않은 여행의 연장선처럼, 그 감정을 그대로 이어가려면 누군가에게 엽서라도 한 장 쓰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오늘을 사는 '이곳'에서 길 위를 걸었던 '그곳'의 시간을 꺼내게 하는 순간들이 그립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돌아왔으면 끝일 것 같은데, 여행은 그곳에서 일상의 삶은 여기서 이어가면 그만일 것 같았는데, '이곳'을 살면서 '그곳'의 기억과 시간들이 문득 가슴을 치고 나올 때마다 생각도 짙어질 듯하다. 어떤 장소, 사람들, 시간들, 묻거나 버리려 했던 흔적들, 그런데도 지워지지 않는 것들에 시선이 머물 수밖에 없는 일. 지금 이곳으로 돌아와 있지만, 여전히 그곳의 시간이 끝나지 않은 것처럼, 떠나고 싶어서 떠나고 돌아오고 싶어서 돌아왔는데 사라지지 않는 허무함이 어떤 상태인지도 알 듯하다. 시간이 잘리지 않고 이어지는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 여행이 끝났어도 여행의 기억들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그렇게, 여행은 끝도 시작도 없었던 거다.

 

짧게 계속된 이 책과의 새벽 여행은 8월과 같이 끝났다. 하지만 이 책이 끌어낸 어떤 감정들은 아직도, 여전히 끝나지 않은 듯하다. 미처 다 하지 못한 말들이, 언젠가는 잔뜩 쓴 엽서로 가방 안을 채우게 될 것만 같다. 그럼 그걸 또 비우는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것도, 언젠가... 그 '언젠가'가 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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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공장 - 소설가 김중혁의 입체적인 공장 산책기
김중혁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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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좋아하지 않는다. 몸에 해로워서도 아니고, 라면 끓이는 그 쉬운 것조차 귀찮아서도 아니다. 그렇다고 라면을 안 먹는 것도 아니고... 뭐라고 말하기 좀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라면에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선뜻 내 기호식품 안으로 라면이 들어가지 못하는 거라고 해두자. 그런데도 가끔 동생이나 엄마와 같이 있을 때 먹는 라면이 있다. 너구리라면이다. 다른 라면보다 면발이 좀 두껍고, 순한 맛과 얼큰한 맛 두 가지 중 가끔 골라 먹는다. 뭐니 뭐니 해도 너구리라면의 매력은 그 안에 들어있는 다시마 조각 한 개. 라면이 다 끓어서 익을 때쯤이면 너구리라면 면발만큼이나 불어 오른 도톰한 다시마 한 조각이 맛있게 보인다. 한입에 꿀꺽. 좀 서운하다. 몇 개 더 들어있으면 안 되나? 가끔 라면 봉지를 뜯고 기쁨의 환호성이 나올 때도 있다. 다시마 조각이 두 개, 혹은 세 개가 들어있을 때. 길 가다 돈 주운 것 마냥 좋아서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이런 횡재(?)도 있어야 라면 맛이 배가 되지. ^^

 

그러려니 했었다. 기계가 실수해서 다시마가 한 개 더 들어갈 수도 있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니었네. 김중혁의 공장 산책기를 들어보니 너구리 라면에 다시마를 넣는 일은 사람이 하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라면 한 개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모두 기계가 하는 일인 줄 알았다. 요즘 대부분 제품이 기계화되어 만들어지는 거 아니었나? 그래서 몇 개의 한정판이나 수작업이 들어간 물건들이 가격이 비싼 거고, 라면이나 과자 같이 대량 생산으로 만들어지는 건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거로 생각했다. 인력으로 하는 것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장점으로 이루어진 공장 시스템이라고 생각했으니 다시마 한 조각을 넣는 것도 당연히 기계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하나의 가방이 만들어지려면 길고 지난한 작업 과정을 지나야 한다. 기계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가죽을 자르는 일도, 가죽을 붙이는 일도, 가죽을 꿰매는 일도, 사람이 해야 한다. (87페이지 가방 공장 산책기)

 

가만히 둘러보니 일상을 영위하는 많은 것들이 공장에서 나온 것들이다. 지금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노트북, 휘갈겨 쓰다 뜯어서 버리는 메모지,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게 무겁게 메고 다니는 가방, 춥다고 자꾸 파고드는 이불, 달달한 맛이 좋아 자꾸 손이 가는 봉지 커피, 질질 흘러나오는 콧물 닦느라 연신 뽑아대는 휴지까지. 어디에 눈을 두어도 똑같다. 재료가 다를지 몰라도 만들어져 나오는 과정이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가 다 확인하지도 못하고, 마냥 궁금하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담아두기만 했던 곳을 김중혁이 다녀왔다. 물론 그마저도 극히 일부분이다. 더 탐방하고 싶은 공장이 많을 거다. (아마도?) 아마 호기심이 발동하는 우선순위로 해당 공장이 선택되지 않았을까(하는 건 나의 추측이고).

 

제품의 생산 공정을 자세하게 기록하지는 않았다.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된 제품이 나오는지 큰 얼개만 보여주었다. 그 공간에서 직접 일하지 않은 다음에야 그 세세함을 다 이해하고 설명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저자는 공장의 모습과 그 안의 생산과정을 통해 사람, 생각, 이해를 이야기하고 있다. 작은 조각 하나를 연신 재봉틀로 박으며 집중해야 완성되는 브래지어, 돈이 되지 않는데도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간절함에 오늘도 공장 문을 여는 엘피 사장님, 숙성을 거쳐야 비로소 맛볼 수 있는 간장, 달콤한 향기에 취해 인생도 달콤해지길 바라게 하는 초콜릿, 지구의 어디쯤을 가리키며 마음을 향하게 하는 지구본, 소음처럼 들리던 소리가 왠지 아련해 보이는 대장간, 두 귀를 집중해서 소리의 세계로 빠져야만 완성되는 피아노, 많은 일화를 가지고 웃음부터 던져주는 콘돔, 작가와 바로 연결되어 떠올리게 하는 종이, 나를 더 단단하게 세워 전쟁터로 보내주는 것 같은 화장품, 꼬불꼬불 면발에서 느껴지는 속도의 아이러니인 라면, 목을 타고 넘어가는 시원함이 먼저 떠오르는 맥주, 섬세한 빛이 나는 아름다움인 도자기, 스스로 중독자임을 고백하며 실용성을 고민하게 하는 가방. 무엇 하나 일상과 뗄 수 없는 것들이면서, 때로는 쉽게 생각하며 지나치는 것들이기도 하다. 살면서 필요한 것이지만 ‘반드시’라는 수식어가 개인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 있으므로, 누군가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려지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소소하다고 할 수 있는, 때로는 특별하다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만들어지는 곳, 공장이다.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이 공장에서 어떻게 생산되는지 훔쳐보고 싶은 마음에, 물건을 만든 장소에 가서 만드는 모습을 보면 물건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공장 산책기를 시작했다고 말하는 저자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 궁금하고, 조금은 알고 싶잖아. 엄마의 자궁을 통해서 태어나는 아기처럼 하나의 물건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태어나고 세상에서 돌아다니게 되는지...

 

거기에 저자의 센스가 돋보이는 ‘김중혁의 글 공장’이다. 책을 읽는 독자이기에 가끔 ‘이 책을 쓴 작가는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시작해서 마무리한 글’일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다. 작가마다 쓰는 장르가 다르고 글 쓰는 스타일이 달라서 김중혁만의 스타일이 모든 작가의 방식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김중혁만의 글 쓰는 방식, 문장 하나의 사유, 재치 있는 그림을 알게 된 건 재밌다. 유감스럽게도 그의 소설을 끝까지 읽은 게 없다. 늘 읽다 말았거나, 읽어야지 하면서 리스트에만 머물곤 했다. 그의 팟캐스트 수다는 좋아하지만, 이상하게도 그와 소설로 온전히 만나지는 못했다. (단편은 몇 편 읽었다.) 그런데 그의 산문을 만나는 건 즐거웠다. 공장을 견학하고 보고서 제출하듯 들려주는 게 아니라, 그의 시선으로 보는 그대로 전달하는 게 따뜻하다고 해야 할까. 평범한 사람이 보는 편안한 느낌이다.

 

그를 통해 본 공장의 입체적인 모습이 생생하면서도 진중해진다. 그 안에는 우리를 채워주는 물건도 있지만,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공장을 관찰하며 적은 것이기도 하고 물건의 세계 여행 같기도 하고, 그와 함께하는 사람의 역사 같기도 하다. 물건 하나를 떠올리며 꺼내는 그의 추억 같은 이야기는 과거이며, 지금 공장 안을 걸으며 이야기를 듣는 건 현재다. 그 물건이 어떤 형태로 누구 손에 들어가 사용되고 있을지 상상하는 미래다. 사람의, 세상의 역사가 되는 과정이다. 그의 말마따나 지구라는 거대한 공장에서 서로를 조립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속에서 비슷하게 살아가며 내 가슴 어디 한군데에 채워질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상상해보기도 한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지. 아마 그도 바랄 것 같다. 그의 글이 누군가를 온전히 채워주는 것이 되길, 김중혁 글 공장이 그런 역할을 하길...

 

인간은 기계를 만들었다. 기계는 산업화를 만들었고, 산업화는 더 많은 공장을 만들었고, 또한 노동계급을 만들어냈다. 노동 계급은 더 많은 기계를 만들어냈고, 더 많은 기계는 더 나은 기계로 진보했으며, 더 많고 더 나은 기계는 노동계급을 감소시키고 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기계와 로봇의 역습이 시작될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기계가 생산해준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다시마만큼은 인간이 넣는 세상을 꿈꾸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기계는 더욱 진보할 것이다. (245페이지 라면 공장 산책기)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뜨거운 여름날 어느 날, 맥주 공장을 산책하고 싶다. 시원한 매주 들이키며 한여름의 무더위를 날리고 오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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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클래식
조수현 지음 / 청어람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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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와 두 남자로 구성된 이 소설의 시작에서 얼핏 지저분한 삼각 스캔들을 떠올릴 수도 있을 텐데, 의외였다. 내가 접한 뻔한 흐름으로만 간 게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나타난 낯선 소녀 설리. 이 땅의 끝 히말라야에서 왔단다. 열여덟의 그녀가 세상 물정 모르고 오직 노래 하나만을 부르기 위해 무대에 섰다. 모든 것이 이국적으로 보이지만 그녀에게 흐르는 피는 지극히 한국적이고, 또 사랑을 품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 그리고 조용히 이어지는 한 남자의 고백 같은,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

고등학교 동창이자 서로 다른 매력으로 그려진 주인공들이 여기 있다. 학교의 유명한 야구선수 이선우는 메이저리그로 인생이 정해졌다. 학교의 핵주먹 강민은 울분을 참지 못한 결과로 자퇴를 선택했다. 그 사이의 신소라. 이선우의 여자친구이자 강민의 짝사랑의 대상인 그녀. 곧 스무 살이 되고 성인이 되어 마음껏 꿈을 펼치고 세상을 활보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떤 삶을 살아오고 사랑을 품어왔는지, 이십여 년의 간극을 둔 이야기가 시작된다.

 

저자의 이력을 먼저 보았던 탓인지, 소설을 소설로 읽으면서 영화 같은 장면들이 먼저 떠오른다. 여기서 이런 장면, 이런 표정, 이런 흐름으로 다음 장면을 그리면서 읽게 되곤 했다. 선입견이 이렇게 무서울 줄이야... 어떤 부분은 예상했던 그대로, 또 어떤 부분에서는 의외의 전개로 조금 놀라기도 하면서 궁금해졌다. 저자가 풀고 싶은 이야기를 내가 그대로 전해 받고 있긴 한 건가 싶은 궁금증, 혹은 염려 같은. 지독한 사연을 가진 이들로 묶인 흐름이, 마지막 순간에 보여줄 게 뭔지 확인하고 싶어서 끝까지 읽게 되는데, 결국은 '아, 그렇구나.' 싶은 인정. 그게 좋은 거라면, 좋은 거겠지 싶은 이해.

 

스포일러가 될까봐 이야기하는 게 조심스러운데, 매 순간 등장인물들의 행동이나 선택에 있어서 반반의 시선이었다. 이해와 불이해. 그리고 이어지는 인생의 다음 페이지가 삶의 아련함을 불러올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이게 한다. 그들이 하는 사랑이 그렇게 흘러갈 때마다 기억에, 추억에 묻어야 할 것들이 참 많다는 생각도 들고... 고전, 혹은 올드한 느낌의 옛것을 통칭하는 클래식이란 단어를 사랑에 붙인 저자의 의도가 뭔지 알 것도 같다. 첫사랑, 옛사랑은 추억 속에서 그 힘을 발휘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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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알라딘 신간평가단 활동했던 것을 마지막으로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도 안 난다) 신간평가단에 응모한 적이 없었다. 그 당시에 나는, 마지막 도서까지 리뷰 완료하지 못 했다. 마음 같아서는 늦게라도 해야지 했는데, 어디까지나 그냥 마음에 머물던 일로 끝났다. 이른바, 먹튀. 아, 나는 6개월의 이 긴 레이스에 맞지 않는구나 하는 결론만 얻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내가 신청한 도서가 거의 선정이 안 되고 있기에 애정을 담고 처음 시작했던 마음이 사라졌던 거다. 활동자도 많고, 신청도서도 많으니까, 내가 신청한 도서 한 권쯤 선정이 안 될 수도 있는 건데, 매번 선정에서 미끄러지는 걸 투덜투덜하면서 마무리마저 그렇게 하고야 말았다. 그 후로 알라딘 신간평가단은 아예 응모하지 않았다. 나란 인간이 어떻게 이어갈지 알 것 같아서...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성실한 서평단이 될 거임~!’이란 각오로 도전했다. 나는 예전에 활동했던 분야를 바꿔 에세이로 신청했다. 소설 부분 말고, 관심 1순위가 아닌 2순위 분야로 응모했다. 혹시 선정된다면, 간절히 읽어보려고 했던 책이 아니라 ‘이런 책도 괜찮다’는, 좀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보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신간평가단 15기 에세이 분야로 선정되었고, 나에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6개월 동안 총 12권의 책을, 마감 한 번 어기지 않고, 이렇게 마무리하게 되었다는 게, 바로 기적. 처음 신간평가단 신청하면서 다짐했던 마음을 잘 이뤄낸 거다. 선정되고 나서 가장 먼저 했던 다짐은, 최소한 ‘먹튀’는 하지 말자는 거였다. 혹시 나랑 맞지 않는 책일 수도 있지만, 내 관심 밖의 책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라도 읽어서 편식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여기서 그 편식을 줄이는 가장 기본적이고 필요한 것은 성실하게 임하는 것. 어떻게 이어갈까, 잘 할 수 있을까 했던 걱정은 이렇게 활동을 마무리 한 것으로 끝났다. 여전히 내가 신청한 도서는 잘 선정되지 않았지만 좋은 책도 많이 만났다. 그래서 다행이다. ^^

 

 

 

- 15기 신간평가단 활동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과 그 이유

책이 좀 많습니다

윤성근의 책이 많이 출간된 건 알고 있었지만,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실제로 읽어본 적도 없다. 도서관 서가에 쭉 꽂혀있는 걸 보고 그 자리에서 휘리릭 넘겨본 적은 있어도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이 책으로 그의 글을 만나게 된 거다. 책 좋아하고 책 아끼는 사람들을 만난 이야기를 보면서 놀랍기도 하고 웃음도 났다. 규모나 마음의 정도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겠지만, 나와도 많이 달랐지만, 그 바탕에 깔린 독자들, 애서가들, 장서가들의 마음은 똑같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이렇게 아끼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근처에도 못 가겠지만,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 아직은 책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 15기 신간평가단 도서 중 내 맘대로 좋은 책 베스트 5

떠나는 이유 /

밥장의 책 역시 내가 완독한 적이 없다. 그림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저자가 여행의 의미를 들려주고 있어서 의외이기도 하고, 그래서 좋기도 했다. 사진과 글, 그림으로 만나는 그의 여행기가 선선한 바람처럼 불어왔다. 그가 그동안 쓴 책보다 나에게는 이 책이 더 맞는 것 같다.

 

 

 

 

태도에 관하여 /

내가 신청한 도서 중에서 처음으로 선정되었기에 마음에 더 담는다. ^^ 임경선의 소설을 좋아하는데 에세이는 처음 만났다. 저자의 상담 같은 이야기가 듣기 편해서 좋았다.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시간 날 때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었다. 저자의 글을 좋아해도 저자에 관심은 거의 없었는데, 이런 말을 하는 저자는 어떤 사람인지 자못 궁금해졌다.

 

 

 

조지프 앤턴 /

아, 이 책. ^^ 받자마자 상당한 두께가 압박했는데, 막상 펼치고 보니 참 재밌었다. 자서전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그래서 만나지도 않는데, 이 책으로 자서전에 대한 선입견이 사라졌다. 이런 이야기로 자서전을 풀어갈 수도 있구나 싶어서 호감이 생겼다. 시간도 없었고 마음이 급해서 활자를 읽는 것에만 집중했는데, 다시 한 번 펼칠 기회가 오길 바라고 있다.

 

 

 

나의 사적인 도시 /

아름다운 이야기가 가득했다. 뉴욕이란 도시를 이렇게 보고 느끼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서 저자의 뉴욕생활기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번역가로만 알고 있던 저자의 글 분위기가 그대로 묻어 있는 것 같다. 담담하게 들려오는 말투가 좋아서 나에게는 쉽지 않은 책이었지만 다 읽고 보니 ‘좋네’ 라는 여운이 생기더라.

 

 

 

 

다정한 편견 /

저자의 소설을 다시 꺼내게 만든 책이다. 그의 산문을 읽고 나니, 그의 소설을 읽다만 게 괜히 마음에 걸렸다. 재밌게 말하고 있지만 그 안에 깃든 마음은 가볍지 않았다. 저자가 풀어놓는 이야기가 유쾌했지만 쓸쓸하기도 했다. 그의 소설로 만나는 사람 냄새는 어떤지 궁금해졌다.

 

 

 

 

 

 

 

6개월이 이렇게 빨리 갈 줄 몰랐다. 한 달, 또 한 달. 도서 받고 읽고 마감하고. 그렇게 여섯 번이 지나고 나니 다 끝났다. 시원섭섭. 리뷰 마감일에 허덕일 때는 부담스럽더니, 끝났다고 하니 괜히 더 섭섭해지는 건 무슨 심보인지... ^^ 재밌게 잘 읽었고, 내 눈에 들지 않은 책까지 읽게 되어 더 알뜰살뜰한 15기 활동이었다.

 

감사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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