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하게 무심했던 것들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중략) 그러니 무표정했던 삶이 조금 환해졌달까. 무채색 세상이 유채색으로 칠해졌달까. 묵혀뒀던 오감이 자극된달까. 별것 아닌 일상조차 조금 특별해졌다. 손이 닿은 딱딱한 액정 속 디지털 세상이 아닌, 숨이 닿는 지근거리 이야기들이라서. (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301~302페이지)


겪어봐야 안다. 세상일 대부분이 그렇다. 그중에 경험으로 가장 잘 알 수 있는 게 누군가의 마음이자 살아온 시간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누군가에게 이해한다는 말을 섣부르게 꺼낼 수 없어질지도 모른다. 왜냐고? 똑같은 경험을 하기 전에는 상대의 마음을 그대로 다 느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습관처럼 이해한다는 말을 해왔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상처를 받고 아프고, 제도의 불편함을 느끼고, 상실의 경험을 하고, 시험에 탈락하기도 하는. 우리가 살면서 겪는 여러 가지 일이 누군가에게 이해와 공감을 부를 수 있지만, 온전하게 같은 경험을 한 게 아니라면 제대로 알 수 없는 마음이기도 하다.


비슷하게 보자면 TV 프로그램의 ‘극한직업’ 정도 되려나? 하지만 이건 직업이 아니고 우리 일상 곳곳에 자리한 사람들의 불편하고 어려운 부분을 같이 경험하는 것이기에 진지하면서도 울컥한다. (그러면서도 저자의 깨알 멘트는 웃음을 놓지 않는다) 알면서도 그냥 지나쳤던 순간들이 떠오르고, 감히 잘 안다고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음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겪어보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알 수 없을 거라는 깨달음이 남았다. 내가 굳이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도 비슷하다. 그동안 그의 연재를 꾸준히 찾아보지 못했기에 내가 놓친 이야기가 궁금했다. 호기심만 채우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삶에 너무 닿아있는 모습들을 알고 싶었다. 세상의 정의를 외치면서 앞에 서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누군가의 삶과 마음을 함부로 단정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소심한 다짐을 더 해보면서 말이다.


저자는 평소 보고 생각했던 곳곳의 문을 열어보기로 한다. 아마 그가 알고 싶었던 버킷리스트쯤 되지 않을까 싶다. 리스트 목록에는 그가 가진 기자의 시선이 담겼으리라. 누구나 바라보는 밝은 곳이 아니라, 스포트라이트 이면의 곳곳을 비추고 싶은 마음. 세상의 시선 밖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공유하고 이해하면서, 같이 살아가고자 하는 바람까지 당연히 얹어 있다.


그가 어떤 경험을 했을까. 연재 때 읽고 가장 웃음이 났던 게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해봤다’이다. 어느 하루, 그는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방 안에서 지냈다. 씻는 것을 생략한 것은 물론이다. 더럽다고?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아무것도 안 하고 한없이 늘어지면 방바닥을 뒹굴던 우리의 모습을. 솔직히 나는 며칠 동안 밖에 안 나가면서 세수도 안 한 적이 있다. 뭔가 입에 대면 양치는 꼬박꼬박했다. 원래 그런 거 아닌가?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체험을 하는데 왜 씻어야 하는가? ㅎㅎ 사실 이 경험의 의미는 안 씻어도 된다는 데 있지 않다.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모습을 반추하며 삶에 의미가 무엇인지 조용히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무엇을 하며 누구와 살아가든, 우리가 바라는 궁극적인 목적지는 행복 아니었던가. 바쁘게 달려오면서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은근한 떠올림까지 저절로 이어진다. 이 체험은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봤다’와 연결해서 생각하게 된다. 공부하면서 달려온 10대 20대 시절, 직장생활에 적응하고 결혼하면서 현실을 살아내느라 벅찼던 30대를 그리는 저자의 머릿속이 복잡했을 것 같다. 쉬어보자는 생각으로 아무것도 안 하던 하루가, 가만히 쉬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동안의 궤적을 돌아보면서 앞으로 살아가고 싶은 모습을 그리게 한다. 어느 날 하루 그가 꺼놓고 지냈던 스마트폰은 그동안 놓쳤던 세상의 모습은 물론이고 사람들의 표정과 진심까지 읽게 했다. 스마트폰에 일상의 거의 모든 것을 의지하며 살아왔던 시간이 무섭기까지 했다. 이 작은 기기 하나가 삶의 대부분을 조정하게 하다니. 놀라우면서도 겁난다. 편리하지만 무섭다. 그가 스마트폰을 꺼놓고 지낸 시간 동안 업무나 상대방의 감정에 스크래치가 났을지는 모르지만, 스마트폰 없는 하루가 그에게 준 것은 표정 있는 삶이었다.


거절과 나쁜 말 듣기가 싫어서 자꾸 움츠러드는 마음을 이기고자 스스로 거절당하기를 경험하고, 나도 모르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다가 정작 들여다보지 못한 내 마음을 돌봐 주려 착하게 살기를 거부해봤다는 저자. 유기견 보호소에서 안락사당하기 직전의 강아지 구출 작전에 참여해보고, 무연고자의 죽음을 배웅해봤으며, 24년 만에 초등학생이 되어 요즘 아이들의 일상을 경험했다. 가볍게 웃으면서 보고 싶은 경험 같았지만, 그 경험의 시간 동안 느낀 것을 듣고 있노라면 하나도 가벼운 게 없었다. 언제나 그 시간, 그 자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충이 함께했다.


노인 체험 장비를 벗은 뒤 팔이며 다리에 붉게 물든 상처들을 보고 알았다. 하루 내내 싸운 흔적이었다. 마음처럼 안 움직이는 팔과 다리를 애써 움직이려고, 굽은 허리를 곧게 펴려고, 몸은 여든 살이라는데 마음은 여전히 서른일곱 살이라 여기면서. 그렇게 세월을 거스르고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노인 체험을 자처했으면서, 막상 노인이 되니 난생처럼 겪는 경험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언젠가 나이들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고요했던 물에 돌멩이를 던지면 파장이 일듯 별 것 아닌 일상들이 일렁거렸다. 43년의 세월이 주는 무게감은 그렇게 컸다. 이게 체험이 아니라, 언젠가 맞을 미래란 걸 알기에 더 그랬다. (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58페이지)


돌아오는 길에 든 생각들. 그가 폐지를 줍는 건, 그의 잘못이 아니라 정말 우연히 그렇게 됐다는 것. 인생이란 게 얄궂어서 누구든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 그러니 이들을 외계에 사는, 별나라 사람쯤으로 볼 게 아니라 이웃으로 보면 좋겠다는 것. 관심을 두는 것만으로 이들의 삶을 지탱하는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145페이지)


그의 경험 대부분은 우리와 오늘을 함께 사는 이들의 시간이었다. 거리에서, 근처에서 익숙하게 봤지만, 우리가 실제 경험하지 않는다면 결코 알 수 없는 일들에 더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노인 분장을 하고 80세 노인의 삶을 경험한 그는 나이 듦의 자연스러움과 그동안 애쓰며 살아온 세월의 무게를 진하게 느꼈으리라. 누구나 나이를 먹고 노인이 된다. 어떤 젊음을 보내면서 맞이할 노인의 모습을 상상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들의 웃음소리에 마냥 다 다 잃고 내려놓은 절망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가는 나이 든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이라는 것을 잊지 않게 됐다. 폐지 줍는 이의 하루를 같이 걸으며 어떤 일상인지 보기도 했다. 길에서 흔히 보이는 폐지 줍는 이들. 리어카 한가득 싣고 가는 모습이 위태로우면서도 정작 그 리어카의 뒤를 밀어본 적이 없다. 그들의 삶이니, 타인이니 굳이 가까이 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저자가 경험한 폐지 줍는 하루는 누군가의 생활수단 전부이자,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한 하루이자, 아이들에게 먹여줄 음식값이 된다. 누구나 사연도 있고, 그런 삶을 가진 이유도 있다. 그 제각각의 이야기를 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들의 삶 하루를 경험한 이의 공감을 바탕으로 이해의 근처에 닿을 수 있으면 하는 간절함이 담겼다.


새벽 5시에 시작된 환경미화원의 세계를 보았다. 눈을 감고 벚꽃축제 그 길을, 시각장애우의 세상에서 걸었다. 집배원의 하루를 같이 다니면서 왜 과로사가 그렇게 많은지 알게 되었으며, 35킬로그램 방화복을 입고 계단을 오르며 소방관을 살아봤다. 거리의 쓰레기는 당연히 환경미화원이 치우는 거라고, 소방관은 불을 끄는 사람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면 저절로 반성 모드가 되어야 할 판이다.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고, 그에 보수를 받고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니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이지만, 굳이 길에 쓰레기를 버릴 일도 아니라고 여겼다. 하지만 누군가가 무분별하게 버리고 쏟아내고 그냥 지나간 그 길을 깨끗하게 해주는 이들의 노고를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물론 무료봉사가 아니다. 하지만 하는 일에 상응하는 대우가 주어지고 있는지 거듭 확인해봐야 할 일이기도 하다. 그냥 멀리서 바라보는 게 아니라, 하루였지만 직접 체험한 시간이 더욱더 귀하게 여겨지는 이유다. 경험하지 못하면 알 수 없는 세계의 일을 이렇게 들려주는 이가 없다면 우리는 영원히 방관자의 시선으로 그들의 삶을 바라볼 수밖에 없으니까. 나와 지금을 같이 살아가는 이들의 다양한 세상을 안다는 것은, 누군가가 나의 삶도 지켜봐 주고 있다는 말일 테니까.


식사 후 체할 것 같아 청계천으로 향했다. 그러자 더위가 고역이었다. 섭씨 32도, 체감온도는 더 높았다. 걸은 지 5분 만에 브라에 땀이 찼다. 15분이 지나니 브라 끈과 와이어 부분이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가슴골 사이에선 땀이 흘렀다. 겨울이면 따뜻하기라도 할 텐데, 여름엔 대책이 없었다. 패드 밑을 잠깐 들었더니 시원했다. 땡볕에 브라가 불타는 느낌이었다. (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16~17페이지)


체험한 지 사흘 만에, 브라를 결국 벗었다. 육체적인 불편함보다 더 힘든 건, 버거운 시선이었다. 누가 뭐라 안 했어도 그것만으로 무언의 족쇄였다. 그래서 여성들도 쉬이 벗을 수 없었겠구나, 절실히 깨닫게 됐다. (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20페이지)


다양한 체험 중에서도 웃픈 몇 가지를 확인하면서 마음에 많이 와닿았다. 브래지어를 하는 여성의 마음을 한없이 알아주는 그가 되기를 바랐던 ‘브래지어, 남자가 입어봤다’는 정말이지 역지사지의 대표 격이 아닐까 싶다. 브래지어 안 하는 시간의 편안함을 그가 알려주어 얼마나 고마웠던지. 특히 이 더위에 밖에 나가야 할 일이 있으면 고통이다. 집안에서 브래지어 안 하고 헐렁한 티셔츠 입고 살다가, 속옷까지 갖춰 입고 나가야 해서 외출을 포기한 경우도 있다. 해본 사람만 안다는 브래지어의 불편함을 남자인 저자가 생생하게 증언해주니 이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아이 없는 남자의 하루 육아는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였다. 어쩌면 그가 아이 계획을 세운다면, 하루 육아 경험 전과 다른 조금 더 괜찮은 남편과 아빠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루였지만 그 경험이 육아의 현장을 그대로 각인시켜줬으니까.


그의 솔직함은 ‘자소서, 진짜 솔직하게 써봤다’에서도 빛난다. 흔히 자소서가 아니라 ‘자소설’이라고 불리는 자기소개서. 태어나서 살아온 모습이 다 비슷한데 도대체 그 차별화는 어디서 가져와야 하는지 골치가 아픈 순간들. 결국 우리는 소설에 버금가는 자기소개서를 채워나간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첫 번째 관문인 서류심사조차 통과할 수 없을 테니까. 아무리 차별이 없는 세상으로 가고 있다고 해도, 학력 구분이 없다고 해도, 아직 크게 달라지지 않은 취업 문턱을 증명하고 있던 셈이다. 저자는 취업준비생들의 솔직한 의견을 담아 자소서를 써서 지원했고, 당연하게(?) 탈락했다. 아마 그의 서류심사가 통과했다면, 그 기업의 취업 경쟁률 더 세졌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그는 어디에 지원했는지? 누구나 들어가고 싶다던 기업이 어디 한두 군데여야 말이지)


우리가 알아야 하고 서로의 삶을 응원해야 할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리고 싶었다던 저자의 말을 읽는 내내 곱씹게 된다. 당사자를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서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그의 진심이 그대로 전해진다. 아주 작은 경험 하나로도 우리는 그 세상을 알아갈 수 있다. 그러니 저자가 경험한 하루들의 시간은 얼마나 더 귀할까. 공감은 당연했고, 누군가를 더 이해할 수 있다는 작은 걸음을 보여줬다. (사실 누군가는 온전히, 다 이해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온갖 고생을 하며 그가 들려준 세상의 많은 이야기에 고개가 숙여지기도 한다. 몸으로 부딪쳐 해내야만 하는 일부터 사랑한다고 말하며 감정에 힘을 실어야 하는 일까지 다양한 그의 체험이 값지다. 읽는 동안 고맙기까지 했다. 나에게는 간접경험이지만, 그렇게 무언가를, 누군가를 알아가는 게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하루의 경험이 그 사람의 모든 시간을 다 보여주지는 못하겠지만, 보게 된 만큼만은 세상을 더 알았다고 생각하고 싶다. 우리 삶은 더 편해지고 발전을 이루었지만, 그렇게 달려온 세상이 놓치고 있는 것도 분명 있을 테지. 아마도 저자가 하루의 경험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도 그런 게 아니었을까.


잊고 있던 어떤 것을 찾아가고 확인하는 즐거움에 감사하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알지 못하지만 같은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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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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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지지 않는 것들로 우리는 연결되어 있지. 이럴 때는 무척 가족 같군. 세 사람은 그렇게 눈빛을 주고받았다. (297페이지)


나의 죽음이 가까운 이들로부터 어떤 모습이면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없는 나의 장례식을 저기 멀리서 지켜보는 기분이랄까. 상상이기에 가능한 장면을 떠올리면 궁금하기 그지없다. 내가 없을 때 나오는 말과 기억이, 그들에게는 나를 대했던 가장 진심일 테니까 말이다. 누군가의 어머니이자 장모이고, 할머니이자 외할머니였을 심시선의 죽음 10주기를 두고 펼쳐진 이들의 여행이 유쾌하다. 그리고 기억 속 심시선을 꺼내는 이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기대된다.


소설은 챕터마다 죽은 심시선의 과거 어록을 앞세우고 시작한다. 그녀가 한때 출연했을 방송이나 인터뷰, 글에서 했던 말과 생각이 먼저 나오고, 그녀의 가족 중 한 사람의 기억이나 생각이 이어진다. 다소 충격적이었던 건 그 시절(20세기)에 방송에서 한국의 제사 문화를 까댔던 심시선의 말이었다. 제사는 사라져야 할 관습이라고 했다. 그녀의 말은 유언이 되어 가족들에게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당부했고, 무덤도 만들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지금 심시선의 가족은 그녀를 기억하기 위해 찾아갈 곳이 없다. 그 와중에 그녀의 큰딸 명혜는 엄마의 10주기를 기념하자면서 가족들을 끌고 하와이로 향한다. 뜬금없는 하와이는 또 뭔가 싶지만, 그들 나름대로 찾아낸 엄마의 장소이다. 하와이는 젊은 시절의 엄마가 한때 지냈던 곳이다. 사진신부로 가서 살다가, 화가 마티어스 마이어를 만나 독일로 가기 전까지 머물렀던 곳이며, 엄마가 치열하게 살면서 화가의 꿈을 키웠던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 가서 엄마를 떠올리자는 명혜의 말은 아무도 거스를 수 없었고, 가족 여행 아닌 여행으로 모두 하와이로 간다.


누구를 위한 제사인가 싶지만, 사실은 시선의 흔적을 좇으면서 그들 각자의 오늘을 살아가는 힘을 받는 일이 된다. 각자 하와이를 여행하며 기뻤던 순간을 찾아내고, 이 기쁨의 순간을 만끽하기 위해 이제껏 살아왔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 물건이든 경험이든 그 자체를 공유해도 좋으니 하나씩 찾아와서 심시선의 10주기를 기리는 장소에서 공개하자고 한다. 기간은 다 며칠이다. 심시선의 기일까지 찾아야 한다. 가족들은 모두 흩어져 자기만의 시간을 즐기면서도 심시선의 기일에 보여줄 무언가를 찾는 일을 잊지 않는다.


이쯤 되니 나도 다시 한번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아니면 내가 죽고 나서. 누군가를 기억하는 방식이 어땠으면 좋겠다는 그런 게 있나? 가족들끼리 얘기한 적이 있다. 우리는 제사 같은 거 말고 그냥 엄마 납골당 가서 얼굴 보고 같이 모이는 날로 하자고. 명절도 굳이 지킬 필요 없이, 지금처럼 시간 되는 사람만 오면 된다고, 그것도 싫거나 귀찮으면 하지 말자고 말이다. 서로 얼굴 보면서 즐거워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의미로 보자면 명절이나 제사나 마찬가지다. 서로를 힘들게 한다면 지키고 이어가야 할 문화가 아니겠지. 심시선이라는 한 사람이 살아가던 시대에 꺼내놓은, 제사 문화가 사라져야 할 것이라면 이유가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비슷하겠지만, 여성이 살아가기에 비극적인 시대였기에 더욱 거부감을 느꼈을지도 모르지. 가족들의 기억 속 심시선이 꺼내질 때마다 그녀의 지나간 인생이 한 자락씩 펼쳐지고, 그녀와 함께한 가족 각자의 기억이 하나씩 되살아난다. 죽은 누군가를 기억하려고 챙기는 기일이 이래야 하는 거 아닐까. 의무적으로 모이고 스트레스 만땅 채우는 날이 아니라, 내가 기억하는 죽은 이와의 추억을 기분 좋게 되새김하는 시간을 만드는 날이어야 한다.


"여자도 남의 눈치 보지 말고 큰 거 해야 해요. 좁으면 남들 보고 비키라지. 공간을 크게 크게 쓰고 누가 뭐라든 해결하는 건 남들한테 맡겨버려요. 문제 해결이 직업인 사람들이 따로 있잖습니까? 뻔뻔스럽게, 배려해주지 말고 일을 키우세요. 아주 좋다, 아주 좋아. 좋을 줄 알았어요." (269페이지)


무엇보다 이 소설은 이 시대의 여성이 받았을 폭력과 부조리를 관통하며 현재 심시선의 가족에게 이어진다. 심시선을 제외하고 그녀의 가족들은 전쟁통에 몰살당했다.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 심시선이라고 비극이 없었을까. 그녀의 오랜 세월에 걸쳐진 비극과 그 이후의 시간을 살아가는 딸과 손녀에게 뻗어간 여성의 삶이 어때야 하는지 보여준다. 마티어스 마우어의 폭력과 낯선 곳에서 이방인의 차별로 시달리다가 자기 삶을 찾아가려던 심시선은 마우어의 자살로 가해진 폭력에 또 한 번 고통 받는다. 그 사건은 평생 심시선의 명성에 빨간줄이 되어 괴롭힌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의 가해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살아간다. 그리고 명혜의 딸 화수는 협력업체 사장이 자행한 염산 테러에 일상이 무너졌다. 세상으로 다시 나가기가 두려웠고, 온몸을 감싸는 무력감은 그녀의 오늘이 어떨지조차 상상하지 못하게 한다. 그런 화수에게 심시선의 책은 세상의 일그러진 면을 찾고 조용히 그녀가 바라는 세상 속으로 뛰어들게 한다. 이 모든 게 하와이에서 다시 시작된 일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또 다른 손녀 해림은 친구가 당하던 인종차별에 화를 내고 괴롭힘당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자기가 믿고 생각하는 대로, 옳다고 여기는 대로 나아갈 수 있는 시선이 이들 가족에게 있었다.


심시선의 인생을 생각하면 웃음보다는 눈물이 앞선다. 그 젊음의 세월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여러 번의 결혼과 성이 다른 아이들을 키우면서 받았을 시선이 얼마나 따가웠을까, 그녀의 생각을 그대로 쏟아내면 되돌아오는 싸늘한 시선과 공격들이 벅찼을 것 같다. 하지만 그녀는 고통스럽거나 벅차하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나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그런 심시선의 영향을 받으면 자란 딸과 손녀에게 그녀의 기가 전해지기라도 했던 걸까. 오늘을 살면서 고통받은 시간이 무색하게 심시선의 10주기를 위한 자리에서 기적 같은 힘이 폭발한 것만 같다. 문득, 내 주변에 내 조상 중에 심시선 같은 여성이 있었다면 우리가 걸어온 시간의 모습이 조금 달랐을까 하는 궁금증과 아쉬움이 생긴다. 누군가를 기억하는 방식이 꼭 제사는 아니어도 되는, 각자가 추억하고 싶은 방식이 꼭 한 가지일 필요는 없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는 상태로 살아왔으니, 어떻게 죽는지 모르고 또 죽을 것이다. 도중에 가슴이 터져 죽어버리지 않은 것은 어린 자식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와서는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먼저 죽은 사람들 때문이었다. 애도에서 다음 애도의 웅덩이로 텀벙텀벙 걸으면서도 다 놓아버리지 않은 것은, 내가 먼저 죽은 사람들의 기록관이어서였다. 남은 사람이 기록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도 없을 테니까. 어떤 의미로는 친구들에게 져 술래가 된 것이다. 편을 먹고 내게 미룬 채 먼저들 가버렸다. (239페이지)


뜬금없이 심시선의 10주기를 챙긴다는 가족의 말에 무슨 짓인가 싶었는데, 그들만의 방식으로 특별한 날을 채우는 게 너무 보기 좋아서 신나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심시선을 위한 날이라는 것을 잊지도 않는다. 각자가 찾은 가장 좋은 것, 살아있으면서 누리고 싶은 간절한 것을 챙겨오려는 그 노력이 정말 고맙기까지 했다. 이동식 조리대를 가져와서까지 만들어낸 팬케이크, 자전거로 땀 흘리며 날랐을 뜨거운 말라사다 도넛, 화산석 자갈, 새의 깃털, 살아있다면 좋아했을 가장 맛 좋은 커피, 무지개 사진, 특히 명혜의 훌라춤은 잊지 못할 것 같다. 누군가를 기억하는 날이, 무거운 분위기로 한껏 점잔을 뺀 제사상 앞이 아니라 마치 파티 같은 자리라는 게 이상하게 낯설지 않고 좋더라. 앞으로 내가 경험할 많은 이의 죽음을 기리는 순간이 이랬으면 좋겠다. 한 사람의 오랜 세월 겪은 희로애락을 추억하듯 곱씹을 수 있는, 죽은 이와 내 삶을 연결해서 나아갈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진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주인공인 심시선으로부터 이어진 가족의, 혹은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중의적으로 써진 이 소설의 제목이 얼마나 많은 의미를 더 담고 있을지 찾아보는 일이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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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고치며 마음도 고칩니다 - 우울을 벗어나 온전히 나를 만난 시간
정재은 지음 / 앤의서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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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맞게만 있으면 된다.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된다.

불편하지 않은 정도가 알맞음의 기준이지 않을까.

물건이든, 공간이든, 관계든, 일이든, 전부 말이다. (101페이지)


부동산이나 집에 관해 잘 모르는 나도, 요즘 이슈가 되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점점 피부로 와 닿는 현실이라는 것을 느껴서일까. 적당히 때가 되면 이사를 할 수도 있겠다고 느긋하게 생각했는데, 막상 이사가 현실이 되고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겪은 일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험난하다는 것을 알아서일까. 어쨌든 대한민국에 살면서 집에 관한 어려움을 겪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전세든 월세든, 내 집을 갖고 있든 아니든. 그 나름의 고충을 안고 살아가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저자 역시 세입자로 살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다가, 어느 날 눈에 들어온 허름하고 작은 집 한 채를 눈앞에 두고 내 것으로 점찍는다. 일단 매입하고, 이곳을 새롭게 탈바꿈시켜야겠다는 다짐으로 계약한다.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해야 한다는 것보다 다른 어려움이 있겠지만 내 집이라는 안도를 더 품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에게도 있겠지, 집에 관한 로망 같은 거. 언제가 될지 몰라도 나만의 집을 갖고 싶을 테고, 온전히 나만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은 바람. 그런 공간이 생긴다면 어떻게 꾸밀 것인가 하는 고민도 이어지겠지. 그동안 상상해온 어떤 공간에 색을 입히는 일이 신나는 모험 같을 것이다. 주방은 이렇게, 침실은 저렇게, 서재도 하나 만들고 싶고 책으로 가득 채우고 싶을지도 모른다. 정원이 있는 곳에서 나무의 푸름을 느끼면서 사는 건 어떨까. 온갖 생각과 상상으로 채웠던 머릿속은 이제 현실에 적용해서 실현하기만 하면 된다. 자, 스타트!


어떤가? 상상만큼, 그동안 그려왔던 것만큼 현실 속 공간에 잘 그려지고 있는가? 저자도, 나도 그랬다. 생각하는 것을 어설픈 그림으로 그려가면서 작업자에게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하지만 나름 전문가라고 말하는 그들에게 내 생각을 그대로 적용할 수가 없었다. 왜? 뭐든 안 된단다. 그렇게는 안 된다고, 그럼 이런저런 단점들이 있다면서 자기들의 방식을 강요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더 우길 수가 없었다. 더운 여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하는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한숨 소리와 욕이 거슬렸다. 차마 정면에 대고 하는 말은 아닐지라도, 그게 나 때문에 나오는 거친 말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생각을 최대한으로 반영하고 싶은 바람은 멈출 수가 없다. 저자에게도 그런 바람이 있었기에 직접 구상하고 원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전세를 전전하다 서울 땅에 내 집을 지을 곳을 마련했다는 기적 같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낡고 허름한, 10평 남짓한 곳에 만들어갈 보금자리가 얼마나 귀했을까. 그러니 더는 허투루 아무렇게나 만들 수 없지 않은가. 언제까지 살지 모르지만, 그들이 처음 소유한 등기권리증을 확인한 공간이었으니...




이 책은 그렇게 저자가 만들어가는 집의 구석구석을 비추면서, 동시에 저자가 잊고 지냈거나 지나가 버린 마음을 다시 돌보는 계기가 된 순간을 들려준다. 아니, 순간이 아니라 감정의 흐름을 그대로 적어가고 있었다는 게 맞겠다. 열두 평의 작은 집에 마주한 고요와 행복이 이럴 수도 있구나 싶은 놀라움과 이상한 위로 같은 감정이 저절로 보인다. 아마 저자도 처음 경험한, 내 손으로 하나하나 알아보고 꿰어 맞춰가는 집이 그동안 지내왔던 공간과 사뭇 다른 느낌일 테다. 높은 빌딩과 골목 구석구석에 자리한 빌라 건물이 아니라 나무와 길이 있는 동네의 표정이 마음에 들었다. 이 낡은 집을 어떻게 변신시켜야 할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여러 가지 여건상 새로 짓는 것보다 대대적인 수리를 하는 게 가장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려나간다. 그 작은 집에 자리해야 할 공간들의 용도와 그 공간의 모양새를 머릿속에서 조금씩 꺼낸다.


얼핏 보면 그냥 공간의 이동을 위한 수리 과정을 적은 것 같지만, 그 공간이 어떻게 만들어져가고 있는지 보면서 따라오는 여러 가지 생각을 더 많이 한다. 온갖 아이디어가 출동하고,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면 아쉬워하면서 계획을 수정한다. 처음 갖는 내 집에 들뜬 마음은 그동안 봐왔던 많은 인테리어를 다 꺼내게 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음을 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조건의 집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렇게 만들어진 집이 과연 내가 원하는 집인가 하는 의문의 답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던 거다. 거실에 책장을 만들고 한 번 이상 읽지 않은 책들을 꽂아두며 만족스러워했던 것이, 생각해보면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집으로 만들기 위함이 아니었나 하는 깨달음 같은 거. 무언가 잔뜩 채워 넣고 보기 예쁜 것들이 가득한 곳이 그들이 원한 집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너무도 원했던 내 집이 안락함으로 채워지기 위해 어때야 하는지 서서히 알아가고 있음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실천하고 반복하면서 점점 그들이 원하는 공간으로 바뀌는 집을 보니 뿌듯하다. 전문가의 손을 거치기도 했지만, 그들이 스스로 만들고 변화하는 집 안 구석구석을 보는 기분은 남다를 것 같다. 그냥 집이 아니다. 새로 산 물건 하나쯤 보면서 즐기는 게 아니다. 어렵게 마련한 공간에서 이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묻곤 한다. 이 공간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삶으로 채우고 싶은지 묻고 대답하고 수정하고 부딪혀 나간다. 그러는 과정에 지나온 시간이 저절로 함께한다. 그동안 살아온 모습에 현재를 같이 본다. 버릴 수 없어서 차곡차곡 쟁여온 물건들을 정리하는 법을 배운다. 좁기도 하지만 가격 때문에라도 선택한 중고 물품들이 그들의 집에 자리 잡는다. 마냥 어려울 것 같았던 목공이나 싱크대 작업도 스스로 할 줄 알게 된다. (나도 여기서 처음 알았는데, 싱크대는 정확한 치수만 재어서 온라인으로 의뢰하면 배송이 된다네?) 내 손 하나하나 거치면서 만들어진 집이 그냥 돈만 주고 사서 들어온 집과 같지 않다는 건 당연하다. 그러니 더 애틋할 수밖에. 내가 직접 고르고 만들고 붙여가는 재미가 삶에 한층 더 즐거움과 만족감을 준다.


오래된 시골의 주택에 살다 보니 불편한 게 너무 많다. 낡아지는 것들을 보수하는 일과 필요한 것들의 자리를 찾아주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더는 고쳐도 나아지지 않는 것들에 한계를 느낀다. 방법은 두 가지. 이사를 하거나 새로 짓거나. 이사를 하게 되면 꼭 아파트로 가야겠다던 마음은 최근의 경험으로 점점 희미해진다. 아파트든 주택이든 장단점이 있으니 취향에 맞는 최선의 선택을 해야겠지만, 어느 쪽으로도 완벽한 만족은 없겠지. 하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계속 생각한다. 어느 쪽이든, 내 손과 마음이 닿아있는 곳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안락하고 행복한 공간이 될 것 같다고. 집을 알아가고 고치면서 배워가는 게 늘었다. 어떻게 해야 조금 더 효율적인 공간이 되는지, 덜 가지면서 만족할 수 있는지 알아간다. 어쩌면 이제껏 집안에 가득 채우고 버릴 수 없다며 움켜쥐고 있던 것들은 집안을 답답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불안하고 우울했던, 결핍으로 채워지지 못한 마음을 대신하려고 했던 건 아닐까. 어느 날 저자가 하나둘 저장하는 방식을 바꾸고 버리면서 느꼈을 그 후련함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그 작은 집에서 마주한 고요와 행복이 무엇인지 눈앞에서 확인했을 것이다.


몇십 년 동안 쌓아온 방대한 이상형의 조건은, 결국 하나도 충족되지 않았다. (중략)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지금의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그다지 바라지 않았다. 그저 '너무 애쓰지 않고 자신에게 만족하며 그래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삶이 최고라 생각하기 시작했다. (90페이지)


모든 일이 그랬듯 '집' 혹은 내 삶을 담기에 알맞은 '공간'에 대해 알아가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60페이지)


지나간 것들은 온전히 버리고 새롭게 살아가는 일에 마음을 담아본다. 저자에게 집을 고치는 일은 단순히 생활공간을 만들어가는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고치고 변화하는 집을 보면서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고, 새롭고 낯선 감정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설레는지 다시 알게 되었을 거다. 그동안 고치지 못하고 담아둔 마음까지 고치는 시간에, 나와 맞지 않은 삶의 불편함을 버리는 일도 가능해졌다.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아가는 일, 내 삶의 방향이 어느 쪽을 향하는지 보는 일, 삶의 태도와 시선을 보는 계기가 이렇게 만들어진다. 작지만 불편하지 않은, 일상의 행복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그렇게 인생이 채워져 가는 공간에서 오래 머물기를 바란다. 아파트 노래를 부르다가 다시 주택 노래를 부르게 되는 내 마음이 저자의 공간에 계속 머물고 있다. 단지 공간만의 이유는 아니라는 걸 알기에 더욱 마음에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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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고 있습니다 - 수짱의 인생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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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오지랖쯤 가뿐하게 무시할 수 있는 공감력. 곳곳에서 마주한 애매한 선긋기가 고민될 때마다 수짱의 일상이 그 답을 내놓는다. 나의 오늘과 감정을 먼저 챙기는 기분 좋은 뻔뻔함을 마구마구 키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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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어서 병을 이기는 법 - 몸이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새로운 과학적 방법
윌리엄 리 지음, 신동숙 옮김, 김남규 감수 / 흐름출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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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 삶의 화두가 된 지 오래다. 살아가면서 돈이 최우선으로 될 때가 많지만, 어디 건강만 하랴. 건강하지 못하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소용없다고, 우리 엄마가 그랬다. 굳이 누군가의 말을 전해 들어서가 아니라, 이미 경험한 많은 경우를 봐도 그렇다. 아프니까 생기는 여러 가지 위험, 건강이 아니고서야 해결할 수 없는 상황들이 저절로 생각난다. 특히 요즘 엄마가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은 드라마에 이어 건강 프로그램이 2위다.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면서 더 관심 두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익숙하게 일상처럼 누군가가 전하는 내 몸 건강해지는 방법을 듣곤 한다. 나도 이미 병원 다닐 일이 많아지는 나이가 되고 보니, 무얼 먹었더니 어디가 좋더라 하는 이야기를 무시할 수가 없다. 비단 나이를 먹었기 때문만은 아닐 테다. 우리의 몸이 보내는 신호를 바로 알아채고, 그 신호에 맞는 속도와 방법으로 내 몸을 보호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 몸을 위해서라면 가장 먼저 챙겨야 할 게 무엇일까? 하나둘, 챙기기 시작하는 약이 늘어나는 거? 몸에 좋다는 보양식을 찾아다니는 거? 아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건 평소 우리의 식사로 건강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심지어 암을 이길 수도 있다고 한다. 사실 나는 병원에서의 처방이 아닌 방법으로, 흔히 민간요법이라고 하는 방법이 암 같은 병을 낫게 한다는 이야기에 시선을 두지 않으려고 했다. 개인의 체질에 따라 다르게 작용할 것이고, 양약과 병행하지 않았다면 효과가 있었을까 하는 의심도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나 막다른 길에 닿으면 뭐라도 시도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게 내 목숨을 위한 일이라면 말이다. 그러니 한편으로 생각하면 아주 무시할 수도 없다. 중간에 애매하게 걸쳐 있는 마음을 한쪽으로 잡아주는 게 이 책의 설명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음식으로 건강해질 수 있다는 얘기를 연구 결과로 증명하며, 누구나 따라 하며 확인할 수 있게 쉬운 설명으로 독자의 귀를 열어준다.


총 3부로 구성하여 음식으로 건강을 유지하는 흐름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우리 몸의 자연 방어체계가 만드는 건강을 지키는 타고난 능력, 음식이 약이 될 수 있다는 증거로 먹어서 병을 이기는 방법, 먹어서 건강해지는 실천요령으로 계획하고 선택하고 행동하라고 말한다.


혈관신생, 재생, 마이크로바이옴, DNA 보호, 면역. 우리 몸은 이 다섯 가지 방어체계가 있고, 이것들은 체내에서 몸을 치유한다. 어떻게? 우리가 흡수하는 음식과 관련이 있고, 그에 해당하는 음식은 전문적인 자료로 증명한다. 누군가의 카더라 통신이 아니라 이미 증명된 방법이라는데 믿지 않을 수가 없다. 어차피 매일 하는 식사가 우리 몸의 자연 치유 능력을 발휘하도록 먹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을까. 그렇다고 누구나 똑같은 입맛은 아닐 거다. 문화에 따라 즐기는 음식도 다를 테지. 그런 경우는 어쩔 수가 없겠지만, 그 외의 음식들은 여러 가지가 있으니 선택의 폭은 넓다.


저자는 우리 몸에 꼭 필요하다는 5가지 방어체계에 효과적인 식사법은 약이 된다고 하며, '5*5*5 플랜'을 제시한다. 여러 가지 방법과 자세한 연구 결과로 증명하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나쁜 것을 제한하기보다는 개인의 취향을 바탕으로 실천할 방법을 모색한다. 각자 원하는 음식을 정하고 먹는다. 매일 먹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단, 음식의 구성은 저자가 말하는 5가지 방어체계를 모두 포함해야 한다. 그것만 지키면 어렵거나 까다롭지 않게 실천해볼 수 있다. 굉장히 실용적이지 않은가? 먹기 싫은 건 먹지 말라잖아. 먹고 싶은 것만 먹으면서 구성 요소만 지켜달라는데 못할 것도 없지 싶다. 어쩌면 그동안 도전해온 여러 가지 다이어트 방식도 생각난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아마도 제한하는 게 많아서 실패하는 게 첫 번째 이유가 아닐까. 건강을 지키는 일도 비슷하다. 제한하는 게 많은 게 아니라, 좋아하는 것 중에서 약간만 신경 쓰면 된다는 거다.


인체의 마이크로바이옴을 구성하는 박테리아 개체수는 39조라고 한다. 어마어마하다. 처음 듣는 얘기다. 우리는 음식으로 먹음으로 이 39조의 생명체를 살려야 한다. 이는 소화는 물론이고 우리 건강을 지키는 모든 과정을 이룬다. 특히 잘 발효된 김치는 마이크로바이옴에 좋은 식품이라고 한다. 체지방 감소는 물론이고 혈압 조절도 가능하게 한다니 놀랄 수밖에 없다. (이십 대 중반을 넘어가면서도 김치를 잘 안 먹는 큰 조카에게 강하게 추천해야겠다) 재생 능력을 높이는 식품 여러 가지 중에서도 아시아의 식사 메뉴가 좋다고 한다. DNA 보호 식품은 비타민 C가 함유된 음식들이며, 내가 좋아하는 음식 재료가 많아서 더욱 눈여겨보게 된다. 브로콜리와 당근은 웬만한 음식에 다 넣어서 먹기도 하고, 키위는 언제 먹어도 맛있는 과일이어서 좋아한다. 해산물도 좋다고 하는데 이건 내가 싫어하니까 빼야겠다. (그래도 된다고 하지 않았음?) 좋아하는 것 챙겨 먹으면서 메뉴 구성만 잘 지키면 된다니까 진짜 실천해보고 싶은 건강법이다.


각 장의 끝부분에 다양한 식품 목록이 담겨 있다. 각각의 설명에 맞는 음식이 무엇일지 궁금해하면서 읽다 보면 마무리로 그 궁금증을 해결해주듯이 식품 목록으로 답을 내놓는다. 거의 200가지 이상의 식품이 소개되는데, 그게 의학적 치료의 대체수단은 아니다. 건강을 지키는 가장 기본인 다섯 가지 방어체계를 활성화하는 음식이 분명 존재한다는 근거로 꺼내놓은 식사의 과학이다. 저자가 제시한 다섯 가지 방어체계를 강화하면서 우리 몸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 약도 필요하지만 그보다는 식사로, 병을 치료하는 것보다 병에 걸리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진리 중의 진리를 공감하게 한다. 아프면 병원에 가고 치료받지만, 병원에 갈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게 더 좋은 건 당연하다. 저자는 우리 몸의 자생력을 강화하고 병에 걸릴 싹을 잘라버릴 수 있는 게 음식의 효과라는 연구 자료로 증명하고 설명한다.


가장 기본적인 것을 바꾸면서 맛있게 먹고 건강도 지키는 방법. 다섯 가지 방어체계에 도움이 되는, 다섯 가지 건강식품을 선택해서, 하루 다섯 번을 먹는 '5*5*5 플랜' 식사법으로 건강을 증진하는 일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자기가 먹고 싶은 것으로 가능한 건강법이라는 매력적인 요소가 있다는 걸 잊지 말자. 거듭 실패하는 다이어트의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하면, 실패하지 않을 건강법을 찾은 저자의 방법에 눈이 확 뜨일 것이다.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게 건강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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