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에 낯선 번호가 뜬다. 받을까 말까 망설였다. 모르는 번호가 뜰 경우 둘 중에 하나다. 스팸이거나 택배이거나... 근데 보통 이곳에 배송하시는 택배 기사님 전화번호는 거의 다 입력되어 있던 터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택배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전화를 받았다. 후자였다. 알라딘에서 주문한 책을 가져다주겠다는 택배 기사님. 집 위치를 묻는 거였다. 큰 길 쪽에 위치한 터라 어렵지 않게 찾아오셨기에 물었다. 현대택배 기사님이 바뀌셨냐고. 기존에 배송하시던 기사님이 그만 두셔서 자기가 대신 배송해드리는 거라고, 자기는 현대택배 기사가 아니라고 했다. 알겠다고 하면서 딱히 그 택배 기사님 전화번호를 입력해두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이후로 거의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그 택배 기사님 전화번호가 자주 뜬다. 요 며칠은 이제 전화도 없이 찾아오신다. 익숙해졌다는 얘기다. 아직 고정된 기사님이 오시지 않았나 보다. 기존에 그 기사님 여기 배송한지 거의 반년 정도 되었는데 벌써 그만두셨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가끔 알라딘에 중고팔기 하면서 알라딘 노란가방에 책 꽉꽉 채워서 보낼 때, 난감해 하시던 표정이 생각난다. 이러면 곤란하다는 표정, 무겁고 힘들다고 말했던 표정, 한쪽에 탑차 세워놓고 담배 하나 피우고 출발하시던 표정... 결국, 그만두셨구나...

 

며칠 전에 TV에서 택배 기사의 3일을 취재한 다큐를 봤다. 택배 기사의 하루를 동행 취재한 프로그램이 처음은 아니었으니 특별하게 새로울 것은 없었지만, 그 내용이 어떨 건지 뻔히 알면서도 저절로 시선이 간다. 그리고 매번 볼 때마다 마음은 무겁다. 한때는 나와 여러 번 싸우기도 했던 대상인데, 한겨울에도 땀을 흘리며 뛰어다니는 그 모습은 나와 싸우던 모습과는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인터뷰하던 그 많은 택배 기사들의 말에 공통점이 있었다. 노동의 순간이 기쁘고, 땀 흘려 뛴 만큼 버는 일이라 좋고, 아파서 누워 있던 시간을 생각하면 이렇게 일 하는 순간이 행복하다는 거다. 택배 기사의 연령대도 다양했다. 예전에는 주로 나이 있으신 아저씨들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이십 대 청년들도 많다. 부부가 함께 다니기도 한다. 거의 잠자는 시간 빼고 모든 시간이 택배 업무에 필요한 시간이다. 바삐 움직이는 만큼 번다고 해도, 그렇게나 많은 시간이 택배 업무에 드는지 몰랐다. 가만 생각해보니 밤 10시에 배송 올 때도 있는 걸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었는데 말이다.

 

탑의 물건이 쏟아질까 봐 후진해서 언덕을 오르는 택배 차량도 있다. 골목 안쪽까지 차가 들어가지 못해서 물건을 들고 좁을 골목을 달린다. 번지수는 맞는데 집을 잘못 찾는 경우가 힘들단다. 집을 찾아서 물건을 배송해야 다음 집으로 배송을 가니까. 수령인이 부재중일 때는 택배 기사와 수령인 사이에 아는 장소에 두고 가고는 한다. 어느 집 현관문 앞에는 방문할 택배 기사의 이름이 써진, 음료수가 담긴 봉투가 하나 걸려 있기도 한다. 고맙다는, 감사하다는 한마디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게 한다.

 

택배가 없었을 때는 어떻게 물건을 보내고 받았는지 기억하기도 싫다. 작은 언니가 결혼하고 서울로 올라갔을 때다. 엄마가 담근 김치랑 엄마가 만든 반찬이 먹고 싶다고 했다. 엄마가 열심히 김치를 담그고 반찬을 만든 것을 어떻게 보냈는지 아나? 집에서 고속버스터미널까지 가서 기사님께 물품 인도하고 차비만큼의 배송료를 내고,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 언니랑 형부가 버스 도착 시각에 맞춰 나와 물품을 가져가고는 했다. 그런 일이 두 번 정도 있었는데, 정말 마음은 열 번을 보내고 싶어도 번거롭고 힘들다. 다행스럽게도 그즈음 해서 택배가 생겼다. 너무 편하게 이용하고 있는데 갑자기 택배가 없어진다는 상상만 해도 캄캄하다.

 

소비하는 생활에서 이제 택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나부터도 대부분 물건을 온라인으로 주문하고는 하니, 택배 기사님은 몇 달에 한 번 보는 친구보다 더 자주 보는 사이다.

어느 날, 조카 아이에게 동생(조카 아이의 엄마)이 자전거를 사줬다. 온라인으로 주문한 자전거가 배송되었고, 조카 아이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신 나게 자전거를 타고 놀았다. 놀이터에 같이 있던 아파트 아주머니가 조카 아이에게 물었단다.

“어머~ 자전거 멋지네. 누가 사줬어?”

“택배 아저씨가요!!!”

@@

아이의 눈에 비친 택배 기사님은 물건을 배송해주시는 분이 아니라 물건을 사주시는 분이었다. 너무 자주, 익숙하게 배송받는 일이 아이의 눈에는 그렇게 비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택배 아저씨가 사줬다는 그 말은 내 동생을 웃프게 했다. ㅠㅠ

 

인터넷서점 이용한 지 십 년이 넘었다. 그 말인즉슨, 택배를 이용한 시간도 똑같다는 말이다. 그동안 택배 관련해서 참 감정 상할 일 많았다. 배송도 안 해주고 마음대로 배송완료 처리해놓고 이틀이나 더 지나서 배송해준 적도 있다. 책도 그냥 막 던지고 가서 망가지고, 귀찮게 책 교환하게 하기도 했다. 어디 책뿐이랴. 내 돈 내고 내가 물건 보내는데도 택배 기사 눈치 봐야 하느냐며 화를 낸 적도 있다. 근데, 참... 이것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라 그런지, 사람의 감정이란 것이 한 템포 쉬고 말을 꺼내니 열 번 싸울 일도 다섯 번 싸우게 되고, 한번 싸울 일도 그냥 넘어가게 한다. 배송하는 사람, 받는 사람, 보내는 사람 모두가 딱 한 번만 더 숨 고르고 얘기하면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줄어들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겠다. 썩는 물건 아니면 하루 이틀 지나서 와도 그러려니 하고, 내가 먼저 웃으면서 수고하시라고 인사하기도 한다.

 

“기사님, 저 구단씨인데요.”

“어, 구단씨~” (몇 년 전에 처음 봤을 때부터 막 반말하셨다.)

“오늘 제 이름으로 반품 송장 나온 거 있어요?”

“송장? 오늘 구단씨 송장 나온 거 없는데?”

“아, 그럼 내일 나오려나 봐요. 알겠어요. 수고하세요.”

“그냥 오늘 가지러 갈 테니까 이따가 줘.”

“저희 오늘 부재중인데요?”

“그럼 00한약방에다 맡겨놔. 내일은 바쁜 날이야.”

“아, 네. 그럴게요.”

며칠 전, 택배 반품할 게 있어서 H택배 기사님께 전화를 드려 송장이 나왔느냐고 물었다. 송장이 안 나왔다는 말에 다음 날 나오겠구나 싶었다. 그랬더니 기사님께서 내일 송장 나오면 알아서 보내줄 테니 그날(월요일) 수거해 가신다고 했다. 다음날(화요일)은 바쁜 날이라 일부러 들르기 어렵다고. 택배에서 화요일이 가장 바쁜 날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도 웬만하면 화요일에 물건을 받거나 보내는 일을 피하려고 날짜 맞춰 주문하고는 한다. 그런데 반품은 내 맘대로 송장이 나오는 게 아니므로 어쩔 수가 없다. 그날은 내가 부재중이라 기사님을 기다릴 수 없다고 했더니 집 앞 큰길에 있는 한약방에 맡겨놓고 가라고 하신다. 그 한약방은 거의 매일 기사님이 방문하시는 곳이기도 하고 나도 잘 알고 있는 집이라 맡겨 놓고 가라고 하니 그러겠다고 했다. 이럴 경우 서로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내가 직접 건넨 물건도 아니고, 송장을 받은 것도 아닌 상태에서 남의 집에 물건 맡겨놓고 알아서 가져가겠다고 하는 말을 믿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믿었다. 연락처도 알고 있으니 이틀 정도 지난 후에 확인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보낼 택배 물건에 캔커피 하나를 붙여놓고 왔다. 이거 드시고 송장 나오면 문자 한 통 달라고 포스트잇에 써놓았다. 그런데 문자 없었다. ㅎㅎ 결국은 내가 전화를 해서 송장 번호 확인했지만, 화가 날 일은 아니었다. 기사님이 먼저 송장 번호 불러주고 있었으니까. 나이 드신 분이라 그럴 수도 있고, 그 바쁜 와중에 문자 한 통 보내는 일이 번거로웠을 수도 있다. 안전하게 발송된 거 알았으니, 됐다. 이 기사님은 길 가다 우리 엄마를 봐도 아는 척하신다. “구단씨 어머님 어디 가셔요~?” 남의 귀한 딸내미 이름 막 부르고 반말하신다고 우리 엄마가 싫어하는 거, 아시려나 몰라. ^^

 

“좋은 일 있으세요?”

“아닌데요?”

“항상 웃고 계셔서요.”

“아, 하하하...”

작년에 C택배 기사님이 바뀌셨다. 인터넷서점에서 내가 직접 주문한 책이나 선물이나 출판사에서 책을 받을 때 주로 마주하는 택배다. 그런데 이 기사님, 처음부터 너무 밝게 인사하면서 오신다. 목소리가 너무 커서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집안에서도 다 들린다. 이제까지 경험한 택배 기사님 중에서 가장 반갑게, 먼저 인사하는 분이다. 그런데 내 눈에는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처음이니까 그렇지, 조금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인상 쓰면서 올 건데 뭐, 하는 생각으로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근데 이분이 배송한지 1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하시다. 항상 밝게 인사하면서 들어오신다. 덩달아 택배 받는 사람도 괜히 기분이 좋다. 길 가다 우연히 봤는데 마주하는 고객들에게 모두 그렇게 대하신다. 이런 분이 이 구역을 오래 담당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 전에 엄마가 김치를 보내신다고 방문요청을 했다. 좀 무거운 박스였는데, 엄마가 따뜻한 캔커피 건네면서 택배 기사님께 물으신다.

“날씨도 추운데, 짐도 무겁고, 힘드시죠?”

“아이고, 어머님.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그건 그런데... 그래도 힘들지요.”

“힘들어도 열심히 해야죠. 하하하.”

그렇지.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래도 몸이 아프면 일하기 힘들어지는 일이라, 밖에서 움직이는 일이라, 너무 춥거나 너무 더운 날은 저절로 시선이 간다. 내 몸이 아프면 짜증나고, 사람을 마주하는 일이라 별의별 상대를 다 만날 텐데... 그래서 이분의 하이톤 인사가 대단해 보인다. 그냥 나오는 인사가 아닐 듯해서.

이분은, 우리가 부재중일 때는 배송 안 하고 그냥 갈 수는 없으니 기사님과 나만 아는 비밀 장소(?)에 택배 숨겨두고 전화하신다. 어디 어디에 놓고 간다고. 아주 오래전에 어떤 기사님은 아무런 연락도 없이 그냥 현관 앞에 놓고 가시고는 했다. 불쾌했다. 이런 이유로 놓고 가니 나중에 확인하라고 말이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 화를 낸 적도 있다. 택배 온 줄도 몰랐는데, 물건 분실하면 책임지실 거냐고 따져 묻기도 했다. 그냥 놓고 갈 수도 있는 상황을 이해 못 한 게 아니라, 놓고 갔다는 확인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다. 웃으면서 이해할 수 있는 일이 태도 하나에서 얼굴 붉히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거, 지금은 잘 알고 있다.

 

집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C택배 영업소가 있다. 집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는 H택배 영업소가 있다. 택배 보낼 일이 있을 때는 보통 3분 거리의 C택배를 이용한다. 처음에 부부가 같이 택배 배송을 하셨는데, 지금은 그분들이 영업소를 열었고, 택배 기사님 2~3분이 함께 일하시는 걸로 안다. 번거롭지 않게 하려고 송장도 몇 장씩 미리 갖다 놓고 사용하고는 한다. 물건 보낼 일이 있을 때는 송장까지 다 붙여서 들고 가기도 하고, 음료수를 가지고 가기도 한다. 주로 화요일은 피하는 편이고, 오전 일찍 방문하는 것도 피한다. 택배 영업소가 오전 9~10시쯤 되면 문을 연다. 그래서 물건을 들고 간 적이 있었는데 아무도 없었다. 오전 11시쯤 다시 갔다. 그때야 기사님들이 있으셨다. 아침 이른 시간부터 물류 작업하고 그 시간이나 되어야 배송 때문에 영업소로 온다고 하셨다. 기사님 두 분이 테이블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계셨는데, 송장을 쫙 펴놓고 정리하고 계셨다. 뭐하나 싶어서 궁금한 마음에 물었더니 담당 지역 배송할 송장인데 주소에 맞게, 배송 순서에 맞게 정리하는 중이라고 했다. 아하... 미리 정리해서 순서를 정해야 시간도 절약하고 효과적이겠구나 싶었다. 대충 그런 식으로 배송하는 거 알고는 있었는데, 직접 눈으로 보니 신기해 보였다. 세상에 쉬운 일 없는데, 택배도 쉬운 일이 아니구나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드는 순간이다.

 

내가 TV를 통해서 본 다큐 속에서 그들은, 직접 마주한 택배 기사님은, 노동의 현장에서 자신의 땀으로 일구어낸 만족감을 얘기했다. 자신이 배송하는 물건을 보고 좋아하는 고객의 표정에 기뻐했고, 방문하는 집마다 노크하느라 장갑의 가운뎃손가락에 난 구멍을 보여주며 웃었다. 물건을 이고 지고 뛰어다니느라 불편한 한쪽 팔, 한쪽 다리를 얘기했다. 월급날 입금된 숫자를 보여줬다. 그렇게 뛰어다녔는데 그 금액일까 싶어서 갸우뚱 했지만, 그 내역에 대해서, 택배 일의 더 세세한 사정에 대해서 내가 다 알 수 없으니 넘어가자. 하지만 그들의 하루를 지켜보고, 통장에 입금된 숫자를 본 내 마음은 서글펐다는 거... 그 금액 중 절반 이상이 영업차량의 기름 값이며 온갖 세금으로 다 나갈 테지만, 뛴 만큼, 땀 흘린 만큼 버는 그 일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얼굴에 내가 느낀 서글픔을 보태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은 새벽부터 물류 집하장으로 나가 허리 펼 시간도 없이 몇 시간을 택배 분류하고,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그 좁은 골목을 뛰어야 하며,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운전석에 앉아 차가운 김밥 한 줄을 먹으면서도 택배 일을 계속할 것이다. 그 노동의 현장에서 땀 흘리며 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열심히 살고 있다는 증거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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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0 0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4-07 15: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14-03-21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수필한편 같아요

구단씨 2014-03-21 21:45   좋아요 0 | URL
대부분 사람들의 일상이, 그렇겠지요? ^^
 
포트노이의 불평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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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작, 그것도 ˝악명 높은˝ 문제작이란다. 필립 로스의 작품 한 편만을 읽어본 내가 상당한 흥미로움으로 선택하게 한 작품이다. 재밌단다. 이런 데서 또 호기심이 발동한다. 그럼 읽어봐야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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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황태자비 납치사건 - 개정판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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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에 개정판이 나왔는데, 또 다시 출간된다니... 뭐가 더 변화되고 추가되었는지 궁금해서 읽어본다. 고구려 이후로 만나는 김진명의 도서 색깔 기대해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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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와 수증기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445
김경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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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조금은 달라진 김경주 글의 분위기에 살짝 반할 듯하다. ^^ 비오는 오늘 같은 날, 잘 어울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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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12년> 

며칠 전에 영화 <노예 12년>을 보고 왔다. 원작을 다 읽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실화라는 점에서 원작이 책이든 영화든 먼저 볼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것을 선택하고자 했다. 무비꼴라주에서나 상영할 법한 영화인가 보다. 시간표가 아예 잡히지 않는 극장도 있었다. 이곳 극장에서도 많아야 하루에 세 타임 정도. 그런데 놀라운 일은, 아카데미상 발표가 나자마자 하루에 다섯 타임으로 상영 횟수가 늘었다. ^^ 기뻐해야 하는 일인지 어떤 건지 그다지 마음의 동요가 없었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원작이 보고 싶어졌다. 순서가 거꾸로 되긴 했지만 결론은, 원작 때문에 이 영화가 보고 싶었던 게 맞다.

내가 읽다가 만 책은 펭귄클래식이었는데, 다양하게 나왔구나 싶어서 골라 읽는 재미도 있을 듯하다. 원작도 그리 많지 않은 분량이다. 누군가의 얘기를 듣는 기분으로 귀를 기울이게 된다.(나는 아직 원작을 끝까지 읽지 못했다.) 억울하게 12년을 노예로 생활했던 이가 적었다는 그 마음, 억울함, 분노... 뭐든 공감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인간을 사고파는 일이 가능했다는 건 어떤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오늘날에도, 노예라고 부르지 않을 뿐이지 그런 악행이 어딘가에서 버젓이 계속되고 있다는 의심은 멈추지 않는다. 솔로몬 노섭이 플랫이란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그 시간, 어떻게든 목숨 부지하고 견뎌내야만 했던 시간이 생생하게 들려온다. 이런 일이 가능해? 언젠가부터 세상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무조건적인 신뢰 보다는 의심부터 하는 버릇이 생기기도 한 건, 그 세상 속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를 만들어갈 인간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솔로몬이 워싱턴으로 그 사람들을 따라갔던 건, 서커스와 함께 하는 자신의 연주, 좋은 보수, 그리고 그런 자리를 만들어준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였는데...

무엇보다 인간을 사고팔면서 사유재산이라 부르고, 잠시 숨 돌릴 틈도 없이 노동력을 착취하는 일, 인간 이하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하는 절대 이해 못할 일이 실제였다고 솔로몬 노섭이 증명한다. 두 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이 지루함보다는 안타까움으로 내내 지켜보게 했다. 특히, 남녀 노예의 혼숙, 솔로몬의 옆자리에 누워있던 여자가 솔로몬의 손을 자기 가슴 쪽으로 끌어당기면서 보였던 눈빛, 그리고 흐느끼던 그녀의 울음소리를 쉽게 잊기 힘들 듯하다.

 

 

 

<우아한 거짓말>

영화를 보기에 앞서 원작을 다시 읽었다. 처음 출간했을 때 읽었으니 세세한 내용은 기억이 잘 안 났다. 그저 막연하게 ‘이런 내용이었지.’ 하는 느낌만 남아있었다. 그런데 다시 읽고 보니 김려령이라는 작가가 참 매력 있어 보인다. 지금껏 만났던 김려령의 작품은 쉽거나 가볍거나 했던 게 없었다. 심지어는 어린이 도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웃음 코드를 만드는 것 같으면서도 허를 찌른다. ‘그냥 웃고 넘길래?’ 하고 따져 묻듯이... 거짓말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 앞에 ‘우아한’이란, 참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를 왜 붙였나 싶었는데 다 읽고 나니 알겠다. 그 우아한 거짓말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고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 듯하면서, 결국은 죽은 이가 죽음을 준비하면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보여주는 느낌. 누군가는 죽었고, 누군가는 말로 살인이라도 가능하게 했고, 누군가는 알면서 침묵했다. 훈계하듯 가르치려 들지도 않았다. 좋은 말로 마무리하지도 않았다. 그저 보여주었다. 있는 그대로...

곧 개봉할 영화는 어떨까... 개인적으로 김희애라는 배우나 영화가 원작을 얼마나 새롭게 했을까 하는 기대감보다는 이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세 명의 아역배우와 유아인이 궁금하다. 극장에서 예고편을 보니 유아인이 잠깐 등장하더라. 긴 머리 휘날리듯 넘기는 그 장면을 보니 아마도 유아인은 원작 속의 ‘오대오(추상박)’ 역할인 듯하다. 그리고 세 명의 아역배우들. 김유정과 고아성, 김향기. 주인공들의 입장에서, 그 나이의 여학생의 모습을, 다 알아채기 어려운 그 심리를 얼마나 잘, 자연스럽게 표현해줄지 많이 궁금하다.

 

 

 

<여자만화구두>

아, 이 원작 정말 로맨스소설스럽다. 이야기가 만화의 컷과 대사, 지문으로 바뀐 것뿐이다. 출간 당시에 읽고 얼마나 설렜던지. 어렸을 때나 만화를 보고 커서는 별로 관심 갖지 않았는데, 이 책으로 만화에 대한 선입견도 버리고 하나의 작품으로 대하게 되었다. 이십대의 여자 신지후가 회사 선배인 오태수 대리를 좋아하는 마음이 두근거린다. 표현하지 못하고 입만 벙싯벙싯.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이 어떻게 숨겨지겠나. 그런데 상대는 오대리다. 오대리는 사랑에 대한 기대감이 없는 편에 속한다. 회사 동료에게 연애나 결혼에 대해 현실적인 마음을 늘어놓는다. 그런 오대리에게 꽂힌 신지후라니 마음이 아파지려고 하는데, 여기서 뭔가 통해야 한다. 소소한 에피소드와 함께 하는 시간으로 둘은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아~ 기뻐라~ ^^

이 원작이 10분짜리 미니드라마로 만들어졌다. 현재 4회까지 방송되었다. 1회부터 4회까지 다 방송되었다 하더라도 그 시간은 일일드라마 1회 분량에 가깝다. 그래서 일주일에 두 번, 그것도 10분씩 보는 맛이 아주 간질간질하다. 처음 캐스팅을 보고 화들짝 놀라서 안 보려고 했다. 내가 생각했던 신지후는 배우 서지혜였으니까. 원작을 많이 비켜갈 거라는 생각에 안보다가 우연히, 정말 딱 10분씩 봤던 1,2회에서 마음이 움직이더라. 원작과 똑같은 장면을 넣기도 했고, 드라마적인 장면이나 설정이 새롭게 보인 것도 있다. 원작에 충실하게 만들어내든, 원작을 재해석해서 새로운 드라마로 만들든, 이제 내 눈에는 그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보면서 살짝 설렜다. 이제 점점, 아니라고 생각했던 자신들의 마음을 인정하는 순간을 볼 듯하다. 기다리기 지루해서 매주 2회 분량을 몰아서 보고 있는데, 이것도 성에 안 찬다. 그리고 슬픈 일은, 10분짜리 이 드라마가 금방 끝날 거라는 거. ㅠㅠ

이 드라마의 원작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실망보다는 입꼬리에 웃음이 걸리게 만족감을 주었으면 하는, 지극히 사심 가득한 바람으로 남은 시간도 챙겨봐야지.

 

 

 

<두근두근 내 인생>

이런 책을 만나게 되다니...! 펼쳐들기까지 아무런 기대도 그럴싸한 정보도 없었다. 어쩌다 보니 구입한 책이고, 어쩌다 보니 출간된 지 반년이나 흐른 후에 읽게 된 책이다. 아, 페이지가 줄어들어 아깝다는 건 이런 책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게 그대로 알아질 정도였다. 김애란이란 작가의 이름을 단 한 번에 기억하게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나이를 먹어가는 속도와 몸이 늙어가는 속도가 다른 아름이의 그 이름을 잊을 수가 없다. 누가 강요하지 않았어도 이 책에 대해 저절로 말을 하고 싶을 정도로 입이 근질근질했던 기억이 난다. 취향 차이가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선뜻 책 추천 안 하는데, 이 책은 고민 없이 추천하고는 했다. 뭐, 읽는 건 각자의 몫이지만 그래도 한번은 읽어봐도 좋을 책이라고 감히 말하고는 했다. 그래서였다. 영화화된다고 했을 때, 닥치고 기다렸던 이유는...

영화가 언제 개봉할지는 모른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건 캐스팅되었다는 두 주연배우뿐이다. 아름이의 철없던 엄마 아빠의 모습을 이들이 어떻게 보여줄지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는 게 슬플 뿐...

 

 

내가 읽은 책이 영화나 드라마, 혹은 다른 영상으로 만들어진다고 하면 궁금해지는 게 사실이다. 책과 얼마나 다를까, 원작의 느낌을 얼마나 잘 살려놨을까, 원작을 넘어서는 작품으로 만날 수 있지는 않을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기다리는 마음. 역시 설렘이다. 그래서 기다리는 듯하다. 어찌되었든 뚜껑은 열어보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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