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12년> 

며칠 전에 영화 <노예 12년>을 보고 왔다. 원작을 다 읽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실화라는 점에서 원작이 책이든 영화든 먼저 볼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것을 선택하고자 했다. 무비꼴라주에서나 상영할 법한 영화인가 보다. 시간표가 아예 잡히지 않는 극장도 있었다. 이곳 극장에서도 많아야 하루에 세 타임 정도. 그런데 놀라운 일은, 아카데미상 발표가 나자마자 하루에 다섯 타임으로 상영 횟수가 늘었다. ^^ 기뻐해야 하는 일인지 어떤 건지 그다지 마음의 동요가 없었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원작이 보고 싶어졌다. 순서가 거꾸로 되긴 했지만 결론은, 원작 때문에 이 영화가 보고 싶었던 게 맞다.

내가 읽다가 만 책은 펭귄클래식이었는데, 다양하게 나왔구나 싶어서 골라 읽는 재미도 있을 듯하다. 원작도 그리 많지 않은 분량이다. 누군가의 얘기를 듣는 기분으로 귀를 기울이게 된다.(나는 아직 원작을 끝까지 읽지 못했다.) 억울하게 12년을 노예로 생활했던 이가 적었다는 그 마음, 억울함, 분노... 뭐든 공감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인간을 사고파는 일이 가능했다는 건 어떤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오늘날에도, 노예라고 부르지 않을 뿐이지 그런 악행이 어딘가에서 버젓이 계속되고 있다는 의심은 멈추지 않는다. 솔로몬 노섭이 플랫이란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그 시간, 어떻게든 목숨 부지하고 견뎌내야만 했던 시간이 생생하게 들려온다. 이런 일이 가능해? 언젠가부터 세상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무조건적인 신뢰 보다는 의심부터 하는 버릇이 생기기도 한 건, 그 세상 속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를 만들어갈 인간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솔로몬이 워싱턴으로 그 사람들을 따라갔던 건, 서커스와 함께 하는 자신의 연주, 좋은 보수, 그리고 그런 자리를 만들어준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였는데...

무엇보다 인간을 사고팔면서 사유재산이라 부르고, 잠시 숨 돌릴 틈도 없이 노동력을 착취하는 일, 인간 이하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하는 절대 이해 못할 일이 실제였다고 솔로몬 노섭이 증명한다. 두 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이 지루함보다는 안타까움으로 내내 지켜보게 했다. 특히, 남녀 노예의 혼숙, 솔로몬의 옆자리에 누워있던 여자가 솔로몬의 손을 자기 가슴 쪽으로 끌어당기면서 보였던 눈빛, 그리고 흐느끼던 그녀의 울음소리를 쉽게 잊기 힘들 듯하다.

 

 

 

<우아한 거짓말>

영화를 보기에 앞서 원작을 다시 읽었다. 처음 출간했을 때 읽었으니 세세한 내용은 기억이 잘 안 났다. 그저 막연하게 ‘이런 내용이었지.’ 하는 느낌만 남아있었다. 그런데 다시 읽고 보니 김려령이라는 작가가 참 매력 있어 보인다. 지금껏 만났던 김려령의 작품은 쉽거나 가볍거나 했던 게 없었다. 심지어는 어린이 도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웃음 코드를 만드는 것 같으면서도 허를 찌른다. ‘그냥 웃고 넘길래?’ 하고 따져 묻듯이... 거짓말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 앞에 ‘우아한’이란, 참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를 왜 붙였나 싶었는데 다 읽고 나니 알겠다. 그 우아한 거짓말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고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 듯하면서, 결국은 죽은 이가 죽음을 준비하면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보여주는 느낌. 누군가는 죽었고, 누군가는 말로 살인이라도 가능하게 했고, 누군가는 알면서 침묵했다. 훈계하듯 가르치려 들지도 않았다. 좋은 말로 마무리하지도 않았다. 그저 보여주었다. 있는 그대로...

곧 개봉할 영화는 어떨까... 개인적으로 김희애라는 배우나 영화가 원작을 얼마나 새롭게 했을까 하는 기대감보다는 이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세 명의 아역배우와 유아인이 궁금하다. 극장에서 예고편을 보니 유아인이 잠깐 등장하더라. 긴 머리 휘날리듯 넘기는 그 장면을 보니 아마도 유아인은 원작 속의 ‘오대오(추상박)’ 역할인 듯하다. 그리고 세 명의 아역배우들. 김유정과 고아성, 김향기. 주인공들의 입장에서, 그 나이의 여학생의 모습을, 다 알아채기 어려운 그 심리를 얼마나 잘, 자연스럽게 표현해줄지 많이 궁금하다.

 

 

 

<여자만화구두>

아, 이 원작 정말 로맨스소설스럽다. 이야기가 만화의 컷과 대사, 지문으로 바뀐 것뿐이다. 출간 당시에 읽고 얼마나 설렜던지. 어렸을 때나 만화를 보고 커서는 별로 관심 갖지 않았는데, 이 책으로 만화에 대한 선입견도 버리고 하나의 작품으로 대하게 되었다. 이십대의 여자 신지후가 회사 선배인 오태수 대리를 좋아하는 마음이 두근거린다. 표현하지 못하고 입만 벙싯벙싯.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이 어떻게 숨겨지겠나. 그런데 상대는 오대리다. 오대리는 사랑에 대한 기대감이 없는 편에 속한다. 회사 동료에게 연애나 결혼에 대해 현실적인 마음을 늘어놓는다. 그런 오대리에게 꽂힌 신지후라니 마음이 아파지려고 하는데, 여기서 뭔가 통해야 한다. 소소한 에피소드와 함께 하는 시간으로 둘은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아~ 기뻐라~ ^^

이 원작이 10분짜리 미니드라마로 만들어졌다. 현재 4회까지 방송되었다. 1회부터 4회까지 다 방송되었다 하더라도 그 시간은 일일드라마 1회 분량에 가깝다. 그래서 일주일에 두 번, 그것도 10분씩 보는 맛이 아주 간질간질하다. 처음 캐스팅을 보고 화들짝 놀라서 안 보려고 했다. 내가 생각했던 신지후는 배우 서지혜였으니까. 원작을 많이 비켜갈 거라는 생각에 안보다가 우연히, 정말 딱 10분씩 봤던 1,2회에서 마음이 움직이더라. 원작과 똑같은 장면을 넣기도 했고, 드라마적인 장면이나 설정이 새롭게 보인 것도 있다. 원작에 충실하게 만들어내든, 원작을 재해석해서 새로운 드라마로 만들든, 이제 내 눈에는 그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보면서 살짝 설렜다. 이제 점점, 아니라고 생각했던 자신들의 마음을 인정하는 순간을 볼 듯하다. 기다리기 지루해서 매주 2회 분량을 몰아서 보고 있는데, 이것도 성에 안 찬다. 그리고 슬픈 일은, 10분짜리 이 드라마가 금방 끝날 거라는 거. ㅠㅠ

이 드라마의 원작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실망보다는 입꼬리에 웃음이 걸리게 만족감을 주었으면 하는, 지극히 사심 가득한 바람으로 남은 시간도 챙겨봐야지.

 

 

 

<두근두근 내 인생>

이런 책을 만나게 되다니...! 펼쳐들기까지 아무런 기대도 그럴싸한 정보도 없었다. 어쩌다 보니 구입한 책이고, 어쩌다 보니 출간된 지 반년이나 흐른 후에 읽게 된 책이다. 아, 페이지가 줄어들어 아깝다는 건 이런 책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게 그대로 알아질 정도였다. 김애란이란 작가의 이름을 단 한 번에 기억하게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나이를 먹어가는 속도와 몸이 늙어가는 속도가 다른 아름이의 그 이름을 잊을 수가 없다. 누가 강요하지 않았어도 이 책에 대해 저절로 말을 하고 싶을 정도로 입이 근질근질했던 기억이 난다. 취향 차이가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선뜻 책 추천 안 하는데, 이 책은 고민 없이 추천하고는 했다. 뭐, 읽는 건 각자의 몫이지만 그래도 한번은 읽어봐도 좋을 책이라고 감히 말하고는 했다. 그래서였다. 영화화된다고 했을 때, 닥치고 기다렸던 이유는...

영화가 언제 개봉할지는 모른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건 캐스팅되었다는 두 주연배우뿐이다. 아름이의 철없던 엄마 아빠의 모습을 이들이 어떻게 보여줄지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는 게 슬플 뿐...

 

 

내가 읽은 책이 영화나 드라마, 혹은 다른 영상으로 만들어진다고 하면 궁금해지는 게 사실이다. 책과 얼마나 다를까, 원작의 느낌을 얼마나 잘 살려놨을까, 원작을 넘어서는 작품으로 만날 수 있지는 않을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기다리는 마음. 역시 설렘이다. 그래서 기다리는 듯하다. 어찌되었든 뚜껑은 열어보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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