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마다 첫차의 운행 시간이 다르겠지만, 고등학교 다닐 때 탔던 첫차는 새벽 6시 반이었다. 그 차를 타고 학교에 도착하면 거의 7시였다. 여름은 그나마 나은데, 시골의 겨울에 7시는 아직 캄캄한 밤이었다. 그래도 하루를 조금 일찍 시작하고 싶어서, 머리가 따라주지 못하는 공부에 그래도 성의를 보이고 싶어서 일찍 등교하곤 했다. 그때 이후로 새벽 첫차를 탈 일은 없었다. 그저 조금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을 뿐, 버스가 조금 밀려도 시간을 꽉 채워서 움직이곤 했으니까. 지금 생각해도 또렷하게 떠오르는 건, 그 이른 시간에 나만 버스에 타고 있던 게 아니었다는 거다. 그리고 세월이 더 흘렀고, 거의 이십 년 전쯤이었던가. 서울에 종종 다니던 때다. 친구가 퇴계원에 살았고 거기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일을 보고 다녔던 적이 있다. 새벽 여섯 시쯤 친구 집을 나서 버스를 타고 나와서, 강변역에서 지하철로 갈아타고 움직였는데, 거의 죽을 뻔했다. 아침 7시도 안 되는 시간에 지하철은 움직일 수조차 없을 만큼 사람이 꽉 찼고, 겨울의 추운 날씨에 지하철 안의 히터는 내 속을 뒤집어 놓았다.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 내려서 화장실에서 구토하고 변기 위에 앉아서 한참을 기대어 있던 기억. 며칠을 그렇게 다니고 집으로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정말 열심히 사는구나.

동이 트기도 전,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서 첫차를 타는 이 사람들은 어디로 그렇게 바삐 가는 걸까. 예상했겠지만, 이들은 어느 건물 속으로 들어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을 해낸다. 건물의 청소부, 밤새워 근무한 이와 교대하는 경비,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조리사 등 이 도시의 구석구석을 지키는 필수 노동자가 대부분이다. 지난주부터 시작된 긴 연휴에 아파트 쓰레기장의 쓰레기가 쌓여 있는 것만 봐도 이들이 해내는 노동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연휴 동안 쉬었다고 해도 편하지만은 않았을 거다. 연휴가 끝나면 밀린 일이 산처럼 쌓여 있을 테니까. 단지 해야 할 일의 양이 많아서 힘든 건 아니다. 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존중받지 못하는 순간이 생길 때마다 자존감이 무너지는 상황 때문이다. 이름으로 불리는 게 아니라 그들을 아줌마나 노인네로 부르며 낮게 보는 사람들 때문에, 분명한 휴게시간임에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황을 따지지 못해서, 편하게 밥 한 숟가락 뜰 공간조차 없어서 괜한 서러움에 눈물이 난다. 그래도 무너지지 않고 자기 일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 자리가 비워진다면 많은 사람의 일상을 지켜내지 못할 테니까.
어느 날 갑자기 학교 급식실 파업으로 엄마들은 도시락 준비에 당황하기도 한다. 도로의 한쪽에 쌓인 쓰레기가 치워지지 못해서 지저분해질 때도 있다. 모두가 퇴근한 건물의 안전은 누가 지키려나. 제조업의 한 부분이 멈춘다면 생활필수품의 어떤 건 사용하지 못할 거고, 고장이 난 자동차의 부품은 또 어디서 구하게 되는 걸까. 근로자, 혹은 노동자. 노동력을 제공하고 얻은 임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 많은 사람이 노동자로 살아간다. 이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자기 일 열심히 하며 살아가는데, 왜 투명 인간 취급당해야만 하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의 자리가 다 비워진다고 생각해 보면 끔찍한데 말이다. 힘 있는 자의 목소리는 잘 들으면서, 왜 전쟁 같은 일터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쳐다보지 않으려 하는지. 이 사회를 구성하는 많은 사람이 6411번 버스에 타는 사람들인 텐데, 바로 우리인데 말이다.

고 노회찬 국회의원의 말로 알게 된 6411번 버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버스를 검색해 봤다. 서울에 살지 않는 내가 알 수 있는 버스가 아니어서 더 궁금했다. 평일 기준 12분의 배차 간격, 신정동과 선릉역 사이를, 새벽 3시 45분에 첫차가 운행된다고 한다. 정말이었다. 그 시간에 버스가 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운행하는 버스가 한번 돌고 오면 거의 세 시간이 소요된다. 그 사이에 버스에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은 숨 한번 돌릴 사이도 없이 바삐 움직인다. 일터로, 혹은 밤샘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많은 정책이 새롭게 도입되고 사라진다. 그 정책들이 직접 적용되어야 할 대상의 목소리는 어디까지 전해지는 걸까. 그 목소리가 무시당하고 힘을 갖지 못해서 늘 약자의 어려움은 사라지지 않는 듯하다. 그런 어려움을 직접 지켜보면서 이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윤지영 변호사도 있었다.
‘직장갑질119’의 대표이자 노동인권 변호사인 윤지영 저자의 『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은 노동자들의 법정투쟁 이야기다. 사실 피해자가 혼자 법을 이야기하고자 했다면 어려웠을 듯하다. 저자의 전문적인 지식이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었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야기도 있었고, 처음 접하는 내용도 있었다. 아니, 근로자에게 성별로 다른 정년의 나이를 적용하는 곳이 국정원이었다. 현장 실습생의 실습은 어디까지인지 따져 물을 수 있을까. 파견 노동자들에게 대놓고 성희롱해도 누구 하나 그게 잘못인지 알지 못하는 회사라니. 그날의 기록들이 아니었다면 증명하지 못했을 택시 기사의 사납금 사건은 어떤 계산법으로 나온 금액인가. 비정규직 PD의 업무는 어디까지였을까. 말도 못 할 사연들이 가득했다.
진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무섭기까지 했다. 노동자로 살아가는 일이 힘들다는 건 너무 잘 알았지만, 이 책을 읽고 오랜 시간 동안 싸워온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숨이 턱 막혔다. 피해자가 이렇게 고통스러워야 하는 게 법으로 싸워야만 하는 거라면, 이들이 선뜻 법으로 싸우고자 결심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노동자가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면서 존엄을 지키는 게 노동법이라는데, 노동자가 법정에서 이 노동법을 주장하는 현실은 왜 이렇게 힘들기만 한 건지. 그 과정에서 노동변호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저자의 고군분투가 이 책에 그대로 녹아 있다. 이보다 더 몰입해서 빠져드는 드라마가 또 있을까 싶어질 정도였다. 누구라도 이 책 속 사례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억울하고 기가 막히고, 힘이 없다는 이유로 이렇게 당하고 있어야만 하는지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힘 있는 자들이 법을 앞세워 싸우고자 할 때 저자와 같은 조력자가 없다면 이 싸움의 결말이 어떨지 눈에 보이는 듯하다. 저자에게 다가온 사건이 이 정도였다면, 법의 도움조차 받지 못하고 미리 포기해버리는 일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읽으면서 분노가 일었고, 저자와 같은 이들이 있어서 용기를 잃지 않는 순간은 또 만들어지는구나 싶었다. 이 책 속의 피해자들이 미리 겁먹고 포기하지 않고 저자를 찾아왔던 것처럼, 피해를 보상받고 노동의 현장에서 다시 일할 수 있도록 연대하는 이야기에 저절로 힘이 난다.
5월 1일. 공식적으로는 근로자의 휴일일지만, 남편은 회사 노동조합의 일정에 맞춰 집회에 갔다. 태풍급의 바람이 불고 비가 많이 내렸는데, 약속된 일정에 참여한다고 휴일을 반납했다. 특별한 주제를 이유로 만들어진 자리는 아니었다. 근로자의 날을 기념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내는 정도인 것 같았다. 다행히 이번에는 서울이 아니라 옆 도시로 가는 거여서 하루의 절반 정도 시간을 보냈지만, 곧 있을 임금 협상과 함께 무거운 일들을 앞둔 때여서 그랬는지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다고 했다. 그저 하루하루, 자기에게 주어진 일 열심히 하면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언제쯤 아무 근심 없이 아침 출근길을 나설 수 있을까. 다행인 건 저자와 같은 노동변호사와 많은 인권운동가, 노동의 가치와 억울함을 대신 표현해주는 작가들, 이들의 목소리를 전해주는 방송인 등 많은 사람이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함께 해주고 있다는 거다. 더 많은 당사자가 용기 낼 수 있게, 노동자의 존재가 부정당하지 않을 이야기로 남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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