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엄마가 모르는 나의 하루하루가 점점 많아진다
김소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1월
평점 :
내 인생에 결혼이 있을까 생각하면 언제나 부정의 답이
앞서곤 했다. 좀 더 어릴 때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해 볼 것을, 하는 후회. 아니면 지금이라도 아무나 붙잡고 결혼을 해야 하나, 싶은 모험.
이도 저도 아닌 생각들 속에서도 이상형을 묻는 말에는 늘 답이 정해져 있었다. 나와 성격이 잘 맞았으면 좋겠고, 우리 엄마한테 잘했으면
좋겠다는, 누가 일부러 시키지 않아도 오며 가며 우리 엄마가 어떻게 지내는지 살펴봐 주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바람들. 나는
마마걸이면서 마마보이는 싫다는 이야기를 꺼냈더니 누군가는 한참을 웃더라. 그렇게 이기적인 생각을 이상형으로 정해놓으니 당연히 누굴 만나고
맞춰가는 건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그런데도 그 바람 속에서 ‘엄마’라는 존재의 묶음은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식구들 모두 각자의 생활에
충실하며 사는 지금, 엄마와 나, 단둘이 서로에게 가진 존재감은 남들보다 조금 다를 것 같아서다. 그런 생각으로 사는 지금, 이 책의 제목에서
풍기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서 쓸쓸했다.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도 결국 흘러가버린다.
(316페이지)
누구나, 안다. 자식이 커가면서 부모가 모르는 시간은 점점
많아지고, 서로 다른 시간을 사는 준비를 해야만 한다는 것을. 여전히 같은 시간을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결국 이별은 찾아온다. 먼저 가는
사람, 남은 시간을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안다. 알면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시간을 또 겪어야 한다. 저자가 엄마와의 헤어짐을 기록하고, 누구의
딸에서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시간 속에 저자의 엄마가 있다. 삶의 모든 순간에 엄마가 있었다. 그런 엄마의 모든 것을
엄마가 떠난 뒤에야 알게 된다는 게 아이러니다.
아이를 낳고 나서 나는 엄마의 사랑과 희생을 온 마음으로 느끼게 되었고, 엄마는 당신과 같은
과정을 겪게 될 딸에게 더 많은 것을 주고 싶어 했다. 우리는 더욱 많은 것을 공감하게 되었으며 이런 공감대는 약간의 거리가 있었던 우리 사이를
한 걸음씩 좁혀주었다. (153페이지)
저자가 웹툰으로 올리던 일상이 책으로 나왔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려진 그 일상을 한편씩 듣다 보면 어느 순간 울컥해지곤 한다. 누구나 그러할 것 같다. 오래전 일기장을 꺼내놓고 읽으면서 지나간
시절을 기억하고, 어떤 마음으로 그 시간을 건너왔는지 이제야 다시 보는 느낌은 어떤 건지, 그런 시간을 만들어준 엄마는 또 왜 이렇게 일찍
가셔야만 하는 건지... 결혼을 생각한 적 없던 사람이 결혼하고, 덜컥 아이의 엄마가 되기까지의 그 짧은 시간에 언제나 엄마가 있었다. 엄마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를 순간들에 늘 기적처럼 엄마가 가능하게 했다. 그런 엄마에게 닥친 암 발병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 다시 말하는
순간이 되었고, 함께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엄마와 저자의 아이가 함께하는 모습을 볼 때 기쁨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끼고,
저절로 포근해진다.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은 순간들이다.
신기하게도 임신했을 때는 임산부만 보이고 솔이가 아기일 때는 아기들만 보이더니 이제는
길거리에서 엄마와 함께 걷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만 눈에 들어온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고등학생 딸과 엄마, 카페에서 손주를 안고 있는
엄마를 찍어주는 딸, 쇼핑몰에서 엄마와 팔짱 끼고 걸어가며 도란도란 이야기하기 바쁜 딸……. 부러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자꾸 시선이 간다.
(269페이지)
‘엄마가 되어보니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는 정석 같은 말을
거듭 증명하는 셈이 됐다. 너무 잘 아는데 막상 닥치지 않으면 그 이해의 언저리에 닿지도 못하는 감정이다. 그럴 것이다, 라는 추측으로만 아는
감정. 그걸 직접 겪은 사람의 이야기라 그런지 더 크게 다가오는 듯하다. 막연하게 생각하면서 준비하던 것과 다르게 경험한 사람의 슬픔이 그대로
묻어나는 것만 같아서, 언젠가 내가 겪어야 할 순간을 다시 한번 준비하는 느낌이 가득했다. 저자 스스로 성장하는 시간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은데, 그 안에 언제나 엄마가 있더라. 특별하지 않은 인생처럼 보이는 우리의 보편적인 삶의 모습이었다.
엄마에 대해 마음껏 얘기하는 시간. 저자에게 이 웹툰을
그리는 일과 기록하는 일은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지나고 나서 후회되는 순간도 많겠지만, 엄마를 기억하고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한껏 쏟아낸
순간에 찾아올 행복도 맛보았을 거라고. 지금 거기서 엄마도 듣고 있겠지, 웃으면서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겠지, 라고 위안으로 삼으며 저자의
기록에 공감으로 동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