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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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가고 있다. 지금 우리가 보내는 시간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하나하나, 조금씩 점점 더 많이... 그렇게 우리는 시간을 잃어가며 사는 중이다. 기억이란 것도 그렇게 잃어가는 것 중에 하나일 테지. 깜빡깜빡 자꾸만 뭘 놓치면서 잊어가고, 내 기억이 온전한 건지 확신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길에 다다르며 불안해하는 길을 걷고 있다. 그 불확실한 기억에 대해 점점 불안은 커지고, 나를 아끼는 주변 사람들을 몰라보기도 하는 일도 서슴없이 다가온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시간은, 그렇게 많은 것을 잊어가는 순간을 맞이하러 가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여기 이 노인의 시간도 그러하다.

 

“머리가 빛을 잃어가더라도 몸은 한참 뒤에서야 알아차리지." (68페이지)

 

“그냥 조심하면 된다고 설명하면 이해가 될까? 할아버지 말이다. 할아버지의 머리가…… 가끔 우리가 알던 속도보다 느리게 돌아갈 거야. 할아버지가 알던 속도보다 느리게 돌아갈 거야.” (149~150페이지)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이 어떻게 세상과 작별하는지 보여주는 이 짧은 소설의 울림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컸다. '잃는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그대로 체험하게 하는 듯했다. 좋아하는 것들, 사랑하는 사람들을 점점 잃어간다. 동시에 그가 살아온 모든 시간과도 헤어지는 중이다. 기쁘고 슬펐던 모든 일상을 그렇게 떠나보내는 과정을 산다. 먼저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는 마음, 평생 가깝게 지내지 못했던 아들과의 서먹함을 안타까워하는, 지나고 보니 온통 서운하고 아쉬운 것들뿐이어서 더 아픈 시간을 겪는 중인지도 모른다.

 

아쉬움이 가득한 지나간 시간을 돌이킬 방법은 없다. 기억을 잃어가며 지난 시간 속을 여행하는 노인의 머릿속을 정돈해줄 방법도 없다. 다만,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이 상황을 겪어갈 뿐이다. 어떻게 건너가야 덜 아쉬울 수 있는지 찾아보라는 숙제를 받은 듯하다. 노인이 중심이 되어 흘러간 가족 삼대의 이야기에 아름답고 아쉽고 뭉클한 순간들을 같이 경험한다. 이제 남은 것은, 남은 사람이 같이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게 아닐까 싶다. 마지막에 놓아야 할 순간이 오기 전까지, 마음을 다해 보듬듯이 대해야 하는 것. 그렇게 해야만 나중에 이 순간을 떠올릴 때 아쉽거나 슬프지 않을 것만 같아서 말이다.

 

“여보, 기억들이 나에게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어. 물과 기름을 분리하려고 할 때처럼 말이야. 나는 계속 한 페이지가 없어진 책을 읽고 있는데 그게 항상 제일 중요한 부분이야.” (83페이지)

 

누군가와 헤어진다는 것, 그렇게 헤어지는 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슬픈 일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아서 더 아픈 일이다. 아무리 연습을 한다고 해서, 몇 번의 이별을 경험한다고 해서 익숙해질 감정은 아니다. 어린 소년이 할아버지에게 이별을 묻는 그 순간에도 우리는 안다. 작별하는 법을 배운다는 게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다만, 우리는 덜 아프게 작별하는 법을 보려고 애쓰며,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와 아직 어른 소년이 이별을 배우며 조금 성장하는 시간을 동시에 만드는 것을 지켜볼 뿐이다. 그렇게 천천히, 담담하게 작별 인사를 하는 이들을 보면서 우리도 조금씩 배우고 싶어진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이별을, 잘 이별하는 방법을 볼 수 있기를...

 

놓기 싫어서 그 순간이 천천히 흘렀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뭔지 모르지 않는다. 아직 그 순간을 죽음으로 경험하지는 못했기에 다 안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헤어지는 모든 순간의 아쉬움을 알기에 감히 그 간절함을 공감한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벤치에 앉아 어딘가를 바라보며 옆에 앉은 이의 잡은 손을 놓고 싶지 않은 마음 그대로 전달하는 노인의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이별은 이렇게 춥고 아픈 일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전한다. 거기에, 누구나 겪을 그 순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시간을 만든다. 내가 노인의 자리에, 서먹서먹한 아들의 자리에, 아직은 뭘 모르지만 그래도 알 것만 같은 소년의 자리에 앉아 있다고 생각하니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꽉 찬다. 각각의 자리에서 볼 장면과 생각을 시뮬레이션하게 된다. 그때마다 매번 같은 감정이 똑같이 찾아온다. 슬프고, 아프고, 아름답고, 기쁜, 상대와 함께했던 많은 순간이 채워진 서로의 시간을 꺼내면서 반복 재생한다. 한 가지 감정만 내놓을 수 없어서 말이다.

 

어김없이, 한 번쯤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글이다. 작가의 전작들도 이 작품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이 책은 짧은 분량에 비하면 오히려 뭉클함을 커진 느낌이다. 점점 몸의 이곳저곳이 고장 나면서 병원에 갈 일이 많아지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죽음 소식이 많아지기도 하는 순간들을 겪다보니, 이 소설 같은 상황에 부딪히기도 하는 일이 낯설지 않다. 제목 그대로, 우리는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인 오늘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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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씨 2018-03-01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