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은 이제 개를 키우지 않는다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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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리의 내 누나 시리즈를 재밌게 읽었다. 웃음이 저절로 나는 이야기에 '맞아 맞아' 하면서 무릎을 치면서 읽었더랬다. 역시, 공감의 아이콘이야 하면서 말이다. 남자 사람인 동생의 머릿속을 한번 파헤쳐보고 싶다, 혹은 여자의 마음이 이렇다는 것을 들려주고 싶다, 같은 메시지를 전하는 마스다 미리의 만화에 호감을 더해주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이번 사와무라 씨 시리즈도 즐겁지 않을까 생각했다. 부모와 미혼의 딸이 함께 사는 가정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비추면서도, 공감을 잃지 않게 풀어가는 일상의 이야기 기대했다. 맞다. 사와무라 씨 댁의 이야기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우리네 가정의 모습과 똑같았다. 어머니 노리에 씨는 저녁 식사 걱정을 하고, 아버지 시로 씨는 퇴직 후 느긋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운동도 하고 길에서 우연히 만난 아내와 산책도 하면서. 거기에 마흔의 미혼 딸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퇴근 후 동료들과 술도 한잔 하면서 일의 고됨을 토로하고, 이렇게 혼자인 삶을 이어가는 고충을 풀어놓기도 한다. 그러면서 살짝, 모든 것을 다 드러내기에는 불편한 마음을 감춘 채로. ^^ 이게 마스다 미리 만화의 매력인 것 같다. 솔직하고 적나라한 마음을 독자에게만 보이게 만들어놓는 일, 이야기 속 상대방에게는 아닌 척하면서 감추는 감정이 사실은 누구나 가지는 마음이라는 걸 인정하는 일.

 

그래서일까. 이번 사와무라 씨네 이야기는 많이 씁쓸했다. 세 명의 가족 구성원이 각자의 일상을 보내는 시간 속에서 풍기는 느낌이 무거웠다. 가볍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바탕에 깔린 안쓰러움과 애틋함은 묵직한 현실 그대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어느덧 죽음과 가까워진 시간을 살면서 시로 씨와 노리에 씨는 마지막 상황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늙어가는 육체에 쓸쓸함을 느낀다. 히토미는 미용실 거울로 보는 자기 얼굴의 칙칙함에 멈칫했다가, 생기 있게 보이도록 앞머리를 가볍게 커트한다. ^^ 나를 보는 것 같다. 답답해서 앞머리 내리는 거 싫어하는데도 언젠가부터 앞머리를 내려서 자른다. 미용실에서 권해주기도 했지만, '음, 이렇게 하니까 조금은 어려 보이는 걸?' 하는 느낌을 받으니, 답답하고 귀찮아도 그 앞머리를 다시 올려서 기르지 못하겠다. 히토미와 노리에 씨가 같이 찍은 사진을 보고 누군가 자매 같다고 했다는 말을 들은 노리에 씨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말도 안 된다는 듯 대꾸했지만, 기분이 좋다. 조금이라도 젊어 보인다는 말이 노리에 씨의 얼굴에 웃음이 피게 한다. 때로는 매해 다르게 불어오는 봄바람이 즐거운 노리에 씨지만, 운동하면서 육체의 단련을 이어가는 시로 씨지만, 항상 자기 죽음 이후를 생각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납골당 전단을 보면서 어떤 계산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히토미에게 집안의 통장이나 서류의 보관 위치를 설명하기도 한다. 부모가 부재했을 때 닥칠 상황에 미리 대비하는 것처럼. 그런 순간들이 아프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부모와 함께여서 뭉클한 시간이 더 큰 순간들을 전하는 사와무라 씨 가족이다.

 

얼핏 보면, 평균 연령 60세인 이 가족의 분위기가 칙칙할 것 같지만, 늙음과 죽음이 가까이에 있어 우중충할 것 같지만, 의외로 그런 주제를 가볍고 즐겁게 이끌어가는 이 가족의 대화법에 빠져들고 싶어진다. 장례식의 음악은 좀 더 힘차고 밝은 것을 틀어야겠다고 말한다. 언제까지 돌봐줄 수 있을지 모르니 이제는 개도 키우기 어렵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표정이 가볍다. 시로 씨와 노리에 씨가 죽음을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겪는 감정과 다르게 히토미는 늙어가는 것의 나쁘지 않음을 피력한다. 맛있는 케이크를 먹으면서 상대방과 나누지 않아도 되는, 그냥 자기가 먼저 맛있다는 걸 확인해도 되는 편안함을 느낀다. 예쁜 외모와 옷차림이 아니라 인성의 중요함을 배운 지금이 좋다는 걸 안다. 아픈 엄마를 간병하던 어느 날, 기억을 떠올려 보니 엄마가 자기에게 그대로 해주었던 과거의 시간을 기억해낸다. 그러면서도 놓치지 않는 감정들. 부모의 생활이 좀 더 편하게 배리어 프리 공사를 한다거나, 부모와 같이 TV를 보면서 양로원 같은 곳의 취재를 같이 보는 일이 힘들다거나, 노안이나 새치, 잔주름 걱정에 표정이 쳐지기도 하지만, 이 가족이 사는 법에 웃음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게 좋아서, 고령화 가족인 이들에게 또 한 번 눈길이 머문다. 어떤 끔찍한 상황을 상상하지 않고, 지금 이후의 큰일을 걱정하지 않으며, 그저 오늘을 살아가는 것. 보통의 하루하루가 이어지는 오늘의 행복을 확인하고 누리는 것이 이들이 사는 법이 아닐까.

 

히토미보다 사와무라 씨 부부의 활기찬 일상이 감사해서 닮고 싶다. 노리에 씨의 69번째 봄을 보면서 70번째 맞을 봄을 서글퍼하는 게 아니라, 오늘 69번째 봄의 설렘을 만끽하는 모습이 즐겁다. 젊었을 적의 열정이 사그라지는 게 아니라, 나이를 먹으면 먹은 대로 이어가고 피어나는 열정의 다양함과 모양이 이 가족의 활기에 근원인 듯하다. 처음 페이지를 펼치면서 어둡고 우울할 것 같은 느낌은 어느 순간 사라졌다. 우리 집도 다르지 않은 모습에 나이 들어감과 죽음에 가까워지는 시간을 마냥 슬프게만 바라보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은 마음도 생겼다. 친가 쪽은 왕래가 없어서 잘 모르는데, 외가 쪽 이모들 집에는 40~50세 사이의 미혼 자녀가 있다. 다 딸이다. 엄마와 딸의 구성으로 사는 집들이다. 우리 집도 다르지 않다. 예전에는 이모들이 모이면 혼자 남은 딸을 걱정하는 마음이 그대로 들려왔는데, 지금은 딸과 함께 보내는 일상의 소소함에 걱정을 밀어 넣는다. 어느 날 TV에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어떤 프로그램을 보다가 엄마가 우울해하시기에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다. 엄마 돌아가시면 아주 예쁜 유골함에 모셔드린다고. 거울 볼 때마다 눈가의 주름이나 자꾸만 생기는 주근깨가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이제는 이런 이야기, 부모의 죽음 이후의 시간을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게 좋을 때도 있더라. 물론, 고아가 된다는 건 여전히 슬픈 일이지만, 그 슬픔으로 눈물이 흐를 테지만...

 

 

동봉된 투명 책갈피를 보면서 떠올려본다. 저기 나란히 있는 집 중 한 곳에 사와무라 씨 가족이 살고 있겠구나. 오늘도 노리에 씨는 저녁 식사 메뉴를 고민할 것이고, 시로 씨는 비디오 대여점에서 서성이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겠구나. 히토미는 얼굴의 늙음을 걱정하면서도 퇴근길의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겠구나. 너무나 평온해 보이는 풍경에 잔잔한 행복이 깃든 집으로 들어가는 누군가의 뒷모습을 상상하기도 한다. 골목에 있는 개의 모습을 보면서, 혹시 다음 이야기에서 다시 치바의 자리를 대신할 무언가가 등장하지는 않을까 기대도 해보고. 서로에게 짐이 아닌 의지가 되는 이들 가족에게서, 점점 더 고령화되어 가는 가족 구성원의 모습을 대입한다. 누구네 집 한 곳의 이야기가 아님을 아니까.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알게 되는 것으로 남은 시간 이들이 더 행복해질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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