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델라이언 데드맨 시리즈
가와이 간지 지음, 신유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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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많은 선택의 순간을 가진다. 매번 그 선택의 결과에 따라 만족하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만족도 후회도, 오롯이 자신이 받아들여야 하고 책임져야 할 몫으로 남기도 한다. 히나타 에미가 하늘을 나는 꿈을 꾼 것도, 그 꿈으로 대학을 생각했던 것도, 대학에서 민들레 모임이 참여하게 된 것도 자신의 선택이었다. 그 모임이 나아가는 방향의 기대와 후회도 자기 몫이었다. 에미의 그 기대가, 들리는 그대로 믿고 따라가며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것이 그녀의 잘못이었을까?

 

현재, 2014년. 폐목장의 사일로에서 발견된 시신으로 가부라기 특수반은 바빠진다. 사건 현장에 가보니 시신은 미라화 된 상태로 공중을 날고 있다. 날고 있다? 아니다. 끝이 뾰족한 파이프가 시신의 몸을 통과하여 양쪽 창 사이에 걸려 있는,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신이 날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시신은 16년 전에 이미 살해되었고, 16년 후에 발견됐다.

 

1998년 봄. 어렸을 적부터 허약해서 학교에 제대로 다니지 못한 히나타 에미는 노력 끝에 대학생이 된다. 어렸을 적 엄마에게 들은 동화 ‘하늘을 나는 소녀’처럼 민담을 연구하고 싶어서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에서 만난 노부세의 권유로 ‘민들레 모임’이라는 동아리에 들어간다. 그 동아리는 세계 환경을 위한 취지로 운영되는데, 폐용기를 모아서 분리수거하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아프리카의 아이들에게 백신을 보낼 수 있다고 했다. 에미를 포함한 동아리 회원 네 명은 적은 돈이지만 순수하게 모으는 것을 목적으로, 세계 환경을 위한다는 의미로 열심히 활동한다.

 

1998년의 에미와 2014년 현재의 히메노 히로미(가부라기 특수반의 형사)의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된다. 이 시리즈의 타이틀처럼 가부라기가 주인공이 되어 사건 해결을 위해 활약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히메노와 죽은 에미의 인연이 들려올 때 달리 보이기도 했다. 서로 다른 현재와 과거로 풀어갈 것 같았는데, 굳이 둘의 접점을 만든 이유를 찾으면서 페이지를 넘기다가 보니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경우가 잦아졌다. 둘 사이의 인연과 과거, 알듯 모를듯한 인물의 묘사가 이 소설을 어디로 흐르게 하는지 알 수 없게 한다. 특히, 추리소설인 이 이야기가 풀어내는 건 굉장히 다양하고 넓은 소재였다. 환경 문제 개선을 위해 작은 손 하나를 얹는다는 의미를 부여한 민들레 모임,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순수한 의도를 배신하고 조종할 틈을 노리는 사람들, 감시하고 감시당하는 관계가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면 필요하다는 신념, 결국은 모든 순간이 다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의 기준이었다는 것. 각자의 이런 이기주의는 또 한 번의 살인 사건으로 더 큰 그림을 그린다. 가부라기 팀이 죽은 에미 사건을 조사하던 중에 호텔 옥상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죽은 사람은 가와호리 데쓰지. 조사해 보니 그는 16년 전 에미와 같은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가와호리의 죽음으로 사건은 점점 더 미궁으로 들어가는 듯했다. 가와호리와 에미의 연결 고리를 찾아야 하는 숙제가 더해진 거다.

 

순수하게 시작했던 일이, 서서히 그 순수함에 가려진 목적을 드러냄으로써 빛을 잃는다. 민담을 연구하고 싶다며 대학에 입학했던, 꿈이 가득했던 소녀는 예상하지 못한 순간을 맞닥뜨리며 실망했다. 꿈. 저마다 모양은 다르겠지만 자기가 바라는 이상향을 찾아가는 길, 유토피아. 그 길의 험난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소설이었다. 각자의 목적을 두고 사는 모든 순간에 이어지는 선택들 앞에서 최선이라 믿고 따랐을 텐데, 결국은 나의 최선이 누군가에게는 끝이 되어버리는 일들. 가부라기 팀의 사와다는 동화 속 ‘행복한 마을’을 온전한 행복으로 보지 않았다. “‘행복한 마을’에는 온갖 것들이 갖춰져 있고, 게다가 공짜로 얻을 수 있어. 그야말로 행복한 상태지. 하지만 그건 일 년에 한 번 누군가가 큰 뱀의 먹이가 되어야 한다는 공포스러운 조건 아래 성립된 행복이야.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성립된 행복을 과연 참다운 행복이라 부를 수 있는가, 그리고 현실 사회도 마찬가지 아닌가, 라는 대단히 냉소적인 문제 제기를 하고 있어.”(274~275페이지) 에미가 엄마에게 듣던 동화로 꿈꾸던 나라는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으며, 누군가의 희생을 배제한 행복이었다는 의미다. ‘모두’가 행복한 나라는 없다는 말. 누군가의 희생으로 존재하는 행복이 행복한 나라일까 하는 의문을 던진다. 토머스 모어의 작품을 예로 들며 유토피아를 정의하던 히메노의 말을 듣고 가부라기가 떠올린 불길함도 이 행복의 기준과 통한다. 유토피아란, 사실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나라. 이상향이 아니라, 사실은 비인간적인 반이상향, 더구나 지배계급을 위한 나라…….(194페이지)라는 현실을 에미가 깨달은 순간 그녀의 이상향은 사라졌다. 그리고 죽음. 유토피아를 꿈꾸며 자기 선택을 믿고 따르던 그녀에게 남은 것은 실망과 배신, 죽음이었던 거다. 그녀가 꿈꾸던 유토피아에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전제는 없었다. 결국, 그녀의 유토피아는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꿈으로만 머문 채로 끝났다.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상황에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영어로 단델라이언(dandelion)이라 불리는 민들레. 이파리의 뾰족뾰족한 모양이 사자의 이빨과 닮았기 때문에 ‘사자의 송곳니’라 부리기도 한다는데, 소설 곳곳에서 뾰족하게 드러나는 날카로운 이빨을 연상하면 어울리는 이름이다. 바람이 불면 씨가 날아가 아무 데서나 자리 잡고 피는 걸 보았기에 흔하게만 여겼다. 그런 민들레를 왜 굳이 소설의 곳곳에 넣어두었을까. 에미가 유토피아를 언급하면서 보여주었던 민들레 나라는 행복을 꿈꾸게 한다. 기형이 된 민들레는 방사능 오염의 증거가 되어 사람들에게 공포를 심어주는 역할을 한다(기형 민들레의 진짜 의미는 뒷부분에 자세히 나온다). 소설 전체적으로는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라는 꽃말을 심어놓는다. 사실 끝부분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이들의 퍼즐이 맞춰지는 걸 보면, 풀기 쉬운 수수께끼는 아니잖아?

 

가부라기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다. 앞선 두 작품 『데드맨』과 『드래곤플라이』의 입소문은 익히 들어왔으나 막상 읽어볼 기회가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가부라기 특수반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를 먼저 읽게 되어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들의 활약을 하나도 모른 채로 이번 이야기를 읽어도 될까 하는 염려가 앞섰는데, 기우였다. 오히려 이 소설로 놓친 두 소설을 읽고 싶어졌으니까. 개방형 밀실이라는 모순된 상황에 수수께끼는 더 꼬이는 듯했고, 등장인물이 한 명씩 늘어날 때마다 미스터리는 더 탄탄해졌다. 기형적인 민들레가 하나둘씩 자리를 비키고 온전하게 예쁜 노란 꽃이 보일 무렵, 각자가 이루려던 꿈이 완성되지 못해 시작된 사건은 16년의 세월을 넘어 투명해졌다. 가독성 좋은 소설이었는데,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다. 이제 막 이 시리즈의 즐거움을 찾았는데 마지막 이야기라니, 그래서 나머지 두 편을 더 읽어보고 싶은 간절함을 놓칠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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