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올빼미 농장 (특별판) 작가정신 소설향 19
백민석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 잘못 배달된 편지로 시작된 소설은 미스터리한 분위기였다. 배달된 주소는 맞으나, 수신인은 달랐다. 화자인 ‘나’는 그 편지 속 장소에 찾아가기로 한다.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배달된 편지를 읽고 그 편지의 발송지를 찾아가지 않는다는 게 이상할 정도로 끌림이 있었다. 어디서, 왜, 누가 보낸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을 테지. 이 소설을 읽는 나도 그랬다. 그 시작을 찾아보지 않고서는 답답함이 계속될 것 같았다. ‘나’는 ‘인형’과 함께 편지 속 동생이 ‘죽은 올빼미 농장’이라고 이름 붙인 곳으로 간다. 하지만 그곳에 가서 더 혼란스러울 뿐이다. 주소가 맞는지도 알 수 없고, 그 장소가 맞는다고 알려준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소설은 ‘나’가 잘못 배달된 편지를 근거로 그 주소를 찾아가고, 그곳에 무엇이 있었을까 고민하는 시간에 현재 그의 모습을 같이 보여준다. ‘나’는 작사가다. 계약된 글을 써야 하고, 가끔 친구인 ‘민’을 만나 이야기를 하고 밤을 함께 보낸다. 동료로 보이는 작곡가 ‘손자’의 투정도 받아줘야 했고, 사무실에 나가 일정관리도 해야 했다. 꽉 막힌 듯한 일상을 보내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소설 속 문장으로 표현되는 그의 분위기를 상상하면 그것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인다. 그에게는 너무 자연스럽다. 답답할 정도로 보이는 좁은 그의 행동반경, 존재하는지 아닌지도 모르게 대화를 주고받는 ‘인형’, 여고생 신인가수의 집에 초대받고서도, 그 아이의 불법적인 행동을 보고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나약한 어른의 모습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 추측하게 된다. 자기 자신의 너머를 잘 보지 않는, 볼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 같다. 좁은 아파트 한 채가 그의 세상 전부로 보일 정도다.

 

지금 자기가 사는 곳, 그곳을 벗어난 장소와 사람에 대해 굳이 들여다볼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것. 어디로든 돌아갈 곳이 없고, 우리가 고향이라 부르며 회귀의 본능을 일으키는 곳도 없을 것 같은 그다. 그러면서도 항상 느끼는 공허감의 근원을 둘러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아니, 그 근원을 찾고 싶으나 찾을 수 없던 거였을까? 알 수 없다. 그 자신도 모르게 부유하듯 자기가 있는 현재의 자리에서 사는 방법만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살면서 느끼는 어느 순간의 기쁨도 있을 테지만, 그렇게 살면서 찾아드는 감정의 고통이 더 클 것 같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이 그런 느낌이다. 작곡하는 ‘손자’는 동성 애인을 따라 현재의 삶을 정한다. ‘인형’은 현재를 잘 지내지 못하는 인물에게 적나라한 조언을 하면서 현재의 책임을 회피하며 정리할 방법을 부추긴다.

 

아무리 생각해도 돌아가는 방법을, 현재의 불완전함을 변화시킬 방법을 알 수 없다, 는 생각이 들게 하는 소설이다. 끝까지 모를까? 아니면, 언젠가는 알게 될까. 소설은 내내 그 불안함을 놓지 않게 한다. 처음부터 나오는, 그는 잊은 자장가를 자꾸 기억해내려 애쓰면서도 잘 떠오르지 않는데, 읽는 동안 그게 자꾸 마음에 걸렸다. 그가 그 자장가를 끝까지 기억해내지 못한다면, 그의 남은 오늘과 내일은 어떻게 흘러갈까. 그러다가 소설이 진행되면서 잊힌 자장가는 그 소절을 늘려간다. 한 줄씩, 한 단락씩. 그가 편지의 주소지로 찾아가 무언가를 더 찾으려 하면서 결국 들샘을 파내기까지 했을 때, ‘손자’가 발에 줄을 묶고 베란다를 향해 달렸을 때, 자장가의 남은 부분을 적어냈으면서도 그게 끝인지 알 수 없었을 때까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소설은 분위기를 바꾼다. ‘민’이 재개발로 허물어져 가는 아파트의 빈 곳을 보며 죽어가는 아파트라고 말할 때는 매번 어느 시간을 반복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태어나고 이별(죽음)하고, 다시 태어나고 이별하고. 낡은 아파트가 철거되고 새 아파트가 올라가듯, 우리는 계속 나아가듯 성장하지 못한 채로 나이라는 시간만 먹어가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다가 들샘의 바닥을 파헤쳐 어깨너머의 인형 목소리를 던져 넣었을 때 어쩌면 돌아갈 방법을 찾은 건 아니었을까 하는 희망을 엿본다. 현실의 팍팍함도, 나아가지 못하는 마음의 유아성도 사라지게 할 어떤 시작점의 순간을 볼 기회가 이제는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고 맘에 따라선 변형도 시킬 수 있는 실체인 이 빈 땅은, 정작 무엇도 가르쳐주고 있지 않았다. 먼 길을 온 내게 정작 가르쳐주고 있는 건,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다라는 사실뿐이었다. 지금 보고 있는 것 외의 다른 것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사실뿐이었다. 빈 땅 외의 다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177페이지)

 

시간은 흘렀으나, 외모는 변했으나(늙었으나), 마음은 성장하지 못한 어른들의 소외감을 느꼈다. 아껴주지 못하고 진정으로 보듬어주지 못하는 자세를 가진 우리의 모습만 확인한 것 같다. 많은 것을 보고 살면서 모든 순간 잘 건너갈 방법을 배우는 것 같지만, 정작 우리 안에 자리한 서늘함과 위태로움을 모른 채로 세상을 산다고 착각하며 지내온 건 건 아닐까 하고. 살아가는 시간만큼 어디론가 가는 듯한 인생이지만, 정작 그 자리에서 매번 반복하기만 하는 걸음은 아니었을까 하는 순간들을 떠올린다. 그때마다 찾아오는 상실감을 우리 안에서 나갈 줄 모르고 쌓여가면서 그 크기를 키워갔을 거라고. 그렇게 절망하면서 읽어 가는데 조금씩 찾아오는 듯한 어떤 느낌. 그가 자장가의 구절을 하나씩 떠올릴 때마다 높아지는 기대는 인형을 들샘에 수장했을 때 정점을 찍는다. 퇴화하지 않고 진화하는 내면을 마주할 우리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게 한다. 현실에 적응할 수 있는, 결핍의 양을 줄여가는 내면의 성장을 불러올 것을... 여전히 미성숙하고 현실의 많은 부분에 힘들게 적응하는 모습이 남아있을 테지만, 현재를 사는 법을 보여준 것 같다. 농장이 있던 빈터, 사라진 들샘. 현재의 그곳 모습이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빈 땅에 채울 수 있는 것도, 그릴 수 있는 것도, 많다.

 

작가정신에서 ‘소설향 시리즈’ 특별판으로 내놓았다. 이번에 출간된 다섯 권 모두 궁금했지만, 백민석의 <죽은 올빼미 농장>과 정영문의 <하품>이 가장 궁금했다. 어쩌다 <죽은 올빼미 농장>을 먼저 읽게 되었는데, 시리즈를 한 권씩 다 만나고 싶어진다. 짧고 매력적인 소설들일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