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양장) - 개정증보판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영화로 먼저 만났던 개츠비를 원작으로 다시 만나게 되니, 이 남자가 그렇게 안쓰러울 수가 없다. 그저 세상을 향한 복수처럼, 가져본 적 없던 부를 거머쥐기 위해 애를 썼던 한 남자가 아니라, 사랑 하나에 목숨을 건 남자로 비친다. 데이지가 그럴만한, 그가 목숨까지 바쳐야 할 정도의 여인이었던가? 영화를 보면서 빠져들었던 그 순간의 이야기는 이렇게 다시 보인다. "너무나 아름다운 셔츠들이에요." 그녀는 흐느꼈다. 그녀의 목소리는 두터운 옷더미에 묻혀 작아졌다. "이렇게, 이렇게 아름다운 셔츠들을 본 적이 없다는 게 슬프게 만들어요." (153페이지) 이런 말을 하는 여자를 5년 동안 기다린, 기다린 것뿐만 아니라 그녀를 만나기 위해 가파른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온 그의 인생이 무너지는 순간, 모든 게 부질없어 보였다. 허망했다. 완벽하지 않은, 구멍 난 것들이 보였다, 그들 모두의 인생이. 데이지를 향한 개츠비의 시간과 노력도, 12년 동안 떠나지 못해 안달하면서 톰을 만났던 윌슨 부인도, 아내의 부정을 알고 미쳐버린 윌슨도, 버림받은 것처럼 마지막에 외쳤던 베이커 양도, 상대의 돈을 바라보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한 데이지도.

 

가난했던 개츠비. 그에게는 신분을 바꿀만한 어떤 배경도 없었다. 영원히, 가난한 개츠비로 살아야 할 운명이었던 거다. 공부해도 변할 수 없었던 그에게 인생을 바꿀 기회가 온다. 어떤 부유한 사업가의 선택을 받은 그는 본인의 이름 '제임스 개츠'를 '제이 개츠비'로 바꾸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그는 무엇으로 부를 거머쥐게 되었나? 톰 뷰캐넌이 의심하던 것처럼, 나도 그가 축적한 부를 의심하면서 읽게 된다. 아무리 찾으려 해도 투명하지 못한 그의 배경이 계속 의심을 낳는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소설의 흐름이 점점 개츠비의 잃어버린(?) 사랑에 초점을 맞추는 거로 보인다. 오래전 그가 놓친 데이지를 되찾기 위해, 여전히 데이지가 자기를 사랑한다고 믿었던 개츠비의 맹목적인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데이지의 집이 보이는 (그래 봤자 너무 작은 불빛 하나겠지만) 건너편에 저택을 마련한다. 데이지는 올까? 그는 오로지 데이지가 그를 찾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로 매일 파티를 연다.

 

원작을 읽지 않았어도 많은 사람이 아는 내용이다. 데이지를 찾아 헤매던 개츠비가 많은 돈을 쏟아부어 여는 파티가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드러나는 윌슨 부인의 사망한 사고에서다. 닉의 집에서 데이지와 조우할 개츠비의 행동은 순정남이었다. 데이지를 기다리는 동안 뭘 해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거리고, 데이지와 만나는 순간의 설렘을 잔뜩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그래, 이 정도의 되어야 나 순정남이네, 하고 말할 수나 있지. 이 소설을 읽기 전에 부담부터 생겼던 것에 비하면 소설의 흐름은 오히려 편안했다. 보이는 그대로 읽으면서 온갖 역경을 딛고 일어선 개츠비를 보게 했으니, 이제 데이지를 만난 그의 순정이 얼마나 빛나느냐 하는 기대를 잔뜩 품게 된다. 그런데 데이지는 속물 중의 속물이었고, 개츠비의 마음이 아니라 그의 부에 더 정신이 팔렸다. 데이지는 정말 개츠비를 사랑하긴 했을까? 오래전 그때도 그를 사랑했을까? 단지 비슷한 신분의 누군가를 만나 자기가 누리던 부를 이어가려던 게 아니고? 믿을 수 없다. 데이지의 마음은 하나도 보이지가 않더라. 개츠비의 저택에서 아름다운 셔츠들에 열광하며, 그동안 자신이 누려온 부가 그 정도(개츠비의 셔츠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던 인생에 절망했다. 이런 몹쓸.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은 고조되고 소설은 더 탄탄해진다. 닉 캐러웨이가 적어가는 개츠비의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여러 인물이 각자의 역할에 더 집중한다고 해야 할까. 베이커 양은 의외로 순정파였다. 닉에게 추파를 던지며 한순간을 즐기는 것으로 여겼던 그녀에 대한 나의 평판은 수그러들었다. 닉을 원망하며 그녀의 은근한 프러포즈를 거절한 투정을 말할 때는, 아 여기서도 타이밍이 문제였던가 싶었다. 가장 원망하고 싶은 남자 톰 뷰캐넌은 여전했다. 그는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도 잘 살아갔다. 그가 가진 부는 그를 여유롭게 만들고,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을 살게 했다. 아마 이때부터였을 거다. 이 소설이 개츠비의 순정에서 잔인한 세상의 한 단면을 보는 것으로 탈바꿈한 것처럼 여겨진 것은...

 

아무리 오르고 싶어도 결국 오르지 못하고 그 생을 마감한 개츠비. 그는 가난에 빠져 지냈지만 어떤 희망을 품고 나아가고 싶지 않았을까? 노력하면 나아지는 삶. 우리는 그걸 바란다. 그렇게 하루를 산다. 하지만 세상이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 개츠비와 같은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 (이미 그런 선택을 한 사람도 있겠지만...) 간절히 바라는 게 생기고 그걸 이루기 위해 불법적인 일에도 손을 뻗게 되는 자연스러움. 우리가 목말라 하는 갈증에 그 방법 말고 또 뭐가 있을까? 그가 바랐던 건 한 여자의 마음이었지만, 결국에 그가 바라던 것은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다. 파멸 같은 결말을 선사했을 뿐... 한 남자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소설에서 마지막까지 그가 선택한 삶을 걸어갔던, 그녀를 위해 자기 자신 따위 기꺼이 버릴 수 있는, 모든 것이 흩어지고 사라진 상태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그는, 누구인가 묻고 싶었다.

 

개츠비는 해가 갈수록 우리 앞에서 멀어지는 그 풋풋한 불빛을, 그 절정의 미래를 믿었었다. 그때 그것은 우리를 피해갔지만,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내일 우리는 더 빨리 뛸 것이고, 우리의 팔을 더 멀리 뻗을 것이고…… 그리고 어느 날 좋은 아침…….

그렇게 우리는 나아갈 것이다. 흐름을 거스르는 보트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밀쳐지면서. (289~290페이지)

 

여러 번역으로 이미 출간된 이 작품이 이번에는 67군데의 오역을 지적하면서 새로 출간되었다. 사실 영화로 본 적은 있지만, 원작을 읽은 적이 없어서, 그 오역의 지적을 어떤 부분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난감했다. 원서가 아니라 번역본을 읽으면서 어떤 비교를 해야 할지 어려워서다. 다행히 이 책의 끝에 역자가 지적한 오역의 비교가 그대로 담겨있다. 세세하게 보면 문장이 달라지는 걸 알 수 있다. 소설의 흐름이 다른 번역과 전체적으로 어떻게 다르게 적용되는지 다른 번역본을 읽어보면서 비교하는 재미도 있을 터. 저자가 언급해준 부분 외에도 큰 흐름을 보면서 다 읽은 느낌을 비교하는 매력도 상당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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