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아저씨 허밍버드 클래식 7
진 웹스터 지음, 한유주 옮김 / 허밍버드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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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속 진짜 선수, 그 아재... 『키다리 아저씨』
 
읽을 때마다 다른 부분이 보이는 게, 시끄러운 걸 싫어하면서도 그 수다스러움이 마냥 사랑스럽게 보이는 게 『키다리 아저씨』가 아닐까 싶다. 처음 읽을 때는 주디의 시선에서, 소녀에서 여자로 성장하는 시간의 흐름을 봤다면, 그 이후로 읽을 때마다 철저하게 저비스 씨(키다리 아저씨)의 마음을 읽게 된다. 내 것으로 만들고, 내 것을 지키기 위해 유치한 짓까지 저지르는 그 아재의 모습이 눈에 훤히 보이는 거다. 그래서 몇 번을 읽어도 예쁜 소설이다. 친구 오빠, 옆집 오빠, 오빠 친구, 뭐 이런 오빠들이 오빠가 아니라 애인이 되는 순간을 목격하는 기분? ^^
 
키다리 아저씨의 후원으로 대학에 가게 된 주디에게 주어진 숙제는 단 하나. 한 달에 한 번씩 후원자인 키다리 아저씨에게 편지를 쓰는 것. 뭐, 그렇게 어렵거나 부담스럽지는 않지? 별것도 아니잖아. 그냥 어떻게 학교생활 하고 있는지 써서 보내달라는 게 뭐 그리 힘든 일이겠어, 안 그래?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아니, 어쩌면 처음에 키다리 아저씨는 그냥 후원하는 아이가 제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연습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장래가 촉망되는 이런 아이에게 미래를 그려주고 있어, 하는 뿌듯함 같은 거? 그런데 여기에서 바로 키다리 아저씨가 함정에 빠졌으니... 아니, 한 달에 한 번만 보내라는 편지를, 주디 너는 왜 그렇게 자주 보내니, 아재 마음 술렁이게? 미치겠네, 진짜.
 
주디의 수다스러움은 그녀의 모든 일상을 키다리 아저씨에게 알려주는 셈이 되었고, 무엇보다 주디의 진심이 팍팍 묻어나는 편지에 아저씨는 사랑에 빠지고야 만 거야. 얼굴도 한번 제대로 못 본 어린(!) 여자에게 푹 빠져버린 거지. 이거 안 되는데, 후원자로 시작해서 이게 뭔 말이여? 여기서 또 한 번, 보이지 않는 관계에서 시작된 사랑을 보게 되는데,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에서도 그랬잖아. 잘못 배달된 이메일로 시작된, 얼굴도 몰랐던 그들이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상대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어떤 마음을 숨기고 있는지 저절로 보이는, 결국 마음을 빼앗기고 마는 일들. 여기서는 주디의 일방적인 보고에 가깝지만, 누구라도 이 아이에게 마음이 가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주디의 주변에 슬슬 꼬이는 남자들이 신경이 쓰이고, 주디가 자기의 보호가 아닌 홀로서기를 시작하려니까 오는 서운함까지. 아, 아재~!! 어쩌면 좋아, 흑.
 
그래서 다가간다. 저비스 씨라는 가면을 쓴 채로, 조카를 만나러 왔다는 핑계로 주디를 감시하러. 은근슬쩍 작업하고 관리하면서 상대가 눈치 못 채게 말이다.
"전 줄리아와 샐리를 만나러 가야 한다고 말씀드렸지만, 그분은 조카가 차를 너무 많이 마시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시더군요. 차를 너무 많이 마시면 과민해진다고 하시면서요. 그래서 우리는 둘이서만 학교 밖으로 나가 발코니에 마련된 작지만 근사한 테이블에서 차를 마시고 머핀에 마멀레이드, 아이스크림, 거기다 케이크까지 먹었어요. 마침 사람들이 없었죠. 월말이라 학생들 용돈 떨어져 가는 때거든요." (88페이지)
괜히 조카 생각하면서, 조카가 차를 많이 마시면 안 된다고 하면서 굳이, 주디 너는 지금 갈 필요가 없다고 붙잡으면서 말이지. 근데 주디한테는 왜 차를 마시라고 하냐고. 혹시 주디도 차를 많이 마시고 줄리아처럼 과민해지면 어쩌려고? 주디의 과민함은 받아줄 수 있다는 거야? (아재~ 속 보인다고, 응?)
 
샐리네 집에 다시 한 번 초대받았다는 말에 바로, 허락할 수 없다는 답장(비록 비서님이 보낸 거긴 하지만)을 보낸 거 봐라. 키다리 아저씨는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고 제발 답장 한 번만 보내달라고 그렇게 간절히 말할 때는 들은 척도 안 하더니, 그 흔한 인사 한 번 안 써주더니! 이럴 때만 총알 배송으로 답장을 보내는 거냐고.
"아저씨 비서님이 보낸 편지를 막 받았어요. 스미스 씨는 제가 맥브라이드 부인의 초대에 응하는 대신 지난여름처럼 록 윌로우 농장으로 가기를 바라신다고 하더군요.
왜죠? 왜죠? 아저씨, 대체 왜요?" (151페이지)
그러게요. 아재~ 대체 왜요? 왜 못 가게 하는 거예요? 아직은 간을 보고 있는 건가요? 나설 때가 아니라고? 지미 때문에 질투가 난다고 말도 못 하고 그냥 이유도 없이, 무조건, 아무튼 무조건 샐리네 집에 가지 말고 록 윌로우 농장으로 가라고 말해야만 했던 아재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닌데, 내가 주디라고 생각하니 정말 고구마 한 박스 먹은 것처럼 답답하네요, 정말... 아마도 이런 이유로 주디는 더 빨리 독립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방학에 친구네 집에 맘대로 놀러 가지도 못하는 이런 후원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얼른 경제적 독립을 해서 키다리 아저씨의 관리에서 벗어나자고 마음먹고 속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었을지도 몰라. (아재~ 겁나지? ㅎㅎ)
 
그러더니 자기 매력을 어필하고 싶었던 마음은 있었나 보다. 비록 저비스 씨라는 대역(?) 뒤에 숨어 있지만, '나는 이런 남자야~' 하는 상남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나? 록 윌로우 농장으로 찾아와 주디와 시간을 보내면서, 유모처럼 자기 어린 모습을 그대로 기억하는 리지 아줌마에게 더는 자기를 아기 취급하지 말라고 하잖아.
"가 보세요, 리지 아줌마. 하시던 일이나 신경 쓰시라니까요. 더는 제게 이래라저래라 못 하신다고요. 전 다 컸어요." (168~169페이지)
아줌마, 자꾸 왜 이래요. 제가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자꾸만 저를 애기 취급하실 거예요? 저, 다 컸다고요. 하나하나 챙겨주지 않으셔도 된다고요. 제가 좋아하는 저 여자가 저를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네? 그러니 제발, 아줌마 저리로 좀 가시라고요~!!! (저비스 씨는 리지 아줌마에게 눈빛으로 울먹였을 거야. 제발, 아줌마, 응? 내 연애가 성공하게 도와달라고요! 주디가 지미 같은 녀석은 생각하지도 못하게 말이에요!)
 
문제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는 거다. 주디는 점점 성장하고 세상을 사는 법을 배운다. 숙녀가 되고, 어른이 된다. 유럽 여행이 아닌 패터슨 부인의 별장으로 가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주디의 결정에 속이 상한 아재. 저비스 씨로 빙의해서 주디 너는 유럽 여행을 꼭 가야 한다고, 교육의 일부라고 목적까지 심어주면서 설득하지만 현명한 주디는 그 그물에 덥석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아재 많이 삐진 것 같아) 
"아무튼 그분은 제가 유럽에 가야 한다고 고집하셨어요. 그것도 교육의 일부이니 거절할 생각은 접으라고 하셨죠. 또 그분도 같은 시기에 파리에 계실 테니, 가끔 보호자에게서 벗어나 멋지고 재미있고 이국적인 식당에서 같이 저녁을 들자고 하셨어요." (212페이지)
교육이라는 의미를 붙여 자기와 함께할 시간을 만들고자 했으나 주디가 한 번에 걸려들지 않자 절망한 키다리 아저씨. 더는 자기 말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아이가 아니라는 것, 그렇게 더 자라고 독립하면 키다리 아저씨라는 존재는 작아질 거라는 걸 알았을까. 그래서 물질 공세로 방향을 바꿨나 보다. 아니면 정말 선물 17개의 마음이 꽉 차서 보낼 수밖에 없었거나...
"대체 생각이 있으신 거예요? 여자애 하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17개나 보내시면 안 된다는 걸 모르세요? 전 사회주의자라고요. 제발 기억해 주세요. 절 재벌로 만들고 싶으신 거예요?" (226페이지)
아저씨, 주디는 사회주의자라 크리스마스 선물 17개가 싫다잖아요. 나에게 보내주지 그랬어요. (아재,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비싼 선물이 아니어도 됩니다. 세상 넓은 줄 모르고 자꾸 살이 찌려는지, 요즘 정준하 스테이크에 푹 빠졌어요. 끈적끈적하게 늘어져 올라오는 그 치즈에 침이 꿀떡꿀떡 넘어가요. 근데 살이 찐다고 엄마가 안 사줘요. ㅠㅠ) 매달 35달러의 용돈으로 시작한 주디에게 가끔 수표도 보내주고, 그러다 진짜 어마무시한 선물들까지 막 보내주고, 고아 소녀를 후원하겠다는 아재의 초심이 이렇게 변해도 돼요?
 
 
언제 읽어도 즐겁다. 다시 읽을 때마다 하나씩 다르게 보이는 것들도 있고, 괜히 설레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펼쳐보고 싶은 책이다. 동화 같은 이야기지만, 다시 보면 현실의 적나라함이 구석구석 묻어 있는 글이다. 그동안 작가 이력 자세히 볼 생각도 안 했는데, 이제야 알았다. 1876년에 태어난 진 웹스터는 1915년에 친오빠의 친구와 결혼했다고 한다. 진짜 오빠 친구랑 결혼했네. ㅎㅎ 근데 1916년에 딸을 낳고 며칠 후에 숨을 거두었다는 거. ㅠㅠ 저자의 인생이 정말 소설 같다. 
 
몇 번을 봐도 적응이 안 되는 부분이자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는 바로 여기다. 
"우리 주디, 내가 키다리 아저씨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261페이지)
이상하게 나는 이 부분에서 항상 눈길이 멈추게 된다. 주디가, 키다리 아저씨가 저비스 씨라는 걸 알게 되는 중요한 장면이기도 하지만,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읽을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해서 말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소설의 마지막인 이 부분에서 한참 시선이 멈췄는데, 더 생생하게 자체 음성지원까지 되는 거다. 문장은 분명히 써진 그대로 눈에 보이는데, 왜 자꾸 수정된 다른 문장으로 보이는지 모르겠다. 이런 거 말이야.
"아이구~ 우리 주디, 내가 키다리 아저씨라는 생각은 하지 못해쪄여?(↗) 우쭈쭈쭈쭈~"
어떡하지? 이 음성지원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아~!!!
(뜬금없는 생각이지만, 키다리 아저씨는 아재 개그 정말 잘할 것 같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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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9 2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10 15:2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