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천명관 지음 / 예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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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냐, 이거... 웃음 나게 어이없고, 허무해서 황당하다. 사내들이 추구하는 삶이 이랬단 말인가? 한탕 뛰고 세상의 꼭대기에 오를 거라고 믿으면서? 아무리 봐도 그냥 건달인데?

 

일단 이들의 이름부터 기억해야 한다. 연안파의 보스 양태식 사장. 양 사장의 오른팔 형근. 형근의 사랑 루돌프. 그 밑에 조직원인 듯 아닌듯한 울트라는 정식 조직원을 꿈꾼다. 삼류 포르노를 찍는 박 감독의 한쪽 발은 건달 세계에 걸쳐있고, 인력사무소 장다리는 탈세가 취미다. 엄 사장은 다이아몬드 사업을 끌고 와 양 사장을 꼬드긴다. 대리운전하는 삼인방은 노름에 빠져 박 감독에게 빚을 지고, 어디서 사기 칠 것만 그렇게 용케 찾아오는 뜨끈이는 만인의 표적이 되고...

 

어찌 되었든 이 소설은 울트라에서 시작해서 울트라로 끝난다. 벤츠를 세차해 오라는 보스(?)의 지시를 따르다가 진짜 보스를 두들겨 패고, 후환이 두려워 살아남고자 4층에서 뛰어내린 뒤로 울트라의 머리가 좀 이상해졌나 보다. 무슨 일만 시키면 왜 그렇게 칠칠찮게 구는지. 사설 경마에서 돈 좀 따보겠다는 자기들 두목의 심부름 하나 제대로 못 하고 삼십오 억짜리 종마를 훔쳐오면서 경상도 건달의 코털을 건드린다. 또 다이아몬드를 훔쳐온 또 다른 무리는 그 다이아몬드를 차지하고자 하는 경쟁 건달들에게 둘러싸여 이것 동네 싸움에서 나라 간 전쟁이 된다.

 

말장난처럼 들리는 문장에서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이거 뭔가 싶을 때 다른 건달이 치고 들어와 난리가 나고, 정말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싶어 콧김이 푹푹 날 때 어이없이 결판이 난다. 황당해서 웃음이 나는 거다. 하긴, 읽는 나보다 주인공들이 더 황당하겠지? 뭐 이렇게 꼬이나, 왜 그렇게 치고 들어오는 건 또 많은 건지, 각자의 욕심에 눈이 멀어 달려드는데 나라고 어찌 빠질 소냐. 이들에게 넘쳐나는 건 구라요, 온몸은 두꺼운 허세의 옷을 입고, 무식한 것들이 모여 서로 무식하다며 무시하네. 뒷골목 건달들은 원래 이런가? 그 속에 들어가 살아보지 못해 알 수 없으니 내가 뭐라고 할 말은 없다만, 건달이란 단어에서 좀 가까이하기 싫은 공포도 좀 생기고 그래야 하는데, 왜 이렇게 짠한 웃음만 나게 하는 것이냐...

 

웃다가 보니, 그 웃음에 짠함이 자꾸 섞인다. 사람 쉽게 안 변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나이 드니 변하는 게 사람인가 싶기도 하다. 양 사장은 연희(지니)의 구라와 내숭을 알면서도 마음을 준다. 아버지의 지침대로 그 여자를 믿으면 안 되는데 자꾸 믿고 싶어지는 건 늙어서라고 생각한다. 몸도 늙었지만 마음도 늙어서, 어느 순간 외로워져 버려서. 고양이 미니를 끌어안고 온기를 비비던 그가 한밤중에 잠옷 바람으로 미미를 찾으러 돌아다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미미에게서라도 외로움을 달래야만 했던 거다. 연안파의 보스로 그 동네의 모든 권력을 쥔 것 같은 그가 도대체 얻지 못할 게 뭐라고. 남들 앞에서는 거만한 포스로 숨어있는 범인도 찾아내는 그가 돈이나 권력으로도 떨칠 수 없는 게 외로움이었더라! 남자는 말이야~ 이 정도는 되어야지~ 하면서 그 세계의 우상이라도 되어 동상으로 세워질 것 같은 남자의 뒷모습이 너무 초라하고 추워 보여서 어디서 사제 군용 깔깔이라도 사서 보내주고 싶어졌다. 이 봐, 양 사장! 그렇게 다 가진 것처럼 살더니 끝내 외로움을 떨치지 못한 것이여? 사람으로 채울 수 없는 외로움이라면 두툼한 아크릴 담요라도 덮어보시구랴. 혹시 알아? 몸이 따뜻해지면 외로움도 옅어질지...

 

한편으로는, 여전히 그 도박장의 흥분을 놓지 못하는 삼대리에게서는 변하지 않는 사람의 치명적인 단점을 보게 된다. 에이~ 그렇지. 조직의 보스도 못 되고 누구 밑이나 닦아주면서 겨우 살던 것을 어렵게 살길 열어주었더니 손맛을 못 끊네. 끝까지 추접스럽게 사네, 진짜. 어째 인생이 맨날 도박이여. 하긴 하루하루 사는 모양새가 도박이 아닌 게 어디 있겠어. 그러고 보면 울트라가 인생 핀 거네. 기어코 투시력도 배웠겠다, 말 울트라로 인간 울트라의 마음마저 채웠겠다, 누가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직진으로 걸어가 보고자 했으니, 자기 맘대로 사는 인생이네.

 

끊임없이 입담의 향연으로 낄낄대게 하다가 결국 그 말(말 울트라)로 끝맺는 소설이다. 재밌다. 잘 읽히고, 내내 웃음도 잃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괜히 짠해져서 내가 가서 한마디 해주고 싶어진다. 어이~ 거기~! 걔를 믿지 말라고~!! 서로에게 신뢰를 보내는 것 같으면서도 머릿속은 각자의 계산으로 바쁜 그들이 사는 법이 참, 어설프고 헐렁하다. 서로 상대의 머리 꼭대기에서 춤을 추고 싶어 안달인데, 결국 그들의 전쟁에서 춤을 추는 이는 따로 있으니... 어디, 머릿속 계산이 맞아떨어진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 보란 말이다. 근데 또 슬퍼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내 편을 구분할 수 없어서다. 내 편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내 편이 아닌 게 되는 건 종잇장 뒤집는 것처럼 너무 쉬워서, 세상이 그렇게 굴러가는 걸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어서, 줄을 잘 서거나 틈새를 노리는 이가 얻어가는 것들이 영양가 있어서... 결국은 어차피 살아남은 게 이긴 거라고 계산하면 또 맞는 것 같아서 뭐라고 할 말은 없네. (그래서 울트라가 갑이다. ㅎㅎ) 어때? 지금 당신이 사는 세상은 얼마나 달라?

 

반전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익숙해질만 하면 어디서 다른 것들이 막 튀어나와) 흐름이 소설을 더 즐겁게 한다. 천명관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으나, 그의 소설에 기대를 많이 했다면 좀 심심했을 수도 있겠다. 전작들이 워낙 꽉 채운 맛이 있었던지라... 주인공들의 말장난 같은 언변에 가벼운 흥미를 느끼다가도, 이들의 마음속을 드러내는 찰나에서는 씁쓸한 공감도 끌어내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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