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정 1 - 광해군의 누이, 정명공주 이야기
유광남 지음, 김이영 원작 / 미래플러스미디어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신탁의 주인이 된 여인, 정명공주. 『화정 1』

 

 

오랜만에 역사소설을 읽었다. 한참 드라마로 방송되고 있는 내용이기에 어떤 전개로 흘러갈지, 소설과 드라마가 얼마나 다른 여운을 줄지 비교하는 맛도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소설을 읽을 때 더욱 흥미로운 것은 활자를 통해 영상을 떠올리는 맛이다. 이런 장면, 이런 대사, 이런 배경의 어울림을 배우의 연기가 한층 돋보이게도 할 가능성이 있기에 기대되는 거다. 솔직히 첫 회만 본 상태라 어느 정도 비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첫 회의 장면을 책 속에서 발견하니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르게 흘러갈 수 있겠구나 싶기도 하다. 어쨌든, 이 소설을 읽어보니 다음 장면, 다음 회가 기대될 거란 생각은 그대로다.

 

의외의 전개에 잠깐 생각했다. 그동안 역사를 주제로 한, 왕이 등장하는 소설이나 영화에서 주인공은 언제나 왕이었다. 그를 중심으로 조선의 역사는 흘러갔고, 온갖 정치 싸움과 권력을 얻고자 발버둥 치는 인간들의 향연을 보곤 했다. 소설 『화정』역시 그 큰 틀에서 벗어날 것 같진 않다. (아직 1권만 읽은 상태에서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으나...) 광해의 등장과 그가 왕이 되는 배경을 풀어놓는다. 성군이 되고자, 백성들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고자 애쓰며 고뇌하는 모습이 애잔하다. 적자도 아니고 장자도 아닌 그가 왕위에 오르기까지 버티고 견뎌야 했던 시간의 암울은, 그가 뜻을 펼치기 위해 쌓은 주춧돌이 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세상이, 권력이 어디 그렇게 흐르게 놔두겠는가. 그의 출신 성분은 변할 수 없었으니 그게 늘 발목을 잡는 구실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권력을 쥐려고 하는 자들이, 수시로 왕권을 흔들려는 자들과 혹시나 목숨이 위태로울까 미리 선수 치는 염려 속에서 그는 오해와 불신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거기에 정명이 있다. 이 소설이 더 기대되는 이유이자 새로운 영웅이 묘사되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하는 까닭. 정비의 소생이자 그의 이복누이 정명공주. 그가 세자가 아니라, 임금이 아니라 그저 한 사람의 남자이자 오라비로 살아가는 인간미를 갖게 하는 누이. 정명의 미소 한 방, 천진한 표정 하나면 잠깐이지만 그의 시름은 사라진다. 이제 정명이 성장하고 십 대의 여인이 되었다. 1권은 그렇게 성숙한 정명의 마지막 모습과 부마 간택의 갈등을 두고 끝이 난다.

 

“하지만 얘야, 그렇다 해도 잊지는 말거라. 야만과 불의에 승리를 내준 것은 인간이나 다시 그것을 되찾을 수 있는 것도 그들이니! 하늘의 뜻보다 강한 것은, 사람의…… 의지라는 걸……!” (196페이지)

 

예상하지 못했던 비밀의 등장. '불을 지배하는 자가 진정한 세상의 주인이 된다'라는 격암 남사고의 신탁이 무엇을 남길지 혼란스럽지만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언제쯤 그 의미가 밝혀질까 싶어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주어진 운명을 살아가고 있는 듯하지만, 그 운명이란 게 또 우습기도 하지. 때론 위선과 거짓, 의미 없는 증표를 믿으며 피와 전쟁을 불사하게 한다. 불로 상징되는 그것, 그걸 손에 넣기 위해 벌이는 싸움과 치열함이 어떤 결말을 만들어낼까... 가장 흥미로운 건 그 신탁의 주인이 누구인가 하는 것. 여기에서 정명의 활약이 기대된다. 기구한 운명처럼, 그 누구보다 극적인 삶을 살다간 여인이라고 들었던 그녀의 삶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거기에 또 다른 인물들, 정명공주를 사이에 두고 사내다운 면모를 보이는 홍주원과 강인우.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면서 보이는 출중함과 영민함, 너무 뛰어나서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팽팽함을 이미 1권에서 복선처럼 보여줬다. 두 사람의 활약이 더욱 기다려진다.

 

숨겨진 비밀 같은 예언이 이제 조선을 어떻게 흔들지, 광해와 정명의 우애를 어떻게 시험대에 올려놓을지 궁금하게 한다. 작은 염주 하나, 해석해야만 알아들을 수 있는 글귀, 오래 전에 예언을 남기고 사라진 사람들. 피를 부르는 권력이라는 걸까, 아니면 그렇게 해서라도 차지하는 게 제자리라는 걸까. 실제 역사 속에서 정명과 광해의 모습이 어떻게 그려졌는지까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여인이기에, 공주이기에 왕권의 계승에서 제외되었던 법도를 무시해도 좋을 만큼 그녀가 영민하고 큰 인물이었을 거란 호기심은 생긴다. 이 소설이 미처 보여주지 못한 그녀의 삶을 재조명하여 독자들에게 다가온 이유가 그런 게 아닐까 추측한다. 광해의 집권 시기를 넘어서 인조의 시대까지 그 생명력과 권력을 이어가던 이 여인의 이야기가 비치고 있는 시대상과 인간상을 함께 보는 맛이 있을 듯해서 2권이 기다려진다.

 

실존 인물과 허구의 설정이 모호한 게 역사소설을 읽는 재미일 수도 있겠지만, 그 기본은 역사가 바탕이 될 테니 드라마나 소설로 즐기며 그 이면의 것들을 추리해가는 재미도 상당할 듯하다. 이미 여러 버전으로 만났던 광해의 다른 모습도 보게 될 것 같고, 김개시나 이이첨, 광해의 호위무사 이정표, 홍주원과 강인우까지 보여주는 흥미로움이 진하다. 소설로 즐기기에 충분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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