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맛이 사는 맛 - 시대의 어른 채현국, 삶이 깊어지는 이야기
채현국.정운현 지음 / 비아북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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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내가 접하는 노인들을 보면 ‘노인은 당연히 이래도 된다’는 경우가 많아서 그게 나를 향한 말이 아니어도 반감을 갖는 경우가 잦았다. 노인이든 아이든 상관없이 진행되어야 할 어떤 일을 앞에 두고 노인이니까 먼저, 많이, 잘못했어도 그냥 넘어가야 하는, 식의 경우를 봐오곤 했다. 그럴 때마다 머릿속에서 물음표가 둥둥 떠다닌다. ‘당연히?’ 왜 당연한 건지 잘 모르겠는데 나이 들면 다 그렇단다. ‘근데 저 노인은 젊었을 때도 저랬잖아’라고 말하면 대꾸가 없다. 그런 건 또 그냥 넘어가야 한단다. 도대체 왜 나이 들면 다 그렇다는 이유로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하면 노인 공경 못 하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한편으로 그런 모습을 보면서 걱정은 된다. 나도 나이를 먹으면 정말 저렇게 되는 걸까 싶은 노파심에 내 의견을 말하면, 시쳇말로 나는 싹수없는 없는 젊은이가 되는 거다. 그러니 더욱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아진다. 어쨌든 노인들이 볼 때 나는, 집 근처 경로당의 노인들에게도 엄마네 교회 노인들에게도 난 그냥, 누구네 싸가지 없는 딸이다.

 

쓴맛이 사는 맛이라니, 비관론이 아니냐는 질문에 선생은 오히려 ‘적극적인 긍정론’이라며 반박한다. 쓴맛조차도 사는 맛이며, 오히려 인생이 쓸 때 삶은 깊어진다면서 말이다. 그게 다 사는 맛이란다. (36페이지)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노인의 시선으로 노인을 감싸는 게 당연한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자기도 노인이면서 책임감 없는 노인들을 봐주지 말라고,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거리의 철학자라 불리기도 했고, 사학재단을 운영하는 교육자인 채현국이다. 『쓴맛이 사는 맛』은 그가 한 말의 한 문장이 제목이 되어 채현국이 구술하고 정운현이 기록한 책이다. 1장과 2장은 정운현이 기록한 채현국의 이야기이고, 3장은 채현국이 그의 삶과 벗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가 살아온 시간 속에서 찾은 고생과 여유, 잘 드러나지 않았던 가족사, 격변의 한국사가 그의 인생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시하게 사는 게 행복을 찾는 과정이라는, 지금의 힘든 시간이 지나면 달콤한 순간이 찾아오겠지만, 오늘을 지내는 쓴맛도 사는 맛이라면서 인생을 구성하는 모든 것을 조금은 긍정으로 보게 한다. 잘 살기 위해 스펙과 성공을 좇는 젊음에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 자신의 존재감을 말한다. 살아남기 위한 온갖 발버둥 속에 그 의미를 집어넣는 듯하다. 그와 그의 지기들이 함께한 역사도 지금 그의 삶의 방식에 많은 영향을 주었겠지. 한 사람의 일대기 같으면서 오늘과 내일을 살아가야 할 이들과 함께하는 귀한 소통의 시간이다.

 

특별할 것은 없었다. 여든의 노인이 살아온 이야기와 현재의 세태를 말하는 게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그런데 ‘여든의 노인이 이렇게 세상을 볼 수 있구나’ 싶은 그의 열린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가르치려 들고 지적하는 게 특권인 것처럼 여겼던 대상이었는데, 그게 전혀 옳지 않음을 스스로 말하는 노인이라니. 세대 간 갈등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이를 먹으면 서 있는 위치도, 시선도, 우선인 것도 달라질 것이니 어떻게 모든 시선이 하나가 될 수 있나 싶었다. 세상은 변하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중심에 선 사람들도 달라지니까. 결코, 같을 수 없는 세대라고 생각했던 게 조금 달라졌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의 열린 사고가 변해가는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시선을 갖게 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이 시대에 필요한 게 뭔지 바로 아는 사람의 눈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서인 것 같기도 하고, 제대로 어른이 된다는 게 뭔지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흔히 나이 먹는 건 쉬워도 어른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고 하는 말이 뭔지 알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어디에서 잠깐 강연을 들으러 다녀온 기분이었다. 이 한 권으로 세대 간, 사람 간의 서로 달랐던 사고가 한 번에 하나가 되진 않을 테지만, 적어도 ‘꼰대’가 아닌 ‘어른’의 개념과 인식을 알 수 있는 기대감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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