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을 멈춰라! 그림책이 참 좋아 12
김영진 글.그림 / 책읽는곰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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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같은 상황을 떠올렸다. ‘싸움을 멈춰라.’라는 제목에서 나는, 아이의 눈으로 보는 어른들의 큰 싸움을 말하려고 하는 줄 알았다. 최근 내전이 일어난 어떤 나라를 떠올리기도 했다. 끊임없는 분쟁이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기도 하니까 아주 상관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아이의 눈으로 보는 그런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부터 했다. 어른의 입장에서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난감한 마음이 앞서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것보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더 중요한 싸움이 있다. 바로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싸움들. 왜 그럴까. 같이 놀기에도 바쁜 시간일 것 같은데 싸울 시간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웃음도 났지만 아이들의 눈으로 보니 심각한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염병처럼 갑자기 나로의 반에 몰아닥친 이 분위기는 뭘까? 친구 사이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일. 친구가 뭔가를 뺏어가기도 하고, 내 마음을 몰라주기도 하고, 뭔가 불만이 가득해서 싸울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 나로의 반에서 일어나는 싸움은 뭔가 수상하다. 요즘 나로네 반에서는 싸움이 끊이질 않는다. 나로와 미르, 미르와 그린이, 그린이와 예원이, 예원이와 은비, 은비와 가원이, 가원이와 나로... 끊임없는 그 싸움이 만들어낸 것은 친구들 사이의 절교다. 서로가 말을 섞지 않았고, 교실 안에서는 찬바람이 쌩쌩. 나로는 그런 학교에 가기 싫어졌다. 집에 혼자 있어도 재미가 없고 지루했다. 놀이터에 나가도 친구가 한 명도 없고 여기저기에 서로 헐뜯는 낙서만 가득했다.

 

 

그때 갑자기 나타난 펄럭이. 아, 펄릭이를 모르겠다고? (이미 1편 <엄마를 구출하라>에서 나왔잖아. ^^) 상상 세계 이루리아에서 온 특수 요원 펄럭이가 나로를 끌고 간 곳은 이루리아의 조금 이상한 바다였다. 웅성웅성 뭔가 시끄러운 그곳에서 알게 된 사실은, 꿀꺽 선장이 아이들을 잡아다 놀이터 섬에 가두었다는 것. 그래서 바다가 험악하게 변하고 어둠의 해적단 선장이 마음에 안 드는 건 뭐든 꿀꺽 삼켜버리고는 한다는 것. 아이들을 찾으러 간 아빠들도 소식이 없고, 바닷가에는 온통 할머니와 할아버지들뿐이었다.

 

바로 지금, 나로의 상상 에너지가 필요한 시간이다. 마음을 담아 간절하게 구석구석 상상하고 안 되면 계속 상상하면서 상상 에너지를 끌어 올려야만 했다. 나로와 펄럭이가 배를 타고 바다 숲을 지나 놀이터 섬으로 들어가자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꿀꺽 선장이 아이들을 가두고, 아이들한테서 미움 에너지를 키워서 현실 세계로 쏘아 보내려는 속셈을 알게 됐다. 그렇게 되면 현실 세계에서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서로 미워하며 싸우게 되는 것이지. 당장 아이들을 구출하지 않으면 정말 큰일이 나겠다.

 

 

나로는 얼른 상상 에너지를 떠올리고 자신이 타고 온 배를 키웠다. 그제야 정신이 든 아이들을 모두 배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아직 포기하지 않은 꿀꺽 선장과 해적들이 해적선을 타고 와 대포를 쏘기 시작했다. 하지만 꿀꺽 선장은 나로가 가진 상상의 힘을 예상하지 못했지. 나로는 비눗방울 대포를 떠올려서 발사했고, 비눗방울에 해적들을 가둬버렸어. 계속해서 테이프 대포를 쏴서 해적들을 꽁꽁 묶어버리고, 엄청나게 큰 혀를 내민 꿀꺽 선장을 돋보기로 물거품을 만들어 물리쳤지. 나로와 이루리아 아이들은 처음 만났지만, 위험한 고비를 함께 넘기고 나니 오래 알고 지낸 친한 친구처럼 느껴졌다.

 

아쉬운 작별의 시간...

이루리아에서는 나로에게 이루리아 특수 요원임을 증명하는 황금 배치를 줬고, 나로는 다시 현실 세계의 놀이터로 돌아왔다. 미끄럼틀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르와 그린이, 예원이, 은비, 가원이... 텅 비어있던 놀이터에 친구들이 가득했고, 언제 싸웠느냐는 듯이 웃음 폭탄이 터져버렸지. 아, 이렇게 단순한 것을, 그냥 마음이 통하고 웃어버리면 그만일 것을 왜 그렇게 싸우고 미워하고 그랬는지. 이제라도 서로 웃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노는 모습을 보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손에 흙 묻히고 학교 운동장에서 노는 일은 너무 흔했다. 해가 저물고 엄마가 밥 먹으라고 찾으러 오기 전까지 놀던 기억도 있다. 학원이나 과외보다 방과 후의 생활은 그렇게 친구들과 노는 일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의 시설은 점점 좋아지고 있지만, 그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는 일은 쉽지 않다. 주말에나 가끔 몇몇 아이들이 보이는 정도일까. 평일은 그렇게 놀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란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현실 세계에서 살아가려면 그것에 맞게 발맞추어야 하니까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삭막함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그런 느낌이 나로네 반의 싸움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같다. 서로가 많은 얘기를 하고 친해질 기회, 친해질 시간이 없는 것이다. 서로서로 잘 모르니, 알아갈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으니 이해보다는 미움이 먼저 힘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뭔가를 배우는 시간에서 나쁜 것은 참 빨리 습득하기 마련이니까. 어쩌면 이루리아의 못된 꿀꺽 선장이 아이들에게 보내려 애쓴 미움 에너지가 활동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상상이란 것이 만들어낸 미움, 그 미움을 없애기 위해 애쓰는 것도 상상. 나로와 펄럭이의 활약이 기대되고 믿을 수 있는 건, 오늘날의 삶에서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상상력이 만들어낼 수 있는 많은 것을 보게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미움이 생겨나기 전에 그 상상으로 없애버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말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내 마음속에서 생겨나는 미움이 점점 자라서 누군가와의 싸움도 만들고,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전쟁 같은 것도 만들 수 있기에 그 시작을 잠재우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이들의 상상력으로 가능한 일을 어른이라고 못 할까.

 

많은 것을 상상하고 꿈을 꾸고... 세상의 위험하고 불안한 많은 일을 그 상상력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싶어진다. 나로와 펄럭이가 이 시리즈를 통해 계속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 그러하니까. 공부만큼이나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꿈을 꾸는 것과 상상력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한다. 마음껏 뛰어놀고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 때로는 허무맹랑한 공상이라고 해도 그 상상력이 보여주는 힘을 믿어보는 것도 아이가 행복해지는 길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서로 눈이 마주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던 사이가 이 책의 마지막에서는 미끄럼틀에서 내려와서 부딪혔는데도 웃지 않았는가. 조금은 더 놀고 뛰고 친구들과 어울려도 좋을 시간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어서, 고맙다.

 

작가가 이루리아로 가는 입구 열 곳을 찾고 있다고 했는데, 세 번째 입구(<꿈 공장을 지켜라>)까지 찾았으니 나머지 일곱 가지 입구는 어떻게 그려질지 많이 궁금해진다. 더 아름답고 멋진 상상력과 꿈을 꾸는 이야기로 계속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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