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전날
호즈미 지음 / 애니북스 / 201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 큰 의미 없는 질문을 하나씩 던지고 싶어진다. 홀수가 좋아 짝수가 좋아? 음, 글쎄... 정말, ‘글쎄’다. 그다지 의미 없는 질문에 별 의미 없는 답이다. 하지만 홀수 짝수에 의미를 두지 않더라도 각각 홀수의 시작인 ‘하나’, 짝수의 시작인 ‘둘’이란 숫자의 의미는 확인하고 싶어진다. 하나와 둘. 하나를 가질 수도 있고 둘을 가질 수도 있지만, 하나만 남는다는 것과 둘이 남는다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호즈미의 단편만화집 『결혼식 전날』은 그 ‘둘’에 관한, 그리고 ‘하나’에 관한 이야기다. 둘이었다가 하나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성장이 있고 이별이 있다. 사랑이 있고 그리움이 있다. 눈물 나게 슬프기도 하지만 애틋하게 남겨진 감정이 있다. 그런 사람, 우리의 이야기다.

 

모두 여섯 편의 단편이 담겨 있는 만화다. 누군가의 하루를 듣는 듯한, 일상이 흘러가는 듯한 느낌으로 읽어가고 있는데 거의 마지막 부분에 다다르면 반전이 일어난다. 정말 몇 페이지 되지도 않는 그 짧은 순간에 이렇게 많은 감정을 담고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게다가 작은 반전이 그 이야기 끝에 눈물을 매달게 하거나 피식 바람 빠지는 웃음을 준다. ‘이걸 어떡하지?’ 싶은 눈물을 만든다. ‘뭐야 이거?’ 싶은 미소를 만든다. 슬픔과 기쁨, 그리고 또 다른 그 이상의 감정을 주인공들이 만들어내고 있다.

 

표제작 「결혼식 전날」은 제목 그대로다. 결혼식 바로 전날의 남자와 여자가 있다.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 내일을 위한 웨딩드레스를 또 한 번 미리 입어본다. (여자는 며칠 전에도 웨딩드레스를 몇 번 입어봤다.) 초대 손님들의 자리 배치를 걱정한다. 내일 하루를 위해 그동안 준비해왔던 것을 이야기하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마지막 인사. 눈물 나게 애틋한 그 인사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둘이었다가 하나가 되는 순간, 이별이지만 이별이 아닌 순간이 그렇게 찾아온다.

「아즈사 2호로 재회」는 아주 슬픈 이야기다. 그런 슬픔을 꾹꾹 눌러 담은 누군가의 뒷모습을 저절로 그리게 한다. 집에 혼자 있던 꼬맹이 아즈사에게 일 년에 한 번씩 아빠가 찾아온다. 오늘이 그날이다. 아즈사는 아빠와 함께 아이스크림도 먹고 빨래도 한다. 담배 사러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던 아빠를 엄마는 원망한다. 그렇게 아빠는 떠났고 오늘처럼 아즈사를 한 번씩 만나러 온다. 아즈사와 함께 하루를 보낸 아빠는 다시 떠난다. 아즈사는 또 기다리겠지. 일 년 후에 찾아올 아빠를...

인간 남자와 고양이가 함께 사는 공간을 그린 「그 후」는 살짝 허망한 웃음을 만들어내고 있다. 배려하고 싶지만 귀찮아서 내버려둔 고양이의 마음이 오해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를 보고 있는 듯해서 웃음이 난다. ‘아’라고 말했는데 ‘아~아~아~’라고 들리는 순간이 있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 빼고 말했더니 전혀 다른 내용의 메시지가 된다. 그런 순간이 일상에 무수히 많이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재미있는 일상이다. 고양이의 황당한 표정에 미소 지어진다.

「10월의 모형 정원」은 약간의 미스터리가 가미된 이야기다. 은둔하듯 사는 소설가 남자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든 14살 소녀. 남자는 소녀에게 가라고 말했지만, 소녀는 가지 않고 계속 남자의 집으로 찾아온다. 잔소리도 하고 음식도 만들면서 남자의 집에 드나든다. 어느 날 전단 한 장을 보게 된 소설가는 놀란다. 자기 집에 찾아든 이 소녀는 누구란 말인가. 창문을 통해서 매일처럼 보이던 까마귀는 어디로 날아갔기에 갑자기 보이지 않는 건지. 그리고 이 둘의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재탄생되는지 보여주는 새로운 소설의 탄생.

그리움을 담은 「모노크롬 형제」다. 오래전 학창시절에 한 여자를 동시에 사랑했던 쌍둥이형제의 이야기다. 그 여자가 죽었다는 소식에 형제는 장례식장을 찾아왔고, 둘이 술을 마신다. 이미 할아버지가 되는 나이의 두 사람인데 과거의 기억은 참 또렷하다. 동생은 그녀가 형과 사귀었다고 생각하고, 형은 그녀와 그런 사이였던 적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동생은 그 말이 귀에 들리지 않는다. 오래 전 그때 그 시간의 이야기를 하면서 둘은 술잔을 기울인다. 그리고...

「꿈꾸는 허수아비」는 사람이 사물이라 여기는 것과 교감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오빠와 여동생, 남매만 남은 상황에서 큰아버지 댁으로 옮겨가게 된다. 남의 집에서 생활하는 게 눈칫밥이 장난이 아닐 텐데, 어리기까지 한 여동생에게는 더했겠지. 어린 여동생은 집 앞 밀밭에 있는 허수아비를 엄마라 부르기 시작한다. 여동생은 하고 싶은 말, 풀어놓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마다 허수아비에게 가서 이야기를 한다. 오랜 시간이 흘렀고, 오빠는 캔자스를 떠나 뉴욕에서 생활하던 중 보내는 이의 이름이 없는 엽서를 받는다. 엽서에는 오랫동안 소식을 전하지 않던 여동생의 결혼 소식이 적혀 있었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이 짧은 이야기의 어디까지를 얘기해야할지 조심스럽다. 얼핏 보면 그냥 그런 이야기일 것 같은데... 맞다. 그냥 평범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때로 많은 것들과 이별을 한다. 부모와 형제자매와 연인과 또, 더 많은 것들과. 그렇게 혼자가 되고 또 혼자 살아가게 된다. 그 과정이 쉬울까? 그 마음이 괜찮을까? 이 단편들이 유독 내 눈에 보여주고 있던 것은 주인공 두 사람 사이의 끈끈함이었다. 잘린 듯하지만 이어져 있고, 못 본 것 같지만 다 보고 있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 마음 알 것 같은 감정들이 우리가 호흡하는 공중에 부유하고 있다. 그렇게 부유하고 있다가 곧 소멸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으리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지금 눈앞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그것은 소멸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여섯 편의 단편 속에 있는 이들은 모두 둘이다. 남매, 아빠와 딸, 형제, 동물과 사람, 사물과 사람. 모두 평범한 일상 속에서 주고받는 대화, 감정, 상황을 담고 있다. 특별할 것 없다고 보이는 이들의 이야기가 가슴 속으로 스며드는 이유는 뭘까. 너무 평범해서 이야기의 소재로 사용될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발견하는 매력이 있다. 둘 사이의 관계와 그 흐름이 두 눈과 귀가 따라가게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슨 얘기가 더 나올까, 이들의 마음이 무엇일까, 그 일상을 품어내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싶은 기대감이 생기게 한다. 너무 잔잔하게 흘러가서 언제 시작되고 어디서 끝나는지도 모르게 페이지를 덮고 있게 한다. 그 이야기들의 가운데에 반전이 있다. 울컥거리게 하면서 묵직한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게 한다. 읽는 순간, 그 마음을 듣는 순간의 진심이 그렇게 나오고 있다. 마주치고 싶지 않지만 결국은 마주하게 되는 타이밍. 삶에서 그런 순간 참 많이도 만나게 되지만 이렇게 한 번씩 만날 때마다 감정의 소용돌이는 매번 깊어지는 듯하다.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을 아니까.

 

단편소설이 아닌 단편만화의 맛을 이렇게 만날 수도 있다는 게 즐겁다. 기뻐도 눈물이 나고 슬퍼도 웃음이 난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는 이야기다. 어떤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 역시나 진심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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