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기생 홍금보 1 앙상블
육시몬 지음 / 청어람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생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기생이란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다. 미인, 아름다움, 천하절색 등등. 얼굴에 고운 단장을 하고 화사하게 몸치장을 하고. 음주가무에 덩실덩실 어깨춤이 춰지는 장소에 그 어여쁜 얼굴의 자리가 있다. 실제 기생이 존재했다는 시절에 살아보지 않았으니 영화나 드라마, 책에서 만난 이미지가 전부이리라. 당연한 것처럼 내 머릿속에서 기생은 아름다운 여인이라 각인되었건만, 그 이미지를 와장창 깨뜨려버린 기생이 나타났으니 그 이름도 육중한 홍.금.보. 붉은 홍(紅), 능금 금(檎), 보배 보(寶). 붉디붉은 능금 같은 보배라고 홍금보라는 이름이 가진 그 의미 또한 그럴싸한데, 아뿔싸. 외모가 그 이름을 따라주지 못했으니... 기생이란 신분이 무색하게 홍금보는 박색이다. 그것도 천하박색! 보통은 독각귀(도깨비) 홍금보라 불리니 그 외모가 심히 무섭다. 꽃다운 나이 열여덟이 되었건만 아무도 홍금보의 머리를 올려주겠다는 이가 없다. 다른 기생들이 머리에 가채를 올리고 있을 때 홍금보는 댕기머리 소녀(!)다. 그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절로 난다. 육척에 가까운 키에 기골이 장대하고 억세기까지 한 덩치 큰 소녀상을 떠올려보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웃겨서...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났다는 위로 말고는 그 어떤 말도 건넬 수가 없구나. 지금 세상이라면 잘 나가는 모델로 이름을 날렸을지도 모르는데. 얼굴은 고은애(<달려라 하니>)를 연상시켜도 조금만 다듬으면 몸매는 미란다 커가 울고 갈 지도 모르는데. 시대를 잘못 만났어!!! 400년만 늦게 태어나지, 라고 읊어봤자 뭔 소용. ㅠㅠ

 

그런 홍금보에게도 기생으로서의 재주가 있었으니, 바로 노래다.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조선 최고의 ‘가기(歌妓)’다. 그런 홍금보와는 대조적으로 천하절색의 미인 설향은 벙어리 기생이다. 홍금보에게도 마음을 준 이가 있는데 통사관(통역사) 장이강 오라버니다. 그런데 이 오라버니 어장관리 하는 건지 뭔지, 홍금보에게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확신이 없다. 거기에 이강 오라버니는 벙어리 기생 설향에게서 눈길이 떨어질 줄 모르니 어쩌면 좋누. 때는 왜란이 마지막을 향하던 시기. 조선에 들어온 명군의 통사관이 한명 있었으니 그 이름 박수타(바티스타). 파랑국(포르투갈)의 금발의 백인 통사관 박수타가 한눈에 홍금보에게 반해버렸다. 억지로 끌려오듯 했던 조선에서, 매일 도망치는 게 일이었던 박수타에게 조선에 머물러야 할 명분이 생긴 것이다. 사랑!! 말이 통하지 않는 두 사람, 박수타와 홍금보. 뭐, 사랑하는데 언어의 장벽쯤이야 별것이겠냐 마는... 목소리와 외모 성질까지 억세고 드세고 장대하고 폭력적이고 현실적이기까지 한 홍금보와 금발의 파랑국 남자 박수타가 연결이 될 것인지 말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들의 어학교재인 ‘색주부뎐’도 궁금하고, 뭐 그렇다는... ^^

 

여기까지만 얘기하면 코믹스러운 캐릭터에 입혀진 가벼운 이야기 같지만, 이 소설의 뼈대는 신분의 고하로 차별이 있었던 조선시대가 배경으로 펼쳐지는 시대극이다. 정여립이 주도했다는 기축옥사로 한바탕 피바람이 불고 간 다음, 복면의 두령 홍길동이 활약하는 시대로 배경이 만들어졌다. 모든 사람이 평등한 나라, 모든 백성이 똑같이 잘 사는 나라를 꿈꾸며 실체 없는 유토피아인 율도국을 향하게 하던 때. 실존인물이었던 허균의 등장과 허균이 썼다는 홍길동전의 주인공 홍길동이 직접 등장한다. 홍금보가 소속된 기방 장만옥을 아지트로 매일 술에 절어 한량으로 지내는 허균과 동학운동 때 절름발이가 되었다는 홍길동, 부유한 상인의 아들 장이강 세 사람이 막역지우로 설정되어 이야기를 끌어간다. 흥미진진한 사건들이 수상쩍게 펼쳐지고, 활빈당이 시국을 어지럽힌다고 여기는 시대. 세상을 바로잡겠다고 목숨 걸고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오는 이들의 활약과 당연하듯 왕의 자리를 거머쥔 자의 탐욕과 가진 자들이 부리는 횡포 사이에서 다양한 사건들과 로맨스가 펼쳐진다. 그 가운데 이들이 있다. 완벽하진 않지만 잘하는 것 하나씩은 있는 사람들. 뭔가 하나 부족한 것 같지만 그대로의 삶을, 자신의 존재감을 감사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이 부조리한 사회와 국가에 대해, 세상이 바뀌기를 염원하면서 활동하는 것도 대견하다. 낯선 이방인이지만 박수타가 홍금보에 대한 마음을 비췄을 때, 바뀔 세상을 위해 싸우는 이들의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듯해서 이야기의 맥락이 이어져 보인다. 박색이라 불리던 홍금보도 누군가는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음을, 기생 신분이 물건처럼 사고팔고 가능했던 세상에서 마음을 먼저 얻고 싶은 이가 있음을. 그게 바로, 누구나가 똑같이 평등한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는 이들의 바람을 그대로 보여준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 책의 주인공은 홍금보다. 박색기생인 홍금보가 만들어가는 인생과 그런 성질과 외모에도 진실한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싶은 기대감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위험한 순간이 닥쳐와도 살고자 하는 의지가 너무 강해서, 위험과 죽음마저 매번 홍금보를 피해가는 듯하다. ^^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마인드로 살아가는 홍금보, 박색이어도 할 말 다하고 먹을 것 다 먹고 제멋에 사는 홍금보, 조선을 위해 들어왔다는 명군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홍금보, 양반이든 미남이든 그 어떤 외모 앞에서도 당당한 홍금보!!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났다는 위로마저 물리쳐버리는 위인이다. 매번 닥쳐오는 위기마다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게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재빠르다. 연관도 없는 일에 연루되거나, 혼자 삽질하면서 숨겨진 영웅이 된다거나 하는 에피소드가 홍금보를 더욱 매력 있는 인물로 보이게 한다. ^^

 

특히 재치 있게 표현되는 장면과 문장들이 재미를 더한다. 홍금보라는 이름 자체가 연상시키는 것은 외모다. 어렸을 적 봤던 중국영화에서 그 육중한 몸으로 무술을 하던 홍금보. 떠올리면 일단 웃음부터 나는 인물이다. 그렇게 연상되는 인물이 이 책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더군다나 남자도 아닌 여자로 나왔으니 읽기도 전에 그 웃음을 기대하는 건 자연스럽다. 벙어리기생 설향과 박색 가기 홍금보의 ‘병풍후립신구(屛風後立身嘔)’는 기발한 표현으로 들린다. 병풍을 세우고 그 앞에서 설향이 사람들 앞에서 노래한다. 하지만 벙어리인 설향은 병풍 뒤의 홍금보가 부르는 노래에 ‘립싱크’를 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립싱크를 한자어 발음되는 그대로 립신구라 표현하다니. 게다가 박수타의 홍금보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는 부분에서는 ‘온이유 홍금보 (溫而幽 紅檎寶)’라고 했다. 홍금보뿐이야~ 하는 애절한 온리유(only you)를 말하는 것이다. 홍금보와 박수타가 매일밤 어학교재로 사용하던 ‘색주부뎐’ 속의 문장들 역시 마찬가지. 어딘가 엉성하지만 박수타는 열심히 배워 실생활에 그대로 써먹는다. 귀엽게도... ^^

 

적당한 배경과 소재, 매력 있는 캐릭터들을 보는 즐거움으로 읽을 수 있었던 듯하다. 이야기는 끝났으나 끝나지 않은 듯한 여운이, 지금 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하게 만든다.

 

<사진출처 : KBS '안녕하세요' 공홈>

 주인공 홍금보를 이영자, 개그콘서트-황해의 이수지를 연상하면서 읽었다니까.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