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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2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하아....
일단 숨이 쉬어지는지 확인부터 하고 이 책을 펼쳐들어야 했을 것을, 스물여덟의 청년이 그리던 자유를 몇 달 남겨두고 눈을 감았던 그 순간을 떠올리면서 읽어가야만 했던 장면에서는 참았던 숨이 쉬어지는 것을 경험해야만 했다. 어느 순간 숨이 막히고, 조여지고, 가늘게 내쉰 한숨처럼 다시 숨이 쉬어질 때, 절망과 안도를 함께 느껴야만 했다. 지금의 시기가 더욱 그러해서 그런지 민감하게, 알 수 없었던 그 시간을 생각하면 잔인하게, 그리고 지금과 맞물려 더욱 아프게 다가올 수밖에 없던 이야기들이었음을…….

화자인 와타나베 유이치(나)의 고백 같은 기록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종전이 가져온 것은 수감자와 간수의 위치를 바꾸게 했던 것뿐만 아니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침묵했던 자에게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스스로 구원받을 수도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그 무엇으로의 용서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용서를 구함으로써 자유로워질 영혼을 만나기를 바라면서.

1944년의 후쿠오카 형무소 안에 가득한 무고한 조선인 죄수들, 그리고 더욱 잔인하게 그들을 통솔하고 가두어두려 하는 간수들의 지독한 몽둥이질. 그 안에서 최고의 잔인함으로 명성을 날리던 스기야마의 살인사건을 계기로 화자는 살인사건 조사를 빌미로 검열실의 일을 하게 된다. 나가고 들어오는 모든 문자에 대해 검열하는 일을 했던 스기야마의 죽음은 화자의 또 다른 삶을 만들어주는 계기가 된다. 시작은 살인사건 조사였으나 사건을 파헤칠수록, 자신의 손이 닿지 않았던 형무소 안의 구석구석을 알아갈 수록 후쿠오카 형무소와 시대가 가져온 상황은 생각하지도 못한 끔찍함을 동반하고 있었다.
그 안에 윤동주가 있었다. 수감번호 645번. 잔인함으로 명성을 떨치던 스기야마와 윤동주와의 접점은 전혀 없을 것 같았는데 사건 이면의 두 사람을 알아갈 수록 스기야마는 활자를 부수려는 사람이 아닌 활자를 사랑하는, 결국 그 시를 품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반면 활자를 잃어버리고 시를 잃어버린 윤동주는 존재의 의미가 없는 사람이었고. 한 사람의 글이, 시가 다른 이의 영혼과 인간미를 구원할 수 있다는 점을 그대로 보여준 두 사람의 교감은 차마 그 안에서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걸 가능하게 만들어준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일 테지. 어떤 식으로든 그 안에서 자유를 빼앗긴 이들에게 그래도 내일이 기다려질 수 있는 희망을 던져주었던 글이었기에 그 위대함을 본 것만 같았다. 담장너머의 자유를 꿈꾸던 자들의 영혼이 되었던 문장들이었고, 갇혀 있는 자들이 살아가는 그 순간의 증거였고, 숨을 쉴 수 있는 이유였다.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누구를 위해 누가 시작한 전쟁이었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곳곳에서 들려준다. 전쟁을 위해 연구되고 확인하고 싶었던 의학 앞에서는 잔인하게 생체실험이 행해지고, 개인의 사사로운 욕심으로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는 곳이었다. 무엇이 잘못이고 무엇이 옳은지도 모르게 인식되는 그 안에서 그들이 읊어보는 시의 구절들은 그들의 처절한 몸부림들이었다. 뜻도 모를 노래를 함께 부르는 것, 죽음을 무릅쓰고 책의 부분들을 담아 와서 들려주는 목소리들, 목숨을 연명하게 해주기 위해 일부러 상처 내는 일들 모두가 죄 없는 이들의 발악이었을지 모른다. 지금 여러 사람의 희생으로 이유도 모를 피가 흘러내리고 있음에, 여전히 알 수 없는 파도에 휩쓸려 다닐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이들이 그 높은 담장 안에서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외침이었으리라. 그 안의 한 청년, 마냥 나약하게만 보였던 그 젊은 시인의 노래가 그 안의 사람들에게 들려주었을 그 간절함이 들려오는 듯하다. 활자가, 글이, 시가 가진 힘이 그 무엇보다도 강했음을 말해주고 있는 이야기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이라는 것이 상황에 따라 목적에 따라 의미가 다르게 다가오지만 그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이들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 누군가에게 지식을, 문맹을 탈출하고픈 의지를,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위로를, 내일이 기다려지는 희망과 목적을 주는 아주 강한 치료약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시험을 준비하면서나 만났을 윤동주의 시들을 이 책에서 만나니 새롭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윤동주의 시 대부분이 그의 사후에 알려진 것이라는 것도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물론 이 책은 소설이다. 하지만 소설의 그 허구와 진실 사이에서 우리가 보아야할 것이 무엇인지는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도 알 수 있다. 책은 불에 타 없어졌어도 책의 영혼은 죽지 않았다고 믿는 이들처럼 우리가 이 책을 소설로 즐기면서 내 영혼에 흡수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말하고 있음을 잊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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