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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라 헤티 지음, 구원 옮김 / 코호북스(cohobooks)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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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마흔 살이 된 마당에 여전히 출생지를 떠나지 못하고 쥐가 들끓는 아파트에 세 들어 살며 적금이라고는 땡전 한 푼 없이 변변치 않은 수입으로 먹고사는 아이 없는 이혼녀라니. 내 결혼이 결딴났을 때 아빠가 건넨 조언을 실천하지 못한 모양이다. 앞으로는 정신 똑바로 차려라. 정신 똑바로 차리는 대신에 나는 계속해서 삶의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리며 아무것도 이루어내지 못했다.” (35페이지)


책 소개 글 보다가, ‘아이를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를 언급해서 섣불리 내용을 추측했다. 아이 문제는 언제나 답이 없는 화두가 되기에, 누구도 속이 시원한 답을 내놓을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기에, 주인공이 겪는 이 혼란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 거로 여겼다. 막상 읽다 보니, 아니었다. 아이를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하나의 질문이 아니었다. 책의 초반부에서 언급된 위의 말처럼, 거의 마흔 살을 살아오는 동안 자기가 이뤄낸 것이 없고 무엇 하나 분명하게 드러낼 수 없는 인생에 관해 무거운 마음을 들여다보게 한다. 저자 실라 헤티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하는데, 이게 소설이든 에세이든 장르가 중요한 건 아닌 듯하다. 문장 속에서 전해지는 솔직하고 투명한 감정과 고민이 그대로 전해져오는 게 무서울 정도였다.


누구나 고민한다. 적당한 나이, 적당한 위치. 이 나이 정도면 이 정도는 이뤄놔야 하지 않나 싶은 마음. 그 기준이 각자 다르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주변 사람들이 이 정도로 가고 있으니까. 이때쯤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이 흐름에 편승하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마는 분위기에 휩쓸리다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누가 그렇게 만든 게 아닌데도 쉬지 않고 질문을 반복하게 된다. 누군가 정해놓은 보편적인 삶에 속하지 않음이 잘못된 것처럼 여기기도 한다. 글쎄, 자랑할 만한 커리어도 없고, 사람들이 말하는 기준에서 결혼도 늦었고, 아이도 없고, 앞으로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여유롭지도 않은 나는 이 다른삶을 얼마나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남들의 시선 따위 관심 없다고 말하곤 했는데, 속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상처받는 유리멘탈이라, 얼마나 감당이 될지 모르겠다.


현대 사회에서 결혼과 출산이 당연시되는 분위기는 과거보다 덜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이 과정은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더 크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나의 친구는 결혼한 지 10년 차인데, 그 친구에게는 위로 오빠가 둘 있다. 오빠들은 결혼하지 않았고, 결혼을 절실하게 여기지도 않는 듯하다. 이 친구에게도 아이가 없다. 친구의 부모님은 곧 팔순이신데, 주변 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마다 화가 나서 들어오시곤 한다. 다들 자식 자랑, 손주 얘기에 바쁜데, 자기는 나이 오십이 넘어도 결혼하지 않은 아들이 둘이나 있고, 손주도 없어서 그들의 대화에 낄 수가 없다는 거다.


저자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화자인 는 같이 지내는 파트너가 있지만 둘 사이에 아이는 없다. 이대로 아이 없이 지내야 할지, 아이를 낳아야 할지 여전히 고민이다. 곧 마흔을 바라보는데, 가임기도 끝나가는데, 어떻게든 결정해야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있을 텐데.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는 지금 상황에 끝도 없는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한다. 스스로 선택한 작가의 삶이 옳은 건지, 자기가 지금 쓰는 작품이 얼마나 인정받을지, 정말 아이를 원하는 건지, 아이를 원한다면 이유는 뭔지, 아이가 있는 게 작가의 삶에 영향을 미칠지, 묻고 또 묻는다. 이 모든 질문의 답을 동전점을 치면서 찾는다는 게 의아하지만 말이다. 처음에는 뭔가 아이 같은 기준으로 오늘의 문제를 바라보는 건가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현명하다고 해야 하나, 솔직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확인하고 싶다고 해야 하나.


생각해보면 감정을 가진 누군가의 조언이나 의견이 아니라, 아무 감정 없이 오직 보이는 그대로만 전해주는 동전점이 진짜 객관적인 답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가 하는 고민은 우리도 똑같이 겪는 문제이면서 그 어떤 답도 100% 안심하게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물가는 오르고, 내 집 마련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었고, 폭염에 혹한에 일상을 지내는 일은 버거울 때가 많고, 육아는 힘들고 돈도 많이 든다. 특히 여성에게는 여기에 한 가지 더 얹어진 선택의 문제가 따라온다. 경력 단절이 생길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하나의 다짐이 필요하다. 이런 고민과 답을 찾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이 당연함(?)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까지 추적하게 되면서, 이어지는 저자의 한마디가 의미심장하다. 출산하지 않기로 한 다짐을 누군가에게 이해시켜야 하는 고충, 어머니가 되지 않고 작가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까지 더해야 한다니.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이 고민하고 결정했을 때 남성도 가 하는 걱정을 똑같이 할까?


아이를 낳지 않는 대신에 어떤 일을 할지 원대한 계획을 덧붙여야 해. 대단한 과업이어야만 하지, 그리고 자기 삶이 어떻게 진행될지 아직 그 삶을 시작하지도 않았더라도 설득력 있게 말할 준비가 되어 있는 편이 좋을걸.” (72페이지)


하지만 나이가 들며 다른 걱정거리가 생겼다. 어머니가 되어보지 않고서도 내가 충분히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인간의 경험을 글로 오롯이 담아낼 수 있을까? 삶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일 중 하나라고 점차 여겨지는 그 경험을 해보지 않은 채로?” (240페이지)


그러니까, 여성으로 살면서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을 때, 그 이유를 이해시켜야 한다는 거다. 누구에게? 이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은 결정에 궁금해하는 모든 사람에게. 여성이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삶을 당연하다는 관습에 다른 방향을 튼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니. 지극히 개인적인 일에, 많은 고민 끝에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결정을 누구에게 이해시켜야 한단 말인가. 출산이 한 여성의 삶을 한 사람의 인생으로 만들지 않고, 어머니와 할머니의 삶에서 경험한 많은 부분이 인식하게 하는 임신과 출산의 문제를 다시 보게 하는 거다. 출산이 인생의 당연한 과정으로 여기며 살아온 그들이 포기해야만 했던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 결국 살아온 모든 시간을 통틀어 얼마나 많은 강요와 같은 포기를 해야만 했는지를. 그래서 의 동전점이 오히려 신뢰가 생길 정도다. 주변의 간섭으로 듣는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오는 과정 내내 증명하듯 보여준 엄마와 할머니의 삶으로 배운 결정이었다. 아이를 낳는가 낳지 않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에서 한 사람으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에 대해 고민하는 이야기로 보게 된다.


나는 어머니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대신에, 나는 그냥 사람이다.” (202페이지)


내가 해야 할 일은 뻔하다. 다른 삶에 환상을 품는 대신에 진정한 내 모습으로 사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보고 현재 삶에 충실하기. 환상의 날개를 실제 삶에서 펼치는 것이다. 처음으로 이 깨달음을 얻었을 때 어찌나 흥분했는지, 마치 자기 자신과 섹스를 하는 듯한 성적 흥분에 가까웠다.” (162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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