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들
정해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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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현유정이 실종되었고, 며칠 후 현유정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사건은 단순 실종이나 가출이 아니라 살인 사건으로 변한다. 용의자는 죽은 현유정과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고, 현유정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났거나 통화를 했던 사람들이다.

유정의 절친으로 보이는 한수연. 둘 다 한부모 가정의 환경이라는 점에서 공감대가 생겨 친해진 것 같지만, 친하면서도 서로를 대하는 마음은 전혀 달랐다. 수연은 유정을 성격을 좋아했지만, 유정을 부러워하면서도 질투했다. 전혀 다른 아빠를 둔 두 아이의 운명은 어느 순간 달라졌다.

유정의 담임선생 민혜옥. 퇴근 후에 도착한 유정의 문자에, 제대로 응대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많은 사람의 질타를 받는다. 그때 담임선생이 유정의 연락에 적극적인 대처를 했다면 유정은 죽지 않았을까?

유정의 아빠 현강수. 빚 독촉 때문에 유정의 엄마와 위장이혼 했기에, 유정의 부모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유정의 엄마를 돌보면서도 딸의 양육을 소홀하지 않았다. 오히려 딸에게 더없이 다정하고 친구 같은 아빠인 그는 무슨 이유로 용의자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승원의 엄마 김근미는 어쩌다 이 사건의 용의자가 되었을까. 아들의 잘못을 감추려고 했던 것뿐인데, 그게 이 살인 사건에서 어떤 작용을 하고 있는가. 그녀는 단지 아들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다.

유정의 남자 친구 허승원. 남들이 다 그렇게 하니까, 그 시기에 여자 친구 한 명쯤 사귀고, 호기심을 충족시킬 만한 행위도 하니까. 그래서 유정을 만났다. 유정을 너무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때는 한 번쯤 그래도 되는 시기라는 생각에, 많은 남학생이 눈여겨보던 유정을 여자 친구로 삼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이 용의자로 보였다. 공부도 잘하는데 성적까지 좋은 유정이었는데, 그런 아이가 살해당했을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으로 유정을 대했던 이가 있을 거였다. 친해 보이고 밝게 웃는 모습 뒤로 진심을 꼭꼭 감춘 누군가가 유정을 미워하지 않았을까? 처음에는 유정과 친하면서 동시에 미워했던 수연을 의심했었다. 비슷한 환경에 있는 것 같지만, 부모의 태도가 전혀 달랐던 수연이 유정을 한없이 부러워하면서 질투가 쌓였을 거라고. 하지만 승원이 등장하자 이 아이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먼저 사귀자고 했으면서, 자신의 선택에 책임감이 없이 가벼운 태도로 대했다. , 이런 남자 만나면 진짜 고통스러웠겠다 싶은 공감이 저절로 생기더라. 승원의 엄마는 당연히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지키고 싶은 아들을 위해서라면 못 할 게 없지. 너무 다정하고 딸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줬던 유정의 아버지는 그래서 더 의심이 생겼다. 분명 보이는 거 이면에 다른 마음을 숨기고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딸을 아끼고 보호했다. 빚 때문에 위장이혼이라고 하지만, 같이 살지 않는 아빠의 상황을 자식 역시 다 알 수 없으니까 말이다.


각 장마다 화자가 달라져서, 등장인물 각자의 마음을 듣는 재미가 있다. 겉에서 보면 다 알지 못할 마음이 저마다의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래서 더 많은 의심이 생겼다. 형사의 추궁에도 자기를 의심하는 거냐고, 각자의 알리바이를 완벽하게(?) 다 드러냈지만, 그래서 더 수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알리바이를 댈 수 있는 걸까 싶어서. 게다가 모든 인물이 자기에게 유리한 진술을 할 때마다 오히려 웃음이 났다. 원래 그렇지 않은가. 같은 상황 같은 자리에 있었어도, 말하는 사람마다 다른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는 일을 처음 본 것도 아니어서 그런가, 이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지만, 그 결백이 오히려 의심을 낳고 있었다. 그래서 형사가 이들을 대면 조사하고 추궁할 때마다, 이들의 말을 믿는 것처럼 그 순간의 조사를 끝낼 때마다 다음이 기대되곤 했다. 진실을 향한 추적이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을 알기에. 결국 진실은 밝혀지고야 말지만, 그 진실을 마주하고 마음만 더 복잡해졌다.


형사가 용의자들을 한 명씩 만나면서 복잡하게 얽힌 수수께끼가 풀리는가 싶을 때, 그들 각자의 형편과 사정으로 죽은 유정을 대하는 게 달랐다는 걸 알았을 때, 각자의 자리에서 겪는 고충이 그들을 이렇게 무자비한 인간으로 만들었나 싶어서 안타까울 때, 인간의 마음이 이런 건가 하는 궁금증과 이해와 두려움 같은 게 남았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도 이런 게 아니었을까. 알다가도 모를 인간의 마음이 어렵고, 이들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마다 공감과 씁쓸함이 공존하는 아이러니를 안고 살아가는 게 우리라는 것을.


이 책 소개 글의 어떤 부분처럼, ‘믿고 읽는다는 독자 중의 한 명이 나다. 물론 출간작 모두를 읽지는 못했고, 거의 다 읽었다고 말할 수는 있겠다. 그래서일까, 새 작품을 읽기에 앞서 어느 정도 기대감이 생기곤 한다. 사건의 전개와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즐기기도 하고,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추리를 하면서 범인을 밝혀내는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하면서 읽게 되기도 한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독자이면서 범인을 밝혀내는 형사와 같은 시선으로 이야기를 따라간다. 물론, 내가 예상했던 범인과 전혀 다른 사람이 밝혀지기도 하고,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을 만큼 눈에 보이는 범인이 드러나기도 한다. 조금만 읽고 자려고 펼쳤는데, 어느 새 끝까지 다 읽어버리고 말았을 정도로 가독성은 좋다. 뻔한 내용으로 진행되건 말건, 그 책을 읽는 시간만큼 이야기에 푹 빠져있으면 되는 거 아닐까 싶으면서도, 만족감까지 채워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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