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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자 씨, 지금 무슨 생각하세요? - 노년의 심리를 이해하는 112개 키워드
사토 신이치 지음, 우윤식 옮김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평점 :
‘노인네, 나이 먹고 고집만 세져서는...’ 언니가 엄마와 대화가 통하지 않을 때마다 하는 말이다. 나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지만, 나이 먹으면 다 저런 건가 싶은 생각에 그저 지켜보는 정도였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이를 먹어갈수록 변화하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성격이 변한다고 해야 하나. 기억력이 감퇴하고, 몸의 움직임이 둔해지는 건 당연했다. 가끔은 민망할 정도로 억지를 쓰는 것도 지켜봐야 했다. 어느 상점에서는 진상 손님 짓 하는 것을 말리기도 했다. 이 사람이 우리 엄마 맞나 싶을 정도로, 언젠가부터 이해하기 힘든 태도를 보일 때가 있더라. 이런 변화를 나만 느끼는 건 아닐 테다. 나와 관계없는 어르신들, 누군가의 부모님들, 많은 이가 경험했거나 느끼고 있을 변화일 수 있다. 이런 변화를 모른 척할 수 없는 건,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부모, 어쩌면 언젠가 내가 그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이런 모습을 보이는 이유를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에서는 종래의 관점과의 차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 노인이라는 말 대신 다른 호칭을 제안합니다. 그것이 바로 ‘고령자 씨’입니다. 단순히 나이를 먹어 쇠약해져 가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풍부한 경험에 근거하여 우리들의 상상을 뛰어넘은 말과 행동으로 인생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 그런 뉘앙스를 담은 말입니다.” (17쪽)
저자는 나이 든 이들을 노인이 아닌 ‘고령자’로 부른다. 일본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비단 일본의 문제에 국한되는 건 아니며,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흔하게 보는 현상이라 이질감이 느껴지는 이야기도 아니다. 그래서 고령자 씨에게 찾아오는 변화, 그 변화가 다른 세대에게 어떻게 비치는지,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 묻고 답을 찾으려고 한다.
노년의 심리를 이해하는 112개의 키워드라고 부제를 달아놓았지만, 그 많은 키워드 속에서 우리가 이미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먼저 찾아보게 된다.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어려워하는 일, 때로는 이렇게 쌓아두거나 주워 오는 쓰레기로 집에 쌓아두는 저장강박증, 뻔히 보이는 의심과 보이스 피싱에 더 잘 노출되는 일, 고집이 세고 화가 많은 건 자주 보이는 성격이고,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자기에게 불리한 기억은 쉽게 잊는 게 가능해지는지... 많은 증상과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먼저는 고령자 씨 자신의 자율성이 아닐까. 내가 직접 운전을 해서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다는 자유로움, 아직은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자신의 쓸모 있음, 자기 효능감은 그들에게 운전대를 놓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몸과 지능의 감각은 점점 떨어져 온 게 사실이니, 이로 인한 교통사고의 위험성에 더 가까워졌다.
보이스 피싱은 어떨까. 갈수록 교묘해지는 수법으로 젊은 사람들도 당하고야 마는데, 고령자 씨 역시 당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미 의심스러운데 당하고야 마는 일이 왜 반복해서 일어날까. 고소득을 보장해 주겠다거나, 당신 자녀가 회사 공금에 손을 댔다거나 하는 등의 뻔한 속임수에 빠지는 일에 왜 자꾸 속는 걸까. 현직에서 물러나거나 성인이 되고 독립한 자식에게 고령자 씨는 자기 존재감을 느끼기가 어려워진다. 내가 가족에게 보탬이 되고 의지가 되어줄 수 있다는 책임감을 갖고 싶은 의욕, 고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활동으로 자신감을 갖고 싶어 한다. 보이스 피싱은 고령자 씨의 이런 의욕과 열정에 자극을 불어넣고 악용하는 경우다. 저자의 말처럼, 사기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 자신감 과잉이 보이스 피싱 같은 사기에 노출될 위험을 높이는 거라고 한다.
왜 짜증을 내고 화가 늘어날까. 흔히 나이 먹으면 다 그런다는 한마디로 이해하기 어려운 변화였다. 내가 경험한 고령자 씨의 괴팍한 성격 변화는 두 가지였다. 젊을 때 괴팍하던 사람이 나이 들고 더 괴팍해졌거나, 젊을 때 안 그랬던 사람이 나이 들고 괴팍해졌거나. 어쨌거나 두 가지 경우 모두 나이 들고 괴팍해진 건 맞고,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젊었을 때 점잖았던 사람도 고령자가 되면 부쩍 짜증과 화가 많아진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 몸이 불편해지고 인지 기능이 쇠퇴하면서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일이 늘어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할 수 없는 일이 많아지고, 자기 쓸모없음을 생각할수록 스트레스가 늘어나고 누적되어 짜증이 쌓인다고. 이렇게 쌓이다 보면, 감정 조절이 어려워져 화가 표출되는 거라고 말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엄마만 봐도 바로 알 수 있다. 엄마는 나이 들어 몸의 이곳저곳 고장이 나고, 병원 드나들 일이 많아지면서 확실히 짜증이 늘었다. 본인 마음처럼 되지 않는 몸의 불편함과 그에 따라오는 우울감과 좌절감이 수시로 화가 나는 듯했다. 육체의 노화로 생기는 일은 어쩔 수 없는 건데, 이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해 상실감이 커진다.
하나하나 찾다 보면 이보다 더한 일들도 많을 거다. 마음을 건드리는 작은 일에서부터 육체의 불편함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더 큰 일까지. 고령자 씨를 둘러싼 문제는 한 가지로 진단할 수 없는 복합적인 원인이 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효과를 거둘 방안을 모색하면서, 고령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섬세하고 다정한 접근법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해와 소통이 바탕이 되어 오해나 착각을 일으키지 않고, 소통을 이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고령 운전자에게 운전을 그만두기를 강요하기보다는 다른 활동을 추천하면서 자기 효능감을 느끼도록 조언하거나, 고령자가 자기 유리한 것만 기억한다는 오해를 풀어야 한다. 젊은 시절에 불안과 위험을 인지하고 긴장하면서 살아왔던 거에 비해, 나이 들고 남은 생을 긍정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무의식에 일어나는 기억 저장법이었다. 보이스 피싱 대처법으로는 수상한 전화에 응대하지 말고 자녀와 먼저 통화하는 규칙을 정해 위험을 차단해야 한다고 알려주기도 해야 한다.
나이가 들고 노화가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보이는 현상들에, 이해하고 대처하는 방법을 몰라서 오해와 소통의 부재가 쌓인다는 게 문제의 시작인 것 같다. 신체 능력과 인지 저하가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나이 듦의 증상이라면, 이것을 시작으로 자존감, 자율성, 자기 효능감 저하가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낸다. 거기에 가족 돌봄의 문제까지 고려하면, 부모와 자식 세대가 함께 하면서 부딪히는 일은 더 많아지고 있다. 가족이니까 괜찮다는, 가족이 해야 한다는 식의 고정 관념은 불만과 갈등 유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돌봄을 받는 대상이나 돌봄을 행하는 가족이나 이러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모두가 만족하는 관계를 만들 수 있다. 무엇보다 노화를 자각하고 인정하면서, 돌봄의 필요성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 역시도 남에게 의지하지 않을 정도만 살다 가고 싶다고 쉽게 말했는데, 그게 어디 내 맘대로 되는 일이던가. 100세 시대에 고령자의 특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돌봄의 대상과 역할을 고민하면서 살아가는 게 필수라면,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것 같다. 특히 고령자 씨에게 필요한 건 삶의 목적이다. 사소하더라도 살아가는 목적이 있다면, 그것에 맞게 자기 생활을 주도하면서 살아가게 되면서 심신의 건강 유지가 가능하다고 한다. 삶과 일상의 자기 결정이 삶의 목적만큼 중요하며, 이는 고령자 씨의 자존감이나 자율성 등의 다양한 심리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행복한 고령자 씨를 보는 것은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행복한 일입니다. 나이를 먹어도, 다른 사람의 신세를 지게 되어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면 늙는 것도 그렇게까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분명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215쪽)
저자의 설명을 듣고 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이해’다. 무조건 이해하라고 하면 나 역시 받아들이기 힘들다. 하지만, 왜 이해해야 하는지, 이해하고 나면 고령자 씨를 대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 역시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장 가까이서 보면, 나의 엄마가 편안하고 행복할 때 나도 덜 불안하고 편안하다. 엄마가 불편함을 호소하는 말, 이유도 모른 채로 짜증 내는 것을 듣고 있을 때는 덩달아 나의 스트레스도 치솟는다. 서로가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행복한 노년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고령자 씨를 이해하는 일은 필요하다. 나의 미래를 미리 보는 일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과제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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