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같은 나무 하나쯤은
강재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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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누구에게나 그런 장소, 그런 대상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살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에 답을 중 책이 아닐까 싶다. ‘분교 사진가라 불리며 사라져 가는 작은 학교를 사진으로 담아낸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리 마음 머물 곳 하나쯤 새겨두게 한다. 30여년 분교를 찾아다니며 찍은 사진 속의 나무들은, 이제 그의 오랜 친구가 되어 그곳에 머물고 있다. 때로는 그의 푸념과 걱정을 들어주며, 때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주며, 때로는 많은 동물의 삶을 전하면서 말이다.


우리 집 거실 큰 창으로 바라보는 앞 발코니에는 화분이 하나 있다. 이렇게 말하니 누군가는 내가 화초 키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 여기던데, 아니다. 엄마가 주신 알로에 화분이다. 가끔 물만 주면 잘 자라는, 조금 말라 있어도 괜찮은 그 화분은 사실 상처 치료용으로 둔 거다. 수시로 손가락에 상처가 나곤 해서, 상처와 염증 치료에 좋다는 알로에 화분은 내가 돌보는 유일한 식물이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잘 돌보지 못하니 아예 곁에 두기를 꺼려하는 나 같은 사람이 이 책을 보고 살짝 놀라기도 했다. 마음이 머물다가 찍은 사진, 그 자리에 잘 있겠거니 하다가 우연히 다시 만날 수도 있는 존재라고 여기던 나무가, 그 자리에서 여전히 머물고 있기만 한 건 아니었다. 이상하리만치, 마치 숨을 쉬고 있다고 말한다면 좀 과장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정말 그런 것 같다.


그 오랜 시간 나무 사진을 찍으며 살아온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 우리가 겪는 온갖 마음이 있었다. 상처 받은 마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처럼, 든든하게 의지가 되는 힘을 뿜어내면서,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다려주는 누군가가 되어주었다. 가로막힌 철망 사이를 뚫고 자라면서 살아냈다. 마치 여기에서 이렇게 버티고 있으니 언제나 와도 내가 있을 거라고 말하는 것처럼. 일상에 치이고 마음이 힘들어질 때마다, 인생에 충전이 필요할 때마다 에너지를 내어주는 존재로 머물러 있었다.




지금 이 책이 나에게 더 가깝게 다가오는 건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싶다. 뭔가 뚜렷하게 한 게 없는 듯한데, 작년 가을부터 마음이 너무 바빴다. 마무리해야 할 일을 하다 보니 새해가 되었고, 작년에 다 정리되지 않은 자잘한 일들 정리하느라 또 1월이 훌쩍 가버렸다. 그 사이의 병원 생활은 1월이 더 짧게 느껴지게 했다. 일주일 정도 미친 듯이 잠을 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숨이 막힐 정도는 아니었는데, 피곤이 쌓여 학교 다닐 때도 안 났던 코피가 났다. 이게 맞는 건가 싶은 일에 고민하느라 주저하고, 그냥 결정하면 되는 일에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지기도 했다. 지나고 보면 단순하던데, 왜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하게 되는 건지, 그저 어렵기만 하다고 생각하는 시간들이었다. 그냥,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에 분노하고, 생각대로 되지 않을까 봐 불안하기만 했다. 읽는 이의 이런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이, 작가는 나무와 사귀어 보라고 말한다.


글쎄, 나무와 사귀는 어떻게 하는 걸까? 작가는 이렇게 조언한다.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고, 집 가까이에서 마음에 드는 나무 하나 골라 친구로 만들면 된다고. 아침 출근길에 살펴보고, 저녁 귀갓길에 또 살펴볼 수 있는 나무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이다. 동네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산과 숲, 강가에서 친구 나무를 찾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오랜만에 찾아가 안부를 묻는다면 더 각별해질 수도 있다고 말하는 저자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정말 오래되고 친한 친구는, 몇 달만의 통화에서도 바로 어제 통화하고 만난 것처럼 느껴지는 게, 작가가 말하는 나무와의 안부와 너무 닮았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물으면서, 행복하거나 힘들었던 마음을 들으면서, 서로 사는 이야기 나누는 그 시간이 너무 애틋해서 좋은 기분. 혼자서 견디기 어려운 게 세상살이라면, 이런 친구 이런 나무 하나쯤 꼭 옆에 두고 싶은 마음이다.


작가가 보여주는 많은 나무의 사진이, 나무의 삶이 아름다웠다. 앙상하게 가지만 남아 있어도, 우아하게 꽃을 피우고 있어도, 그 자체로 자기 모습을 지키고 있는 게 우리 살아가는 모습과 닮아 있어서 한참을 보게 된다. 어느 시기에 꽃을 피우다가도 언젠가는 다 떨어진 꽃잎을 아쉬워하며 가지만 남아 있기도 하는 게, 우리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인 것 같다. 봄의 생동감(), 여름의 왕성함(), 가을의 풍성함(열매), 겨울의 고요함(나무껍질(수피))으로 다가오는 나무의 삶에서 인간의 삶을 보게 되는 건, 이미 나무와 친구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러니 이제 그 친구 중 하나 정도 마음에 새겨두고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어도 좋겠다. 작가가 많이 힘들 때 우연처럼 손을 흔들었던 그 나무가, 이제는 사진과 글로 우리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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