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 제8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39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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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을 넘나드는 소재가 새로울 것은 없었다. 이꽃님의 소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역시 무한한 기대로 새로운 느낌의 시공간을 초월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처음에는 시간을 거스른 공간에 있는 두 주인공이, 잘못 배달된 편지로 어떤 이야기를 이어나갈까 궁금했다. 소설의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어느 정도 예상이 되는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이 결코 식상하다거나 익숙한 설정이라는 말로 마침표를 찍어서는 안 될 것만 같다.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어떡하지?’ 하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누군가의 숨겨진 이야기를 듣는 게 이렇게 새로울 수가 없다. 누군가의 흔적을 찾아보려 시도했던 호기심은 차마 말을 꺼낼 수 없는 사랑의 모습으로 변화한다. 서로의 마음을 모른 채로 지내온 수많은 관계의 시선까지 아우르는, 적어도 누군가의 마음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으면서 읽고 싶은 바람을 남긴다.


재혼을 앞둔 아빠는 은유에게 느리게 가는 편지를 쓰자고 제안한다. 아빠와의 외출 자체가 낯설고 흥미 없는 은유에게, 난데없는 펴지 쓰기는 더 어색하고 심통이 난다. 단 한 번도 자기의 마음을 제대로 봐주려 하지 않은 아빠였는데, 그래서 더 서운하고 화만 나게 했던 아빠였는데. 아마 이렇게 은유와 보내는 시간도 그 여자(아빠의 재혼 상대)가 시켜서 억지로 만들었을 것만 같다. 은유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틀린 건 아니다. 존재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엄마의 부재에 관해 아빠는 설명해준 적도 없다. 은유의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냉랭했던 아빠였다. 열여섯의 은유는 오직 한 가지 바람으로 중2를 견디는 중이었다. 독립하는 것. 어떻게 해서든 독립해서 집을 나가는 게 은유의 바람이다. 그 정도로 아빠와의 시간은 무의미했다. 은유가 느리게 가는 편지를 쓴 것도 그다지 의미 있는 일은 아니었다. 아빠와의 외출에서, 어쩔 수 없이, 아빠가 원하니까 동참한 것뿐이다. 1년 후 자신에게 도착할 편지의 내용 따위 지금 이 순간 진지하지도 위대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보낸 편지가 잘못 배달되었던 거다. 2016년을 사는 은유의 편지가 1982년의 은유에게 배달되었으니, 이런 대형 사고가 또 있을까. 세기를 건너 서로 다른 시간을 사는 두 사람의 환경이 다른 것은 당연하고, 2016년의 은유의 말이 1982년의 은유에게 쉽게 이해될 리 없다. 그런데도 무슨 인연인지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는 계속된다. 다만, 시간의 흐름이 조금 달랐다. 2016년의 은유가 사는 시간은 현재의 속도로 흐르지만, 1982년의 은유의 시간은 흐르는 속도가 더 빨랐다. 2016년의 은유가 보내는 1년여의 세월은, 1982년의 은유가 보내는 30여 년과 같았으니까. 두 사람의 편지가 계속될수록 희미하게 안개가 낀 것만 같았던 뭔가가 서서히 드러난다.


성장한다는 건 뭘까, 계속 고민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성장하는 순간을 바라기도 하지만, 언제나 그 성장은 외모가 아닌 마음이 먼저였다. 나 자신과 타인에게 내 마음이 좀 더 너그러워지기를 바라는 일.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기에, 죽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성장해야 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성장이란 단어를 유독 아이들에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어른보다 더 많은 것을 쌓을 기회가 주어진 시간을 살고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은유의 이야기가 성장에 더 가깝게 다가간 것만 같은 느낌은 오가는 편지가 계속될수록 더 선명해진다. 처음 편지의 수신인은 초등학생이었다가, 은유의 또래였다가, 은유보다 연장자가 된다. 서로 다른 나이, 살아가는 순간 겪어야 할 일이 다른 환경,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자신의 고민이 다를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편지는 거리감 없이 계속된다.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는, 두 사람의 거리는 점점 더 가까워진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나이가 아니라는 게 증명되는 순간이다. 나이, 사는 곳, 배경이 달라도 마음을 이야기하는데 장애가 되는 건 없었다. 어른이 되어 점점 더 많은 것을 눈에 담으면서, 상대방을 계산하는 눈도 키워야 한다고 무언의 학습이 시작되기도 하지만, 적어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바탕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마음이라는 것을 한 번 더 확인하는 셈이다. 너무 다른 우리가 고민하고 갈등하며 아파하는 것은 너무도 똑같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가족이라는 존재는 더 많이, 더 자주 이해해야 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르지. (137페이지)


왜 우린 행복하게만 살 수는 없는 걸까. 왜 이 지독하고 끈질긴 불행은 계속 찾아오는 거냐고. (177페이지)


물론 이 소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사랑일 것이다. 성장을 보듬어 안은 사랑. 편지 형식으로,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너무 다르고 너무 먼 거리의 존재로 시작되었지만, 결국은 닿고야 마는 우리 마음의 이야기다.


잘못 배달된 편지가 전부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지금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몰라서 어렵다는 말만 계속 입안에서 맴돌고 있다. 독립을 빙자한 가출을 꿈꾸던 여중생이 누군가의 진심을 알고 이해하며 사랑을 알아가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뭉클했다. 이 소설을 읽어가는 순간들의 묵직함이 내 안의 어느 곳까지 파고들었는지 모르겠다. 은유의 편지가 잘못 배달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너무 완벽해서, 그 누구도 어떤 잡음도 끼어들 틈이 없다. 서로에게 가 닿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옆에 있지만 존재감을 모르고, 어쩌다 묻는 안부에 진심은 들어있지 않고, 이기적으로 이해만 갈구하는 존재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다면, 마지막에 은유가 듣게 된 진심 앞에서 눈물이 날지도 모른다. 두 명의 은유의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걸 보면서, 어느 시간에서 결국 만나고야 마는 두 사람의 표정까지 상상하게 된다. 그들의 시간이 엮어낸 순간에 우리의 감정도 빠질 수가 없다. 은유뿐만 아니라, 우리도 여전히 성장해야 하는 존재일 테니. 일상의 소소한 순간이 오고 갈 때 만들어지는 건 이해와 공감이고, 그런 시간이 겹겹이 쌓일 때 사랑은 저절로 생겨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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