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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의 말
이예은 지음 / 민음사 / 2022년 7월
평점 :
콜센터에 유독 화난 고객이 많은 가장 큰 이유는 처음부터 고객이 불만을 품은 채로 수화기를 들어서다. 서비스를 아무 문제 없이 사용했다면 애초에 콜센터에 연락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고객은 일단 기분이 상한 상태에서 상담원과 연결된다. 게다가 회사는 영업이나 개발 등 다른 부서보다 유독 콜센터에 들이는 비용을 아까워한다. 최소한의 인력만 유지하려니 어쩔 수 없이 길어진 대기 시간도 고객의 짜증을 유발하기 쉽다. (165~166페이지)
맞다. 콜센터에 전화할 일이 생긴다는 건, 현재 나의 상황, 혹은 상품에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에서부터 개인 쇼핑몰까지, 요즘에는 일상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이 고객센터와 연결되어 있다. 나부터도 오늘 대형쇼핑몰 고객센터와 통화하기 위해 거의 5분의 넘게 듣기도 싫은 멜로디를 듣고 있었다. 잘못 구매한 신발 사이즈 때문에(여러 가지 이유로 앱으로 처리 못 할 상황) 굳이 상담원과 통화해야 해서 참고 기다렸다. 그래도 이건 내 잘못이니 참고 기다려야 한다. 왜 기다리면서 아까운 내 시간을 버리게 하느냐고 따져 물을 수도 없다. 하지만 반대의 상황이라면? 전화기를 드는 순간 화가 난 상태라는 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렇게 전화까지 해야 할 상황이 된 게 이미 짜증이 난 거다. 고객의 이 기분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건, 통화가 연결된 그 순간의 상담원이다.
저자가 일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헤드폰을 끼고 마이크로 전달되는 목소리에, 눈을 모니터를 향해 있고, 손가락을 쉬지도 않고 자판을 두드리거나 마우스를 이리저리 옮기고 있겠지. 여느 콜센터와 다르지 않은 모습일 테다. 거기에 하나 더,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일본어가 능숙한 한국인이, 수화기 너머 보이지 않는 고객을 상대로 이 까다로운 상담 업무를 하고 있다는 건,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어떤 고객이 무슨 내용으로, 어떤 마음으로 전화했을지 모를 상황에 아무리 유창한 외국어라고 해도 그냥 대화하는 게 아닌 문제 해결을 위한 일이라면, 글쎄, 어느 정도는 당황스러운 마음이 바탕에 깔려있지 않을까?
이미 높은 확률로 화가 나 있는 고객을 대하기는 쉽지 않을 거다. 상대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말로 대화하는 일상에서 조금 더 높고 정중하게 말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의 감정까지 헤아려야 한다. 미안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죄송하다는 사과 먼저 하고 시작하는 대화가 참 마음이 아프다. 일부러 시간 내서 문제 해결을 위해 이렇게 수화기를 붙들게 만든 당신에게 먼저 죄송하다는 말을 하는 일. 콜센터 상담원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접하는 것도 아닌데, 들을 때마다 익숙해지기는 어렵다. 이직률이나 흡연률이 높다는 어느 보고에서도 느꼈지만, 이들의 업무가 눈으로 보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껏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며 시작하는 대화가 쉬웠을까. 이곳에서 일하는 게 저자의 꿈이나 바람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찾기 어려웠던 일자리 시장에서 그의 구직에 회신을 준 회사였다. 잘할 수 있겠다는 용기는 가능했지만, 막상 현장에서 부딪히는 감정 노동은 대혼란이었다. 그 마음을 감당하기 어려워 자기만의 공간에 풀어놓은 것이, 이렇게 책이 되어 독자 앞에 놓인 거다.
온갖 감정을 가지고 전화를 해오는 고객에게 적응이 좀 되었을까. 본인만 견딘다면 퇴사할 일 없을 것 같은 콜센터에도 위기가 찾아온다. 전 세계 모두가 겪은 코로나 19. 특히나 여행사의 콜센터에서 일하는 저자에게는 더 크게 다가온 위기가 아니었을까. 갑작스러운 펜데믹에 여행 취소와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해 콜센터 전화가 폭발할 지경이었고, 한 차례 쓰나미가 휩쓸고 간 콜센터에 정적이 흐르듯 인원 감축 바람이 분다. 여행 금지(자제) 분위기에 여행사인 회사의 어려움이 닥쳤고, ‘부득이하게’ 직원을 해고할 수밖에 없다는 메일을 받고서도 ‘괜찮다’라고 말하고 떠나는 동료들을 ‘괜찮게’ 볼 수 없음을 경험했다. 그러고도 남은 사람들은 콜센터에 걸려오는 고객의 불만에 응대해야 하는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여행 취소나 조건 변경 등 고객이 뭔가를 원하거나 조정하는 상황은 그대로였으니까 말이다. 그럴 때마다 늘 ‘죄송합니다’라는 말은 상담원의 입에서 떠나지 않았고, ‘또 이용해 주세요’라는 인사를 건넨다. 당신을 불편하고 번거롭게 했음에도 또 이용해달라는 간절한 부탁까지 덧붙이는 게, 어떤 마음일지. 그들이 하는 말은 감정은 담은 것보다 그저 업무를 위한 말들이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밥벌이의 고단함일 뿐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하나의 인격체로 감당하기에 너무 심하다 싶은 경우도 많기에, 어떤 말을 듣고 어떤 말을 하면서 살아가느냐에 따라 세상을 보는 태도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걸 알았기에, 언제나 이들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이게 될 것 같다.
선의를 베푸는 데는 대단한 수고가 들지 않는다. 무심코 건넨 배려 섞인 한 마디가 누군가에게는 단비와 같은 위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있어 누군가는 그날 하루, 혹은 더 긴 시간을 너끈히 버티기도 한다. (121페이지)
이곳에서도 힘든 일만 있는 건 아니었기에 그 시간 동안 견디며 일해왔을 수도 있다. 익명의 누군가가 반말로 시작해서 험한 말을 퍼붓기도 하고, 외국인 상담사여서 근거 없는 차별을 받기도 하면서 상처를 남기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가 하는 고맙다는 말이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 한 마디에 또 많은 시간을 견딜 수도 있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저자의 글 곳곳에 담긴 많은 이야기가 단지 콜센터 경험만을 이야기하지 않았기에, 더 귀 기울이게 된다.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일, 겁도 없이 무작정 부딪혔다가 알게 되는 힘든 시간, 경쟁 사회에서 노력과 상관없이 밀려나며 대신 찾은 자유, 어느 곳이든 사람이 머무르는 곳에 넘치는 애틋한 관계까지 경험한 저자의 성장일기 같은 이야기다.
세상에 완결 무결한 사람은 없다. 불완전한 기업이 만든 제품을 소비자가 사용하고,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다시 불완전한 콜센터 상담원이 해결하려 애쓴다. 이 사실이 의도된 잘못을 감싸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되지만,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조금씩 이해의 폭을 넓힐 이유는 되지 않을까. 당장 콜센터 상담원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거나 사회적 시선을 변화시키기는 힘들어도, 내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는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196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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