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슈 파랑
기 드 모파상 지음, 송설아 옮김 / 허밍프레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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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기억나지 않던 시간에 읽었던 모파상의 작품을 잊고 살았다. 그저 어릴 적 교과서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에 한 번쯤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라고 해야 할까. 그러다가 국내에 한 번도 소개된 적 없는 작품이 담겼다는 이 책이 궁금했다. 소개된 말 그대로, 보석 같은 짧은 이야기들은 정말 유머러스하면서도 감정의 깊이를 헤아리게 된다. 나는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순간의 마음은 무엇일까, 이제 어떤 인생을 만들면서 살아가야 할까 하고 말이다. 참 어렵다, 인생...


첫 번째로 만난 작품 사랑은 사냥터에서 사냥꾼이 본 그 장면은 애틋하면서도 묘했다. 사랑한다며 애인을 살해하고 남자는 자살한다. 이런 이유로 살인을 저지른 것을 이해할 수 없지만, 자살한 남자는 죽어서도 사랑이라고 믿겠지. 사냥꾼의 총에 맞아 죽은 암컷 오리 곁을 맴도는 수컷 오리의 마음 역시 사랑이리라. 앞서 들려준 인간의 사랑은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오리의 사랑은 한없이 슬퍼 보였다. 적어도 진짜 사랑했다면, 자기 앞에 놓인 비극을 감당하는 민낯을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지 시사하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계속 생각난다, 죽은 암컷 오리의 주변을 빙빙 돌면서 떠나지 못하고 공중에 머물렀을 수컷 오리의 눈빛이.


위송 부인의 장미 청년인생역전 로또를 다른 버전으로 보여준 이야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닮았다. 글쎄, 나쁜 예만 봐서 그런지 몰라도, 복권에 당첨되고 그 후의 인생이 행복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물론 그 진짜 이야기는 본인이 가장 잘 알겠지만, 적어도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그랬다. 위송 부인은 정조를 잘 지키고 품행이 바른 장미 처녀를 찾고 있었다. 그런 의미를 충분히 담은 여성을 찾아 장미 처녀라고 이름 붙이고 추앙하려고 한다. 아무리 해도 장미 처녀를 찾을 수 없던 그때, 마을 사람들이 한 청년을 가리킨다. 그보다 품행이 바르고 옳은 청년은 없을 거로 소문이 났던가. 그냥 소문으로 끝났으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장미 청년의 인생에 없을 것 같았던 돈과 명예는 그에게 비극을 불러온다.


정말 유쾌하게 읽었던 작품 테오듈 사보의 고해성사였다. 자기가 싫어하는 것은 싫어하는 대로 배척하면서, 원하는 것을 얻는 일에 한발 양보하고 다가가는 척하는 그 자세를 배워야 하는 걸까. ^^ 시의원 테오듈 사보는 교회를 멀리하는 자다. 그에게는 교회의 재보수 일감이 필요했는데, 교회의 신부 마리팀은 일감을 원하는 테오듈 사보에게 고해성사를 받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종교가 없고 세속적으로 살았던 테오듈 사보에게 고해성사의 시간은 배출하지 못한 변이 가득한 뱃속 같은 느낌이 아니었을까. 일은 받고 싶고, 교회를 멀리했던 시간은 돌이킬 수 없고. 이때 익살맞은 테오듈 사보의 활약이 시작된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말이 되어버리는 수상한 논리로 고해성사를 통과하는 그의 재치가 기가 막힌다. 내 주변에 이런 사람 있다면 진짜 짜증 나는 순간 많을 것 같은데, 이런 순발력과 융통성(?)을 배우고 싶은 간절함마저 생길 정도인 이 마음은 무엇이란 말인가. 암튼, 난 이제부터 테오듈 사보를 닮고 싶은 사람으로 정했어!


우리가 사는 동안 얼마나 많은 고통을 마주하게 될까. 그때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또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가야 할 테지만, 오롯이 자기 선택의 결과가 되겠지만, 알면서도 마음의 혼란과 불안은 잠재우지 못할 것 같다. 무슈 파랑의 주인공에게 닥친 인생의 혼란은 그의 모든 삶을 송두리째 흔든다.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고 아들까지 낳았지만, 아내는 처음부터 그를 기만했다. 그걸 모르고 살아오던 파랑은 어느 순간 자신에게 불어온 회오리바람을 피하지 못하고 무너진다. 아내와 아이를 잃고, 그의 인생도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로 살아간다. 그렇게 쓸쓸하고 외롭게 늙어가는 그를 보면서, 왜 그래야 했을까 생각하게 된다. 아내의 외도를 모른 척해야 했을까? 그랬다면 지금의 그와 얼마나 다른 채로 살아가고 있을까? 진실을 드러내면 드러내는 대로, 모른 척하면 또 그런대로 살아가겠지만, 어떻게 해도 완전한 삶은 아닐 거다. 매 순간 그때의 선택이 옳았는지 떠올릴 거고, 그때마다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쩌랴. 그렇게 또 살아가야 하는 게 인간의 삶인 것을.


작품들의 감정이 너무 섬세해서, 바로 옆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어느 장면에서는 선택의 순간에 고민하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사랑하고 아끼는 이의 곁에 더 머물고 싶은 마음, 인생에 없을 것 같은 돈과 명예가 나를 찾아왔을 때는 어떤 삶을 그려야 하는지, 종교의 의미와 믿음의 정도는 누가 판단할 수 있는지를, 외면하고 싶은 진실이 내 앞에서 춤을 출 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게 인간이겠지. 결국은 우리가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기에 어떤 태도로 삶을 꾸려나가야 하는지 묻는 이야기가 아닐까. 소설이 문학이 그래왔듯이, 1880년대의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2023년의 현실과 전혀 다르지 않아서 놀랄 수밖에 없다. 테오듈 사보와 웃고 무슈 파랑과 울다 보면, 절망의 순간에도 삶을 놓지 않으려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알게 된다. 사는 동안 고난이 내 삶에 끼어들더라도 가뿐히 무시하고 즈려밟고 건너갈 재치, 내 인생의 주인으로 책임감 있게 살아갈 자세를 배우게 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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