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욘더
김장환 지음 / 비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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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세상이 가능할까? 소중한 이를 잃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상상했을 거다. 그리운 이를 놓을 수 없어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죽은 이를 불러올 수도 없어서 괴로운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는 순간들. 붙잡고 싶고 다시 보고 싶고, 함께한 시간을 다시 이어가고 싶은 간절함 같은 거. 불가능하다는 걸 안다. 어차피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을 그저 막연하게 담아두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혹시라도, 그 간절함을 이뤄주는 곳이 있다면? 죽음 이후의 세계를 만들어주어 다시 이어가게, 아니 이 세계에서보다 더 행복하게 살아가게 해주는 곳이 있다면? 고민 없이 냉큼 달려가리라. 먼저 간 이에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하리라. 이제 곧 다시 만날 거라고, 우리 행복했던 시간 다시 이어가자고 말이다.


미래의 어느 날, 김홀은 암으로 죽은 아내 이후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사랑하는 이를 잊는 게 어디 쉬운 일이랴. 그리움만 쌓인 채로 살아가던 시간도 이제 정리하려고 한다. 어디선가 아내가 보고 있다면 자신의 이런 모습을 슬퍼할 테니까. 정신 차려야지 하는 순간에 날아든 아내의 홀로그램 메시지 한 통. 어느 가상공간에 있다는 아내의 안부였다. 그건 아내가 죽기 전 기억을 저장한 것에서 시작된 일이다. 가상공간 욘더에 있다는 죽음 너머의 사람들, 그곳에 아내가 있다는 걸 알고 그는 찾아간다. 더는 슬퍼하거나 고통스럽지 않게, 아내를 만나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이제 서로 사랑하던 그때를 다시 그려낼 시간만 남았다는 듯, 아내를 만나러 욘더로 간다.


그런 게 꼭 필요한 사람이 있어요. 그저 그 사람을 추억하는 것만으로는 마음 치료가 안 되는 사람. 아주 갑자기 죽어간 사람이나 고통스럽게 병사한 사람에 대해 회한을 가진 사람, 고인에 대해 깊은 죄책감을 가진 사람,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 사람이 떠난 뒤에 그걸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 (74페이지)


, 이야기는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걸까. 이 소설을 읽으며 생각했던 건 김홀과 이후의 재회, 불멸의 세상을 꿈꾸며 그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인간의 마음이었다. 누구라도 비슷하지 않을까? 어딘가에 천국은 존재하고, 우리가 죽은 후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건 여기에서 다하지 못한 생을 이어가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지금 생이 너무 아쉽기만 해서, 미처 준비하지 못한 이별의 순간이 아프기만 해서 상상하는 그곳을 이렇게 보여주고 있으니, 우리가 바라는 마음이 무엇인지 이렇게 꿰뚫을 수 있는 것도 능력이구나 싶다. 이야기 속에서 나는 또 한 번 묻곤 했다. 이런 상황에 내 앞에 펼쳐진다면, 나는 김홀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죽음을 선택해야만 그곳으로 가서 그리운 이를 만날 수 있는데, 주저하지 않고 죽음을 선택할 마음이 나에게 있는 걸까? 소설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상상력은 기발했지만, 그 상상은 인간의 마음을 파고드는 순간들이었다. 그러니 이들의 이야기가 그저 판타지에 머물지 않고 있다는 걸 저절로 알게 된다.


뇌를 다운로드해서 사는 죽은 자들의 도시, 욘더. 생의 기억을 담아 가상공간 욘더에서 살아갈 바탕을 만드는데, 이곳은 슬픔도 고통도 나이 듦도 없다. 아마도 천국이 정말 있다면 이런 모습이겠지. 이곳이 아닌 저곳의 생을 경험한 이를 만나본 적 없으니, 이들의 이야기가 그저 상상에 머물기만 하는 건지 정말 존재하는 곳인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런데도 한 번쯤 경험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는 건, 우리는 이미 이별의 슬픔을 알기 때문이다. 더는 함께할 수 없어서 아프기만 한 가슴을 달랠 길이 없어서다. 그러니 당장이라도 욘더로 뛰쳐 가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이 없다. 그렇게 알게 된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상실감에 그토록 바랐던 행복은 더 간절해지지만, 불멸의 생을 바라면서까지 함께 하는 게 사랑이고 행복일까 하는 의문. 저마다의 이유로 욘더로 향하지만, 그곳에서 또 다른 행복을 만들어가지만, 어쩌면 행복은 후회하는 것을 되돌린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러니 불멸의 생을 영위하면서 사랑을 이어가고 불행이 없는 곳이기에 마냥 만족하는 삶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는 것을 욘더에서의 시간이 말해준다. 인간의 바람이 이뤄낸 만들어진 천국에서 인간은 행복하기만 한지 묻는다.


기술의 발달은 많은 것을 가능하게 했다. 소설 속의 인간 역시 자기 신체에서 원하는 부분을 바꿔놓기도 한다. 상상이지만 인간의 욕망을 이뤄줄 욘더를 만들어내는 정도로 인간 세상을 발전했다. 필요로 만들어진 사이보그마저 점점 인간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감정까지 담아냈다. 때로는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로봇, 기계보다 더 이성적이고 차가워질 수 있는 인간. 인간과 사이보그가 공존하는 세계를 상상하듯, 이 소설 역시 그 상상 속에 인간의 따스함과 불멸의 욕망이 빚어낸 씁쓸함이 존재한다. 준비하지도 못했고 받아들이기도 어려웠던 상실을 경험한 이들에게, ‘욘더는 그들만의 행복을 찾아가려고 애쓰던 마음이 이뤄낸 세상이다. 불행도 없고 죽음도 없다. 감정의 고단함이 없이 하루를 살아가는 건 얼마나 평화로울까. 고요함이 흐르고, 사랑과 행복만이 넘치는 순간이 일상인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슬픔을 느낄 일이 아예 없는 게, 평온해 보이는 일상에 익숙해지는 게 우리가 바라는 행복이었는지 소설의 결말이 그 답을 보여준다.


우리 사는 동안 이런 세계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상상은 이 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더해줬다. 구판으로 이미 읽은 독자도 있을 테고, OTT 드라마로 이미 만난 시청자도 있을 테다. 두 가지 모두 접하지 못한 나 같은 독자에게 이번 개정판은 SF의 매력을 발견하는 또 하나의 작품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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