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자리에 새로 온 동료는 나와 비슷한 나이인데, 난임 치료에 많은 시간과 돈을 들였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던 듯하다. 지금은 남편과 둘이 살아가는 순간을 즐겁게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 가끔 남편과 통화하는 걸 들을 때가 있는데, 세상 이렇게 다정하고 오래된 친구처럼 얘기하는 부부가 있나 싶어서 종종 놀란다. 그래, 이렇게 두 사람이 나이 들어간다면, 이것도 좋겠다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입양에 관해 얘기하게 됐다. 입양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많은 부분을 고려해봤고, 입양은 그 부부의 인생 계획에 넣지 않기로 했단다. 그 얘기를 나누었던 날, 우연히 TV를 보다가 입양아의 인터뷰까지 보게 됐다. 자기가 입양될 당시의 사회적 환경과 한국 입양 시스템의 문제점, 자신의 뿌리를 찾고 싶었으나 그 과정이 너무 어렵고 어떤 정보도 얻기 힘들다고 말하는 장면에 한참 시선이 머물렀다. 그리고 다음 날 도서관에서는 의외의 책까지 만나면서, 무슨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입양에 관한 화두는 최근 나의 곁을 계속 맴돌고 있다.


여자는 자신이 수입품이었기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이 수출품이었기에 화가 난다.

여자는 어린이를 입양 보내는 국가는 물론 입양기관도 국가 간 입양을 통해 돈벌이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그 여자는 화가 난다, 18페이지)


마야 리 랑그바드의 책 그 여자는 화가 난다를 도서관 신착 자료 코너에서 뽑아 들고 읽었다. 읽기 전에는 제목과 표지만 보고 세상의 불평등에 관한 여자들의 분노의 목소리인 줄 알았다. 첫 문장부터 충격적이었고, 몇 페이지 읽다가 알아버렸다. 이 책의 부제가 이 책의 반복된 화가 난다문장과 연결되어 있음을... 저자는 한국계 입양인으로 덴마크 시인이다. 시처럼 들리지만, 오랜 세월 담아둔 감정의 고백 같았다. 아니, 고발이라고 해야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부제 국가 간 입양에 관한 고백이라는 수식어 그대로였다. 저자의 개인적 경험으로 국가 간 입양이 얼마나 허술하게 처리되고 있는지, 이걸 알면서도 쉽게 용인되는 사회 구조를 비판하고 있다. 거의 10년 전에 덴마크에서 출간되었다는데, 상당한 화제였던가 보다. 이 책을 읽고 해외에서는 입양을 생각했다가 그만둔 가정들이 있다고 하니, 그 영향이 컸다는 걸 알겠다. 그럴 수밖에 없다. 반복되는 문장으로 그 격한 분노가 얼마나 큰지 저절로 알 수 있으니까 말이다.


화자인 그녀는 작가 자신이기도 하고, 해외로 입양된 모든 이의 이름이기도 하다. 국가 간 입양이 한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얼마나 이로운 일인지 들으면서 자라왔다고 하는데, 이게 정말 좋은 일이기만 할까? 그 이로움은 누가 판단하는 거지? 이 책 읽자마자 오월의봄에서 출간된 아이들 파는 나라를 바로 이어서 읽었는데, 두 책은 비슷한 맥락으로 국가 간 입양이 얼마나 불편한 진실을 감추고 있는지 말한다. 특히 한국이 아동 수출국이 되어버린 과정을 듣고 있노라면, 어떻게 이런 정책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루어졌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 배경에는 우리가 흔히 정상 가족이라고 말하는 가족의 형태가 있었고, 경제 성장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횡행했던 해외 입양이 하나의 사업처럼 성장해왔다는 걸 알 수 있다. 정작 그 입양의 중심에 있는 어린아이들의 삶에 관해서는 생각하지 않은 일이었다.


여자는 한국에는 부모가 자녀를 입양시킨 후 그 결정을 되돌릴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리케는 호주에선 자녀를 입양시킨 부모가 28일 내로 결정을 철회할 수 있는 법적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에는 이러한 법적 철회권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여자는 화가 난다, 78페이지)


여자는 입양은 친밀감과 애정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헤이그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한국 정부에 화가 난다. 헤이그협약에서는 아이들이 친부모 밑에서 자라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명백히 밝혔다. 또한 각각의 회원국 정부에서는 아이들이 친부모 밑에서 자랄 수 있도록 적절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만약 아이들이 친부모 밑에서 자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정부는 우선적으로 국내입양부터 고려해야 한다. 만약 국내입양조차 쉽지 않다면, 그때 국가 간 입양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 여자는 화가 난다, 128페이지)


우리나라는 이승만 정권 시절인 1953년에 국제 입양을 시작했다고 한다. 여러 정부를 거쳤지만, 국제 입양은 계속됐다. 일부 국제 입양 성공에 가려진 수많은 해외 입양인의 비극적인 삶은 가려졌다. 그런데 왜 국제 입양은 시작된 걸까? 이 책에서 추적한 대한민국 국제 입양의 실태는 놀라웠고, 잔인했다. 한국전쟁 이후 전쟁고아를 구제한다는 취지로 국제 입양을 장려했으나, 실제로는 청소에 가까웠다. 처음에는 혼혈아동이 국제 입양의 대상이었으나, 점점 그 대상은 넓어졌다. 부모를 잃은 미아까지 입양 대상이 되었다. 정권이 바뀌어도 국제 입양은 줄지 않았다. 국가 주도로 경제 성장을 추진하면서, 국제 입양은 국가의 복지비용을 줄이는 데 일조했다. 그러면서 이민 확대나 민간외교라는 허울로 국제 입양은 계속 이뤄졌다. 한해 태어난 총 출생아 중 1%가 넘는 아이가 해외로 입양된 적도 있다는데, 이거 실화인가 싶을 정도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세계 최대 아동 수출국이라는 오명은 지워질 시간이 없었을 테다.


단순하게 생각했다. 아이를 키울 수 없는 부모가, 아이를 원하는 부모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라고, 그걸 국가가 도와주는 것쯤으로 여겼던 거다. 입양 과정에서 돈이 오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내가 입양 문제를 얼마나 순진하게 생각했는지 이제야 알았다. 물론 국가 간 입양 절차에 비용은 발생하겠지 싶었다. 사람이 오고 가는데, 비용이 발생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게 아이를 보내고 맞이하면서 거래하는 일이 될 줄은 몰랐다. 어리석게도 말이다. 정부는 이 절차와 책임을 민간 기관에 넘겼다. 국제 입양에 최대 종주국은 미국이었고, 우리나라 해외 입양인의 70%가 미국으로 입양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그 영향력을 과시하는 국제 입양기관들이 존재하고 있다. 국제 입양이 정부에 많은 목적을 제공했다면, 국제 입양의 중심에 있는 입양인들이 겪는 문제는 누가 해결하고 책임져야 하는지 물어도 대답해주는 이가 없다. 많은 입양인이 낯선 땅에서 낯선 부모의 폭력에 쓰러지고, 정신적으로 학대받으며, 부여받지 못한 시민권으로 세계를 떠돌거나 불법체류자가 된다. 처음 입양이 시작될 때 제대로 처리되지 못한 일이 훗날 이들의 인생을 크게 뒤흔드는 일까지 만든다. 이 참담한 비극은 어떻게 끝낼 수 있을까.


헤이그협약은 원가정 보호를 천명하고, 원가정 보호가 불가능할 때는 국내에서 보호 가능한 가정을 찾고, 국제 입양은 최후의 수단으로 검토할 것을 원칙으로 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140페이지)


헤이그국제입양협약 가입이 그 답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입양 과정과 책임이 민간 기관이 아닌 국가가 관리 감독하고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국제 입양된 아동의 인권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를 보장하는 내용인데, 그러려면 법 개정을 비롯한 많은 문제 해결과 절차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그게 이루어지지 못해 이 협약에 닿지 못하고 있는 듯한데, 이 문제의 본질 역시 간단한 게 아니었다. 국가와 민간 기관, 국가와 국가 간의 복잡하게 얽힌 관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계속 이어지는 동안 국제입양인의 삶은 여전히 불행하고 위태로운 상태에 놓여 있다.


입양이란 문제를 생각하게 만든 그 날, 내가 TV에서 봤던 장면은 한 국제입양인의 호소였다. 자라면서 겪은 많은 차별과 학대 말고도 자신을 괴롭게 한 건 정체성의 문제였다고 한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 줄곧 물어왔지만 아무도 대답해주지 못했다. 그 대답을 찾으려고 한국에 왔으나 찾을 수 없었다고. 단지 태어났을 뿐인데, 다른 나라로 보내어지는 과정에 왜 당사자의 목소리는 없었는지조차 물을 수 없었다. 낯선 곳에서 적응하느라 노력했을 테고, 그런데도 온전히 그 가족, 그 나라에 속하지 못한 이방인으로 살아가야만 했던 시간 속에 남은 것은 무엇일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로 끊임없이 차별에 노출되어 성장했지만, 남은 것 역시 그동안 살아온 모습의 인생일 뿐이다. 많은 국제입양인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무엇을 발견해야 하는지 묻는 책인 듯하다. 입양을 마냥 좋게만 봤던 나의 어리석음을 경고하는 많은 사례와 진실에 마음이 무거워지는 시간이었다. 그래서일까. 헤이그협약이 적용되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 보였다. 이설아 작가의 가족의 온도에 그 이유가 잘 설명되어 있다.



가족의 온도는 결혼한 부부가 세 명의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동안 입양에 관한 이야기에는 아이를 입양한 부모나 사회적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다뤄졌다면, 이 책은 입양된 아이의 목소리를 담았다. 앞부분에서는 아이를 입양하는 마음과 과정을 잘 드러낸 작가의 다짐과 입양 절차를 다룬 이야기가 있다. 정상(?)적으로 결혼한 부부가 불임도 아닌데, 아이를 낳는 게 아닌 입양을 선택한다. 부부의 마음이 같아서일까. 입양을 결정했다고 그 과정이 간단하지는 않았지만, 부부의 마음이 같으니 입양을 대하는 자세가 경건했다. 한번 버림받은 아이의 상처를 어루만져 줄줄 알고, 사라지지 않을 부모의 자리에 머물 줄 알며, 온전히 아이의 성장을 살피며 마음을 다한다. 오랫동안 뿌리박혀 있던 가족의 개념이 바뀌어야 하는 이유를 증명하는 듯했다. 같이 산다고, 피를 나누었다고 가족이 아니라는 건 살아오면서 저절로 알게 됐다. 어떤 관계에서도 갈등은 존재하겠지만, 이렇게 살아가도 가족이라는 걸 보여준다. 서로 필요한 존재가 되어 함께한다면, 그게 가족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맺으면서 입양을 공개했다. 완전한 가족이 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건 당연했고, 그 시간 동안 사랑을 쌓으며 부모와 자식 관계가 되어갔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많은 감정의 문제까지 아낌없이 들려주면서, 입양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입양에 직접 관계된 이들의 자세를 새롭게 만들어주는 듯하다.


아이를 읽어야 할 책으로 보라는 말은 입양 아동을 양육하는 부모라면 더욱 깊이 새겨야 할 조언입니다. 입양 아동의 삶은 입양 부모의 품에 안기는 순간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전부터 존재해왔습니다. 아이는 우리와 너무 다른 신체적 특성과 성격, 여러 재능과 고유함을 가지고 우리에게 옵니다. 아이가 무엇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어떤 경험을 하며 우리에게 왔는지를 파악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그에 적절한 양육을 제공하려면 몇 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이의 고유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이와 연결된 출생 가족을 인정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사랑하는 입양 자녀를 위해 부모가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출발선입니다. (가족의 온도, 120~121페이지)


한때 어린 조카를 입양하고 싶었던 적이 있다. 내가 돌보던 조카가 서너 살 즈음일 때, 내가 그 아이를 직접 돌보며 양육하는 당사자인데도 법적인 문제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곤란해질 때마다 했던 생각이었다. 그 당시에는 결혼한 부부가 아니면 아이의 입양이 불가했었는데,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를 읽고 알았다. 싱글인 상태에서도 아이를 입양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었다는 것을. 물론 비혼이어도 입양의 자격이 생겼다고 해서 이 과정이 쉬운 건 아니다. 다만, 꼭 결혼으로 이루어진 부부가 아니어도 아이를 입양할 수 있고, 가족을 형성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인정하는 것 같아서 안도했다고 해야 하나. 이제껏 우리가 알아 왔던 정상 가족의 개념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가족이란 서로 사랑을 나눠줄 수 있다면, 누구라도 아이의 성장에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럼 가족인 거 아닐까. 앞서 두 책이 국제 입양 실태에 관한 고발의 분위기로 참담하고 우울했다면, 이 책은 뒤의 두 책은 국내입양의 현실적인 장면을 그려주는 것 같다. 입양의 환경을 생각하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자세가 바로 이런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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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11-09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이하라 2022-11-09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 되세요.^^

thkang1001 2022-11-09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