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숲속의 소녀들 - 신경학자가 쓴 불가사의한 질병들에 관한 이야기
수잰 오설리번 지음, 서진희 옮김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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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에 등장하는 체념증후군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우리 마음의 병이 이렇게 병명이 되어 진단할 수 있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흔히 화병은 들어봤어도, 절망한 나머지 마음과 말을 닫아버리는 증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싶었다. 저자는 스웨덴의 체념증후군 아이들의 이야기로 이 책을 쓰기로 했다는데, 이 병은 약자의 마음에서 생기는 병이었다. 심인성 장애의 기본에, 이 사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의 사람들이 겪을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아이들은 이 병에 쉽게 노출되기도 하고, 그만큼 마음의 상처가 깊다고 할 수 있다. 스웨덴의 난민 아이들이 원인 모를 혼수상태에 있고, 전 세계에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집단을 연구하면서 알아낸다. 사회적 환경이 스트레스를 만들고, 우리 마음의 문제가 몸에 영향을 준다는 것. 결국은 우리 생활의 모든 질병은 한 가지 원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러니 병명이 드러나든 그렇지 않든, 우리가 겪는 불편함과 괴로움은 질병이 된다.


체념증후군은 정말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병이었다. 1, 길어지면 5~6년을 침대에서 보내는 소녀들의 모습이 상상되는가? 난민에게 주로 보이는 이 병은 영원히 이주민으로 불안한 삶을 누리는 이들에게 생긴다. 안정적이지 못하고, 그 나라의 국민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때로는 오랫동안 난민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이의 불안감이 아이들의 눈에 그대로 비친다. 어린아이니까 뭘 모른다고 해서는 안 된다. 아직 자기주장을 말하지 못하는 아이들이라고 해도 보이는 게 있고 감정이 있다. 이 서러움을 아이들이라고 모를까. 그렇게 생각하면 체념증후군이 이 아이들에게 생긴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다만 이런 현상이 아이들에게 머물러 있을 때 알아채지 못하는 어른들의 시선도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건지 정확하고 깊게 알아보려 애쓰려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 말이다.


이 질환에 걸리는 이들이 그렇게 선택적이라는 사실은 이 병을 그저 호르몬이나 신경전달물질과 관련된 생물학적인 문제로만, 혹은 개인의 성격과 연결되는 심리적인 문제로만 바라보는 관점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준다. (47페이지)


눈으로 보이는 증상을 진단하려면 기본적으로 검사를 한다. 검사 결과 아무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 이 질병을 판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가 잠에 빠져 수년 동안 깨어나지 않는 아이들을 찾아다니면서 발견한 증상은 인간의 삶을 이해하면서 진단할 수 있었다. 정상인데도 보이는 증상들, 발작하거나 틱장애를 일으키거나, 환각에 시달리거나 하는 등의 모습은 인간이 고통받는 질병을 물리적으로만 판단할 수 없다는 걸 증명했다. 저자가 찾아낸 결과도 마찬가지다. 모든 질병이 생물학적, 사회적, 심리적 요인이 함께 만들어졌다는 거다. 진단명이나 증상 등은 이 요인들이 어느 정도 작용했느냐 하는 비중의 차이 정도가 있을 뿐이다.


우리 몸의 질병이 생물학적, 사회적, 심리적 요인이 모여서 발병한다는 걸 최근에 많이 경험했다. 특히 엄마의 병원행이 잦아지고, 이런저런 증상을 호소하는데도 찾아낼 수 없던 병명에 당황스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엄마는 많은 질병에 시달렸고, 여전히 병원에 의지하며 지낸다. 가장 많이 고통을 호소하는 건 소화기 장애다. 심리적인 이유로 소화 장애가 생긴 건 꽤 오래된 일이고, 꾸준히 위장을 점검하고 보호하면서 살아왔다. 엄마의 위장이 다루기 힘든 아이처럼 변한 건 생물학적 요인이지만, 엄마가 신경 쓸 일이 많아지고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이 위장은 더 발작한다. 물 한 모금 넘기는 것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위장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 진료받고 약을 먹지만, 그마저도 쉽게 나아지지 않으면 위장내시경까지 하면서 확인한다. 최근에는 소화기 관련 장기의 CT 촬영까지 하게 되었는데, 의사는 인간이 나이 듦에 따라 장기 기능이 약해진 건 있지만, 특별히 어떤 문제가 보이지는 않는다고 했다. 저자의 주장이 바로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저자는 이 책으로 말한다. 질병이 어떤 신호가 되어 우리 삶의 불편함을 말하고 있다고. 크라스노고르스크(카자흐스탄)의 집단 수면증은, 한때 번성했던 도시가 쇠락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우울함, 정부의 강요로 이 도시를 떠나야 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잠들면서, 잠이 든 채로 움직이는 수면증까지 발병한 이유를 살펴보게 하는 일이 그 의미를 더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특정 질병에 걸렸다고 믿는 것이 어떤 영향을 미치고, 이런 증상을 질병으로 규정하는 순간 질병의 범주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본다. 어떤 병이라도 그 병의 서사가 있을 테고, 그 서사를 살펴보면서 병을 진단하고 치료해야 한다. 요즘처럼 전문화된 분야로 나뉘고 구성된 방식, 모든 가능한 질병 목록을 갖고 일하는 시스템에서는 그 병의 원인을 찾고 치료하는 일을 왜곡할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때로 설명할 수 없는 고통과 질병, 심인성 장애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한 책이다. 그 설명은 인간이 속한 사회와 환경적 요인, 개인의 문제를 더하며 찾아야 한다. 체념증후군으로 아이들에 관심 두게 되었다. 심리적인 문제가 신체의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고, 질병이 생각보다 더 많이 사회적으로 패턴화된 행동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논하기보다는 적극적인 치료를 위한 방법을 찾는 게 우선이고 정답이라는 걸 말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더 널리 퍼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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