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하우스
메이브 빈치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엄마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은, 자식들 다 커서 나가면 혼자서 지내고 싶다는 거였다. 육 남매 키우느라, 가장으로 살면서 허리 휘게 애써왔던 걸 생각하면 엄마는 진즉에 쉬셔야 했다. 엄마에게도 어느 정도 인생 계획이 있었을 테다. 근데, 어떻게 사람 일이 마음처럼만 되겠는가. 엄마는 가장의 자리에서 물러나 있어도 존재가 가장이었다. 이제 좀 쉬어도 되겠다 싶었을 때는 몸이 아프기 시작했고, 치료받고 그냥저냥 나이든 몸을 감당하면서 쉬시다가, 요즘에는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해서 다니신다. 집에 혼자 있으니 우울하고 지루하시다면서. 그러니까 지금 엄마의 일은 치열한 생계를 위한 일이라기보다는, 본인의 생활을 감당하며 마음의 안정을 얻고 싶은 목적이 크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 하는데, 보통의 부모라면 아이를 키우고 그 아이가 성인으로 살면서 독립하기를 바랄 테다. 아니면 제 앞가림하는 성인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거겠지. 디와 리엄 부부도 같은 마음일 거다. 이미 성인이 된 삼 남매와 함께 사는 부모인 디와 리엄. 첫째 로지는 결혼생활이 힘들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둘째 헬렌은 직업이 교사인데 독립은 안 한다. 셋째 앤서니는 음악을 한다며 세월만 보낸다. , 그럴 수도 있지. 각자의 이유로 부모님 집에서 같이 살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집에 살면서, 성인으로 돈을 벌면서 이 집의 모든 경제적인 문제를 부모가 감당해야 한다는 건, 이건 좀 아니지.


새벽부터 청소 일을 하는 디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면서 음식을 만들어 놓고 나온다. 누군가는 일어나서 아침을 먹겠지. 집에 돌아와서도 끊이지 않는 집안일에 지치고 또 지친다. 어느 집의 육아가 이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집에 유아가 있는 건 아니잖아? 그날도 똑같았다. 디는 일을 마치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온다. 남편과 아이들 모두 집에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식탁에 앉아 고개를 들지 않고 얘기하는 막내 앤서니, 혼자만의 얘기에 빠져 있느라 흥분하는 헬렌, 거울만 보면서 남의 얘기 흘려듣는 리지. 그 가운데 남편 리엄이 있다. 주방 식탁 위에는 디가 아침에 만들어 놓고 나간 음식이 빈 냄비로 있고, 마시려고 냉장고에 넣어둔 우유는 비어 있다. 세탁실의 빨래는 여전히 산처럼 쌓여 있고, 청소는 엄두도 못 낸다. 이렇게 사는 게 모두를 위한 걸까 의심이 든 그때, 남편의 회사가 부도가 났다는 소식을 듣는다. , 이제 이 가정은 어떻게 될 것인가. 디는 결심한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읽으면서 그림이 그려진다. 무슨 막장 드라마 보는 기분이기도 하다. 분명 사랑하는 가족인데, 이 사랑이 유지하기 어려운 순간이 바로 이 소설 속에 있다. 사랑하지만 같이 살기는 괴로운 사람들이 여기 있다. 아빠가 실직했다고 하는데도 별 감각이 없는 이 아이들을 어쩌면 좋으냐. 디는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강한 대책이 필요했다. 로지는 일 때문에 영국에 가게 됐다고 하고, 헬렌은 친구 부부 집에 며칠 있겠다고 한다. 이때다 싶어 디는 자매가 같이 쓰던 방을 치우고 세를 놓는다. 앤서니는 친구들 집으로 가서 지내겠다고 하니 그 방도 세입자를 들인다. 삼 남매는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놀란다. 엄마가 요구하는, 이 집에서 같이 살려면 방세를 내라고 하니 득달같이 달려들어 화를 내던 아이들이다. 부모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는 둥, 여기는 우리 집이기도 하다는 둥. 맞다. ‘우리 집이니까 생활비를 같이 부담해야지. 학생 신분이거나 미성년일 때는 괜찮지만, 다 커서 자기 앞가림하면서 돈도 버는데, 왜 이 집의 경제적인 문제는 부모만 감당해야 하는지 아이들은 이해를 못 한다. 그러면서 디의 결정에 화만 낼 뿐이다.


소설은 이 가족의 갱생 프로젝트를 신나게 풀어놓는다. 내 자식들 얼마나 예쁘고 곱게 키웠을까마는, 온전한 한 인간으로 살아가게 하려면 때로는 단호해야 한다. 그녀는 바란다. 그녀의 고객이 요구하는 대로 청소하는 것처럼, 그녀의 인생이, 이 가족의 미래가 반짝거리기를. 그러려면 각자의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해야 한다. 그 중심에 엄마가 있다. 이 갱생 과정이 조금 불편할지 몰라도 한번은 거쳐야만 하는 일이다. 우리가 진짜 가족으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려면, 피할 수 없는 시간이다. 혹자는 삼 남매가 했던 말처럼, 어떻게 부모가 그럴 수 있느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저 내 아이들 감싸주고 조금 더 돌봐주면 어떻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면서 나무랄지도. 하지만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이라면, 이 아이들을 영원히 아이로 머물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잘 성장하고 어른이 되어가게 해줘야 하는 게 부모의 역할이 아니던가. 그러니 디의 이런 시도가 아이들을 너무 사랑해서 그런 거라는 걸 알아주기를. 이 집의 삼 남매는 부모에게 쫓겨난 게 아니라, ‘때가 되면 낙엽이 떨어지듯 아이들이 집을 떠난 것뿐이다.


짧은 분량에 금방 읽을 수 있고, 몰입감도 좋다. 단막극 한 편 본 기분이기도 하고, 눈앞에서 지켜본 어느 가족의 이야기 같아서 더 생생하다. 어떤 장면들은 우리 집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읽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이다. 세계 책의 날을 기념하여 퀵 리드(Quick Reads) 시리즈로 제작되었다고 하니 의미도 있어 보인다. 금방 읽을 수 있지만 가볍지 않은 이야기에 즐거웠다.


#풀하우스 #메이브빈치 #문학동네 #퀵리드시리즈 ##책추천 #소설 #문학

#그여름의일주일 #가족 #해피엔딩 #책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