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웃는 장례식 별숲 동화 마을 33
홍민정 지음, 오윤화 그림 / 별숲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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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죽음을 마주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만큼 나의 죽음을 생각하는 일도 많아졌다. 정확하게는 나의 죽음 이후의 장면을 상상하곤 했다. 윤서 할머니 말씀처럼, ‘죽은 뒤에 몰려와서 울고불고한들무슨 소용이겠는가. 살아 있을 때 한 번 더 보는 게 낫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요즘이다. 아마 그 중심에는 점점 노쇠해가는 엄마가 있기 때문이겠지. 지난 6, 조금 늦은 엄마 생신을 챙기면서 가족이 모였다. 코로나 특수 상황에 우리의 모임은 참 오랜만이었다. 각자 살기 바쁘고, 거리 두기가 필수가 된 시대를 살아가는 게 어떤 모습인지 실감하던 때였다. 별것 없는 조촐한 상차림이었다. 포장 음식 몇 가지와 미리 주문한 케이크 하나, 엄마의 자식들과 손주들이 전부인 생신에 엄마는 울고 말았다. 이렇게 얼굴 보고 같이 밥 먹을 수 있다는 게 너무 기쁘다면서.


나 죽은 뒤에 우르르 몰려와서 울고불고한들 무슨 소용이야. 살아 있을 때, 누가 누군지 얼굴이라도 알아볼 수 있을 때 한 번 더 보는 게 낫지. 안 그래?” (31페이지)


우리는 얼마나 오랜 시간 서로를 보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유한한 시간을 살면서도, 그 시간의 유한함을 자주 잊고 산다. 언젠가는 죽겠지, 하지만 그게 지금 당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면서도 생각한다. 혹시 나의 죽음을 정할 수 있다면, 갑작스러운 죽음이 아니라 예고된 죽음이면 좋겠다고. 내 삶을 정리하고 갈 시간을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아마도 보고 싶은 사람 한 번 더 보고 싶은 바람이 아닐까 싶다. 윤서 할머니의 생전 장례식이 가지는 의미는 그래서 와 닿는다. 내가 떠나기 전에 눈에 담고 싶은 장면일 거다. 사랑하는, 보고 싶은 사람들 한 번이라도 더 새기고 가겠다는 간절함. 그 마음이 무엇인지 알게 하는 동화였다.


윤서 할머니가 암에 걸렸다. 치료의 시기가 지나버려 이제는 암을 낫기 위함이 아닌, 조금 덜 힘들게 지내시다가 가시는 것만이 남았다. 자꾸만 악화하는 몸의 상태를 할머니는 더 기다릴 수 없다. 자기 생전에 장례식을 치르고 싶다며 윤서 아빠에게 말한다.


사실 이 가족은 대가족이면서도 소가족이다. 집에는 할머니와 윤서, 윤서 아빠가 산다. 근처에 사는 이혼한 고모가 자주 드나들면서 윤서네 주방을 책임진다. 윤서 엄마는 중국으로 파견 근무하러 갔다. 윤서 생각에, 어쩌면 엄마는 아빠와 이혼할지도 모르겠다. 할머니의 생전 장례식은 윤서에게도 충격이었지만, 할머니의 소원이니 들어드려야 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무도 경험이 없는 이 행사를 어떻게 치를 수 있을까 걱정되면서도,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잊지 않으면 될 것 같다. 할머니가 보고 싶은 사람, 할머니를 보고 싶은 사람이 기억하면 되는 거다. 갑작스러운 일에 온 식구가 혼란스럽다. 윤서는 여름방학에 엄마를 만나러 상하이에 가겠다는 것을 취소했다. 고모는 재혼하겠다고 예비고모부를 데리고 왔다. 아빠는 사이가 안 좋은 형제들에게 할머니 소식을 전하면서 자주 싸웠다. 할머니가 바라는, 생일날 치르는 생전 장례식은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죽음을 생각하면 한없이 슬퍼질 수 있다. 우리가 아는 장례식은 익히 그런 양상이었다. 죽은 이의 사진 앞에서 절을 한다. 이미 차려진 식사를 하고 아는 얼굴들과 이야기 몇 마디 나누다가 일어선다. 장례식의 주최자가 아니라면, 누군가의 죽음은 잠깐 스치듯 인사하고 나오는 자리가 된다. 그 정도만으로도 우리는 고인과 유가족에게 예를 다했다고 여긴다. 이 동화를 읽으면서 예의를 표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의문이 들었다. 떠나고 없는 이를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떠나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얼굴 보고 손을 잡고, 따스하게 나누는 안부가 더 깊게 새겨지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윤서와 친구들이 준비한 영상은 할머니의 생전 장례식이자 생신날의 최고 선물이 되었다. 할머니 삶의 터전이었던 시장, 오랫동안 교류했던 시장 상인들의 인사를 담았다.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어질 사람들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 곧 떠날 할머니의 장례식을 이렇게 치러도 되나 싶은 걱정은 다 사라지고, 할머니가 바랐던 일을 해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밀려온다.


우리가 하는 많은 일 중의 하나는 후회일 텐데, 소중한 사람이 떠난 뒤에도 후회만 남게 될까 봐 걱정이 가득하게 만든 이야기였다. 죽음을 앞둔 윤서 할머니가 자기 삶을 이렇게나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모습이 왜 이렇게 감동적인지. 활자를 읽고 있는데, 마치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 활자가 자꾸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읽으면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엄마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말이다. 엄마 집 TV 옆에는 작은 액자가 하나 놓여있는데, 처음으로 가족 여행을 갔던 때 찍었던 사진이다. 엄마는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환하게 웃고 있다. 나는 농담처럼 저 사진을 엄마 영정사진으로 써야겠다라고 말하곤 하는데, 엄마는 또 그러라고 대답한다. 이제 우리는 언제가 감당해야 할 엄마의 죽음을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윤서 할머니와 똑같지는 않겠지만, 엄마의 죽음 후가 아닌 지금을 더 많이 생각한다. 더 자주 보도록 노력하자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하자고, 덜 미워하면서 살도록 애써보자고.


누구나 태어나고, 누구나 죽는다. 각자의 삶을 다르겠지만, 죽음의 운명은 똑같다. 인생의 끝에는 언제나 죽음이 있을 테니까. 할머니의 뜻대로 마련된 생전 장례식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울고 웃으며 마음을 나눈다.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미워하면서 지냈던 순간도 잊은 채로, 다시 서로를 바라보며 이해하려는 유대감을 싹틔운다. 마치 할머니가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준 선물처럼. 이렇게 아름답고 행복한 장례식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게 아쉬울 정도로, 감동이 한가득 남은 이야기다. 아직 죽음을 생각하는 게 서툰 우리가 배워도 좋을,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아닐까.


생각하면 슬플 장례식을, 실컷 울고 웃으면서 읽었다. 눈물은 슬프지 않았고, 웃음도 가볍지 않았다.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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