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죄의 궤적 1~2 - 전2권
오쿠다 히데오 지음, 송태욱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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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섬 레분토에서 어설픈 어부로 살아가던 우노 간지는 사람들에게 바보라고 불린다. 아이들이 놀려도 그냥 웃고 마는, 부당한 대우에도 대응하지 못하는 존재다. 그는 정말 바보일까? 돈이 없으면 서슴없이 빈집털이하는 걸 보면 바보라고 하기에는 너무 똑똑하고, 남들이 험한 말을 해도 그냥 웃고 마는 걸 보면 정말 바보 같고. 우노 간지. 그는 누구인가.


그를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려웠다. 더불어 그가 저지른 죄를 어떻게 물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야기에 푹 빠져 읽고 있었지만, 한 번씩 어떤 느낌이 차올라서 답답했다. 그는 이렇게 무서운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왜 한 번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거지? 머리를 다쳐서? 바보여서? 이게 죄라는 걸 몰라서? 그는 어쩌다가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 궁금증은 그의 행적을 추적하는 형사와 함께 달리면서 놀라움으로 변해갔다. 경악했다.


소설은 세 명의 시선이 교차로 진행된다. 소설의 주인공이자 여러 범죄의 용의자인 우노 간지. 이 사건에 뛰어들어 온몸을 불사르는 형사 오치아이 마사오. 가난한 노동자들이 모이는 산야의 여관 딸 마치이 미키코. 처음 돈이 필요해서 소소하게 저지르는 간지의 빈집털이는 금방 멈출 줄 알았다. 그는 바보 소리를 들으면서도 일하고 있었고, 어머니가 돈을 요구하지도 않았으니까. 그가 유흥을 즐기며 흥청망청하는 스타일도 아니었으니, 그의 범죄는 무엇을 위한 것인지 언뜻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니까, 그에게도 부족한 뭔가를 채워주는 수단이 되었겠지.


그의 재능이자 장기인 빈집털이를 계속하면서도 그는 사람을 헤치지는 않았다. 레분토를 떠나면서 사기를 당한 그는 위기도 잘 넘겼다. 물론 남의 것을 훔쳐서. 계속되는 범죄는 경찰의 추적을 받기 시작하지만, 간지는 쉽게 잡히지도 않는다. 더 의아한 건 간지의 태도다. 주변에 경찰이 깔려있고, 계속되는 사건에 간지가 용의자로 지목되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거리를 활보하고 여자와 여행을 가다니. 이 무슨 강심장인가. 흔히 잘못을 저지르고, 언제 잡힐지 몰라서 숨어있는 처지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막 뛰지 않나? 두려움과 불안으로 심장이 두근거릴 것 같은데? 간지는 보통의 이런 감정을 넘어선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정말 생각이 없는 건지 뭔지, 도통 모르겠다.


처음 레분토의 다시마 사업가의 집에서 불이 난 사건, 도쿄의 은퇴한 사업가가 살해된 사건, 6살 아이의 유괴사건. 별도의 사건으로 보이는 이 범죄들이 우노 간지라는 한 사람을 용의자로 지목한다. 그러면서도 긴가민가. 형사들은 여러 가지 증거를 확인하면서 간지를 용의자로 추적하지만, 평소 간지의 행동으로 보면 도저히 이런 범죄를 저지를만한 인물이 아닌 거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를 아는 사람 모두 간지가 그 정도의 일을 저지를 거로 여기지 않는다. 그 바보가? 설마. 그래도 그가 했을지도 모를 범죄를 떠올리면 어떻게 해서든 간지를 붙잡아야만 했다. 그에게 물어보기라도 하려면 일단 그를 마주해야 하지 않겠는가. 간지는 도망치고, 형사들은 그를 잡기 위해 미친 듯이 달린다. 그리고 간지는, 붙잡힌다.


모두가 간지를 쫓는다. 그가 정말 범인일까 궁금하면서, 그에게 듣고 싶은 말이 참 많았다. 범죄의 자백은 차치하고, 그가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그의 현재는 어떻게 흘러오게 되었는지 들어야만 했다. 이야기의 중심은 간지가 저지른 범죄의 시작과 과정과 결말이었지만, 점점 또 다른 방향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온다. 간지가 범죄를 저지르면서 보인 행동이 내내 이상했던 거다. 그는 타인의 감정에 신경 쓰지 않는다. 죽음을 보면서 슬퍼하지 않는다. 그냥 어떤 일이 일어난 상황 그대로만 받아들인다. 게다가 순간적으로 그는 그 자신을 버린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위험에 빠질 때마다 그의 정신은 안드로메다로 여행을 간다. 바로 자기 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잊는다. 시간이 흐르고 정신을 차려보면 일을 다 끝났다. 누가 죽어 있거나, 앞의 사람이 화가 잔뜩 났거나, 내내 상대가 하는 말을 듣지 못했거나. 간지의 처지에서 보면 참 좋은 방식인데, 그가 언제부터 이런 태도로 세상을 살아왔는지 추적해야 했다.


그렇다. 어릴 적 삿포로에서 살던 때 어머니의 결혼 상대에게 매일 야단을 맞았다. 젓가락을 쥐는 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욕을 먹고, 법을 흘린다고 엄한 꾸지람을 들었다. 어느 날 자신은 감정의 스위치를 내리는 기술을 익혔다. 그 이후로 무서운 것이 없어졌고 긴장하는 일도 없어졌다. 설사 사람을 죽인다고 해도, 죽임을 당한다고 해도. (2, 99페이지)


작가는 1963년 일본에서 실제로 발생한 유괴사건을 모티브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소설의 내용으로 추측하자면, 이 시기는 전쟁이 끝나고, 사는 것은 넉넉하지 못했을 테고, 여기저기 노동자의 모습이 많이 보였던 시절인 듯하다. 각 가정에 전화가 막 보급되기 시작했던 시절이기도 했단다. 유괴사건은 그 전화가 중요 단서가 되어 실마리를 잡는다. 간지를 붙잡고 보니 그의 성장 과정의 흑역사가 현재의 간지를 만들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지금까지 간지가 빈집털이를 놀이처럼 해왔고, 유괴하고,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으로 만들어진 건 시작이 있었다는 거다. 그가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자기의 욕망에 집중하고, 범죄를 저지를 때마다 기억을 잊으면서 살아왔던 건 누구의 책임일까. 소설은 그가 불우한 어린 시절을 지내왔고, 그 과정에서 그에게 일어난 일들 때문에 현재의 그가 만들어졌다는 걸 설명한다. 그에게 죄를 물어야 하는데, 그의 인생을 만든 환경을 무시할 수도 없으니. 그의 이야기를 다 들은 우리는 이제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할까.


범죄자는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아마 후자에 가까울 것 같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여기에 적용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누구나 좋은 흐름을 가까이하면 그 흐름에 섞인다. 자라나는 시기에 보고 듣고 배운 것들로 어른의 바탕이 된다. 이 소설이 그 증거라도 되는 것처럼, 간지의 시간을 보여준다. 죄의 근원을 물으면서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 그가 저지른 일은 범죄이며, 살인이고, 용서받을 수 없다. 단숨에 읽히면서도, 이야기에 푹 빠져들면서도, 소설의 결말과는 상관없이 독자만의 결말을 아직 내리지 못하게 한다. 어렵고 또 어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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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06-25 0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많은 사람이 죄를 지으면 잡힐지도 모른다 생각하기도 할 텐데, 우노 간지는 그런 모습이 아예 보이지 않다니 왜 그럴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볼 듯합니다 범죄자는 만들어지기도 하죠 어릴 때 좋은 어른을 하나라도 만났다면 좀 나았을 텐데, 그런 일은 없어서 감정의 스위치를 아예 내려버리게 됐군요 그런 거 안되기도 했지만, 저지른 죄가 있으니 안됐다고만 생각할 수도 없겠습니다


희선

scott 2021-06-25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읽고 싶었는데 구단님 리뷰 읽고 바로 7월용 책으로 쟁여둠요 ^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