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홍한별 옮김 / 민음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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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대신할 수 있는, 혹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무언가를 상상해본 적 많지 않은가. 실제로 로봇은 우리 일상에서 많은 것을 대신하기도 한다. 계속 개발과 연구가 이어지고, 인간 생활을 좀 더 편하게 과학적으로 이뤄낼 수 있는 바람을 가득 담아서 말이다. 일상에 스며든 로봇의 역할은 장점이 많겠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의 자리를 대신하는 비중이 높아질수록 위기감도 느낀다. 이 소설의 어느 장면에서 외치던 여자의 목소리처럼, AF(Artificial Friend)가 인간의 자리를 빼앗는다며 화를 낸다. 낯설지 않다. 지금도 기계화된 시스템이 점점 노동자의 역할을 대신하는 걸 보면, 우리는 양가감정의 싸움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발전하고 편리해진 세상을 바라면서도, 인간의 역할을 빼앗기는 마음에 슬프고 괴롭다. 그렇다고 변화하는 세상을 붙잡을 수는 없겠지. 그래서 이런 마음도 갖는다. 인간에게는 로봇과 다른, 인간만의 고유한 게 있다고. 로봇이 절대 넘볼 수 없는 것을 생각한다. 그 사람만이 가진 어떤 것, 그래서 소중한 사람을 대체할 로봇을 만들면서도 완전히 복제할 수 없다는 절망과 안도를 동시에 느낀다. 인간과 로봇, 인간과 로봇의 감정은 정말 어떤 것일까.


새로운 세상이 그려진다.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 우리는 향상하지 않으면 보통의 삶을 이어갈 수 없다. 유전자 편집으로 향상된 아이들은 그들만의 세계를 만든다. 집에서 원격으로 교육받고, 서로가 어울릴 기회가 없다. 학교에 가지 않으니까. (어쩌면 이 부분은 우리가 1년 넘게 겪는 코로나19 상황과 너무 닮아서 놀랐다. 작가가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되기 전에 완성되었다고 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모든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 형식적이겠지만 일부러 모임을 만들고 무슨 숙제 하듯 아이들과 어울린다. 그런 일상에서 친구를 대신하는 자리에 에이에프가 존재한다. 누구나 에이에프를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다. 세상은 변했어도 여전한 건 인간의 계급이었다. 어느 수준 이상이 되어야만 향상도 가능하고 에이에프도 가질 수 있다. 그러니 그들만의 모임 역시 시쳇말로 점수관리, 인맥 관리의 일환이 되시겠다. 현실적인 문제로 그 향상과 모임이 불가능한 아이가 존재한다는 게 동시에 보여서 절망스럽지만, 어쩌겠나.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러한 것을.


사람의 외모를 가지고 인간의 복잡한 감정까지 아는 로봇 클라라. 매장의 진열대에 앉아서 밖을 보는 게 그녀의 즐거움이다. 유독 관찰력이 뛰어난 클라라는 매장 밖의 모습에 눈길을 주고 보이는 것들에 감정을 준다. 생각과 감정이 동시에 가능한, 인간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게 뭔지 아는 로봇이다. 조시는 그런 클라라를 선택한다. 조시는 향상되었지만 무슨 문제인지 점점 시들어가는 아이다. 친구가 필요했고, 마음이 끌려서 선택한 클라라를 옆에 두고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래봤자 원격 수업에 내키지 않는 모임을 하는 게 전부이다. 조시는 아픈 아이니까. 그런 조시에게 클라라는 일상의 또 다른 의미가 되고 친구인 릭은 유일하게 조시가 솔직하게 마음을 여는 대상이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릭에게 하게 된다. 모임의 사람들이 내켜 하지 않는 대상, 릭은 향상되지 못한 아이이고 대학에 진학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런데도 조시와 릭은 친구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 영원을 약속했으니까. 내 자식이 나아가기를, 누구보다 앞서가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으로는 조시와 닉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유전자 편집을 해서라도 완벽하게 만들고 싶었을 테니까. 그런데도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뭔가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조시와 닉은 그들만이 나눌 수 있는 것을 보여준다. 그림으로, 말풍선으로 마음을 읽는 일을 한다. 누군가의 마음을 알아채는 일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묻고 싶은 장면이었다. 아무리 연습하고 노력한다고 해도 로봇이 사람의 마음을 완벽하게 읽을 수 있느냐고.


말했듯이 나에게는 무척 유용한 교훈을 준 일이었다. 나는 조시에게 달라지는면이 있다는 것, 내가 그것에 적응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이런 특성이 조시에게만 있는 게 아님도 알게 되었다. 매장 쇼윈도에 디스플레이 하는 것처럼 사람들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기 위한 면을 마련해 놓으려 한다는 것, 또 그 순간이 지난 다음에 그런 일시적인 모습에 중대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는 것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130~131페이지)


전기차 배터리를 충전하듯 클라라에게도 에너지가 필요할 텐데, 에이에프는 태양에게서 자양분을 얻고 활동한다. 태양이 그들을 움직이게 하고 에너지를 주지만, 그 정도뿐이다. 하지만 읽다 보면 클라라에게 태양은 자양분 그 이상이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어쩌면 이 부분에서 클라라가 보통의 에이에프와의 차이를 가진 존재라는 것도 느낀다. 유독 관찰력이 뛰어난 아이였기에, 매장의 유리문 너머의 장면들을 세심하게 보고 느끼고 있던 거다. 레인코트 할아버지와 커피 할머니의 만남에서, 거지 아저씨와 개의 부활 같은 장면에서 클라라는 태양의 힘을 믿는다. 어둡고 컴컴해질 때마다, 마음의 슬픔을 확인해야 할 때마다 태양이 나타나서 희망을 노래한다. 오래전 헤어진 사람이 다시 만나는 것을 지켜보던 태양, 죽은 줄 알았던 존재가 태양 빛을 받아서 일어난 것을 믿는다. 태양은 클라라에게도 자양분이 되고 있으니까. 그 힘을 믿을 수밖에 없다. 많은 것을 관찰하고 생각하고 이해할 때마다 태양은 클라라의 마음속에서 그 존재감을 뽐냈다. 그러니 간절한 기도마저 하게 될 수밖에. 이런 장면들을 볼 때마다 다시 묻게 된다.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로봇이 어디까지 읽고 있다는 건지, 답을 듣고 싶어진다.


소설은 인간 소녀 조시와 로봇 클라라의 우정과 사랑을 그리기도 하지만, 사실은 인간의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만들기도 한다. 필요하기에 클라라를 옆에 두었지만, 조시나 조시의 엄마, 아빠, 릭은 이 로봇의 존재와 태도로 많은 생각을 한다. 첫 번째 아이가 떠난 것처럼 조시가 떠날 수도 있다는 불안에 엄마는 대체를 생각한다. 아이를 잃은 슬픔을 감당할 수 없기에 그 후를 준비해야 한다. 조시가 없는 세상, 조시가 그리운 시간을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클라라의 존재는 조시의 엄마가 만들려는 시간을 위해 꼭 필요하다. 클라라의 그 관찰력으로 내 딸을 완벽하게 그려낼 수 있는, 내 딸의 몸과 마음이 되어 위로되는 존재로 탈바꿈할 대상이어야 했다. 불가능할까? 인간의 모든 것을 대신할 로봇이 정말 인간 세상에 존재할 수 없을까? 조시의 아빠가 화가 난 이유는 엄마의 계획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특별하다고 여기며 살아온 걸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다. 로봇이 완벽해봤자 인간의 마음까지 따라오겠느냐, 인간과 닮았다고 해서 인간이 되겠느냐는 고민에 클라라에게 묻는다. 인간의 마음을 믿느냐고, 인간에게 마음이란 게 있긴 한 거냐고, 그 마음이 인간을 특별하고 개별적인 존재로 만드는 게 맞느냐고. 이 질문을 했던 그 순간에, 조시의 아버지도 클라라도, 우리도 이미 알고 있지 않았을까. 경험과 노력으로 판단 능력이나 기억, 인지 능력까지 완벽해질 수는 있어도 한 사람 고유의 마음과 특징을 복제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갈구하는 모습에 안타까움이 넘쳤다.


이 모습 이대로 살아가는 것만이 인생이라고 인정하지 못해서 생기는 욕망에, 미래와 연결된 현재 때문에 인간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꿈꾸는가 보다. 오늘을 잘 살아야 하지만 내일을 준비하는 게 인간의 자세일 테니까. 오늘 죽지 않는다면 내일 또 살아가야 하니까 미래가 걱정될 수밖에 없다. 유전자 편집으로 향상되어 더 업그레이드한 인생을 살아가려는 욕망이었겠지만, 조시는 향상의 과정에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계속 아프고 곧 소멸할지도 모를 시간을 산다. ‘향상되지 못한 릭과 그의 엄마는 향상된 이들의 무리에 끼지도 못하고 세상을 겉돈다. 하지만 항상 향상된 삶을 아들에게 주고 싶어서 애쓴다. 아들의 능력을 버릴 수 없고 대학에도 가야 한다는 간절함에 오래전에 헤어진 애인에게 매달리며 아들의 미래를 걱정한다. 바뀌고 변화하는 세상에 대응하는 부모의 자세라고 볼 수도 있지만, 내 아이 고유의 감정을 먼저 읽지 못하는 불찰에서 시작된 시도일 수도 있겠다. 마음을 먼저 읽는 일이 우리가 준비하는 미래에서 빠져있다는 게, 상실의 회복을 위해 대체할 수 있는 존재를 만든다는 게 잘못된 것만은 아닐 테지만, 우리가 인간이기에 고민하는 것들을 간과하기에 보이는 문제들이 아니었나 싶다. 인공지능로봇 제작자 카팔디가 놓친 그것, 우리 내면에 가닿을 수 없는,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없는 고유의 무언가가 있다는 미음 말이다.


저는 조시를 배우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그래야만 했다면 최선을 다해서 그렇게 했을 거예요. 하지만 잘되었을 것 같지는 않아요. 제가 정확하게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요.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머니, , 가정부 멜라니아, 아버지. 그 사람들이 가슴속에서 조시에 대해 느끼는 감정에는 다가갈 수가 없었을 거예요. 지금은 그걸 확실하게 알아요.” (441~442페이지)


자연스러운 것, 인간의 마음이 흐르는대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클라라를 통해 보여준 작품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로봇 클라라가 이 감정을 보여줬다는 게 아이러니일지도 모르지만, 이 작품이 클라라의 시선으로 전개되면서도 인간의 마음으로 읽힌다는 거였다. 누군가가 자기를 선택해주길 바라면서 매장의 진열대에 놓인 클라라. 신형 에이에프가 들어오면서 선택받고 싶은 갈망은 커진다. 이미 구형인 자신이 낙오되는, 신형 모델이 자기의 자리를 차지할 거라는 두려움을 느낀다. 인간의 일상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인간과 비슷한 흐름으로 존재하고 살아가는 클라라의 생이 인간의 마지막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태어났고 존재했다. 자기 역할에 충실하며 살아갔고 존재의 임무를 수행했다. 조시의 안정과 성장을 돕기 위해 존재했던 클라라. 그 역할을 다한 클라라가 어떻게 생을 마무리하는지 보면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건 당연했다. 인간의 생과 다르지 않아서, 우리가 겪는 삶과 죽음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가슴이 떨렸다.


로봇에게 인간의 생을 봤다는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냉정하게 보자면 로봇이 인간의 모든 마음을 읽을 수도 없고 복제할 수도 없다는 게 정답이지만, 클라라의 모습에서 인간의 모든 것을 본 느낌에 여운이 짙다. 원하는 삶을 위해 노력하고 애쓰면서, 간절해지는 순간에 기도하고, 자기 의무를 다하듯 살아가는, 마지막에는 삶을 복기하듯 기억을 추리는 모습까지. 조금 과장되지만 완벽하게 인간의 생을 재현한 듯했다. 뛰어난 관찰력으로 인간을 보고 인간관계나 감정을 배우는 클라라였지만, 읽다 보면 클라라에게 전해져오는 인간다움에 뭉클해지곤 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사랑하고 마음에 담아야 하는지, 우리 안의 특별함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생각했다. 비록 마지막에 마주할 감정이 슬픔이라고 할지라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마저 감당해야 한다. 마치 슬픔에 대처하는 자세를 배우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사는 동안 힘껏 사랑하고 애쓰고 노력하는 것처럼, 슬픔도 우리가 마주해야 할 몫이라고. 인간의 특별함은 그 마음에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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