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지도 못하면서 일단 믿고 보게 되는 책이 있기 마련인데, 아마도 이 책 <지식 편의점>이 그중 한 권이 될 듯하다. 이미 책과 관련한 매체에서 그 활약을 보여준 저자의 이력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적인 현대인을 위한 책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 궁금하면서도 막상 펼쳐봤을 때 보이는 고전과 베스트셀러의 목록이 보이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왜? 읽어보고 싶다고 다짐하면서 오랫동안 목록을 만들어두었지만, 막상 펼쳐보고 완독하지 못했거나 아예 펼쳐보지도 못한 책들이 가득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궁금해졌다. 그러한 목록이 왜 만들어졌으며, 저자는 왜 또 그 책들을 언급하면서 지식인 운운하는가 말이다. 그래, 읽지는 못했으나 나도 지식인이 되어보고 싶다는 바람을 슬쩍 내비치며 저자가 차려놓은 편의점 진열대에 눈길을 주고자 한다.


생각하는 인간이 되기 위해 시작한 지식여행이라는 의도가 뭔가 있어 보였다. 하루하루 지내면서 그저 버티고 살아남는 게 목표가 익숙한 세상에서, 생각하는 인간이 되기 위한 시도가 필요한지 묻고 싶을 때가 있다. 인문학적 지식 운운하면서 피부에 닿는 현실보다 앞서는 건 없을 거로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저자가 찾아내고 같이 이끌어주고자 하는 생각하는 인간으로의 길은 조금은 더 오래 멀리 내다보는 인생과 세상에 관한 시선을 만들어간다.


총 3개의 장으로 구성하였고, 질문하는 인간으로 시작해서 탐구하는 인간을 통해 우리는 생각하는 인간이 된다. 저자는 그 질문하는 인간의 시작을 『사피엔스』로 열고, 인류가 만들어갈 미래를 알기 위해 과거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발전해왔고, 또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 생각하는 장치이자 도구로 인류의 역사를 풀어놓는다고 했다. 사피엔스 종은 인지 혁명, 농업 혁명, 과학 혁명을 거쳐 죽음까지 극복할 새로운 인류로 진화하고 있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많은 인간'종'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존재하고 있는 게 사피엔스, 현재의 우리 인간이다. 그렇다면 그 많던 인간'종'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묻고 싶겠지? 그건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인간의 능력 때문이다. 사피엔스가 다른 종을 정복하고 이겨내면서 우위에 올랐고, 이렇게 우월한 인간으로 남을 수 있었던 건 서로 연대(단합)하는 사회가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냥 어느 날 존재했고 별일 없이 이어져 왔던 역사가 아니었던가 보다.


이어지는 『총, 균, 쇠』의 저자는 백인의 세계 주도는 운이라고 했다. 생존을 위해 해오던 농사나 필요에 의해 발명하는 농기구, 그렇게 시작된 연구는 전쟁 무기를 만드는 것까지 가능했다. 쇠가 만들어낸 전쟁 무기보다 더 획기적인 무기는 우리도 이미 알고 있듯이 생화학무기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해 우리의 모든 역사가 현대사라고 말하며, 기록에 남은 흔적으로 여러 가지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역사를 누가 언제 썼느냐 하는 건 역사를 또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이니까 말이다.


질문하면서 듣고 알게 되는 사실들로 우리는 탐구하는 인간이 된다. 저자가 탐구하는 인간으로 제시한 『국가』, 『장미의 이름』, 『군주론』, 『리바이어던』, 『로빈슨 크루소』, 『법의 정신』, 『에밀』, 『월든』, 『자유론』은 서로 매치가 되는 듯하면서도 거리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로빈슨 크루소』나 『윌든』은 가볍게 만나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어느 날 만난 자연의 세계에서 인간이 어떻게 생활하고 생각하며 벗어나는가 하는 이야기로 여겼다. 한편의 모험소설 같은, 다른 한편은 편하게 읽기 좋은 에세이처럼.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인간이 존재하며 느끼는 것들은 다르지 않았다. 다른 책에서도 보게 되는 것처럼, 국가가 지켜야 할 정의에 대해 생각하고, 인간이 구성한 사회를 잘 유지하기 위해 국가가 규제를 해야 한다는 거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평등한 인간 사회가 만들어지려면 강한 규제가 필요하고, 그걸 국가의 강한 공권력이 행사한다는 것. 요즘 세상의 기준으로 본다면 자칫 독재로 보일 수도 있는 내용들이기도 하지만, 국민의 법 감정도 무시할 수 없는 환경의 오늘이기에 우리를 평등하고 평화롭게 하기 위한 법으로 생각해도 좋을 듯하다.


개인이 부족이 되고 국가가 되고, 신이 지배하던 세계에서 시민이 권력을 가져오면서 민주주의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2장을 넘어가면, 3장에서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정말 생각해야 할 것들을 제시한다. 오랫동안 독자들에게 사랑받아왔으면서, 최근 몇 년 사이에 많이 보이던 베스트셀러나 필독서로 언급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이기적 유전자』, 『멋진 신세계』, 『코스모스』이다. 돈이면 모든 게 가능한 세상이 된 건 아닐까 하는 노파심과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얼마나 가치 있는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까놓고 말해서, 지금 돈으로 할 수 없는 게 몇 가지나 될까? 반대로 생각하면 돈이 없어서 불가능한 것들이 너무 많지 않은가. 그러면서도 놓치지 않는 인간적인 생각들이, 바로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경험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순간들을 기억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인간 세계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으면서 선명하게 보이는 계급이다. 과거의 언젠가 상상처럼 만들어놓은 이야기가 이제는 분명한 현실이 되어 흘러가고 있다. 인간에게 부여된 계급, 그 계급에 맞게 설계되고, 처음부터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사람들. 이게 정말 소설에서만 존재하는 이야기일까? 아니면 우리가 부딪힌 현실에서 마주하는 상황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며 살아갈 수 있을까? 세상은 발전하고 변화한다. 인간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더는 인간만이 가능한 일도 아닌 게 됐다. 그 어느 것도 당연하다고 여기며 고정관념처럼 묶어둘 수 없는 세상이 된 거다. 아니, 어쩌면 우리 인류가 처음 시작된 그때부터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는지도 모른다. 조금 더디게 그 변화를 인지하고 겪어가면서 몸에 맞는 옷으로 만들어왔겠지. 하지만 역사 속의 변화 속도가 지금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이미 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이고, 많은 것이 그 속도를 빨리한다. 상상에서만 머물렀던 것들이 현실로 눈앞에 존재하는 일이 더는 판타지가 아니다.


인류가 만들어낸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사회, 과학 기술의 발달이 인류에게 가져온 변화가 인류 역사에 어떤 길을 그려놓았는지 살펴보는 재미가 상당하다. 우리의 오늘에 하나하나 대입해서 읽어보면, 이 책들이 어렵다는 생각보다 흥미롭다는 생각이 더 많아질 것 같다. 때로는 지루하고 많은 양의 고전으로만 보였던 내용이, 알기 쉬운 설명으로 지식 습득을 가능하게 한다. 지식을 배우고 쌓는 게 아니라 즐기는 시간을 만들어준다. 누구도 예상하지 않았을 인류의 발전 속도가 숨이 가쁘면서도, 우리가 감당해야 할 현실이라고 생각하면 뭔가 더 알아야겠고 배워야만 할 것 같을 때 이 책이 그 허기를 채워줄 것이다. 거기에다가, 읽고 싶었지만 읽지 못했던, 읽지 않은 책을 다 읽은 것 같은 정리로 머릿속을 개운하게 해주는 건 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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