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탄생 - 뇌과학으로 풀어내는 매혹적인 스토리의 원칙
윌 스토 지음, 문희경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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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두려움에 대한 치료법이 바로 이야기다. (13페이지)

 

얼마 전에 종영한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여운은 계속되고 있다. 얼마나 반응이 뜨거웠으면 원작 드라마를 편성하기까지 했을까. 나도 뒤늦게 <부부의 세계>에 빠져들어 어느 순간 본방사수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저 뻔한 누군가의 불륜 이야기임에도 그 이야기에 빠져들어 벗어날 수가 없었다. 왜? 주인공의 상황과 감정에 감정 이입하게 되니까! 지선우(김희애)가 남편 이태오(박해준)의 불륜을 알았을 때 분노하지 않은 자 있는가? 배우자의 배신만큼이나 화가 났던 건, 이 부부의 주변 사람들이 남편의 불륜녀와 함께 여행까지 갔었다는 게 더 절망적이었다. 그동안 나를 가지고 얼마나 비웃었을까? 정작 아내만 모르는 남편의 불륜이 얼마나 흥미진진했을까? "만약 나라면?"이라는 가정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지선우는 복수한다. 남편의 모든 것을 빼앗고 내쫓는다. 통쾌했다. 암만! 그렇게 헤어졌다고 해서 가슴 속에 파고든 고통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상처받은 내 마음을 보상해줄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지선우의 복수로 이태오의 몰락을 보는 것 같았는데, 드라마는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지선우 보란 듯이 금의환향한다. 드라마의 분위기는 다시 뒤집어진다. 시청자는 놀랐고, 이태오가 어떻게 복수할지 궁금해했다. 지선우의 복수로 통쾌했던 마음은 다시 고구마 백 개를 먹은 것처럼 답답해졌다.

 

아마 이야기가 그렇게만 진행된다면 우리는 연거푸 사이다만 들이켜야 했을 것이다. 보는 내내 심장이 졸아들면서 답답했지만, 언젠가는 끝나는 게 드라마다. 이태오는 불륜녀는 행복한 듯했지만, 불륜녀는 남편과 전처 사이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결국, 이 커플은 헤어졌고, 이태오는 다시 거지가 된다. 이 이야기의 교훈이 뭘까? 권선징악? 도덕을 지키자?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인간이 이야기에 몰입하고 감정이입 하는 것을 '인간의 뇌'에서 찾는다. 이야기에 빠져들어 흥분하고 감정에 동요되고 누군가의 행복과 불행에 반응하는 마음은 우리 뇌의 신경과학적 반응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를 만드는 이들이 말하는 이야기의 구성이, 심리학자나 뇌과학자가 연구한 뇌와 너무 닮았다는 것을 발견한다. 우리의 뇌가 생각하고 현실 세계를 만들고 그 세계의 다양함을 이해하면서, 우리가 빠져드는 이야기가 탄생한다는 것. 뇌가 발견한 정보로 만든 세계를 우리가 현실이라고 착각하기도 하는 게, 영화나 책 속 인물이 보는 세계를 똑같이 보고 경험하는 것이 같은 의미다. 그러니 이야기를 만드는 이들은 얼마나 인간의 감각을 자극하는 요소를 꿰뚫고 있을까.

 

우리는 머리 밖의 현실을 아무런 장애물 없이 직접 관찰하는 것처럼 느낀다. 그러나 우리가 '바깥'으로 경험하는 세계는 사실 머릿속에서 구축한 현실의 재현으로, 스토리텔링 뇌에서 일어나는 창작의 결과다. (41페이지)

 

이야기는 우리가 머릿속의 저장고 안에 갇힌 채로, 영원히 고독한 환각의 우주에 갇힌 채로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지만 끝내 도망칠 수 없는 그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문이다. 이야기는 환각 속의 환각인 셈이다. (96페이지)

 

저자가 들려주는 많은 영화와 책의 장면들로 우리가 익숙하게 마주하는 스토리텔링의 세계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이야기로 만나는 매력적인 인물과 스토리가 어떻게 탄생하는지 뇌의 반응으로 이해하게 된다. 모든 이야기가 기승전결의 플롯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 구성의 방식이 아닌 이야기 속의 인물에 집중한다. 저자는 이야기의 구성과 짜임이 아닌 인물에게 관심을 둔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독창적이고 강렬한 플롯이 인물에서 나온다. 우리는 그 인물이 현실에서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궁금해지는데, 그건 우리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고 우리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알고 싶다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상황과 사람을 다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일까? 저자는 모든 이야기를 바라보고 이해하고 몰입하는 것은 뇌에서 시작되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만들어진 세계, 결함 있는 자아, 극적 질문, 플롯과 결말의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에서 우리의 뇌가 머릿속에 형성하는 세계를 인식하고 변화하는지, 우리가 접하는 다양한 작품에서 무엇을 받아들이는지 보면서 설명한다. 다양한 문학작품과 여러 영화로 주인공들의 감정을 엿보게 하면서 하나의 세상을 보여준다. 이야기를 시작하는 어떤 변화를 드러내면서, 우리가 듣는 모든 이야기가 뭔가 변화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을 이어서 보여주고, 극적 질문에서는 인간이 느끼는 근원적인 상처나 수수께끼의 열쇠까지 언급한다. 듣다 보면 단순하게 보이는 것들에 빠져든다고 여겼던 것이 혼란스럽다. 내가 드라마에 빠져 주인공의 복수에 감정이입하고, 소설의 주인공에게 닥친 위기의 순간에 긴장하는 게 모두 인간의 뇌가 반응하는 거라고 하니 놀랍기도 하다. 사실 우리는 뇌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이니, 세상에서 경험하는 많은 감정에 뇌가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순간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런 사실을 확인하거나 생각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저자의 설명으로 우리가 즐기는 이야기의 모든 설정이 새삼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가 빠져있는 스토리텔링의 과학을 저자는 뇌과학적 접근으로 말한다. 이야기가 풀어놓는 호기심은 인간 뇌의 보상체계가 자극받게 한다. 무언가를 갈망하는 것과 비슷한 반응이라는 거다. 그래서 우리는 결함 있는 주인공에게 마음을 더 주기도 하고, 그런 주인공의 인생에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우리 뇌가 경험하고 쌓은 편견으로 타인을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작품 속 모든 인물을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럴 때 우리의 현실과 부딪히며 이야기가 형성된다. 특히 저자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남아 있는 나날』을 언급할 때는, 내가 읽었던 작품인데도 주인공의 행동에 온전히 이해할 수 없던 순간을 떠올렸다. 집사의 인생이 그를 가뒀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자기가 이뤄놓은 가치를 흔들고 싶지 않았던 거다. 세상은 변하고 그가 세운 가치도 변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소설의 결말은 어찌 보면 다른 삶의 방향을 보여주기도 하는 듯하지만, 나는 그가 여전히 그가 세운 세상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그의 신념은 그를 무너지게 하는 도구로 바뀌었는지도 모른다.

 

좋은 이야기는 인간 조건을 탐구한다. 극의 표면에서 벌어지는 사건보다 인물에 더 집중한다. 낯선 마음으로 떠나게 되는 흥미진진한 여행이다.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인물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우리가 그 인물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극적인 싸움을 제공하는 이유는 그가 성공하고 매력적인 미소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가진 결함 때문이다. (84페이지)

 

우리가 행동하고 싸우고 살아가도록 이끌어주기 위해 우리의 영웅 만들기 뇌는 끊임없이 우리가 더 나은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처럼 사고하기를 바란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낙관주의와 운명이라는 착각으로 삶의 플롯을 밀고 나간다. (234페이지)

 

 

좋은 이야기는 인간을 성장하게 만든다고 한다. 익숙했던 우리의 세계를 넘어 낯설고 새로운 세상으로 빠져들게 하기 때문이라고. 그렇다면 우리는 좋은 이야기를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질문이 이야기를 만든다. 우리가 궁금해하는 모든 것은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는 우리에게 더 많은 세계를 보여주면서 결국 나에게로 질문이 되돌아온다. 우리가 만난 이야기로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의 답을 찾아가게 한다. 그 과정 자체가 또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질문의 답은 하나가 아닐 것이고, 그 답은 다양해질 수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이야기는 우리의 인식 변화에 많은 영향을 미쳐왔다. 저자가 언급한 문학 작품들만 봐도 긴 시간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이유가 있다. 그들과 함께 세상을 겪게 하고 나아가게 했다. 좋은 이야기는 끊임없이 세상을 배우는 가르침을 주었고, 누군가의 상처, 행복, 고통, 고민 같은 것들을 바라보게 하면서 세상과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부른다.

 

굉장히 흥미로운 접근으로 이야기의 탄생을 말하는 이 책에 조금 더 빠져들고 싶어진다.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들로 다가와서 그런지 어려운 단어가 등장해도 쉬운 설명이 된다. 우리의 뇌를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우리의 뇌를 자극하면서 즐길 수 있는 내용이다. 이야기의 존재가 단순히 재미만을 위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다양한 재능과 역할을 하는 그 '이야기'의 세계에 푹 빠져드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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