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 대하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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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고양이에 관해 처음 기억하는 장면은 잔혹했다. 어릴 적 저자의 아버지가 고양이들을 한쪽에 몰아놓고 총을 쐈던 일, 빠르게 번식하는 고양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택한 게 충격적이다. 그 충격이 얼마나 심했으면 15년 동안 고양이를 기르지 못했다고 말할까. 평소 인종, 성별, 계층 갈등을 날카롭게 파헤치던 저자에게도 이런 경험과 충격으로 고양이에 대해 연민을 드러낸다는 게 의외이기도 하지만, 역시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부드럽고 선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그동안 많은 작가(남성)가 자기만의 공간에서 함께한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는 궁금증을 안겨주기도 했다. 왜 고양이인가 하는 물음. 고양이를 향한 이들의 애정이 어느 정도이기에 그들의 삶과 함께해올 수 있었던가. 여러 가지 반려동물이 가진 존재의 의미와 더불어 고양이만이 가지는 어떤 감정이 진정한 마음을 나눌 수 있게 하는 거 아닐까 하는 호기심도 생긴다. 어쨌든, 고양이든 귀찮게 하지도 않고 그냥 옆에 있으면서 자기 존재감을 잃지 않는 것으로 자리를 지키는 듯하다. 고요한 일상의 한 장면을 그리면서 말이다.

 

고양이를 관찰하면서 쓴 이 책의 분위기는 고양이의 위대함 같다. 고양이를 칭찬하고 찬양하면서도, 정작 어떤 우상으로 보는 것도 아니다. 내 옆에서 나와 함께 살면서 애정하는 존재로 보면서도, 고양이 특유의 모습을 놓치지도 않는다. 가만히 뭉게뭉게 비비적대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킨다. 포근하게 그 털을 만지고 싶다가도 그 순한 눈을 보면 배시시 웃음이 난다. 처음부터 함께였던 것처럼, 그 존재를 따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마치 엄마처럼 가족처럼 보듬는다. 그러면서도 고양이 각자의 성격을 한없이 너그럽게만 보지도 않았다. 어미 고양이를 보는 존경과 예쁜 아기 고양이를 보면서 아름답지만 이기적이라고 말하기도 하는, 다정하지만 객관적인 시선을 가지기도 했다. 정말 인간 가족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 묘하면서도 웃음이 난다. 한없이 아껴주고 보살펴보는 엄마의 품을 그대로 느끼게 하고, 자식의 못된 성격을 나무라는 말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저자의 글에서 독자가 느끼는 이런 감정은 인간과 고양이를 따로 두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전해지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인간 세상에서 같이 존재하는 운명체로 보인다.

 

단순하게 고양이 관찰기 같은 거라면 이렇게 독자의 감정을 흔들지도 않았을 것 같다. 저자의 성장기에 봤던 장면들에서는 불행했던 유년기와 겹쳐지기도 한다. 이미 작가의 이름을 얻고 나서는 고양이를 보는 시선이 더 다양해진 것 같기도 하면서, 고양이 자체를 인격적인 존재로 대우하고 있음을 느낀다. 몸이 불편한 고양이에 관한 기억 역시 누군가의 상처를 아는 한 사람의 마음을 대변한다. 단순히 동거인으로의 고양이가 아니라 삶의 모든 순간에 함께한 이 고양이들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한 사람의 성장기와 비슷하게 흐르기도 한다. 어렸을 야생고양이를 봤던 장면은 치열한 삶의 현장 같기도 했다. 넘쳐나는 개체 수를 처리하고자 쏘아대는 총소리는 잔인했으며, 그 기억은 여전히 저자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이런 게 아닐까 싶으면서도, 후에 저자가 고양이를 키우며 마음에 담았던 생각들은 그 삶의 방식에 또 다른 방향을 열기도 한다. 어느 한 가지 방법만이 존재하는 게 삶은 아니므로, 생의 모든 순간에 부딪히는 잔인하고 끔찍한 순간에도 인간은 살아가려고 애쓰는 존재라는 생각.

 

이 책에서 묘사되는 고양이의 모습들을 보면서 인간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인간 세상에서 이렇게 고양이에게 친근한 모습들이 많은 건 아닐까 하는 웃음기 묻은 표정을 짓기도 하고 말이다. 고양이가 사랑하고 새끼를 낳고 키우면서 보이는 눈빛들은 마치 엄마가 아기를 낳아서 키우고 마음을 주는 인간과 다를 바 없었다. 아끼던 고양이가 세상을 떠나면서 겪었을 상실감도 무엇인지 너무 잘 보이더라. 그 상처가 얼마나 깊었으면 15년 동안 고양이를 자기 삶에 들일 생각을 못 했을까 싶기도 하고. 하지만 다시 인연을 시작한 고양이들과의 시간을 보면 오히려 더 나은 관계 맺기가 아니었을까. 자기 영역을 지키고 존중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자리에 고양이를 대입하여 생각하게 된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우리 사이의 적당한 거리, 마음으로 전해주는 온기와 응원, 삶의 곳곳에서 묻어나는 의외의 감정들 같은 거. 그 선을 넘을락 말락, 존중해주면서도 아슬아슬한 순간들을 겪어내는 인간 세상의 단면들을 보는 것 같아서 웃음이 난다.

 

읽는 동안 엄마가 키우다가 죽은 강아지가 생각이 났다. 오래전 일이다. 엄마가 키우던 강아지가 나이를 먹어 늙고 병들어 죽었다. 내 기억에는 그냥 그런 강아지가 우리 집에 있었던 것 정도였는데, 엄마는 그 죽음까지 봤단다. 요즘에 가끔 조카들이 오면 할머니에게 마당에 강아지를 키우자고 조르는데, 엄마는 그렇게 마음 주고 키우면서 보는 마지막의 죽음이 너무 싫단다. 꼭 그런 마음 때문이 아니더라도, 정식으로 알레르기 진단받은 건 아니지만 동물 털 날리면서 가려움이 심해지는 식구들 때문에라도 집에서 동물을 키운다는 건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혹시나 한 마음에 혼자 계실 엄마가 적적하지 않게 한 마리 들여오고도 싶지만, 누군가를 돌본다는 건 웬만한 마음으로는 어려운 일이기에 선뜻 실행에 옮기지도 못하겠다. 사랑을 주는 존재가 생긴다는 게 기쁜 일이지만, 마음만으로 돌봄을 완성하기에는 어려운 일이니까 말이다.

 

사람과 고양이 사이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해준 이야기다. 특히 고양이의 세계가 내가 눈으로 봤던 찰나의 순간들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게, 서로의 언어가 다르지만 교감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그러면서도 마냥 다 알 수 없는 마음이 조금 아쉽기도 하다. 냉정하게 마음먹고 살다가도, 길에서 본 고양이를 데려오면서 4년 만에 울음소리를 듣는 그 마음이 어떤 걸까 생각해본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마음, 누군가의 마음을 쓰다듬어 주고 싶은 노력이 깃드는 게 또 인간이 배워가는 세상 아닐까 싶다. 고양이를 보면서 더듬어 보는 자기 삶의 궤적들과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가는 존재들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들. 그렇게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고 증명하고 확인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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